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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9A27TWbpvR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31)] 이기는 자가 되었던 모세가 받은 복은 대체 무엇인가?(01)(눅9:28~36)_2026-02-23(월) 

https://youtu.be/9A27TWbpvRI

 

1. 들어가며

  성경을 관통하는 거대한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당신의 뜻을 이룰 '이기는 자'들을 찾고 세우셨다. 우리는 앞서 창세기를 통해 야곱과 유다, 요셉으로 이어지는 개인과 가족 차원의 이기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계와 환경을 돌파하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모형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한 가정에 머물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접어들면서 구원의 무대는 '민족'과 '국가'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 국가적 차원의 구원 역사 한가운데에 우뚝 선 거인이 있으니, 바로 모세(Moses)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낸 위대한 영도자일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가장 빛나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완숙한 이기는 자의 표본이다. 천국에서 위대한 자란 곧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고, 예수님의 삶을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자'를 뜻한다.

  이번 시간에에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자신의 내면과 환경을 극복하고 이기는 자의 반열에 올랐는지를 간단히 정리하면서 이어서 철저한 자기 부인과 순종의 대가로 그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어떤 엄청난 복과 특권을 받았는지를 7가지 질문을 통해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이 진리를 깨닫고 삶에 적용하는 자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결코 실패하지 않고, 주님과 얼굴을 대면하여 아는 영광스러운 승리자로 서게 될 것이다.

 

 

2. 개인적 차원(야곱, 유다, 요셉)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이기는 자'로 부름받은 모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창세기의 족장들이 보여준 승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주로 가문 내부의 갈등, 개인의 연약함, 형제간의 시기와 복수심을 극복하는 개인적 차원의 승리였다. 예를 들어, 야곱은 얍복강에서 자기 환도뼈가 꺾이는 고통 속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가 낳은 열두 아들 중 유다와 요셉은 자기 희생과 고난의 통과를 통해 이기는 자의 꽃과 열매가 되었다. 이것은 개인 구원과 가정 구원의 놀라운 예표였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감당해야 했던 사명은 차원이 달랐다. 그는 당대 세계 최강대국인 애굽의 바로 왕과 맞서야 했고,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척박한 광야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세의 어깨에는 한 개인의 생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전체의 운명이 짊어져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 매우 중대한 영적 의미를 던져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 혼자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수준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나 자신의 내면적 죄악을 이겨내는 개인적 승리를 넘어, 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수많은 영혼을 마귀의 압제(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천국(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구원자(영적 모세)'의 사명으로 부름받은 것이다. 모세의 삶은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영적 성숙의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3.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가기 위해, 단순한 '성품 훈련'을 넘어 우리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진짜 영적 싸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많은 기독교인과 신학자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성품을 다듬고 윤리적으로 선해지는 제자 훈련'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성품 훈련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없다. 우리 속에는 분노, 혈기, 미움, 시기, 걱정, 우상숭배를 일으키는 수많은 뱀들과 귀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로마서 8장이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묵상하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수백 번 되뇌어도, 내 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을 실제적으로 내어 쫓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혀 혈기와 정욕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의 몸 안에는 귀신이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실 수 있었다. 구약 시대에 모세의 얼굴에서 수건으로 가려야 할 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빛이 났던 이유도, 그가 바로 철저한 연단을 통해 내면의 뱀들(악한 본성과 영들)을 비워내고 극도로 정결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닮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영적 전쟁', 즉 날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철저한 회개 기도를 통해 내 영혼과 육체 속에 숨어 있는 귀신들을 뽑아내는 '축사 사역'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속을 비워내지 않고 겉모습만 꾸미는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기 때문이다.

 

 

4.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나누었던 '별세(엑소도스, 탈출)'에 관한 대화는 인류 구원사에서 어떤 결정적 의미를 갖는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의 절정을 향해 가실 때, 변화산('다볼산'으로 추정함)에 오르사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찬란한 영광의 형상으로 변형되셨다. 그때 하늘의 보좌실에서 거룩한 천상 회의가 열리듯 두 사람이 내려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그들이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여기서 '별세(別世)'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엑소도스(Exodos)', 즉 '탈출(출애굽)'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탈출시켰듯이, 이제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엑소도스를 통해 전 인류를 죄와 사망, 그리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영원히 탈출시키실 것을 의논하고 계셨던 것이다.

