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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25.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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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SLgNN3F9TY
날짜 2026-06-24
본문말씀 레위기 16:1~34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6-24(수) 수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SLgNN3F9TY

 

1. 들어가며

  레위기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을 이해하면 신앙 생활의 실제적인 비밀이 열린다. 이 책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영적 배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결례들이 단순히 위생 규정이 아니라 귀신들의 역사와 관련된 영적 실재를 다루는 것임을 알면, 레위기 전체가 살아 있는 영적 교과서로 다가온다. 왜 죄를 지으면 기도가 막히는지, 왜 예배가 무거워지는지, 왜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지, 이 모든 질문에 레위기가 답해 준다. 피 냄새 나는 제사 이야기, 부정한 음식의 목록, 피부병 환자의 진단법, 유출병의 규례 등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레위기를 바르게 읽으면 신약 성경의 절반이 새롭게 열린다. 레위기의 제사와 정결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레위기의 모든 규정들은 그림자이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를 읽을 때마다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 눈으로 읽을 때 레위기는 구약에서 가장 풍성하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책이 된다.

히 10:1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이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법이다. 정결법은 다시 두 층위로 구분된다. 11장부터 16장까지는 정결례이고, 17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다. 정결하게 된 이후에 거룩해지는 것이 성결이다. 순서가 있다. 먼저 더러운 것을 씻어 내야 하고, 그런 다음 거룩해질 수 있다. 이 시간에 다루는 레위기 16장은 정결례의 마지막 장이다. 정결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속죄일 제사가 이 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정결례들을 일생 동안 지킨 것은 단순히 율법적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서기 위한 영적 훈련이었다. 접촉과 음식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알고 조심하며, 더러워지면 즉시 정결례를 행하는 이 습관이 이스라엘을 열방 가운데 거룩한 백성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회개를 통한 정결로 이어진다.

  그동안 정결례에서 다룬 내용은 다섯 가지였다. 첫째는 11장의 음식 정결례, 둘째는 12장의 해산 후 여인의 정결례, 셋째는 13장과 14장의 나병 환자의 진단과 정결례, 넷째는 15장의 유출병 정결례, 그리고 다섯째가 이 장의 대속죄일 정결례이다. 이 다섯 가지 정결례가 이스라엘 백성이 일생 동안 지켜야 했던 거룩한 삶의 기준이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부정한 것을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거절한 것도 이 정결법이 얼마나 깊이 그들의 삶에 각인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단순한 음식 규정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형성된 거룩함을 향한 삶의 방식이었다.

행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든지 내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니

  그런데 레위기 16장은 오랫동안 제사법으로 분류되어 왔다. 대속죄일에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을 제사법으로 읽으면 그 안에 담긴 핵심 진리를 놓치게 된다. 레위기 16장은 정결법이다. 그것을 정결법으로 읽을 때, 사람과 장소와 성물이 어떻게 깨끗해지는지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열린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왜 정결법인지, 속죄와 정결의 차이는 무엇인지, 죄가 우리에게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는 무엇인지, 아사셀 염소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레위기 16장은 왜 제사법이 아니라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가?

  레위기 16장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날인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속죄를 위해 수송아지와 두 마리의 염소를 잡는다. 대제사장이 피를 지성소에 뿌린다. 이 내용만 보면 이것은 제사법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장을 제사법의 맥락에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레위기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장이 정결법에 속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는 모두 정결을 다루는 단락이다. 11장은 어떤 음식이 부정한지를, 12장은 해산 후 여인의 부정을, 13장과 14장은 나병의 부정을, 15장은 유출병의 부정을 다룬다. 16장은 이 정결 단락의 결론이다. 즉 대속죄일 제사는 제사법이 아니라 정결법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제사법과 정결법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제사법은 죄를 다루는 법이고, 정결법은 더러움을 다루는 법이다. 제사법에서 핵심은 피이다. 피로 죄를 덮는다. 카파르(כָּפַר)는 히브리어로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속죄는 피로 죄를 덮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흰 눈이 쌓여 땅의 더러움을 가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어 죄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정결법에서 핵심은 물이다. 물로 씻는다. 부정한 것을 만지면 몸을 씻어야 하고, 옷을 빨아야 한다. 접촉으로 더러워진 것을 물로 씻어 냄으로써 깨끗하게 된다.

  이 원리를 신약에서 확인해 보면,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말씀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신다고 한다. 말씀이 물이다. 그리고 세례는 물로 씻는 정결례의 신약적 형태이다. 세례가 단순히 입교 의식이 아니라 정결례임을 레위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이 구약의 제사와 물 씻음에 해당한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법 본문에는 물로 씻는다는 표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결법 본문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옷을 빨라는 규정이 등장한다. 이것이 제사법과 정결법을 구별하는 결정적 표시이다.

