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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zrVBTDDAZEU
날짜 2026-03-01
본문말씀 히브리서 7:11~17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3-01(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기독론(36)] 왜 예수께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오셨는가?(히7:11~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rVBTDDAZEU

 

1. 들어가며

  우리가 걷고 있는 회개와 영적 전투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머리로는 회개만 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릴 줄 알았지만, 막상 영적 세계에 뛰어들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려 하다 보면 수많은 공격과 고통, 그리고 응답의 지연을 경험하게 된다. 우상 숭배에 찌든 가문에서 태어나 온몸에 귀신의 집을 짓고 살았던 필자도 역시, 이 영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처절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치열한 싸움 끝에 하나님이 분명히 알게 하신 진리가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전능자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사탄 마귀에게 지지 않으시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개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토록 고단한 영적 전투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단순히 천국 문턱만 간신히 넘는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천국의 상속자인 '이기는 자'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야곱과 유다, 요셉이 가족사 속에서 어떻게 이기는 자로 빚어졌는지 살펴보았으며, 출애굽기를 통해 모세와 아론이 거대한 민족사 속에서 어떻게 이기는 자의 예표가 되었는지 확인하였다. 그러나 흠 많고 연약했던 인간 아론의 제사장 직분만으로는 이기는 자의 진면목을 다 알아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아론의 한계를 완벽하게 뛰어넘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아야 한다. 그분을 깊이 알 때, 비로소 우리도 천국에서 세세 무궁토록 다스릴 '왕 같은 제사장'의 거룩한 사명을 고르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왜 우리를 단순한 구원이 아닌 '이기는 자'로 부르셨으며, 요한계시록에 약속된 이기는 자의 최종적 영광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를 "예수 믿고 지옥에 가지 않는 것" 정도로 축소해 버린 현대 교회의 가르침은 매우 빈약하고 안타깝다. 성경 전체의 결론이자 완성인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최종적인 영적 신분이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을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말미에 가서는 항상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 중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그들은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당당히 입성하여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특권을 얻는다는 것이다(계 2:7). 성 밖에 머무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7)

  둘째, 영원한 자기 기업을 상속받는다(계 3:12). 천국에서 영원히 거할 아름다운 대저택과 그 땅의 소유권이 주어지며, 우리 자신을 섬기는 천사들이 영원히 배속된다. 이마에 새겨진 하나님의 이름이 이를 보증한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2:26-27)

  셋째,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 곧 '왕 노릇 하는 통치권'을 얻게 된다(계 2:26-28, 3:2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으로 부리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우주를 아들과 함께 통치할 왕과 제사장으로 살라고 부르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귀신들을 몰아내며 치열하게 '이기는 자'로 살아야만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6-28)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이겼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3:21)

 

3. 구약의 율법에 따라 세워진 '아론 반차(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왜 온전할 수 없었으며, 어떤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레위 지파인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결코 '온전함'에 이를 수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준다. 만약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온전했다면, 굳이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히 7:11)

  그렇다면, 아론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가진 한계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측면에서 명확했다.

  첫째, 제사장 자신이 연약한 죄인이었다는 사실이다(히 5:1-3).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반드시 자기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흠없는 분이셨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이 필요치 않았다. 

  둘째, 직분의 영속성이 없었다는 것이다(히 7:23-24). 제사장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었기에 직분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만 했다. 예수님 당시에는 무려 18,000~20,000명의 제사장이 있었을 만큼 그 수가 많고 교체가 잦았다. 그리고 제사장직을 이어받을 사람이 온전한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다. 그러므로 항상 살아계시는 분 오직 예수님만이 그 직분을 영원히 갖고 계셔서 그분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그분은 언제든지 온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었다(히 7:24-25)

  셋째, 짐승의 피로는 인간의 영(양심)을 근본적으로 정결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히 9:9-10, 9:14). 율법에 따른 희생 제사는 육체에 상관된 죄를 임시로 덮어주는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만 잡아 바치면 된다는 식의 의식적인 제사는 인간의 썩어빠진 양심을 도무지 새롭게 변화시킬 능력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옛 언약인 율법 제도가 끝이 나고 새 언약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이다.

