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빌립보서 강해(10)] 하나님의 사람이 진정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빌립보서 3:1~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H0BYuIfc8s
1. 들어가며
빌립보서 강해가 벌써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감금된 상태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들이 얼마나 극진히 바울을 사랑하고 받은 은혜에 보답하려 했는지 그리고 바울이 보낸 에바브로디도의 사역과 병듦과 그의 회복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3장에 들어가는데, 3장에는 빌립보 교회가 직면했던 두 가지 큰 문제가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나 다른 경로를 통해 이 문제들을 전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문제는 교회 내부의 문제, 즉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다툼(빌 4:2)과 같은 것이었다면, 3장에 기록된 문제는 외부에서 침투한 이단 세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오늘날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같은 이단들이 교회를 흔들듯이, 당시 빌립보 교회에도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세력들이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그중 첫 번째 위협(3:1-16)은 ‘할례파’로 일컬어지는 유대 율법주의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온전히 구원받는다고 가르쳐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두 번째 위협(3:17-4:1)은 ‘십자가의 원수’로 불리는 반(反)도덕주의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영지주의의 쾌락주의파와 유사하게,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기 때문에 육체로 짓는 죄는 구원받은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가르치며 방탕한 삶을 정당화했다.
이번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 첫 번째 위협인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3장 1절에서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강력하게 경계하며(2절), 하나님의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고 소망해야 할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의 간증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신앙생활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목회 성공인가? 외적인 성장인가? 아니면 세상적인 명예와 자랑인가? 바울은 자신이 과거 유대 율법주의자로서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똥)로 여겼다고 고백한다(빌 3:8).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궁극적인 소망은 무엇이었는가? 이번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 목표를 재점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2. 바울이 경계하라고 한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일’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빌 3:1-3)
바울은 3장 1절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한 뒤, 곧바로 어조를 바꾸어 2절에서 강력한 세 가지 경고를 쏟아낸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이 세 부류는 모두 빌립보 교회에 침투하여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던 유대 율법주의자들(할례파)을 지칭하는 경멸적인 표현이다.
첫째, 바울을 그들을 “개들" 말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 호칭을 뒤집어, 율법의 행위를 내세우며 복음을 더럽히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마음이 불결한 자’, ‘진리의 가치를 모르고 섞어버리는 자’라는 의미에서 ‘개들’이라고 말했다.
둘째, 바울은 그들을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행악하는 자들'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악한 일꾼들’(τοὺς κακοὺς ἐργάτας)이다.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는 선한 일꾼이라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고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악한 일꾼들’이었다.
셋째, 바울은 그들을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몸을 상해하는 일'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잘라냄’(τὴν κατατομήν, 텐 카타토멘)이라는 뜻이다. 이는 ‘할례’(ἡ περιτομή, 헤 페리토메)라는 단어와 의도적으로 대비시킨 표현이다. 바울은 그들이 자랑하는 할례가 더 이상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가 아니라, 아무런 영적 의미 없이 그저 몸을 자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격하(格下)시킨 것이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도 신체 자해를 통해 자신의 경건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울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할례 강요를 이러한 이교적 행위와 동일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들을 이토록 강하게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그들이 육체적인 것, 외적인 것(할례)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며 성도들을 미혹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3절에서 누가 진정한 할례파(참 이스라엘)인지 알려준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육체적인 의식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능력으로 섬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율법이나 할례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분만을 자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혈통, 가문, 학벌, 율법 준수 등 외적인 조건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 진정한 할례는 외적인 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가죽을 베고(롬 2:29; 렘 4:4),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내면의 변화에 있는 것이다.
3.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육체의 자랑거리’들은 무엇이었는가? (빌 3:4-8)
바울은 자신이 유대 율법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육체적 자랑거리를 가졌던 사람임을 강조한다(4절). 만약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 옳다면, 자신이야말로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졌던 일곱 가지 자랑거리를 나열한다(5-6절).