  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으면 이 장의 핵심 질문이 달라진다. 제사법으로 읽으면 어떤 제물을 어떻게 드리는가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정결법으로 읽으면 무엇이 더러워졌으며, 어떻게 깨끗해지는가가 중심이 된다. 대속죄일 제사에서는 단순히 사람의 죄가 속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장소와 성물이 모두 깨끗해진다. 이것이 이 장을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제대로 깨달은 것은 근래의 일이다. 오랫동안 레위기 16장을 제사법으로 분류하고 가르쳐 왔다. 10년 이상이나 제사법의 맥락에서 이 장을 해석했다는 고백이 있다. 그러나 레위기의 전체 구조 안에서 이 장의 위치를 다시 살피면서, 이것이 정결법의 결론임이 분명해졌다. 잘못된 분류로 읽으면 잘못된 해석이 나온다. 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을 때 비로소 이 장이 선포하는 놀라운 진리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레 16:16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서도 그리하고

 

3. 속죄(제사)와 정결(씻음)은 어떻게 다르며, 왜 둘 다 필요한가?

  속죄와 정결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이다. 속죄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정결은 더러움의 문제를 다룬다. 이 둘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속죄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속죄 제사와 정결례가 함께 요구된다.

  죄를 지으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는 죄책(罪責)이 생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이것은 피로 덮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죄를 덮어 죄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로마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시편 32편을 인용하여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진 자는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가리어졌다는 것이 바로 카파르, 덮어진 것이다.

롬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둘째는 더러움이 생긴다. 죄를 지을 때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선언한다. 죄는 더러운 영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이 더러움은 물로 씻어야 한다. 즉 정결례를 통해 그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더러움이 생기는 경로는 두 가지이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지어서 더러워지는 경우와, 더러운 것과 접촉하여 더러워지는 경우는 다르다. 죄를 지어서 더러워지면 속죄 제사가 필요하다. 접촉하여 더러워지면 정결례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는 함께 일어난다.

  첫째는 접촉을 통한 더러움이다. 부정한 사체를 만지거나, 유출병 환자와 접촉하거나, 나병 환자와 가까이 있으면 더러워진다. 이것은 귀신들의 접촉이 더러움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 강하게 들어 있으면,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레위기가 접촉에 의한 부정을 가르치는 영적 이유이다. 둘째는 먹음을 통한 더러움이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음식을 먹으면 더러워진다. 이것도 단순한 위생 규정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담고 있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피가 단지 덮는 것만이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한다. 자백이 깨끗해지는 조건이다. 자백하지 않으면 하늘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지 않는다. 자백할 때에 그 기록이 지워지고, 동시에 들어와 있던 더러운 영들도 나간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따라서 속죄와 정결은 둘 다 필요하다. 속죄는 죄의 책임을 해결하고, 정결은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실 때 물과 피를 남기신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위해서이다. 물은 정결을 위하여, 피는 속죄를 위하여 남기신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함께 나왔다고 기록한다. 단순한 의학적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신학적 선언이다. 피로 속죄하고 물로 정결하게 하는, 구원의 두 차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5장 6절에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선언하는 이유이다. 물만으로도 아니고 피만으로도 아니다. 물과 피, 둘 다 필요하다. 속죄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속죄와 정결이 함께 이루어져야 완전한 구원이 된다는 것이 레위기의 핵심 선언이다.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속죄로 용서를 받고 정결례를 통해 깨끗함을 받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전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속죄만 알고 정결을 모른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으면 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위기는 속죄 이후에 정결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더럽혀진 것을 씻어야 한다. 그것이 정결례의 목적이고, 오늘날 회개 기도의 목적이다.

 

 

4. 죄를 지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가?

  죄를 지으면 우리 내면에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이것을 알면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첫째,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이 남는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행위책을 갖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큰 자와 작은 자들이 보좌 앞에 서고, 책들이 펼쳐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책들 중에 하나가 생명책이고, 다른 것들이 행위책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가 그날 저녁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행위책에 기록된다. 그것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기록된다. 우리가 천국에서 부활의 몸을 입고 낙원에 들어갔을 때, 모세가 그 행위책을 펼쳐 보여 줄 것이다. 동영상으로 기록된 자신의 삶이 펼쳐지는 그 자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죄의 기록이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이 땅에서 부지런히 자백하고 기록을 지운다. 그날 자신의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펼쳐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그날 안에 자백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회개함으로 그 기록을 지워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조언이 아니다. 죄를 해가 지기 전에 해결하라는 영적 규례이다. 해가 지면 그 죄가 행위책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이 여기서 적용된다. 자백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그 깨끗하게 하심이 행위책의 기록을 지우는 것이다. 동영상 필름이 하얗게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는 사람은 죄를 짓는 즉시 자백하고 정결례를 행한다. 모르는 사람은 죄가 쌓이고 더러운 영들이 누적되어 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같은 교회에 다니고 같은 성경을 읽어도, 속죄만 아는 사람과 속죄와 정결 둘 다 실천하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갈수록 현격한 차이가 생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내면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속죄를 받았지만 정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덮여 있지만 지워지지는 않은 것이다.

