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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2.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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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nXjJaFuelY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XjJaFuelYY 

 

 

1. 들어가며

 사람은 무엇을 사모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이 땅의 성공을 사모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사모하며, 어떤 사람은 육신의 평안만을 사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은 하늘의 것을 사모한다. 그는 이 땅을 최종 목적지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알고, 그 본향을 향해 오늘의 삶을 준비한다.

 다윗은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아니었다. 그는 시온산을 사랑했고,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집으로 사모했으며,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일을 왕국의 중심에 두었다. 또한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를 질서 있게 세웠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었다. 다윗이 세운 질서 안에는 장차 하늘 보좌 앞에서 드러날 24장로와 새 예루살렘과 이기는 자의 왕권을 예표하는 영적 그림자가 들어 있었다.

 특히 이번 말씀은 성도가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교정한다. 천국은 단순히 죽은 뒤에 편안하게 머무는 추상적 상태가 아니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생명나무, 생명수의 강,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막연한 위로만 붙들 것이 아니라, 성경이 보여 주는 실제적인 하늘 왕국의 질서를 배워야 한다.

 시편 110편은 이 다윗의 왕권을 넘어 더 깊은 왕권을 보여 준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내 주라고 불렀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단지 다윗 왕조의 영광을 말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시고,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며,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실 것을 보여 주는 왕권의 계시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이 말씀은 매우 실제적이다. 성도는 단순히 천국이라는 막연한 장소를 기대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최종 목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하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옛 왕의 전기를 읽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며, 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이번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대표적 예표가 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의 시온 사랑, 예루살렘 사모, 찬양의 열정, 24반차의 질서, 한 보좌를 향한 신앙, 그리고 이기는 자의 왕권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을 통하여 시온과 예루살렘과 찬양과 보좌의 질서가 어떻게 새 예루살렘 성과 이기는 자의 왕권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시편 110편의 왕은 왜 다윗의 주인가?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이지만, 다윗 자신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 시는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다윗은 자기보다 더 크신 분을 내 주라고 부른다. 왕이었던 다윗에게도 주가 계셨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구약의 왕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110:1).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직접 해석하셨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라고 불렀음을 지적하셨다. 그리스도는 분명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단지 혈통상 후손이 아니다. 그분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 다윗이 경배해야 할 주이시다(22:43-45).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이 말씀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연결된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보좌에 앉아 만유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고, 신약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주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실 메시야이면서, 동시에 다윗을 지으시고 다윗을 세우신 주 하나님이시다.

 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더 분명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고 하셨다. 뿌리는 근원이다. 자손은 열매다. 예수께서는 다윗에게서 나오신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을 있게 하신 분이다. 이것이 다윗 왕권의 비밀이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예표했지만, 그리스도는 다윗을 넘어서는 원형이시다(22:16).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시편 110편의 왕은 단순한 이스라엘 왕이 아니다. 그는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는 왕이며,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며,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까지 가지신 왕이다. 다윗은 이 왕을 바라보았고, 성령의 감동 가운데 그를 내 주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다윗이 위대한 이유다. 그는 자기 왕권을 자랑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왕을 알고 그 왕을 사모한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시편 110편은 왕권과 제사장 직분이 한 분 안에서 만나는 것을 보여 준다. 왕은 다스리는 자이고,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백성을 대신하여 섬기는 자다. 그런데 이 왕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지 통치자만이 아니라, 자기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준다(110:4).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오늘날 성도도 이 질서를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은사와 권세는 모두 주님 아래에 있다. 다윗이 자기 왕권을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에 두었듯이, 성도도 자신의 사명과 은사를 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에 두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의 길이 열린다.

 

 

3. 다윗은 왜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했는가?

 다윗의 생애에서 시온은 매우 중요한 장소다.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 불렀다. 이것은 단순히 수도를 정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도성, 곧 예루살렘과 시온의 영적 의미를 열어 가신 사건이다(삼하 5:7).

삼하 5: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시온은 처음부터 화려한 성전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 다윗은 그곳을 점령한 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오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사모했다. 자기 왕궁보다 하나님의 집을 더 마음에 두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성을 먼저 찾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를 곳을 먼저 사모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사랑을 여러 번 고백했다. 그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할 때 기뻐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예루살렘에는 지파들이 올라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고, 거기에 다윗의 집의 보좌가 있다고 노래한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 수도가 아니라 예배와 감사와 보좌가 만나는 장소였다(122:1-5).

122:1-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다윗에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고 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하리라고 했다. 여기서 형통은 단순한 세상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적 복이다(122:6).