  인류 구원의 가장 중대한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주님은 당신이 하실 사역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던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 그 뜻을 나누셨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구원 경륜 가운데 얼마나 위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기는 자였는지를 증명하는 경이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5.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천국에 입성한 이기는 자들이 '어린 양의 노래'와 함께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의 위대함은 신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찬란하게 빛난다.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을 보니, 짐승과 그의 우상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기는 자들)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거문고를 타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는 찬양의 제목이 놀랍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한계시록 15:3)

  왜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노래인 '어린 양의 노래'와 함께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인가? 그것은 구원자로서 모세가 행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출애굽) 사역이,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피로 이루신 인류 구원(영적 출애굽)의 완벽한 예표이자 상호 대등적인 구속사의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압제받는 백성을 건져낸 위대한 종이었다. 천국의 이기는 자들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불렀던 그 승리의 노래를, 마귀의 세력을 꺾고 영원한 천국에 입성한 자신들의 구원과 겹쳐보며 세세토록 찬양하는 것이다.

 

 

6.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완성되기 위해 반드시 꺾고 돌파해야만 했던 5가지 내면의 적(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모세가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이었으며, 이기는 자로 빚어지기 위해 내면에 도사린 5가지 치명적인 적들(뱀들)과 싸워 꺾어야만 했다.

  첫째, '세상의 향락과 유혹'이다.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스스로 거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다. 둘째,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이다. 생사여탈권을 쥔 당대 최고의 권력자 바로 왕 앞에서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으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내었다. 셋째, '절망적인 환경'이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는 사면초가의 절망 속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이 믿음의 지팡이를 내밀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넷째, '이기심과 개인의 영광'이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고 모세로 새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며 자신의 영광과 생명을 내려놓는 극강의 자기희생을 보였다. 다섯째, '혈기와 억울함'이다. 자신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 그리고 끊임없이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도 그는 온유함과 침묵으로 엎드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친족인 고라일당이 반기를 들었을 때에도 온유함으로 이를 처리했다. (비록 므리바 반석에서 한 번의 혈기를 부리는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의 일생의 대부분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다.) 이 모든 내면의 뱀들을 쳐부수었기에 그는 마침내 온전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7. 내면의 적을 이겨낸 모세가 하나님과 누렸던 '친밀함'의 깊이는 어느 정도였으며, 그것은 이 땅에서 어떤 놀라운 기적과 표적으로 나타났는가?

  자아를 철저히 파쇄하고 내면의 더러운 것들을 몰아낸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전무후무한 이 땅의 복을 부어주셨다. 그것은 3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그 첫 번째 복은 기적과 표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압도적인 친밀함'이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민수기 12:8)

  보통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환상이나 꿈으로 희미하게 말씀하셨지만, 모세와는 친구가 얼굴을 마주 보듯 명백하게 대화하셨다(민 12:6-8). 모세의 심령이 귀신이나 죄의 찌꺼기 없이 극도로 정결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직접 대면하여 만나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영안이 열린 사역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통 사람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수십 초, 수 분이 걸린다면, 모세는 부르는 즉시 몇 초가 안 되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절대적인 영적 주파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동행과 확신은 모세의 손을 통해 애굽, 홍해, 그리고 광야 40년 내내 상상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표적과 기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철저히 자기를 비운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입증해 주신 위대한 보상이었다.

 

 

8.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이기는 자의 삶을 산 모세가 이 땅에서 받은 '대언자'와 '구원자'로서의 영광은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축복의 모델이 되는가?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또 다른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위대한 복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요, 민족의 '구원자'로 쓰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이 궁금할 때마다 모세를 찾아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입술을 통해 '율법'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인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낸 불세출의 구원자로 역사에 기억되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기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이름과 업적은 하늘에서도 영원히 빛나고 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29-30)

  예수님의 이러한 약속처럼, 모세는 자아를 버리고 고난을 택한 대가로 인해, 이 땅에서도 백성들의 절대적인 존경과 표적의 권능을 백 배나 누렸다. 신약의 성도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세처럼 내 속의 뱀들을 쫓아내고 이기는 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주님은 이 땅에서도 우리를 영혼을 살리는 구원자요 진리의 대언자로 귀하게 쓰실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 모세를 통해, 개인의 승리를 넘어 국가와 민족을 구원하는 참된 '이기는 자'의 위대한 궤적을 살펴보았다. 모세는 단순히 율법을 전해준 딱딱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의 정욕과 두려움, 이기심과 혈기라는 내면의 무서운 뱀들을 철저히 쳐부순 승리자였고, 그 결과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서 호흡하며 영광의 빛을 발산한 자였다.