  둘째,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 죄를 지을 때 죄의 성질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더러운 영이 들어온다. 분노의 죄를 지으면 분노의 영이, 시기 질투의 죄를 지으면 시기 질투의 영이, 음란의 죄를 지으면 음란의 영이 들어온다. 창세기 3장 14절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들어왔고,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분노할 때 혈기의 영이 들어왔다.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이렇게 들어온 더러운 영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더러운 영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속죄 제사를 드려도 그 영들이 자동으로 나가지 않는다.

  더러운 영들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먼저 그 영들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분노의 영이 들어오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한다. 두려움의 영이 들어오면 늘 불안하고 두렵다. 상처의 영이 들어오면 모든 상황을 상처받은 눈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레위기 정결법이 가르치는 더러움의 실체이다.

  뿐만 아니라 더러운 영들이 많을수록 기억력도 방해를 받는다. 우리 뇌의 깊은 곳에 있는 기억 중추와 감정 중추를 영들이 틀어쥐고 있으면, 말씀을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지난 주일 설교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일 수 있다. 더러운 영들이 기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결례가 단순히 종교 의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적 해방의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속죄는 죄의 책임을 해결하지만,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결례의 필요성이다. 구원받은 것과 정결한 것은 다르다. 구원은 죄의 결과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정결은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회개를 통해 자백할 때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하늘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고, 들어와 있던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 이것이 요한일서 1장 9절의 정확한 의미이다.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죄책을 사하는 것뿐 아니라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도 내보내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 때 회개 기도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강력한 정결의 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회개 기도는 이단의 방법이 아니다. 레위기의 정결례가 신약에서 실현되는 방식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대로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이것이 정결의 성경적 근거이다.

 

5.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레위기 4장에는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레위기 16장에는 대속죄일에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제사는 어떻게 다른가?

  첫째, 시기가 다르다. 회중 속죄 제사는 죄를 지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 드린다. 언제든지 드릴 수 있다. 1년에 한 번도 드릴 수 있고, 서른 번도 드릴 수 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일 년에 한 번, 일곱째 달 십 일에 반드시 드려야 하는 연례 행사이다. 날짜가 정해져 있고 빠질 수 없다.

레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둘째, 드리는 날의 성격이 다르다. 대속죄일은 절기 안식일이다. 안식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주간의 안식일이 있고, 절기 안식일이 있다. 절기 안식일은 일곱 가지 절기에 해당하는 날로, 주간의 안식일과는 별도로 지켜진다. 대속죄일은 이 절기 안식일 중 하나이다. 이 날은 금식하고, 모든 일을 멈추고, 전 백성이 제사에 나와야 한다. 특별히 중요한 날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날을 욤 키푸르(Yom Kippur)라고 부르며 한 해 가운데 가장 거룩한 날로 지킨다.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날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날의 영적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셋째, 재물이 다르다. 회중 속죄 제사에서는 수송아지를 드린다(레 4:13-14).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에서는 두 마리의 순한 수염소를 드린다.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드린다.

레 4:13-14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넷째, 드리는 제사장의 급이 다르다. 회중 속죄 제사는 일반 제사장이 드린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반드시 대제사장이 드려야 한다. 더 중요한 제사는 더 높은 사람이 드리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는 회중 속죄 제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사이다.

  다섯째, 피를 뿌리는 장소가 다르다. 회중 속죄 제사에서 제사장은 피를 들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내소 휘장에 일곱 번 뿌린다(레 4:16-17). 성소까지만 들어간다.

  그런데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향을 피워야 한다. 레위기 16장 12절부터 13절에서 대제사장은 향을 가득 담은 향로와 숯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그 향으로 법궤 위의 속죄소를 가린다. 왜 향을 먼저 피우는가? 대제사장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직접 서면 죽을 수 있다. 향의 연기가 그 영광을 가려 대제사장이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도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준다. 인간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보호가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 그런 보호가 필요 없으셨다.

레 16:12-13 또 향로를 여호와 앞 제단의 불로 채우고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히 가져다가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향을 불에 사르되 그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릴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에서 대제사장은 피를 들고 휘장 안 지성소까지 들어간다. 지성소는 법궤가 있는 가장 거룩한 공간이다. 그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는 것이다.

레 16: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이 차이들을 종합하면, 대속죄일 제사는 회중 속죄 제사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정결을 이루는 제사임을 알 수 있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제사, 온 이스라엘이 금식하는 날에 드리는 제사, 이 모든 특성이 대속죄일 제사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대제사장만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를 위한 대속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 히브리서 7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선언한다. 레위 계열의 대제사장들은 죽으면 후임자가 세워져야 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영원히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회중 속죄 제사가 사람의 죄를 다루는 제사라면,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과 장소와 성물을 모두 깨끗하게 하는 제사이다.