 또한 다윗은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지만, 성전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보석을 준비했고,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넘겨주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손을 놓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기 세대에 맡기신 몫을 알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길을 닦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마음이다.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이 마음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성도는 세상 도시의 번영만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사람이다. 다윗이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듯이, 신약 성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성은 성도의 마지막 목적지이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한 것은 단순한 애국심이나 수도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처소를 향한 영적 갈망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하나님 없는 왕궁보다 하나님이 계신 집을 더 사모한다.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땅의 왕이었지만 하늘의 성을 바라본 사람이었다.

 

 

4. 새 예루살렘은 왜 다윗의 고백과 연결되는가?

 다윗이 사랑한 시온과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의 계시로 확장된다. 물론 새 예루살렘 성은 다윗이 만들어 낸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경륜 가운데 예비하신 거룩한 도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도성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 다윗의 시편을 통해 시온과 예루살렘의 언어를 성경 계시 속에 깊이 새겨 두셨다.

 시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말한다. 또한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단순한 지리 명칭으로만 사용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복을 주시며 찬송을 받으시는 거룩한 장소의 이름이 되었다(128:5, 135:21).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135:21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은 장차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한다. 그 성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도시가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이다. 그 성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답게 준비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단순한 상징이나 마음의 상태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실제적이고 영원한 처소다(21:2).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또한 요한계시록 14장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시온의 최종 의미가 그리스도와 이기는 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완성됨을 말한다. 다윗이 땅의 시온을 하나님의 산으로 사모했다면,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시온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는 자들을 보여 준다(14:1).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이 흐름을 보면,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 나라의 타임라인 속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윗은 시온을 점령했고,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집으로 사모했으며, 시온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 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셨고,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지상의 시온은 하늘 시온의 그림자요, 지상의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의 예표다.

 성도는 이 연결을 알아야 한다. 천국을 막연히 좋은 곳으로만 생각하면 새 예루살렘 성의 목표가 흐려진다. 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늘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다윗의 시온 고백은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 안에 놓인다. 지상의 시온 정복에서 다윗성이 시작되었고, 다윗의 예루살렘 사모에서 여호와의 집에 대한 갈망이 노래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왕권이 성취되었고,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이 완전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일하신다.

 

 

5. 다윗의 찬양은 어떻게 하늘 보좌를 예표하는가?

 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다. 그는 왕으로서 전쟁을 치렀고 나라를 다스렸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결코 주변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레위 사람들 가운데 4천 명을 세워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다. 또한 악기를 준비하고 찬양의 질서를 세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대상 23:5).

대상 23:5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다윗이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들이라

 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일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 행위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음과 목소리와 삶을 드려 하나님을 높일 때, 그 자리는 하늘 보좌의 질서를 이 땅에 미리 가져오는 자리가 된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신다고 고백한다(22:3).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다윗의 찬양 사역은 성전 예배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제사만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 드릴 찬송의 소리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은 매우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 제사는 죄 사함과 속죄의 질서를 보여 주고, 찬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제도만 만드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의 분위기를 세우는 자다.

 천국에서도 찬양은 중심이다. 요한계시록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을 보여 준다. 특히 십사만 사천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로서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배운다. 이것은 보좌 가까이에 있는 자들에게 특별한 찬양의 권세와 영광이 있음을 보여 준다(14:3).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다윗이 4천 명의 찬양대를 세운 일은 하늘의 찬양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로 볼 수 있다. 다윗은 땅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질서를 세웠고,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보좌 앞 찬양의 질서를 보여 준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찬양한 자는 장차 하늘에서도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소망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찬양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찬양은 감정의 흥분만도 아니고 예배 순서의 장식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고백이다. 특히 회개한 자의 찬양은 더욱 귀하다. 죄로 더럽혀진 입술이 보혈로 씻겨 하나님을 높일 때, 그 찬양은 보좌 앞에 향기로운 예배가 된다. 다윗은 바로 이것을 알았던 왕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전쟁에서 이기는 능력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질서를 세운다. 다윗의 찬양은 그래서 하늘 보좌의 예표가 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권은 찬양 없는 권력이 아니라 찬양으로 보좌를 높이는 거룩한 왕권이다.

 찬양은 영적 전쟁과도 연결된다. 악한 영은 하나님을 높이는 정결한 찬양을 싫어한다. 반대로 성령께서는 회개한 심령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신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 때 악령이 떠났던 사건은 찬양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영적 분위기를 바꾸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왕은 백성의 영혼을 살리는 왕이다.