  오늘날 우리 앞에도 각자의 빠져나와야 할 '애굽'이 있고, 건너야 할 '홍해'가 있으며, 통과해야 할 '광야'가 있다. 무엇보다 내 영혼과 가정을 파괴하려는 수많은 귀신과 악한 영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한다. 이때 우리는 세상의 위로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면서 철저한 회개와 축사로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이러한 영들을 제거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세처럼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이기는 자로 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면하여 주실 것이며, 이 땅에서도 영혼을 살리는 능력의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장차 저 천국 보좌실에서 "너는 참으로 나를 닮은 이기는 자였다"라는 주님의 찬사를 들으며, 모세와 엘리야, 바울과 베드로가 누리는 그 위대한 영광의 반열에 당당히 합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그리고 그가 천국에 입성하여 누리고 있는 더 엄청나게 큰 상급은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자.

 

2026년 02월 23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성경 인물 모세의 삶을 통해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받는 축복의 실상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본 설교는 모세가 세상의 유혹, 권력에 대한 두려움, 이기심 등 다섯 가지 관문을 돌파함으로써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하는 친밀함의 복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통로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모세가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인류의 구원을 논의한 사건은 그가 단순한 인물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자 하늘 보좌실 회의에 참여하는 존귀한 존재임을 입증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를 통한 영적 승리를 거둘 때 이 땅에서의 동행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예비된 영원한 영광과 보상을 실제로 누리게 됨을 역설하며 신앙의 정진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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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긴 글 ]

 

  창세기를 통해 한 가족의 역사 안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었던 '이기는 자'의 모형은, 출애굽기에 이르러 민족적이고 거국적인 스케일로 확장된다. 야곱과 유다, 요셉이 개인과 가족 단위의 영적 전투를 치러낸 이기는 자의 예시(豫示)였다면, 모세는 거대한 제국 애굽과 정면으로 맞서며 한 민족 전체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낸 이기는 자의 완전한 실상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해 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가장 완벽하게 살아낸 위대한 예표가 되었다.

  우리는 지난 글에서 모세가 이기는 자로 서기 위해 돌파해야 했던 다섯 가지의 영적 관문, 즉 세상의 안락과 유혹,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 절망적인 환경, 이기심, 그리고 혈기와 억울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이기는 자'가 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보상과 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세상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은 자를 결코 빈손으로 두지 않으신다. 우리는 모세가 이 땅에서, 그리고 천국에서 누리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을 추적하며,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이 고난의 좁은 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1. 들어가며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들은 막연히 착하게 산 사람들이 아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을 닮고,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살아낸 자들이다. 과거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할 때, 단순히 도덕적인 '성품 훈련(제자 훈련)'만을 떠올리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치열한 영적 싸움이 결여된 성품 훈련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수십 년간 똬리를 틀고 있는 혈기, 분노, 근심, 미움, 다툼, 그리고 우상 숭배의 영(뱀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나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애쓸 때, 어느 정도까지는 변화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오면 내면에 숨어 있던 악한 영들이 폭발하듯 튀어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진정한 성화와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삶은, 오직 깊은 '회개'를 통해 내 속에 있는 귀신들을 쫓아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모세의 얼굴에서 해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회개를 통해 그의 내면에 더러운 악한 영들이 거할 처소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적인 원리를 가슴에 새기며, 철저한 회개를 통과한 이기는 자 모세가 경험한 영광스러운 복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2. 진정한 영적 변화와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연륜이 쌓여도 쉽게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그 이유는 진정한 영적 변화의 메커니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성숙은 단순히 좋은 책을 읽고 결심을 새롭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상 숭배의 영과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들어온 수많은 귀신(뱀들)이 집을 짓고 있다. 진정한 영적 변화는 이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회개'에서 출발한다.

