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방언통역(01)] 어떻게 하면 나도 영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을까?(고전 14:12~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A1Qbb_tg3c
1. 들어가며: 영권의 분기점을 넘어서라
오늘날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무기력함을 호소한다. 예수를 믿으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환경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고 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지만 확신이 없고, 말씀은 듣지만 변화가 더딘 것이다. 마치 성능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도 시동 거는 법을 몰라 주차장에 세워둔 채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지금 영적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이번 시간의 이 글이 우리의 영권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영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영을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인 방언과, 그 방언을 실제적인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방언 통역의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방언 통역을 그저 신령한 사람들만 하는 특별한 은사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영의 언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혼의 언어로 바꾸어,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의 하나이다. 이번 시간에 이 원리를 깨닫고 훈련한다면, 우리의 말에는 권세가 실릴 것이며 우리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보도록 하자.
2. 겟세마네 기도에서 발견한 세 가지 의지의 충돌은 무엇인가?
우리가 영을 잘 사용하려면 먼저 영이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마 26:39). 이 짧은 기도 속에 무려 세 가지 의지가 등장한다.
첫째는 '아버지의 원' 즉 아버지의 의지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뜻으로,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둘째는 '나의 원', 즉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의 인성의 의지다. 육체는 고통과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고, 아버지와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존재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셋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재되어 있는 예수님의 영의 의지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 즉 그분의 영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예수님의 인성의 의지가 영의 의지와 아버지의 의지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사실은, 영은 단순히 기운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실체라는 점이다. 우리 영도 마찬가지다. 내 영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고,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며, 거룩한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육체의 소리에 묻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왔을 뿐이다. 영을 잘 사용한다는 것은 바로 이 속사람의 의지를 깨워 겉사람을 이끌어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혼의 지정의와 영의 지정의는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고 느끼고 결단하는 기능을 혼의 영역으로만 국한한다. 뇌 과학자들은 이것이 뇌의 작용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육체 안에 있는 혼은 뇌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며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이것을 공부하여 지식을 쌓고, 소위 박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혼이 가지고 있는 지정의다( 잠 24:14, 삼상 1:10, 욥 6:7, 신 26:16).
그러나 성경은 혼과 구별되는 영이 지정의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첫째로,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라고 반문한다. 이처럼 영에게는 앎의 기능, 즉 지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혼의 지성은 배워야 아는 것이지만, 영의 지성은 직관으로 안다. 아니,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한다. 또한 둘째로, 영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는 내 영이 주를 기뻐한다고 했고(눅 1:47), 예수께서도 심령에(영 안에서) 비통히 여기셨다(요 11:33). 이처럼 영은 하나님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영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영 안에서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했듯이(행 19:21), 영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결단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혼의 지정의만 개발하고 영의 지정의는 방치했기 때문이다. 세상 지식은 가득하지만 영적 분별력은 없고, 감정은 풍부하지만 영적 감각은 무디다. 진짜 능력은 혼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의 지성이 열려 하나님의 뜻을 보고, 영의 의지가 발동하여 믿음으로 선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을 제어하는 것 이상으로 영을 훈련하고 개발해야 한다.
4. 왜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에게 통역을 구하라고 했는가?
영을 개발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탁월한 방법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했다(고전 14:18).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고전 14:2). 그러므로 혼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영은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그래서 방언을 많이 말하면 자기의 덕을 세우게 된다. 즉, 속사람이 건축되고 강건해지는 것이다( 엡 3:16).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왜 그랬을까? 방언 자체는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전 14:13). 그러므로 만약 교회에서 성도들이 다 같이 방언으로만 말한다면 초신자나 믿지 않는 자들은 미쳤다고 할 것이며, 아무런 교훈이나 위로를 받지 못할 것이다(고전 14:23). 이것은 개인에게는 유익하지만 공동체에는 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방언에는 더 깊은 영적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방언 통역의 능력에서 나타난다. 그럼, 방언통역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영의 언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혼의 언어, 즉 모국어로 변환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과정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영의 뜻과 권세가 물리적인 소리로 표현되어 나올 때에라야, 비로소 물질 세계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필자도 2년 동안 방언 통역을 집중적으로 훈련했을 때 비로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했을 때에 방언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약 90%이상 대부분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요 우리의 미래에 관한 비전에 관한 말씀들이다. 그리고 약 10% 정도는 내가 하나님께 올리는 간절한 영적 소원들이다. 이 내용이 해석되어 내 입술로 선포될 때, 우리는 비로소 막연했던 영적 기운이 구체적인 말씀이 되어 내 삶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통역은 영계의 능력을 물질계로 다운로드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5. 아담의 언어와 바벨탑 사건 이후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가?