  이 차이를 정리하면, 회중 속죄 제사는 특정한 죄를 깨달았을 때 드리는 처방적 제사이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알든 모르든 지은 모든 죄를 포괄적으로 정결케 하는 예방적 제사이다. 레위기 16장 30절에서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고 선언한다. 모든 죄,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다루는 것이 대속죄일 제사이다.

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6. 대속죄일 제사가 사람뿐 아니라 장소와 분향단까지 정결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속죄일 제사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와 성물도 정결케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반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를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차이이다. 일반 회중 속죄 제사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을 넘어 장소까지 정결케 해야 한다. 레위기 16장 33절은 이것을 명확히 선언한다. 지성소를 속죄하고,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제사장들과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다고 나온다.

레 16:33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레위기 16장 16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범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도 속죄한다고 말한다. 지성소와 회막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지성소는 법궤가 있는 가장 거룩한 공간이다. 일 년 중 오직 대속죄일 하루만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신성한 공간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거기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들어오면 그 공간도 영향을 받는다. 제사장들이 날마다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며 일했지만, 그들 자신이 완전히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도 점차 더러워졌다. 이것을 연간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와 성소에 피를 뿌림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에스겔서 28장 16절부터 18절은 타락한 그룹 천사 즉 사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존재는 원래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을 드리던 기름부음 받은 그룹 천사였다. 에스겔서 28장 14절은 그를 덮는 그룹이라고 부른다. 덮는이란 보호하고 가린다는 뜻이다. 그는 법궤 위의 속죄소 위에 날개를 펴고 있는 그룹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존재가 교만해져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다. 이사야 14장 13절에서 그는 내가 하나님 보좌 위에 내 보좌를 높이리라고 말한다. 그가 교만해져서 하나님 보좌를 찬탈하려 했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

사 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쪽 끝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겔 28:18 네가 네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느니라

  이 본문은 사탄이 천상의 성소를 더럽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속죄일 제사에서 지성소를 정결케 하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하늘 지성소를 자신의 피로 정결케 하기 위해 오셨다. 히브리서 9장 23절은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히 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또한 분향단도 더러워진다. 출애굽기 30장 10절은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분향단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규정한다. 분향단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기관이었다. 그것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더러운 기도가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분향단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서 분향단의 향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출 30:10 아론은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성도들의 기도도 더러워질 수 있다. 기도의 내용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일 때, 그 기도가 분향단을 더럽힌다. 성도들의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이 잘못된 기도를 드릴 때, 그 영향이 함께 기도하는 모든 성도에게 미친다.

  오직 자기의 물질적 풍요와 건강만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없는 기도는 분향단을 더럽히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면서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라고 하셨다(마 6:10).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가 분향단을 향기롭게 한다. 그런 기도가 요한계시록 8장 4절처럼 향연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계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그래서 대속죄일에 분향단도 정결케 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예배에서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기도도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7.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상징하며, 정결의 완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대속죄일 제사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아사셀 염소이다. 두 마리의 염소 중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보내진다. 아사셀 염소는 죽여서 피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광야로 내보내진다.

레 16:21-22 아론은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 의하여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대제사장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아뢴다.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얹은 다음,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정결의 완성이다.

  속죄 제사는 죄를 덮어 용서한다. 그러나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은 아직 우리 안에 있다. 이것들을 내보내야 진정한 정결이 이루어진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이 우리에게서 떠나 광야 곧 음부로 보내지는 것을 상징한다.

  아사셀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광야에 있는 사탄 혹은 마귀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 나가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이와 연결된다. 죄와 더러운 영들을 아사셀 광야의 마귀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네 것을 가져가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선언하며 내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아사셀 염소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회개 기도이다. 회개를 통해 자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하고 동시에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낸다.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에 안수하며 죄를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회개 기도를 통해 자백할 때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넘겨진다. 이것은 신비가 아니라 영적 실재이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 저편으로 사라질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회개를 통해 내보내진 더러운 영들은 다시 돌아올 권리를 잃는다. 시편 103편 12절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선언한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 멀리 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기억에서 멀리 제거된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그분이 그 죄를 대신 지시고 광야로, 음부로 가지고 가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회개 기도는 단순한 감정적 참회가 아니라, 영적 정결의 구체적 행위이다. 대속죄일 제사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아사셀 염소에 올려놓는 안수가 영적 실재를 일으킨 것처럼, 우리의 회개 기도도 실제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영적 실재이다. 내 속에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도구이다.

