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5. 27.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i9yKuuuIAQ
날짜 2026-05-27
본문말씀 레위기 12:1~14:57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5-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i9yKuuuIAQ

1. 들어가며

  정결례는 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결례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정결례를 행하지 않았다. 속죄만 받으면 끝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속죄받았으면 곧 구원받은 것이라고,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그렇게 손쉽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그러나 산모가 해산 후에 부정해진 상태에서 정결케 되어 다시 공동체로 회복되는 일, 또 나병환자가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케 되어 공동체로 회복되는 일이 그토록 자세하게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공동체가 곧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합당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정결례를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천국에 갔을 때 격리되는 것이다. 곧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너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고 이스라엘 민족이었고 유대인이었으며 너도 할 일을 받았다 하시되, 네가 영적 나병에 걸렸으되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격리시킨다 하시는 것이다.

  레위기 강해 시리즈의 그 첫 시간부터 여덟 번째 시간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법, 그리고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 아홉 번째 시간으로서, 정결법의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하면서 산모의 정결례가 무엇이며 왜 여인이 해산 후에 부정한지, 그 부정 기간이 남아와 여아에 따라 두 배 차이 나는 영적 이유가 무엇이며,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이 무엇이고, 나병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영적 진리와 나만의 이야기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와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는 무엇인가?

  먼저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를 깊이 살펴보자.

  레위기서의 분량 자체가 이 사실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법 곧 속죄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례에 관한 내용이다. 분량으로 비교해 보라. 정결례의 분량이 속죄의 분량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이는 곧 정결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영적 팩트의 분명한 증거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는가? 한번 믿었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그것이 곧 성화로 자동 연결되며, 성화가 되면 곧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마치 구원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결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다. 우리의 수많은 노력과 고군분투가 필요한 것이다. 회개가 필요하고, 충성이 필요하고, 땀 흘림이 필요한 것이다.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거저 주어지는가? 곧 '속죄'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속죄는 거저 주신 것이다. 왜 거저 주셔야만 했는가? 어느 누가 돈을 받고 우리의 죄를 속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주께서 거저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는 은혜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은혜로 구원이 시작되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천국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정결례이다. 그러기에 속죄만으로 평생 우려먹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짚어야 할 영적 비밀이 하나 있다. 곧 마 18장의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비유이다. 거기서 우리는 '용서한다'는 말이 '없앤다'는 말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었으나, 그 종이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자 결국 옥졸들에게 그를 잡아 넣어 다시 옥에 가두었다. 곧 죄를 영원히 없애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덮어 두었던 것이다. 덮어 두었으면 정결케 하고 자신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에 다시 옥졸들에게 잡혀 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 18:34-35 그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이미 받았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정결례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빌 2장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것이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에 결정적인 영적 비유가 또 하나 있다. 곧 나병환자의 격리이다.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일주일 동안 격리시켜 진찰하라 하셨다. 그 살의 부분에 흰 털이 나고 우묵하게 패는 등 나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병이 들었는데 이 병을 치유하지 않으면 천국에서 격리시킨다. 곧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는 결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영적 팩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결례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정결례를 공부할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 살았던 모든 것이 인정을 받아 천국에 쑥 들어가서 아름다운 지위와 또 많은 상을 얻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그 답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3. 산모의 정결 기간이 남아 40일·여아 80일로 두 배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본격적으로 산모의 정결을 살펴보자. 레 12장 1절에서 5절까지를 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고, 8일째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라 하셨다. 그리고 그 여인은 33일을 더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고 하셨다. 곧 7일 더하기 33일이 합쳐 40일이 된다. 반면 여자아이를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고, 그 후 66일을 더 지내야 한다고 하셨다. 곧 14일 더하기 66일이 합쳐 80일이 된다.

레 12: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여기에 매우 중대한 두 가지 영적 힌트가 있다. 첫째 힌트는 무엇인가? 곧 8일째에 남자아이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라 하신 것이다. 둘째 힌트는 무엇인가? 곧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따라 부정 기간이 정확히 두 배로 차이 난다는 것이다.