첫째,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했다. 이방인 개종자나 한쪽 부모가 이방인인 경우(디모데처럼) 성인이 되어 할례를 받았지만, 바울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 가문 출신임을 말한 것이한다. 이는 양쪽 부모 모두 순수 유대인이었다는 뜻이다. 둘째,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했다. 이스마엘이나 에서의 후손이 아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야곱의 후손, 즉 선민 이스라엘의 일원임을 의미한다. 셋째, “베냐민 지파”라고 했다. 베냐민 지파는 야곱의 사랑받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며(요셉의 동생),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태어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배출했으며,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때 끝까지 유다 지파와 함께 믿음의 지조를 지켰던(모르드개 등) 자부심 강한 지파였기 때문이다. 넷째,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다.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히브리어(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전통과 문화를 철저히 고수한 정통파 유대인임을 의미한다(헬라파 유대인과 구별됨). 다섯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했다. 당시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해석하고 준수했던 바리새파에 속했으며, 그중에서도 최고의 율법 교사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행 22:3)으로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여섯째,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다고 했다.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너무나 특심하여, 율법을 어긴다고 생각했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으며(행 7:58; 8:1), 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 했다(행 9:1-2). 일곱째,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을 문자적으로, 외적으로는 완벽하게 지켰다고 자부할 만큼 철저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곱 가지 조건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명예요,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스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7-8절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케르도스, 이익)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害, 제미아, 해로운 것)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탁월)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배설물(σκύβαλα, 스퀴발라 - 똥, 쓰레기)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케르다이노, 벌어들이고)”라고 말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유익(이익)’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비교할 때 오히려 그리스도를 얻는 데 방해가 되는 ‘해(害)’요 ‘배설물’에 불과함을 깨달았은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벌어들이기 위해),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으로 채워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육체적 자랑거리와 세상적 가치들을 기꺼이 버리게 된다.
4. 바울이 진정으로 바라고 소망했던 것은 무엇인가? (빌 3:9-11)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 바울이 진정으로 바라고 소망했던 것,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9절에서 11절은 그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자신이 발견되는 것이었다(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의 첫 번째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의(율법을 지켜서 얻은 흠 없는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의(롬 3:21-22)를 덧입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율법적인 의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가리는 장애물임을 깨달았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만이 자신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그분 안에 거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과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랬다. 바울의 두 번째 소망은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그의 부활의 권능(능력)을 아는 것이었다. 그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실제 삶에서 경험하며, 자신 역시 그 능력으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롬 6:4)을 가리킨다. 둘째로,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위해 고난받으셨듯이, 자신도 기꺼이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는 것(골 1:24)을 가리킨다. 셋째로, 그의 죽으심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옛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기꺼이 그분의 부활의 능력뿐 아니라 고난과 죽으심에도 동참하기를 원했다.
셋째,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처럼 부활[의 출현]에 이르는(도착하는) 것이었다(11절).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의 궁극적인 소망은 ‘부활의 출현에 이르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자랑했던 모든 육체적인 것, 세상적인 성공과 명예는 부활의 영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며, 그분의 삶(고난과 죽음, 부활)에 동참하는 것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울의 목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흠 없는 의를 이루고 유대 사회에서 최고의 명예와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목표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며, 그분의 부활과 고난에 동참하여 최종적인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 되었다.
5. 나오며: 당신이 진정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진정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시 우리도 빌립보 교회를 어지럽혔던 유대 율법주의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들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학벌, 재산, 직분, 교회에서의 봉사 경력, 혹은 내가 지키는 종교적인 열심을 은근히 내세우며 그것을 나의 의(義)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의 성공, 명예, 인기를 얻기 위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바울은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해’(害)요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그러한 것들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을 수 없고 그분 안에서 발견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이 우리의 교만과 외식을 조장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천국 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자랑거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며,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동참하여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가치요 유일한 소망으로 삼는다.
이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자면, 내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회개를 통해 몰아내고, 오직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던 육체적인 것, 세상적인 것들은 모두 악한 영들이 역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안의 악한 영들은 떠나가지 않으며,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로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회개를 통해 내 안의 악한 영들을 비워내야만,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우리는 비로소 그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은 모든 수고, 교만과 자기 자랑으로 행한 모든 봉사와 헌신은 결국 ‘헛된 것’이 되어 마지막 날 아무런 상급도 받지 못하고 개털 모자를 쓰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진정 바라고 소망해야 할 것은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육체의 자랑거리와 헛된 욕망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날마다 회개를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그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2025년 11월 04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강해는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다루며, 참된 그리스도인이 바라보고 소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합니다. 본문은 빌립보 교회에 침투한 유대 율법주의자들, 즉 할례파와 반도덕주의 세력이 야기한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경고를 해설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육체적인 행위나 외적인 조건을 자랑하는 것의 허망함을 지적하며, 자신이 과거에 자랑했던 모든 유대교적 배경과 특권들—8일 만의 할례,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등—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해로운 것, 심지어 배설물로 여겼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신앙생활의 진정한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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