 

 

6. 24반차는 왜 24장로의 예표가 되는가?

 다윗은 성전 섬김의 질서를 세울 때 24반차라는 구조를 사용했다. 그는 제사장들을 반차로 나누었고, 레위 사람들과 찬양대와 문지기들도 질서 있게 세웠다. 이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행정 방식만이 아니었다. 다윗이 세운 24반차에는 장차 하늘 보좌 앞에서 나타날 24장로의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적 의미가 있다.

 제사장 반차의 예는 누가복음에서도 확인된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다. 아비야 반열은 다윗 시대에 정해진 제사장 반차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다윗이 세운 반차 질서가 신약 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1:5).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역대상은 아비야가 여덟째 반차였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사가랴의 제사장 직무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다윗이 세운 질서의 연장선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윗은 성전 봉사의 흐름을 질서 있게 세웠고, 그 질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예배의 구조를 형성했다(대상 24:10).

대상 24:10 여덟째는 아비야요 아홉째는 여사야요

 요한계시록은 하늘 보좌 주위에 24장로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 있다. 이것은 그들이 단순한 예배 참석자가 아니라 통치와 제사장적 섬김의 영광을 함께 가진 자들임을 보여 준다(4:4).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다윗의 24반차와 요한계시록의 24장로는 숫자만 같아서 우연히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질서를 24반차로 세웠고,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보좌 주위에 앉은 24장로를 보여 준다. 땅의 성전 질서가 하늘 보좌 질서를 반영하고, 하늘 보좌 질서가 땅의 예배 질서 안에 예표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 질서 없이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예배에도 질서를 두시고, 섬김에도 질서를 두시며, 하늘의 영광에도 질서를 두신다. 모든 성도가 같은 장소와 같은 영광과 같은 보좌를 받는 것은 아니다. 충성의 분량, 회개의 깊이, 주님을 사랑한 정도, 맡겨진 사명을 감당한 정도에 따라 하늘의 신분과 상급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24반차는 성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질서 안에 있는가? 나는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사모하는가? 나는 이 땅에서 맡겨진 작은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하늘의 큰 영광만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윗이 세운 질서는 오늘의 성도에게 충성과 섬김의 길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신 이유는 그가 자기 왕권만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섬길 사람들을 세웠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다. 이것이 하늘 왕국의 질서다. 참된 왕은 혼자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다.

 이 질서는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된다. 교회는 은사와 직분을 경쟁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에게 맡겨진 자리는 하늘 보좌를 섬기는 예표적 자리다. 앞에 선 자도 하나님 앞의 종이고, 뒤에서 문을 지키는 자도 하나님 앞의 종이다. 다윗의 24반차는 모든 섬김이 하나님의 집 안에서 질서와 목적을 가져야 함을 가르친다.

 

 

7. 하늘 보좌는 왜 하나이며 누가 그 보좌에 앉는가?

 하늘 보좌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사실은 보좌가 하나라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 만유를 다스리는 왕권은 본래 한 분 하나님께 속해 있다.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 한 분이 아니시며,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분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홀로 만유의 왕이시다(103:19).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이 보좌의 진리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의 중심이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다른 보좌에 앉은 다른 신적 존재들처럼 나누어 보아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는 하나님은 어린양으로 오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 아버지는 영으로 계시며, 아들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 그는 자기를 낮추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왕권의 절정이다(3:21).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단지 믿는다는 이름만으로 같은 왕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는 죄와 세상과 사탄과 자기 육체를 이기는 자다. 그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주님의 뜻을 위해 자기 생명을 드리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다.

 다윗은 이러한 이기는 자의 예표였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으며, 찬양과 예배의 질서를 세웠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왕권을 더 크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기보다 크신 주를 알고 그 주를 높였다.

 하늘 보좌가 하나라는 사실은 성도의 신앙을 바로잡는다. 성도는 사람의 권세나 직분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모든 권세는 한 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동시에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은 성도의 삶에 거룩한 도전을 준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자를 기억하신다. 그들에게는 단지 들어가는 구원만이 아니라, 다스리는 상급과 왕권의 영광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천국을 단지 안전한 피난처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보좌 가까이 나아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 주님 가까이에서 찬양하고 섬기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의 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배우는 이유다.

 왕 노릇은 세상적 지배욕이 아니다. 하늘의 왕권은 자기 뜻을 관철하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책임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순종으로 보좌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성도도 자기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드릴 때 하늘 왕권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 보좌는 욕망의 자리가 아니라 이김의 결과로 주어지는 자리다.

 

8. 이기는 자는 어떻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가?