  먼저 두 배 차이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여자가 부정하다고 더 무겁게 다루신 까닭이 있는가? 그것은 곧 디모데전서 2장에 나오는 영적 팩트와 직결된다. 사도 바울이 이르기를,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후에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딤전 2:13-15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곧 여자가 인류 가운데 최초로 죄를 지은 자라는 영적 팩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에게 두 배의 부정 기간을 두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똑같다. 그러나 의식적이고 원리적인 차원에서 여자가 죄를 먼저 들여왔음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의미로 두 배의 부정 기간을 두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있다. 캥거루를 보라. 캥거루는 새끼가 손톱만 한 크기로 나와 어미의 주머니로 기어 올라가 그 안의 젖꼭지를 빨면서 자라난다. 그러기에 캥거루는 새끼를 낳을 때 통증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의 해산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동반한다. 만약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캥거루처럼 통증 없이 출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해산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산의 고통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내가 죄를 지었다, 내가 죄인이다, 그러기에 메시아를 낳아 그 메시아를 통하여 내 죄를 없애야 하리라'라는 평생의 기억이다. 창 3장에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그 영적 진리가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매번 일깨워지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영적 의미인 '할례'를 살펴보자. 남자아이가 8일째에 할례를 행한다는 사실이 부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할례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치기를, 그리스도의 할례란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라고 하였다. 곧 육적인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는 영적 행위가 할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아이가 8일째에 할례를 받는 것은 곧 최선의 회개 행위를 미리 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자는 40일로 감해졌고, 할례를 행할 수 없는 여자는 80일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영적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고전 11장 3절을 보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곧 그리스도-남자-여자라는 영적 질서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 자기 머리 되는 남자에게 먼저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함께 죄를 지었다. 곧 영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러한 영적 질서를 평생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산모의 부정 기간이 남녀에 따라 두 배 차이가 나도록 정해진 것이다.

4. 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한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고 하신 그 근본적인 영적 이유를 살펴보자.

  사실 산모의 부정에는 육체적인 이유와 영적인 이유가 함께 있다. 먼저 육체적인 이유부터 살펴보자. 여자가 해산을 하게 되면 골반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빨리 벌어지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벌어지나, 어떻든 골반이 충분히 벌어져야 아이가 나올 수 있다. 그러기에 12시간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벌어진 골반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정확히 40일이다.

  그러기에 산후조리 기간에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주의 사항이 있다. 첫째,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지 말아야 한다. 추우면 옷을 싸 입게 되고, 그러면 벌어졌던 뼈가 잘못된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둘째, 찬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출산 시 아이가 영양분을 빼앗아 가서 산모의 이가 약간 헐렁해진 상태인데, 이때 찬물을 마시면 이가 엉뚱한 위치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기에 여자가 남자보다 합죽이가 많은 것이다. 셋째, 찬물로 샤워하지 말아야 한다. 찬물로 샤워하면 벌어진 뼈가 억지로 잘못된 위치로 굳어지게 된다. 항상 미지근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산모는 40일 동안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성소에 들어가지 말라 하신 말씀도 이러한 육체적 이유와 영적 이유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더 깊은 영적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여자가 인류 가운데 최초로 죄를 지었다는 사실과, 그 결과 해산의 고통을 평생 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해산의 고통을 겪을 때마다 여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그 깨달음 속에서 메시아를 낳아 죄를 없애야 한다는 영적 갈망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해산의 고통을 두신 것이다.

  창 3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셨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하셨다. 곧 해산의 고통과 여자 후손의 약속이 한 흐름 가운데 주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서 느끼는 영적 깨달음이 이것이다 -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를 지었다, 그러기에 이 고통이 내게 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면 이 죄가 없어지리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의미가 산모의 부정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는 것은 그 여인이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의 죄가 거기서 시작되었음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영적 표지인 것이다.

5.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제 더 깊은 영적 비밀로 들어가자. 곧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이다. 이 부분은 사실 어그스틴(아우구스티누스)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였고, 칼빈도 풀지 못한 깊은 비밀이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비밀을 풀어 보이셨다.

  먼저 막 7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말씀을 보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 '속'이 무엇인가? 곧 사람의 육체 속이다. 그 육체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이 자꾸 나오는가? 사도 바울도 이 깊은 비밀과 씨름하였다. 롬 7장 18절에서 20절까지를 보라.

롬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은 이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 '죄'를 인격화시키면 그것이 곧 무엇인가? 바로 '귀신'이며 '뱀'이다. 곧 우리 육체 속에 귀신과 뱀이 들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음란의 영이 들어 있고, 교만의 영이 들어 있고, 우상숭배의 영이 들어 있어 그 영들이 결국 우리 입과 행위를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들은 언제부터 우리 안에 있었는가?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이다. 자궁 안에 있는 영들이 임신되자마자 태아의 육체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그 속에 뱀과 귀신들이 가득 들어찬 상태로 태어난다.