  넷째, 제사법이나 성막법 등은 율법의 한 부분인데,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것으로서, 약속하신 자손(씨)가 오실 때까지 유효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장차 없어질 그림자와 모형인 옛 언약의 율법 하에 세워진 것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라질 언약 하에서 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로는 이 임시법이자 모형법 아래에서 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 대제사장직은 새 언약하에서 다시 체결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참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이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라이디아서 3:19)

 

4. 율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왜 참된 대제사장을 레위 지파가 아닌 전혀 다른 '유다 지파'를 통해 세우셔야만 했는가?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오직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아론의 혈통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7장 14절은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라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왜 율법을 깨뜨리는 것처럼 보이면서까지 참된 대제사장을 '유다 지파'에서 세우셨을까?

  그 이유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제사장이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고 원수를 짓밟는 '왕'의 권세를 동시에 지닌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히 7:14-15). 성경에서 왕권은 유다 지파(다윗의 후손)에게만 허락된 축복이었다. 그러므로 온전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권을 상징하는 유다 지파로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박살 내는 전사이자 왕이 되셔야 했고, 동시에 인류의 죄를 속량하는 대제사장의 직분까지 겸하여 수행하셔야만 했다. 율법의 틀 안에 갇힌 레위 지파로는 이 영광스러운 이중 직무(왕과 제사장)를 도무지 담아낼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딴 대제사장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5. 창세기에 홀연히 등장한 '멜기세덱'은 어떤 인물이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예표하는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아론의 반차를 뛰어넘는 이 놀라운 '왕이면서 제사장'인 존재의 원형은 구약 율법이 주어지기 무려 500년 전, 창세기 14장의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홀연히 등장했었다(창 14:18-20). 그가 바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이다(야살의 책에서는 그가 바로 노아의 첫째 아들 '셈'이라고 나온다). 그는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네 명의 강력한 왕들과 싸워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했던 신비로운 인물로서, 이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예표하는 세 가지 독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8)

  첫째, 그는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다(창 14:18). 그의 이름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며, 그가 다스리는 살렘(평화)은 그를 '평강의 왕'으로 증명한다. 동시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왕의 후손으로서 오셔야 했기에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오신 것이다(히 7:14-15). 그리고 당시 왕이라 함은 대적들을 쳐부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마귀와 그의 귀신들을 쳐부수는 자로 일하였다. 

  둘째, 그는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는 자였다(창 14:18). 백성들에게서 떡의 재료인 곡식(밀과 보리)과 포도주를 받아먹기만 하던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달리, 멜기세덱은 전쟁에 지쳐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생명의 양식인 떡과 포도주를 베풀고 그를 축복하는 능동적인 수여자였다. 그런데 사실 '떡과 포도주'는 예수께서 성만찬 때에 새 언약을 제정하시면서 사용하시던 2가지 상징적인 도구였다(눅 22:19-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22:19-20)

  셋째, 그는 율법적 계보가 아닌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된 영원한 제사장이었다(히 7:20-21). 멜기세덱은 족보도, 시작과 끝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존재였다(히 7:1-3). 그리고 시편 110편 4절에서 다윗은 B.C.1000년경에 장차 오실 메시아를 향해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라고 예언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역시 이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쇠하지 않는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6.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제공한 사건은, 오늘날 영적 지도자와 성도들에게 어떤 사명의 전환을 촉구하는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건넨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대단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밤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생명의 양식)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 스스로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생명의 떡과 구원의 포도주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참된 대제사장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영적 지도자와 성도들의 사명에 엄청난 전환을 촉구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축복을 '얻어먹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려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진짜 이기는 자는, 남의 것을 취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생명의 말씀(떡)과 십자가 보혈의 능력(포도주)을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이웃과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아낌없이 공급해 주는 자인 것이다. 나의 희생과 중보 기도를 통해 누군가를 살려내고 그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멜기세덱을 닮은 참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7.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오신 참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영혼과 삶에 어떤 궁극적인 기적을 일으키는가?

  불완전한 짐승의 피는 인간의 육체적 부정을 임시로 가릴 뿐이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단번의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보혈은 우리의 영혼에 궁극적이고 영원한 기적을 일으킨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육체 속에 진을 치고 있는 악한 귀신들을 제거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양심과 영'까지 완벽하게 깨끗하게 해주는 폭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구약의 백성들은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더러운 정욕을 품고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죽은 행실을 도려내시고 거룩한 본성을 회복시켜 주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사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아론처럼 중간에 죽어 직분이 끊길 염려가 없다. 그러므로 이 영원하신 대제사장을 굳게 의지하는 자는 어떤 악한 마귀의 참소 앞에서도 결코 정죄당하지 않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된다.