  이것을 모르면 평생 예수 믿으면서도 속에 더러운 영들이 가득한 채로 살게 된다. 속죄를 받았어도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덮어 놓은 것이지 씻어 낸 것이 아니다. 대속죄일 제사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다. 반드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아사셀 광야로 보내야 한다. 회개 기도가 그 통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속에 들어온 죄의 영들을 내보내는 것, 이것이 신약 시대의 아사셀 의식이다. 이것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는 뜻이다.

  대속죄일 제사에서 죄를 광야로 보내는 아사셀 염소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담당하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 안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넘겼다. 이튿날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언한 것이 바로 이 사실을 가리킨다. 안수를 받아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버림받으러 가는 아사셀 염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수많은 사람을 고치고 먹이고 섬기셨지만, 십자가를 앞에 두고는 모두에게 버림받으셨다. 정치 지도자들도, 종교 지도자들도, 백성들도, 심지어 제자들도 모두 그분을 버렸다. 이것이 아사셀 양의 성취이다.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어린 양,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 53: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지성소에서 무엇을 하셨으며, 우리는 어떻게 정결해지는가?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지상의 성막과 성전은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의 모형이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이 산에서 보여 주신 본을 따라 지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즉 지상 성전은 천상 성전의 그림자이다.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지상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며 정결을 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성전에 들어가서 자신의 피로 그곳을 정결케 하셨다. 히브리서 9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선언한다. 지상 성전은 그림자이고, 하늘 성전이 실체이다.

  왜 하늘 지성소도 정결케 해야 했는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탄 곧 타락한 그룹 천사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이다(겔 28:18). 구약 시대에는 사탄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욥을 참소하기도 했고(욥 1:6-7), 스가랴 3장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천상 성소가 아직 완전히 정결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자신의 보혈을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피를 하늘 법궤 위에 뿌리심으로 천상 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이것으로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우리를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가진 의미이다. 승천은 단순히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 지성소에서 대속죄일 제사를 집행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이었다. 지상의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오직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선언한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욥 1:6-7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왔나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가 행위책에서 지워지고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셔서 지성소를 정결케 하신 이후,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일반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제사장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마 27:51). 이것은 지성소가 열렸다는 신호이다. 이제 모든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며 히브리서 10장 19절부터 22절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선언한다. 구약에서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오직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이제 우리가 언제든지 담대히 들어갈 수 있다.

히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본문에서도 뿌림과 씻음, 즉 속죄와 정결이 함께 언급된다. 마음에 뿌림을 받는 것은 피로 속죄받는 것이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정결례이다. 이 둘이 함께 이루어질 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탄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참소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늘 지성소를 이미 정결케 하셨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서 그리스도의 승리 이후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났다는 선언이 나온다. 형제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가 쫓겨난 것이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러므로 우리가 정결해지는 길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속죄를 이루었고, 그 피가 하늘 지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땅에서 매인 것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푼 것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마태복음 16장 19절의 약속이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회개를 통해 죄를 자백할 때, 그 용서가 하늘에서도 유효하다. 지상의 정결과 천상의 정결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회개를 통해 자백함으로 우리 죄를 고백하고,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아사셀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이 정결이 계속되어야 우리가 흠 없는 신부로 준비될 수 있다.

 

9. 나오며

  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와, 속죄와 정결의 차이, 죄가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의 차이, 장소와 분향단이 더러워지는 이유, 아사셀 염소의 상징,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지성소 정결 사역을 살펴보았다.

  레위기 16장은 단순한 제사 규정이 아니라 정결의 놀라운 비밀을 담고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죄를 지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늘 행위책에 기록이 남고,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 속죄 제사는 그 기록을 덮는다. 그러나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려면 정결례가 필요하다. 자백을 통한 회개가 그 정결례이다. 자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성취된다.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와 분향단도 정결케 한다. 죄인이 드나들었던 성소도 더러워지고, 더러운 기도가 올라간 분향단도 더러워진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예배와 기도에 중요한 도전을 준다. 예배 장소도, 기도하는 사람도 정결해야 한다. 특히 성도 앞에서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가 성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야 한다. 대표 기도는 단순히 기도 제목을 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향단에 향을 올리는 제사장의 역할이다. 그 향이 향기로울 때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함께 향기롭게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

  아사셀 염소는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으시며 이 아사셀의 역할을 담당하셨다. 그분이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때 그 죄들이 실제로 우리에게서 떠난다. 더러운 영들이 음부로 보내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후 하늘에 오르셔서 자신의 피로 하늘 지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사탄이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우리를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완성이다. 지상의 제사는 그림자이고, 하늘 지성소의 정결이 실체이다. 모세 시대부터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반복되었던 대속죄일 제사들은 모두 이 한 분의 단번의 사역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그 예표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위에 우리의 구원이 서 있다.