  이것이 바로 어그스틴이 발견한 '원죄(Original Sin)'의 정체이다. 어그스틴은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발견했는가?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이다. 둘째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첫째 아이가 자기 젖을 먹는다고 둘째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막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 악한 본성이 어디서 나오는가? 어그스틴은 거기서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이 곧 'Original Sin' - 대문자로 시작하는 그 원죄 교리의 시작이다.

  그러나 어그스틴도 이 원죄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풀지 못하였다. 만약 모든 인류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면, 예수님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기에 어그스틴은 이 부분을 끝까지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에 그 답이 분명하게 들어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하였다.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곧 예수님께만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히 임하셔서 자궁 안의 영들이 태아 예수님께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것이다. 이는 오직 예수님께만 베푸신 특별한 영적 조치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인류는 어떠한가? 누가 그것을 막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는 영들이 자녀가 잉태되는 그 순간 그대로 자녀의 육체에 빠글빠글 기어 들어간다. 곧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죄된 본성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죄가 전달되는 영적 메커니즘이다.

  그러기에 우리 자식들이 힘들게 사는 것이다. 조상이 제사를 많이 지내면 후손이 신앙을 거부하게 되고, 무당이 많이 들어간 가문이면 우상숭배의 영이 후손에게 들어가고, 억지로 살인을 많이 한 가문이면 후손이 조현병에 걸려 망가지는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 영들이 들어 있는데, 다만 발현되지 않다가 때가 되면 발현되는 것이다.

  창 3장 14절에서 뱀에게 이르시되 너는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다. 곧 뱀이 흙을 먹고 산다는 영적 팩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니, 뱀들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그러므로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고 하신 그 깊은 영적 이유가 비로소 풀린다. 곧 여자가 죄를 먼저 들여왔고, 그 죄가 곧 영(귀신과 뱀)으로 그 자궁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잉태되는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인류가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적 사슬을 평생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산모의 부정 기간이 주어진 것이다.

6. 산모 정결 기간 40일과 7일이 갖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 산모 정결 기간의 숫자 자체가 갖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두 가지 숫자가 결정적이다. 곧 '7일'과 '40일'이다.

  먼저 '7일'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왜 처음 부정 기간이 7일인가? '7'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함과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6일에 만드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다. 곧 7은 완성의 숫자이다.

  그러므로 7일 동안 부정하다는 것은 '온전히 부정하다'는 의미이다. 부분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무서운 영적 선언이다. 이전 시간에 살펴본 레 11장에서는 '먹어서 부정해지거나 접촉해서 부정해지는' 부분적 부정이었으나, 여기 산모의 부정과 후에 살펴볼 나병환자의 부정은 '존재 자체의 부정'이다. 우리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죄로 인하여 더럽혀졌다는 영적 팩트를 7일이라는 숫자로 표현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 더러움을 없애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안 된다. 단지 어떤 의식으로 깨끗해질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더럽혀졌기에 보혈로만 정결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40일'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7일 뒤에 33일을 더하여 40일이 되어야 산혈이 깨끗해진다고 하셨다. 왜 33일을 더하여 40일을 채우게 하셨는가? 그것은 곧 '40'이 인간 고통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왜 '40'을 인간 고통의 숫자로 정하셨는가? 그것은 민 14장의 정탐꾼 사건에서 시작된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 정탐꾼이 40일 동안 정탐한 후에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 40일을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통받게 하신 것이다. 거기서부터 '40'이 인간 고통의 숫자가 된 것이다.

민 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이러한 까닭에 모세도 40일 동안 시내 산에 머물렀고,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으며, 산모도 40일 동안 부정 기간을 보내는 것이다. 곧 회개와 정결의 기간이 단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기한이 있다는 영적 진리가 거기에 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영적 적용이 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도 채워야 할 기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빨리 끝나고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린다. 왜 그러한가? 사람마다 죄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상의 우상숭배가 많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만큼 죄의 분량이 많기에 회개의 기간도 길고 회개의 횟수도 많아야 한다. 반면 3대째 4대째 신앙을 지켜 온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죄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회개의 기간이 짧을 수 있다.