이 원리를 이해하려면 인류의 언어 역사를 구속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태초에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 충만한 존재였다. 그는 영이 살아 있었고, 영의 지정의가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동물들을 데려오셨을 때, 아담은 그들의 본질을 영으로 꿰뚫어 보고 즉시 그것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때 아담이 사용한 언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영의 뜻을 담아 혼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담이 '너는 사자'다 하면 사자는 그 이름을 받아들였고 아담의 권세 앞에 복종했다. 아담은 영의 언어를 혼의 언어로 자유롭게 변환하여 만물을 다스렸던 것이다.
그러나 범죄 이후 영이 죽으면서 인간은 이 능력을 상실했다. 영의 언어는 사라지고 혼의 언어만 남게 되었다. 게다가 바벨탑 사건으로 그 혼의 언어마저 혼잡하게 되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의 말은 더 이상 만물을 다스리는 왕의 명령이 아니라, 그저 의사소통이나 감정 표현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파도가 잠잠해지지 않고, 질병이 떠나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이 세상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시게 된 것이다. 그때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이 지난 싯점이었다. 그러자 마가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행 2:1~4). 그러므로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방언말함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영의 언어가 회복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는데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알아들었다는 점이다. 바벨탑의 저주가 풀리고 영의 언어가 혼의 언어로 통역되어 전달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방언을 말하고 통역한다는 것은, 아담이 가졌던 그 통치적 언어 능력을 회복한다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 우리가 방언으로 영의 에너지를 모아서, 통역을 통해 그것을 한국어로 선포할 때, 그 말은 아담의 말처럼 만물을 복종시키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방언 통역을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6. 방언 통역은 왜 영권을 강화시키는 핵심 훈련인가? (비밀 공개)
방언 통역은 단순히 남의 방언을 알아맞히는 은사 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영권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훈련 과정이다. 그 비밀은 통역의 매커니즘에 있다.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께 올리는 비밀한 기도다(고전 14:2). 이때 내 영은 신성(Divinity)에 접속되어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아직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영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방언 통역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방언통역은 이 영계의 언어를 물질계의 언어(혼의 언어)로 끄집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권세, 능력을 내 입술의 말(한국어)에 실어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방언으로 기도한 내용을 통역을 하여 끄집어내고 있다고 치자. 그때 질병에게 떠나가라고 선포한다고 어떻게 될까? 그냥 맨정신으로 질병은 떠나가라 하는 것과, 영으로 충만하게 방언으로 기도한 뒤 그 영의 기운을 담아 통역하며 선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후자의 말에는 어떤 영적 중량감(Weight)이 실린다. 질병이나 귀신은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도 과거에 귀신을 쫓아낼 때, 처음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2년 동안 집중적으로 방언 통역과 방언 찬양, 축복하는 것을 훈련한 뒤에는 달라졌다. 필자의 말에 권세가 붙기 시작했다. 귀신더러 나가라고 하면 나갔고, 병에서 나으라고 하면 낫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왜인가? 내 말이 단순한 혼의 소리가 아니라, 영의 권세가 실린 통치적 언어로 탈바꿈 했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 통역 훈련은 우리의 입술을 왕의 입술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훈련을 통과하면 우리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어떤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7. 영적 통치권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가 도전해야 할 4단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영의 성장에 관한 로드맵을 4단계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순서대로 도전해 보라.
1단계: 방언 말하기를 힘쓰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초다. 영이 입을 열어서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직 방언을 못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사모하며 구하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성령)을 주신다(눅 11:13). 이미 방언을 받았다면 장롱 속에 넣어두지 말고 매일 꺼내어 그것을 사용하라. 혀를 성령께 맡기고 자신의 영으로 기도하라. 이것이 영을 깨우는 첫 단추인 것이다.