 

8. 예수님의 뒤를 이어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24 장로)'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영적 전투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왕이면서 제사장'의 길을 걸어가셨듯,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이기는 자의 최종 신분 역시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중에서도 천국의 24 장로들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본받아 왕과 제사장의 사명을 치열하게 감당했던 자들이다. 사실 복빎은 받은 자는 복을 비는 자보다 작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왕들이 있고 그 왕들위에 대제사장들이 있는 것이다. 고로 천국에서 예배는 대제사장들이라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 이끄는데, 그들은 24마을의 수장들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영적 전투를 치러야 하는가? 먼저 '왕'으로서 내 속에 침투한 귀신과 뱀들을 향해 피를 토하는 회개로 맞서 싸워야 한다. 둘째, 무기력하게 당하지 말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내 몸과 가정에 진을 친 사탄의 권세를 짓밟고 영적 영토를 탈환해야 한다. 셋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가족과 구역 식구, 이웃을 위해 눈물의 중보 기도를 올려야 한다. 내가 겪은 뼈아픈 고난과 회개의 능력을 생명의 떡과 포도주로 삼아 그들에게 먹이고 살려내야 한다. 귀신을 두려워하여 회개를 포기하거나 영적 싸움에서 도망치는 자에게는 왕 같은 제사장의 영광스러운 보좌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유다 지파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위엄을 살펴보았다. 율법의 낡은 의식을 깨뜨리시고, 당신의 온전한 피로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씻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지식이나 교리에 갇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악한 영들을 불태우고 나를 거룩하게 세우는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영적 무기다.

  이 거대한 구속사의 섭리를 깨달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교회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종교인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우연히 이 시대, 이 가정, 이 고통 속에 던져진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주님은 나를 귀신들과 싸워 이기는 영적 전사이자 이웃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위대한 대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예배의 자리에서 졸음과 나태함의 영을 쫓아내고 진리의 말씀을 생명처럼 받아먹자. 그리고 가정과 세상으로 나아가 끝장을 보겠다는 일사각오로 회개의 검을 휘두르자.

  그리할 때, 우리도 역시 훗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새 예루살렘 성의 눈부신 보좌 곁에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2026년 03월 01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히브리서 7장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적인 아론의 반차가 아닌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와 그 영적 의미를 강론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율법과 아론 계통의 제사직은 인간의 연약함과 죽음으로 인해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진 예수님만이 우리의 양심까지 깨끗게 하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실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특히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한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이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최종적 신분인 왕 같은 제사장의 예표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와 영적 싸움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따라 천국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다스림의 권세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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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우리민족사명(02)] 에벨의 아들 욕단 민족의 이동과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은?(창10:21~31)_2025-12-21(주일) file 갈렙 2025.12.22 387
648 [우리민족사명(01)] 마지막 시대에 우리 민족에게 맡겨주신 고귀한 사명은 무엇인가?(출19:3~6)_2025-12-14(주일) file 갈렙 2025.12.15 435
647 [질병치유시리즈(19)] 질병의 영들은 어떻게 축사하고 환자를 치료할 것인가?(막16:17~18)_2025-12-07(주일) file 갈렙 2025.12.07 450
646 [질병치유시리즈(15)]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줄 것인가?(요한일서 1:7~9)_2025-11-30(주일) file 갈렙 2025.11.30 517
645 [질병치유시리즈(09)] 질병에서 낫는 법(3) 치유(治癒)가 신유(神癒)가 되게 하라(마가복음 5:24~34)_2025-11-23(주일) file 갈렙 2025.11.24 709
644 [질병치유시리즈(03)] 한 떡에 참여하는 성찬에 담긴 놀라운 또 하나의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고전11:27~34)_2025-11-16(주일) file 갈렙 2025.11.17 578
643 [질병치유시리즈(0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질병을 내리시는 근본적인 이유는?(출5:1~3, 15:26)_2025-11-09(주일) file 갈렙 2025.11.09 927
642 [주일2부]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요일3:14~15, 4:18)_2025-11-02(주일) file 갈렙 2025.11.03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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