  본 종도 그 경험을 직접 했다. 4대째 우상숭배를 많이 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회개해도 회개해도 좀처럼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졸리고 또 졸려서 회개 기도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3대째 신앙을 지킨 집안 출신의 어느 분은 단 120분의 회개로 권초염이 사라지고 시력이 좋아져 안경을 벗을 정도였다. 곧 회개의 기간과 분량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라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조상의 죄가 무거웠고, 그 죄값을 자신의 시대에 와서 받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7일은 우리 존재 자체의 부정을 가르치고, 40일은 회개의 기한이 차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두 숫자가 합쳐져 산모의 정결 기간을 이루는 것이다.

7.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를 살펴보자. 곧 기한이 차고 난 후의 제사 드림이다.

  레 12장 6절에서 7절까지를 보라. 아들이나 딸의 정결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1년 된 어린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문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고 하였다.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고 하였다.

레 12:6-7 아들이나 딸을 위하여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는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여기에 두 가지 제사가 함께 등장한다. 곧 '번제'와 '속죄제'이다.

  '번제'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이다. 1년 된 어린양을 드리라 하신 까닭이 무엇인가? 1년 된 양은 가장 성숙하면서도 가장 깨끗하고 흠 없는 시기의 양이다. 예수님께서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33년 반에 돌아가신 것이 이 영적 원리와 맞닿아 있다. 곧 가장 정한 시기의 어린양으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 - 그것이 번제의 의미이다.

  '속죄제'는 무엇인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드리게 하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하시리라는 영적 표지이다.

  그리고 8절에 매우 깊은 영적 자비가 담겨 있다. 어떤 여인이 어린양을 바칠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삼으라 하셨다. 곧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이다.

레 12: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이 배려에 결정적인 영적 의미가 있다. 곧 정결례는 빈부와 학식과 남녀와 가문의 차이를 막론하고 반드시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한다는 영적 선언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무식한 자는 무식한 자대로 자기 형편에 맞게 반드시 정결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정결례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한다. 부자라고 더 많이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고 덜 회개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분량대로 회개해야 한다. 1대째 신앙이든 3대째 신앙이든, 본 종처럼 4대 우상숭배를 한 집안의 후손이든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아니하고는 정결케 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속죄만 받고 정결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계속 더러운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더러운 자가 어떻게 흰 두루마기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결국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거나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는 일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이렇게 산모의 정결례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기한이 차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완전한 정결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된다. 곧 회개의 기한을 채우고, 헌신과 속죄의 제사 곧 그리스도의 보혈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8. 나병을 통해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와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나병을 간략히 살펴보자. 나병에 대한 본격적인 강해는 다음 시간에 다루겠지만, 그 전체 흐름을 먼저 잡아 두어야 한다.

  나병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죄의 속성을 가르치는 가장 탁월한 영적 재료'이다. 죄가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죄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 무엇인지, 죄의 핵심 세력이 무엇을 못 하게 만드는지 - 이 모든 것을 나병이 우리에게 알려 준다.

  나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격리된다. 일주일 동안 가두어 놓고 진찰한 후에, 그 살에 흰 털이 나고 우묵하게 패는 등 나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영적 나병에 걸린 자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천국에서 격리되어 성 밖으로 보내진다는 영적 팩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나병에 걸렸을 때 빨리 회개하여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나병을 고쳐 주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곧 누가복음 4장 27절의 '나만'이라는 인물이다.

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나만은 누구인가?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수리아 곧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다. 베나닷 왕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러나 나병에 걸려서 늘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갑옷으로 온몸을 가리며 살아야 했다. 왕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를 가장 신임하며 총애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한 여종이 이스라엘 나라에 병을 고치는 선지자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왕은 엄청난 많은 예물을 주어 나만을 이스라엘로 보냈고, 결국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나만은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처방을 받았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여 거절하였으나, 그 부하들의 권면을 받고 결국 그대로 행하여 일곱 번 만에 깨끗함을 얻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일이 더욱 감동적이다. 나만은 자신을 고쳐 준 그 나라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기에 이스라엘에 머물 수 없는 처지였다. 자기 왕인 베나닷 왕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보내 주었기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기에 나만은 이스라엘 땅의 흙을 두 노새에 실을 만큼 가져갔다. 무엇을 위함인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도 그 흙의 냄새를 맡으며 일평생 이 나라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함이다. 자신은 비록 아람 나라의 신민이지만 이스라엘 나라 사람처럼 살겠다는 결단이다.

