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강해(03)] 5대제사 중 속죄제와 속건제는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레4:1~6:7)

이 설교는 레위기에 나타난 5대 제사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제사의 본질이 단순한 죄 사함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헌신에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정보배 목사는 제사를 자발적인 자원제(번제, 소재, 화목제)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제(속죄제, 속건제)로 구분하고, 특히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는 속건제의 정신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삶에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각 제사 식양에 담긴 영적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결 짓는 동시에, 신자들이 각자의 사명과 분량에 맞춰 겸손하고 순전하게 봉사해야 한다는 실천적 교훈을 전달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구약의 제사법이 폐지된 의식이 아니라, 성도들이 온전한 회개와 책임 있는 헌신으로 나아가게 돕는 영적 지침서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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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 슬라이드 221. 속죄제에서 신분이 높을수록 더 큰 제물을 요구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타락한 사역자들의 말로는 어떠한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인 '속죄제'는, 죄를 지은 자의 영적 신분과 직분에 따라 제물의 크기와 규례가 엄격하게 다르게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는 가장 값비싼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족장은 숫염소를, 평민은 암염소나 어린 양을, 그리고 극빈자는 비둘기들이나 고운 가루를 바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헌제자의 직분에 따라 제물을 차등 적용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영적인 지위가 높을수록 짓는 죄의 무게와 파괴력은 훨씬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회자나 지도자가 영적으로 타락하면, 그를 따르는 수천, 수만 명의 영혼이 한꺼번에 타락에 물들어 결국에 성밖으로 던져지게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의 교만과 타락을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으신다. 지금도 신령한 은사를 받고 놀라운 능력을 받고도 스스로를 메시아로 칭하는 마귀의 범죄에 빠지는 사역자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기와 명예가 올라가면 어느새 돈과 음란에 빠져서 이단 교주들이 되어버리고 타락한 사역자들이 되어버려, 사망의 길을 가는 자들이 많다. 그러면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들은 결국 성령의 능력을 빼앗긴채,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귀신에게 쓰임받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죄의 책임 또한 무겁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고로 다른 이들로부터 잘 했다고 하는 칭찬과 높이 여김을 받는 명예를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엎드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상겨해야 한다. 그런 자만이 타락의 늪에서 벗어는 유일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 죄 용서를 넘어 배상을 요구하는 '속건제'의 정신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엄중한 경고를 주는가?
의무제 중에서 특별히 '속건제'는 오늘날 얄팍한 구원관에 빠진 현대 교회에 무서운 경고를 던진다. '속죄제'가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씻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이웃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을 때 원금에 5분의 1(20퍼센트)의 벌금을 더하여 갚아야 하는 철저한 배상의 제사에 해당한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남에게 사기를 치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놓고도, 십일조를 내고 있고 교회에 감사 헌금을 내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다고 뻔뻔하게 간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이 끼친 피해에 대해 찾아가 사과하거나 손해를 배상하려는 속건제의 정신은 철저히 없애버린 채, 입술로만 회개했다고 하면서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웃의 삶을 파탄 내고 배상하지 않는 회개는 가짜 회개다.
또한, '속건제'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에 대해서도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마땅한 의무다(레 27:30-33). 그런데 오늘날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거짓 교사들이 넘쳐난다. 예수님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도,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십일조의 의무를 말씀해 주셨다(마 23:23).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어 말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말라. 그는 스스로 심판주가 되어 하나님의 위치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회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철저한 배상과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회개는 공허한 회개일 뿐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3. 나오며
우리는 구약의 5대 제사를 통해, 단순한 죄 용서를 넘어선 전인적인 헌신과 자아 파쇄의 장엄한 십자가 복음을 살펴보았다. 번제와 소제로 헌신하셨고 속죄제와 속건제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 큰 구원의 은혜를 값싼 티켓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죄를 지어놓고도 뻔뻔스럽게 배상 하지 않는 파렴치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당장 내다 버려야 한다. 매일매일 내 육체와 혈통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4가지 우상 숭배의 죄들과 혈기, 교만, 음란 등의 자범죄들을 회개의 맷돌로 부수어 고운 가루가 되게 해야 한다. 핑계 대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짊어지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온전한 수컷만을 태우면 번제 제사처럼 자신을 불태우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치열한 자백과 헌신의 제단을 쌓아갈 때, 우리는 마귀의 모든 참소를 이겨내고 생명책에 더 선명하게 빛나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당당히 입성하여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찬란한 이기는 자로 우뚝 서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4월 15일(수) · 정보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