 성도의 최종 목표는 막연한 천국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 안에 들어갈 권세를 받기 때문이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을 가리킨다(22:14).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여기서 구원론의 균형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은 은혜다. 그러나 믿었다고 해서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 안에 들어갈 자는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곧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죄를 품고 사는 자, 세상과 타협하는 자, 귀신에게 문을 열어 주는 자, 주님의 보혈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영광을 가볍게 기대할 수 없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헬라어로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아는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사랑하던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한 자리에서 빠져나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성도를 성령의 전으로 회복시키는 정결의 길이다.

 또한 이기는 자는 충성하는 자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생애 동안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비록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지만, 다윗은 마음과 재물과 질서를 다해 그 일을 예비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귀히 여기셨다. 오늘의 성도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작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이 하늘의 큰 영광을 준비한다.

 이기는 자는 찬양하는 자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침묵이 아니라 찬양이 있다. 하나님 보좌 가까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한다. 다윗이 땅에서 시온의 하나님을 찬송했듯이, 성도는 이 땅에서도 보좌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가져야 한다. 회개 없는 찬양은 얕아지고, 찬양 없는 회개는 기쁨을 잃기 쉽다. 회개와 찬양이 함께 갈 때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의 삶을 미리 맛본다.

 이기는 자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다. 예수께서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폭력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열망과 적극적인 믿음을 말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자는 적당히 신앙생활하지 않는다. 그는 회개를 선택하고, 사명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다(11:12).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오늘의 선택은 장차 받을 영광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성도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으신다. 회개를 선택하는 자와 죄를 붙드는 자는 같을 수 없다. 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자와 세상 성공만을 사모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 보좌 가까이 찬양하기를 원하는 자와 변두리에 머물러도 만족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의 길은 분명하다. 회개로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길을 가는 성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며,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영광을 얻는다.

 이 길에서 귀신론적 분별도 필요하다. 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며, 상처와 미움과 탐욕과 음란은 영혼을 어둡게 만든다. 그러나 회개는 그 통로를 닫고, 보혈은 더러움을 씻으며, 성령은 성도를 다시 빛 가운데 세우신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사람은 은혜를 값싼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9. 나오며

 우리는 시편 110편의 왕권과 다윗의 시온·예루살렘 사모가 어떻게 새 예루살렘과 이기는 자의 보좌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단순한 옛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예표였고, 다윗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한 인물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성도는 시편 110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보이는 하나님이시며,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는 왕이시다. 성도는 모든 직분과 은사와 권세를 그분의 왕권 아래에 두어야 한다.

 성도는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 오늘날 그 사모함은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져야 한다. 천국을 막연한 평안의 상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실제적인 도성이며, 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있다.

 성도는 다윗처럼 찬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찬양은 예배의 장식이 아니라 보좌 앞에 나아가는 길이다. 회개한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도는 하늘 보좌의 질서를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한다. 다윗이 4천 명의 찬양대를 세우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듯이, 성도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세워 가야 한다.

 성도는 다윗이 세운 24반차의 질서를 통해 하늘의 질서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무질서하게 일하지 않으신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의 섬김에는 질서가 있었고, 요한계시록의 24장로도 보좌 앞 질서 속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직무를 소홀히 하지 말고, 하늘의 영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한다.

 성도는 하늘 보좌가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왕권은 한 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런데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하지 말고, 죄와 세상과 사탄과 자기 육체를 이기는 자가 되어 보좌 가까이 나아가는 영광을 사모해야 한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이다. 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성도를 성령의 전으로 회복시키는 길이다. 믿음은 시작이고, 회개와 충성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 가는 길이다. 성도는 오늘의 선택이 장차 천국의 신분과 상급과 영광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말씀은 성도의 신앙 목표를 분명하게 교정한다. 성도는 구원받았다는 말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구원받은 자답게 왕이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해야 하고,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날을 준비해야 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하고, 회개와 찬양과 충성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2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경 속 다윗 왕의 열망과 신앙적 표현이 하늘나라의 실재인 새 예루살렘 성과 시온산의 명칭 및 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역설합니다. 다윗이 지상에서 세운 24 반차의 제사장 및 찬양대 제도는 천국 보좌의 체계로 투영되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합한 자의 소망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증명하는 영적 원리로 제시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도들이 단순히 구원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윗처럼 하나님 중심의 사명과 사모함을 품어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권세와 보좌 가까이에서 찬송하는 영광을 누리기를 강력히 권면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핵심은 철저한 회개와 충성된 헌신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종말론적 소망과 사명 의식을 고취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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