  또한 나만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자기가 왕을 모시고 림몬 신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왕이 부축을 받아야 절을 할 수 있으므로 자기도 부득이 함께 몸을 굽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자기를 용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엘리사는 이를 묵시적으로 허용하였다. 어쩔 수 없는 형식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나만의 마음에는 림몬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부축할 뿐이었다.

  그 후 나만은 어떻게 되었는가? 놀라운 영적 팩트가 있다. 곧 나만이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기 부하들이 아프면 그가 안수하여 병을 고쳐 주었다. 이는 본 종이 영적 세계에서 직접 확인한 영적 광경이다. 나만은 그렇게 부하들을 돌보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갔다.

  더욱 감동적인 사실은 천국에서 보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만을 영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의 생명책에 '흙'이 그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일평생 그 흙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고쳐 주신 그 나라, 그 교회, 그 종을 잊지 않고 산 흔적이 천국의 생명책에 흙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 한 사람 나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첫째, 죄와 영적 나병에 걸린 우리도 회개하고 정결케 되어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치유받은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부득이한 형식에 매이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마음에 한 분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치유받은 자는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병의 본격적인 강해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가도록 하겠다.

9. 나오며

  지금까지 본 시간을 통해 정결법의 둘째 시간으로서,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정결례를 살펴보았다.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와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를 살펴보았고, 산모의 정결 기간이 남아 40일·여아 80일로 두 배 차이 나는 영적 이유를 살펴보았으며, 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한 영적 이유 곧 죄의 시초와 해산의 고통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 곧 자궁 안의 영들이 잉태 시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영적 팩트를 살펴보았고, 산모 정결 기간 40일과 7일이 갖는 영적 의미 곧 존재 자체의 부정과 인간 고통의 숫자를 살펴보았으며,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 곧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병을 통해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와 누가복음 4장 27절의 나만의 이야기 - 곧 흙을 가져가 일평생 기억하고 치유의 은사를 받아 그 흙이 천국 생명책에 새겨진 영적 광경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정결례가 결코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속죄만으로 우려먹는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를 분명히 분별하고, 회개와 정결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구원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기에 우리의 회개와 충성과 땀 흘림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남아 40일과 여아 80일이라는 산모 정결 기간의 두 배 차이가 가르치는 영적 질서를 깊이 새겨야 한다. 곧 그리스도-남자-여자라는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고,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에 해당하는 회개의 행위를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하신 그 영적 이유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곧 인류의 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자녀에게 전달되는지를 분명히 알아, 우리 후손에게는 더 이상 죄된 영을 물려주지 않도록 회개에 몸부림쳐야 한다.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 곧 자궁 안의 영들이 잉태 시 자녀의 육체에 빠글빠글 기어 들어간다는 영적 팩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도 자기 힘으로는 죄 없는 인간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가 씻기고 우리 후손도 회개로 풀려나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7일과 40일이 갖는 영적 의미를 분명히 익혀야 한다. 7일은 우리 존재 자체의 부정을 말하고, 40일은 회개의 기한이 차야 함을 말한다. 사람마다 죄의 분량이 다르기에 회개의 기간도 다르다. 그러기에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라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 분량을 다 채울 때까지 끝까지 회개에 매진해야 한다.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를 새겨야 한다. 번제와 속죄제 곧 헌신과 죄 용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빈부와 학식과 남녀와 가문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형편대로 반드시 정결례를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나만의 이야기에서 깊은 영적 교훈을 받아야 한다. 영적 나병에서 치유받은 우리도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부득이한 형식에 매이는 경우라도 마음에 한 분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며, 치유받은 자로서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정결례의 깊은 영적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 날마다 회개하며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 하늘의 흰 두루마기를 입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 주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7일(수)
정보배 목사

 
---------------------------------

2026-05-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i9yKuuuIAQ

 

1. 들어가며

 

  레위기 강해 아홉 번째 시간은 정결법의 두 번째 흐름을 다룬다. 레위기 11장이 먹는 것과 접촉하는 것을 통해 부정의 문제를 보여 주었다면, 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를 통해 인간 존재 자체가 죄 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어지는 레위기 13~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를 통해 죄가 어떻게 드러나고 퍼지며, 어떻게 격리와 회복의 절차를 거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순한 위생 규정이 아니라 속죄받은 성도가 반드시 정결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영적 법칙을 가르친다.