  레위기 16장이 가르치는 이 진리를 붙잡고, 날마다 회개를 통해 자백하며 정결하게 살아가고,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죄를 깨끗이 지우며, 속죄와 정결이 함께 이루어지는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며, 하늘에 올라가실 때에 흠 없는 신부로 주님 앞에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6월 24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16장을 바탕으로 대속죄일 제사법에 담긴 정결의 영적 비밀을 강해한 것인데, 단순한 죄의 용서를 넘어선 근원적인 깨끗함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일반 속죄제와 달리,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과 장소, 성물 전체를 정결케 하는 절차로서 우리 내면의 더러운 영을 몰아내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죄는 예수의 피로 덮음으로써 용서받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악한 영과 귀신들은 회개와 자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야 비로소 온전한 정결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 기도를 통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고 내면의 악한 영들을 아사셀 염소처럼 광야로 떠나보냄으로써, 하나님 보좌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하고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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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4(수) 수요기도회(정제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 16장은 흔히 “대속죄일 제사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단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법으로만 읽으면, 레위기 16장이 들려주는 깊은 정결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레위기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의 큰 틀을 다루고, 11장부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깨끗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음식의 정결, 해산 후 여인의 정결, 나병 환자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 뒤에, 16장에서 드디어 대속죄일의 정결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반복이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범하면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더러워졌을 때에는 씻어야 했다. 죄는 피로 덮어야 하고, 더러움은 씻어야 하며, 몸 안으로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이해될 때,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죄를 덮는 일과 죄의 기록을 지우는 일, 그리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똑같지는 않다.

  신약에 와서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대속죄일 제사는 단지 구약의 옛 의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속죄와 정결, 그리고 성도가 오늘 회개를 통해 실제로 경험해야 할 영적 정결을 미리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어떻게 속죄와 정결을 함께 보여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오늘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레위기 16장은 정결법의 절정인가?

  레위기 16장은 레위기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제사장의 위임식을 다룬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피와 제사를 통해 열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레위기 11장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백성은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의 정결, 출산 후 정결, 나병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다.

  이 흐름의 마지막에 레위기 16장이 있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을 레위기 4장의 속죄제와 같은 차원에서만 읽으면 본문의 배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레위기 16장은 제사를 통하여 정결을 완성하는 장이다. 특히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만이 아니라 성소와 회막과 제단까지 정결하게 하는 날을 다룬다. 즉 대속죄일은 죄를 사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

  레위기 16장은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 이후에 주어진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사람이 함부로 지성소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대제사장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정하신 옷, 정하신 제물, 정하신 피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레 16:2).

레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여기서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는 말씀은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바로 그 거룩한 장소도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의 놀라운 비밀이다. 죄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과 기도의 자리까지 더럽힌다. 그래서 대속죄일은 사람의 죄만 처리하지 않고 성소의 부정까지 처리한다.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의 정결법은 개인과 생활의 정결을 다룬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출산 후 어떻게 정결하게 될 것인가, 피부병과 집의 곰팡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리할 것인가, 몸에서 유출이 있을 때 어떻게 정결하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은 이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정결법의 마지막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레위기 16장이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은 30절에서 가장 분명해진다. 그날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속죄와 정결이 함께 들어 있다. 속죄가 목적의 전부라면 “속죄하리니”에서 멈추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결하게 하리니”라고 덧붙이신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를 덮는 날인 동시에 더러움을 제거하는 날이다(레 16:30).

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또한 정결법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 보인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이 먹는 문제를 다루신다. 그다음 출생의 문제를 다루시고, 피부와 집에 나타나는 부정함을 다루시며,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출의 문제를 다루신다. 마지막에는 그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대속죄일로 인도하신다. 먹는 것, 태어나는 것, 피부와 집, 몸의 유출, 그리고 성소의 정결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삶 전체가 더러움과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삶 전체가 정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은 정결법의 절정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통해 죄를 덮어야 하고, 물과 피를 통해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까지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이 가진 신학적 위치다.

3.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른가?

  속죄와 정결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속죄는 죄를 처리하는 말이다. 정결은 더러움을 처리하는 말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책이 생기고, 그 죄는 하나님 앞에서 피로 덮여야 한다. 그러나 죄를 통해 사람 안에 더러운 영이 들어오면, 그 사람은 더러워진다. 이때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속죄는 죄책의 문제를 다루고, 정결은 더러움과 오염의 문제를 다룬다.

  구약에서 속죄와 관련된 중요한 단어는 히브리어 “카파르”다. 이 단어는 덮다, 가리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제사에서 피는 죄를 덮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피를 보시고 그 죄를 넘어가신다. 그러나 덮였다고 해서 더러운 영의 문제가 자동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결법에는 반복적으로 씻음이 나온다. 옷을 빨고, 몸을 씻고, 물로 정결하게 하는 절차가 나온다. 이것은 더러움의 문제는 실제로 씻겨야 함을 보여 준다.