2단계: 방언 통역하기를 구하라. 방언을 말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4장 13절 말씀대로 통역하기를 기도하라.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주님, 이 뜻이 무엇입니까? 제 입술로 말하게 하옵소서" 라고 구하라. 그러면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동, 혹은 입술을 통해 우리말로 터져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이 통역인 것이다. 두려워 말고 시도하라. 틀려도 괜찮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자꾸 시도해야 통로가 뚫린다.
3단계: 방언으로 찬양하라. 어느 정도 방언을 하고 방언통역을 하는 단계에 들어갔다면 그 다음에는 방언에 곡조를 붙여 찬양을 하라. 영이 기뻐 춤추게 하라.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은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말한다. 방언 찬양은 영의 감성을 깊이 터치하고,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곡조 있는 방언을 하다 보면 영의 깊은 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온다. 그때에 천국도 가고 주님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4단계: 방언으로 축복하라. 가장 높은 단계다. 영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다. 고전 14장 16절에 보면 영으로 축복할 때라는 표현이 나온다. 내 영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타인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방언으로 축복 기도를 하고, 그것을 통역하여 들려주라. 그 축복은 빈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이 되어 그 사람의 영혼과 환경을 살려낼 것이다.
8. 믿음 없는 자는 왜 영의 언어를 무시하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아직까지도 방언이나 방언통역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신비주의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라며 반박하거나 비하한다. 심지어 신학교에서도 방언은 끝났다고 가르치기도 한다(방언중지론). 왜 그럴까? 그들에게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 세계가 실재한다는 믿음, 내 안에 영이 있고 그 영이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믿음, 그리고 예수 이름에 권세를 영을 사용할 때에 귀신도 복종하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영의 언어는 그저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당시에 이러한 믿음 없는 자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당당히 말했다(고전 14:18). 그는 평소에는 방언을 많이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알았다. 이 영의 언어야말로 자신의 사역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결국 영의 세계를 알고 영의 세계에서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방언을 귀하게 여겼고, 그리고 이어서 통역을 사모하여 통역을 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영의 언어를 비판하며 무기력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영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9. 나오며: 영의 언어를 혼의 언어로 선포하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영권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비결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아담이 가졌던 그 통치권,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신 그 왕권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 아담에게는 보이는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허락하셨다(창 1:28).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뱀들을 집어올리고,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는 통치권을 허락해주셨다(막 16:17-18). 아담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와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은 아담에게 주셨던 영의 언어를 혼으로 발언하여 사용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잃어버린 영의 언어를 되살려주셨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또 다른 축복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입을 열어서 방언으로 기도하라. 방언으로 기도하여 영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라. 그리고 통역을 구하여 그 영의 능력을 한국어를 사용해 선포하라. 그리고는 질병을 향해 꾸짖으라. 가난을 향해 명령하라. 자녀의 앞길을 축복하라. 그러면 우리의 입술에서 나가는 말이 영의 권세를 입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드디어 물질 세계가 통역된 언어에 복종할 것이다. 열이 올라가는 아이에게 "열은 떨어져라" 하면 열이 떨어질 것이고, 찢어진 심장 근육에게 "심장근육은 붙어라" 하면 붙게 될 것이다. 이것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인 것이다.
이제부터 이 4단계 훈련을 시작하라. 방언하고, 통역하고, 찬양하고, 축복하라. 당신의 영이 깨어나 포효할 때, 당신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이제부터 성도들은 방언과 방언통역을 통해 영권을 확보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1월 25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목적]
본 설교는 고린도전서 14장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영적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방언을 넘어 방언 통역과 영의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역설합니다. 본 설교는 인간이 혼의 지성·감정·의지뿐만 아니라 영의 지정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아담이 범죄로 잃어버렸던 영적 통치권을 성령의 임재와 방언을 통해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본 설교는 방언을 혼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인 방언 통역의 실천을 통해 영적 능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질병 치유와 귀신 축출 같은 실질적인 영권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메시지는 성도들이 영적 어린아이에 머물지 않고 방언 찬양과 축복의 단계로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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