  많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속죄받았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위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레위기 1~10장은 제사와 제사장의 직무를 통해 속죄의 길을 보여 주고, 레위기 11장 이후는 정결의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서는 길을 보여 준다. 속죄는 예수님의 피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스스로 자기 죄를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속죄받은 자가 계속 더러움 가운데 머물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속죄받은 자는 정결케 되어야 하고, 정결케 된 자는 공동체 안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레위기에서 “속죄하다”는 히브리어 카파르(kāpar)와 연결되며, 그 기본 의미는 덮고 가리며 속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죄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피가 없이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 처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덮임을 받은 자가 계속 죄와 귀신의 더러움 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 사람은 정결한 공동체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속죄와 정결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속죄는 시작이고, 정결은 그 속죄를 받은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히브리어로 “정결하다”는 타헤르(tāhēr)이고, “부정하다”는 타메(tāmē)이다. 타메의 상태는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고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타헤르의 상태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공동체 안에서 합당하게 살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정결례는 외적인 의식에 그치지 않고, 회개와 회복과 천국 준비의 모형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 타락, 여자의 후손 약속, 예수님의 성육신과 피 흘림, 회개와 정결, 그리고 천국 성 안 입성으로 이어지는 시간표를 가진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산모의 정결례는 해산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건 속에서도 인간의 죄 문제를 보게 한다. 나병의 정결례는 피부에 드러난 병증을 통해 죄의 전염성과 격리, 그리고 회복의 길을 보게 한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의 예고를 통해 속죄받은 성도가 왜 반드시 정결의 길, 곧 회개의 길을 걸어 공동체와 천국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속죄만으로는 정결이 완성되지 않는가?

 

 

  레위기의 구조를 보면 속죄와 정결은 구별되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속죄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피로 길을 여는 사건이다. 그러나 정결은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이 더러움을 벗고 하나님 백성답게 회복되는 과정이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는 예수님의 피로 속죄받았으니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일한 결론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속죄받은 사람이 정결케 되어야 함을 계속해서 증언한다.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왕은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지만, 그 종이 자신에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왕은 다시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다(마 18:32~35). 이것은 한 번 은혜를 받았으면 그 뒤의 삶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속죄를 받은 자는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마 18:32~35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속죄가 은혜라는 사실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어떤 죄인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그 은혜가 성도의 방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된 은혜는 회개와 정결을 낳는다. 은혜를 받은 자가 계속 더러움 속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그는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든다. 속죄만 붙들고 정결을 거부하는 것은 레위기 전체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일이다.

  성경의 구원은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은 회개와 순종과 충성과 인내 속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이다. 성도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천국에서 받을 최종 판정과 상급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옷을 빨고, 흰 세마포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계 22:14).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정결례는 바로 이 지점을 보여 준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지 않으면 성소에 나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 온전한 삶을 회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례는 구약의 낡은 의식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늘 성도가 회개로 더러움을 씻고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서야 한다는 복음의 그림자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속죄의 피를 흘리셨고, 성도는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함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3. 정결례는 왜 공동체 회복의 관문인가?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환자의 정결례는 모두 개인의 내면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결은 공동체와 연결된다. 부정한 사람은 일정 기간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물을 만지지 못했다. 나병 환자는 병증이 확인되면 진 밖에 머물러야 했다. 이것은 부정이 개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적인 더러움도 마찬가지다. 죄와 귀신의 역사가 처리되지 않으면 개인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받는다.

  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이 정결 기간이 차기 전에는 성물도 만지지 말고 성소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다(레 12:4). 이는 여인을 낮추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는 정하신 질서와 기한이 있음을 보여 주는 규정이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를 영원히 버리기 위해 정결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다시 깨끗하게 하여 공동체 안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정결례를 주셨다.

레 12:4 그 여인은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레위기 13장의 나병 규정은 이 원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제사장은 병증을 살피고, 필요하면 이레 동안 가두어 다시 진찰했다. 퍼짐이 확인되면 나병으로 판단했고, 그 사람은 격리되었다. 이것은 죄의 속성이 전염성과 확산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그림자다. 죄는 감추면 사라지지 않는다. 귀신의 역사는 방치하면 약해지지 않는다. 드러내어 진단받고, 회개하여 정결케 되어야 한다.