  신약은 이 두 차원을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요일 1:7).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의 피는 단지 죄를 덮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피는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동으로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화된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자백”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호몰로게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같은 말을 한다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죄라고 말하는 것이 자백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우상숭배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음란이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음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자백이다. 이 자백이 있을 때 죄 사함과 정결이 함께 일어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영적 팩트에 따르면, 사람이 죄를 범하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첫째, 그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기록된다. 둘째, 그 죄를 통로로 뱀들과 귀신들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죄는 기록의 문제를 만들고, 동시에 더러운 영의 거처 문제를 만든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늘에서는 행위책의 죄를 지우는 사건이고, 땅에서는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사건이다.

  성경에서 더러움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결법은 위생적 유익도 가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뜻은 영적 접촉의 문제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고, 부정한 것을 먹으면 몸 안으로 부정함이 들어온다. 복음서에서 귀신은 “더러운 영”으로 불린다. 헬라어로는 “프뉴마 아카타르톤”, 곧 깨끗하지 않은 영이라는 뜻이다. 더러운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거주하면, 그 사람의 몸은 성령이 온전히 거하시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결은 단순히 죄책감이 사라지는 심리적 위로가 아니다. 정결은 실제적인 영적 사건이다. 더러운 영이 떠나가고,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지며, 성령이 더 깊이 역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정결법을 오늘 성도가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예수 믿는 사람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수 있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결은 구원 이후의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다.

  이런 점에서 속죄와 정결은 함께 가야 한다. 예수 믿는다는 말로 죄가 덮였다고만 생각하고, 실제로 자백하지 않으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성령의 거처로서 몸이 온전히 깨끗하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의 은혜를 붙들되, 반드시 정결의 실제로 나아가야 한다.

4. 일반 속죄제와 대속죄일 제사는 무엇이 다른가?

  레위기 4장에는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가 나온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 나중에 그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드리는 제사다. 이때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회중의 장로들이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한다(레 4:13~15).

레 4:13-15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다르다. 대속죄일 제사는 죄를 깨달았을 때마다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해마다 일곱째 달 열째 날에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연례 제사다. 그날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했고, 백성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단순한 임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의 죄와 부정을 정리하는 정해진 날이었음을 보여 준다(레 16:29~31).

레 16:29-31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두 제사는 집례자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는 제사장이 집례한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대제사장이 집례한다. 대제사장도 죄인이므로 먼저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백성을 위한 속죄를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장차 죄 없으신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함을 예표한다.

  피가 들어가는 장소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에서는 피를 회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른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피를 뿌린다. 이것은 대속죄일 제사가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제사임을 보여 준다.

  또 하나의 차이는 백성의 참여 방식이다. 레위기 4장의 회중 속죄제에서는 회중의 장로들이 대표로 안수한다. 그러나 대속죄일에는 온 백성이 그날을 안식일처럼 지키며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지도자 몇 사람의 예식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자기 죄와 부정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날이었음을 뜻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결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예배 인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다.

  정결의 범위도 다르다. 일반 속죄제는 죄를 범한 사람이나 회중의 죄를 처리하는 데 초점이 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정결하게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대속죄일은 사람을 위한 제사이면서 동시에 성소를 위한 정결 사건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레위기 4장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정결의 예식이다.

5.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대속죄일 제사에서 가장 독특한 장면은 두 마리의 염소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고, 그 피는 백성을 위한 속죄와 성소 정결에 사용된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염소는 살아 있는 채로 광야로 보내진다.

  레위기 16장은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뢴 뒤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내라고 말한다(레 16:21~22).

레 16:21-22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이 장면은 죄의 처리가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는 피를 통한 속죄다. 다른 하나는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속죄가 죄를 덮는 것이라면, 아사셀 염소는 죄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결의 중요한 원리가 드러난다. 죄는 단지 덮여야 할 뿐 아니라, 내게서 떠나야 한다.

  아사셀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광야의 장소로 보는 견해도 있고, 광야의 악한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설교의 영적 해석에 따르면 아사셀은 광야와 관련된 사탄적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죄가 백성 가운데 남아 있지 않고 광야로 보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 성도의 회개와 축사 원리와 연결된다.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은 후,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은 몸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쫓겨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는 단순한 구약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죄와 더러움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는 자백되어야 하고, 피로 씻겨야 하며,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처럼 피 흘려 죽으셨고, 동시에 아사셀 염소처럼 백성의 죄를 지고 진영 밖으로 나가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았으며, 십자가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두 염소는 나뉘어 있지만, 그 예표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분은 피 흘려 속죄하신 분이시며, 우리 죄와 부정을 멀리 옮기신 분이시다.

6. 왜 성소와 향단도 정결케 해야 하는가?

  대속죄일 제사의 놀라운 점은 사람만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도 속죄한다는 데 있다. 레위기 16장 16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회막을 위하여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한다(레 16:16).