  단순히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라고 되뇌는 형식적인 기도로는 악한 영이 떠나가지 않는다. 죄의 뿌리를 정확히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뽑아내는 치열한 영적 싸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회개 기도문을 읽는 것 자체가 마법의 주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내 죄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영적 청소를 해나가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우리는 내면의 혈기와 분노를 다스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온전히 반사하는 '이기는 자'로 빚어지게 된다. 모세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40년의 광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자아와 혈기를 철저히 깨뜨리고 비워낸 결과였다. (민 12:3)

 

3. 변화산 사건과 '별세(엑소도스)'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변화산(다볼산) 사건은 이기는 자가 누리는 영광의 실체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후, 놀랍게도 구약 시대의 두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를 소환하여 대화를 나누신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인류 역사상 시공간을 초월하여 죽은 자를 불러내어 대화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이는 예수님이 곧 창조주이시며 시공간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명백한 증거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수많은 성경의 인물 중 하필 모세와 엘리야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자요,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은 천국에서 인류의 구원 역사를 의논하는 하나님의 보좌실(회의실)에 참석하는 가장 권위 있는 이기는 자의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바로 예수님의 '별세(別世)'였다. 헬라어 원문으로 '별세'는 '엑소도스(Exodos)', 즉 '탈출'이라는 뜻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Exodus)시킨 구원자였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시고, 더 나아가 전 인류를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탈출(Exodus)'시키실 위대한 구속 사역에 대해 의논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거대한 구원 사역의 그림자로서 모세가 얼마나 완벽하게 그 예표의 삶을 살아냈는지를 증명하는 눈부신 순간이다.

 

4. 천국 유리 바닷가에서 두 가지 노래가 함께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의 삶이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천국 예배 장면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요한계시록 15:2-3)

  천국의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자들은 세상의 유혹과 핍박, 짐승의 표를 이겨낸 '이기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예수)의 노래'다. 하늘의 거룩한 예배에서 일개 인간인 모세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대등한 위치에서 찬양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낸 육적, 민족적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마귀와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내신 영적, 우주적 구원 역사의 완벽한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받들어 목숨을 걸고 민족을 구출해 낸 이기는 자 모세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시며, 그의 이름을 천국의 영원한 찬양 속에 새겨 넣으셨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희생한 이기는 자가 받는 상상할 수 없는 천국의 보상이다.

 

5.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첫 번째 복으로서, '하나님과의 절대적 친밀함'은 어떤 수준이었는가?

  모세가 이 땅에서 받은 가장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친밀함'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하나님과 가깝게 교제하기를 원하지만, 모세가 누렸던 친밀함의 깊이는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보통 꿈이나 환상으로 말씀하셨지만, 모세에게만큼은 전혀 달랐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애굽기 33:1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민수기 12:8)

  모세는 대제사장 아론조차 1년에 단 한 번 짐승의 피를 가지고 두려움 속에 들어가야 했던 지성소를 수시로 드나들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했다. 죄로 물든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은 것은, 모세의 내면이 그만큼 회개와 순종으로 정결하게 비워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고 장막에서 나올 때면, 그의 얼굴에서 해처럼 눈부신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출 34:33)

  이러한 친밀함은 기도의 응답 속도에서도 나타난다. 필자도 영적 스승으로부터 훈련을 받을 때, 처음에는 "주님" 하고 불렀을 때 응답이 오기까지 무려 3분 25초가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 안에 남아있는 영적 장애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1분 이내로 줄이기 위해 피나는 회개와 영적 싸움의 훈련을 4년 이상 지속해야만 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을 부르면 1초의 지체함도 없이 곧바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것이 이기는 자가 현세에서 누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복, 즉 조물주 하나님과의 막힘없는 영적 교제와 친밀함의 극치다.