레 16: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할 것이요

  이 말씀은 죄와 부정이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백성의 죄와 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까지 더럽힌다. 제사장이 매일 성소에 들어가 등잔을 관리하고, 향을 사르고, 진설병을 두는 일을 했지만, 제사장 자신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섬기는 장소도 정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향단은 매우 중요하다. 출애굽기 30장 10절은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해야 한다고 말한다(출 30:10).

출 30: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향단은 성도의 기도와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8장에서는 금 향로와 많은 향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계 8:3~4).

계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그러므로 향단이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도라고 해서 다 거룩한 것은 아니다. 기도도 자기 욕망과 세상 성공과 육체의 안일만 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더럽혀질 수 있다. 대표기도도 마찬가지다.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자리가 인간의 욕심과 체면과 세상적인 말로 채워지면 그 기도는 정결하지 못한 향이 될 수 있다.

  대속죄일은 사람과 장소와 기도의 자리까지 정결하게 한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하다. 성도 개인이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기도의 내용도 정결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통로가 깨끗해야 한다. 정결은 개인 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전체의 문제다.

7. 하늘 성소는 왜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었는가?

  레위기 16장을 읽을 때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매일 드나들었으므로 더럽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간다. 그렇다면 지성소는 왜 정결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땅의 성막을 넘어 하늘 성소의 비밀로 우리를 이끈다.

  히브리서는 이 땅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한다(히 8:5).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땅의 성막이 모형이라면, 하늘에는 원형이 있다. 그런데 에스겔 28장은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하나님의 성산에 있었고, 그가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고 말한다(겔 28:14, 18).

겔 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겔 28:18 네 죄악이 많고 네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이 본문은 두로 왕을 빗대어 사탄 마귀의 타락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 가까이에서 지음을 받은 존재였으나 교만과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도 정결이 필요했다. 땅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일을 예표한다.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히 9:24).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또한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나은 제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히 9:23).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피로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탄 마귀는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서 성도들을 참소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말한다(계 12:10).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땅의 죄인만을 위한 피가 아니다. 그 피는 하늘 성소까지 정결케 한 피다. 이것이 대속죄일 제사의 신약적 성취다. 예수님은 참 대제사장이시고, 자기 피를 가진 제물이시며,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만이 온전한 정결을 이룬다.

8. 오늘 성도는 어떻게 정결을 완성해야 하는가?

  오늘 성도는 대속죄일 제사를 그대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속죄일이 보여 준 영적 원리는 오늘도 그대로 유효하다. 죄는 속죄되어야 하고, 더러움은 정결케 되어야 하며,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

  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어야 한다. 죄를 덮고 씻는 것은 사람의 결심이나 선행이 아니다. 오직 예수의 피다. 구약의 동물 피는 그림자였고, 예수의 피는 실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예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둘째, 성도는 죄를 자백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다. 진실한 자백은 행위책의 기록을 지우는 통로가 된다. 다윗이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성도도 자기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지워지도록 회개해야 한다(시 51:1).

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셋째, 성도는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은 더러운 영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더러운 영”이라고 부르셨다(막 1:23).

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더러운 영은 깨끗한 성전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

  넷째, 성도는 자기 기도와 예배의 자리도 점검해야 한다. 향단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 기도가 자기 욕심과 세상 욕망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그 기도 역시 정결의 대상이 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회개와 정결, 천국과 상급, 신부의 준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정결의 목표는 단지 “귀신이 나갔다”는 체험 자체에 있지 않다. 그 목표는 하나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데 있다. 몸이 정결해지면 말씀이 더 잘 들리고, 기도가 더 맑아지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열린다. 정결은 성결로 가는 문이고, 성결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이다.

  다섯째, 성도는 정결에서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레위기의 흐름은 정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깨끗해진 다음에는 거룩해져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결은 정결 위에 세워진다. 더러운 것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거룩함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의 부속품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핵심 과정이다.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죄를 자백할 수 있고, 행위책의 죄를 지울 수 있고,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행위책이 고정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정결해야 한다. 이것은 두려움만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는 은혜의 선포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단순한 속죄제사가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레위기 16장은 죄를 피로 덮는 일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성소와 향단까지 정결케 하는 날을 말한다. 또한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아사셀 염소를 통해, 죄가 피로 속죄될 뿐 아니라 백성에게서 멀리 보내져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예수의 피가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가 되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은 몸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정결을 단순한 의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정결은 하늘의 기록과 몸의 실제와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내용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죄를 자백해야 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하며,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 또한 기도도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도 정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고, 사탄이 더럽힌 하늘 성소까지 정결하게 하셨다. 그분의 피가 하늘과 땅의 정결을 이루었으므로, 성도는 그 피를 붙들고 회개와 정결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고 몸 안의 더러운 영들이 떠나가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4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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