 

6.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두 번째의 복으로서, '압도적인 기적과 표적'은 우리에게 어떤 영적 원리를 시사하는가?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두 번째 복은 그의 사역 내내 동반되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과 이사(異蹟)'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넘실대는 '홍해'를 마른땅처럼 가른 사건, 그리고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40년간 내린 만나, 반석에서 터져 나온 생수, 불뱀에 물린 자들을 살려낸 놋뱀 사건 등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인간도 모세만큼 거대하고 지속적인 기적의 통로로 쓰임 받은 적이 없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사도행전 7:36)

  이러한 압도적인 표적들은 결코 모세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출 3:12)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모세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종이자 이기는 자'임을 보증해 주시는 신성한 결재 도장이었다.

  신약의 사도 바울 역시 사도권에 대한 무수한 비난과 모함에 시달렸지만,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는 성령의 능력이 그와 함께함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사도라는 것을 확증 받았다. 오늘날 이기는 자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유혹을 끊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억울한 일도 당하고 조롱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온유함과 인내로 그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기적적인 도우심과 표적을 통해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명해 주신다. 이것이 이 땅에서 이기는 자가 누리는 위대한 보호하심의 복이다.

 

7.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세 번째의 복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모세가 이 땅에서 누린 세 번째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대언하는 자'로 쓰임 받았다는 것이다. 모세 이전의 율법과 규례들은 구전으로 떠돌았지만, 모세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성문화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준이 되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질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한복음 1:17)

  신약성경조차 모세의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대조할 만큼, 그가 받은 말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길을 잃었을 때, 재판의 판결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뜻이 궁금할 때 언제나 모세에게로 나아왔다. 사람들은 모세에게 묻는 것이 곧 하나님께 묻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엄청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철저한 자기 부인과 낮아짐에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200만 명의 절대적인 복종과 우러름을 받을 때 쉽게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려 할 때나, 피붙이인 미리암과 아론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며 침을 뱉을 때조차 결코 자신의 힘과 권위를 사사로이 휘두르지 않았다. 도리어 먼지 나는 광야 바닥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처분만을 구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은 이 겸손한 질그릇 속에 당신의 가장 거룩하고 권위 있는 진리의 말씀을 담아 온 세상에 흘려보내신 것이다.

 

8.  느보산에서 보여준 모세의 궁극적인 면모는 무엇인가?

  이기는 자의 가장 숭고하고도 눈물겨운 모습은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 요단강 맞은편 느보산 정상에서 펼쳐진다. 모세는 40년간의 살인적인 광야 생활을 견뎌냈다. 쏟아지는 불평과 반역 속에서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갔던 단 하나의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느보산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모세에게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선고가 떨어진다. "너는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신 34:4)

  필자가 성지순례 중 느보산 정상에 올랐을 때다. 저 멀리 푸르게 빛나는 여리고 성과 사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나절만 걸어 내려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평생을 바쳐 꿈꾸던 약속의 땅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서서 묵상할 때,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만약 모세였다면, 평생 헌신한 대가가 이것이냐며 분노하고 억울해하지는 않을까? 주님이 이제 '너는 여기까지다'라고 말씀하실 때, 과연 나는 모든 사역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조용히 무대 뒤로 퇴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모세는 단 한마디의 불평이나 변명 없이,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했다. 자신이 비록 혈기를 부렸던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앞에 엎드리며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권한을 말없이 넘겨주었다. 끝까지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이 눈부신 순종.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빼닮은 이기는 자의 찬란한 완성이다.

 

9. 나오며

  이 땅에서 이기는 자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세상의 향락을 포기하고 박해와 고난의 좁은 길을 걷겠다는 결단이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의 기득권과 영광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는 현세에서도 100배의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이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는 전무후무한 친밀함을 누리고, 가는 곳마다 기적을 동반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원자요 말씀의 대언자로 쓰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29-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세에서 누리는 모세의 영광은, 그가 죽은 뒤 천국에서 받게 된 상급에 비하면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실에 앉아 예수님과 인류의 구원 역사를 의논하고, 기념관에서 자신의 삶이 영원한 찬양의 제목이 되어 불리는 모세의 그 진짜 영광스러운 천국의 복은 과연 어떠할까? 다음 시간에는 지상의 상급을 뛰어넘어, 모세가 천국에서 누리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찬란한 실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볼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고난의 광야 길을 끝까지 견뎌내어, 훗날 새 예루살렘 성에서 모세와 함께 영원한 찬양을 부르는 영광의 '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2월 23일(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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