레 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여기에서 “진영 밖”은 단지 장소의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와 성소와 예배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오늘날 성도에게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실제적 관계와 천국 공동체의 최종 질서로 연결된다. 이 땅에서 회개로 정결케 되지 않은 자는 천국의 성 안에 합당하게 들어갈 준비를 하지 못한 자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일 수 있고, 종교적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결케 되지 않은 더러움이 남아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례는 공동체 회복의 관문이다. 죄인은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하고, 용서받은 자는 회개로 더러움을 씻어야 하며, 정결케 된 자는 하나님 공동체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의 질서다. 교회는 죄인을 정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이 정결케 되어 회복되는 곳이다. 그러나 회복은 죄를 덮어 둔 채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복은 진단과 회개와 정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원리를 놓치면 성도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도 마지막에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예배를 드렸고 봉사도 했지만, 더러움을 씻지 않았다면 흰 세마포를 입은 자로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례를 공부하는 이유는 구약의 옛 절차를 지식으로 알기 위함이 아니라,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기 위함이다. 회개는 성도의 마지막 관문이며, 정결은 공동체 회복의 표지다.

 

 

4. 산모의 부정은 인간의 원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레위기 12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이것이다. 여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왜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해산은 생명의 출산이고 축복의 사건인데, 왜 하나님은 정결 기간을 명하셨는가. 이것을 단순히 피의 문제나 위생의 문제로만 보면 본문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레위기 12장은 해산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로 태어나는지를 보게 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 깨끗한 존재가 아니라 죄의 영향을 받은 존재로 태어난다.

  창세기 3장은 이 문제의 뿌리를 보여 준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도 그 열매를 먹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말씀하셨고, 동시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복음의 씨앗을 주셨다(창 3:15~16). 그러므로 해산의 고통은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죄 아래 떨어졌다는 사실과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게 하는 표지다.

창 3:15~16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에서 아담과 하와의 질서를 언급한다.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에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고 말한다(딤전 2:13~15). 이 말씀은 여자를 멸시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창조 질서와 타락의 질서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는 인류에게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적 표지다.

딤전 2:13~15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사람 속에서 나오는 악이라고 말씀하셨다(막 7:20~23). 이것은 레위기 11장의 음식법을 폐기하는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그 음식법이 가리키던 더 깊은 실체를 밝히신 말씀이다. 사람의 더러움은 입으로 들어간 음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육체 속에 자리 잡은 죄의 본성과 악한 영의 역사에서 나온다.

막 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로마서 7장은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든다. 바울은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것이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한다(롬 7:18~20). 여기서 죄는 단순한 행위 목록만이 아니다. 죄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세력이다. 동탄명성교회가 귀신론에서 강조해 온 것처럼, 이 죄를 인격화하여 보면 뱀과 귀신의 역사와 연결된다.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죄와 귀신의 역사가 육체 안에 자리 잡고, 그것이 때가 되면 생각과 감정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롬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산모의 부정은 산모 개인을 정죄하려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사건 속에 이미 죄의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아이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그 아이도 아담 안에서 죄의 영향을 받는 존재로 태어난다. 산모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 “인간은 죄 아래 태어나며, 메시아의 속죄와 회개의 정결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2장이 보여 주는 영적 팩트다.

  이 진리를 알면 부모의 사명도 달라진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환경만 주는 사람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 속에 역사하는 죄와 귀신의 영향을 알고, 회개와 말씀과 기도로 자녀를 정결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자녀의 문제를 성격이나 환경으로만 보면 근원을 놓친다. 성경은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모와 성도는 자기 속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죄와 귀신의 사슬에서 풀려나도록 정결의 길을 열어야 한다.

 

 

5. 남자아이 40일과 여자아이 80일은 무엇을 뜻하는가?

 

 

  레위기 12장은 남자아이를 낳았을 때와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의 정결 기간을 다르게 말한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칠 일 동안 부정하고, 삼십삼 일을 더 지나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 모두 합하면 사십 일이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두 이레, 곧 십사 일 동안 부정하고, 육십육 일을 더 지나야 한다. 모두 합하면 팔십 일이다(레 12:2~5). 왜 두 기간이 다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남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죄와 회개와 할례의 질서를 따라 보아야 한다.

레 12:2~5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 아이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 아이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함 같이 두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나야 하리라

  먼저 칠 일은 한 주기의 완전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칠은 완전한 한 주기를 상징하는 수로 자주 사용된다. 해산한 여인이 칠 일 동안 부정하다는 것은 인간 존재가 부분적으로만 더럽다는 뜻이 아니라,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의 실존 전체가 정결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나병 환자의 정결 절차에서도 이레라는 기간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정의 문제를 온전한 한 주기의 관점에서 다루신다.

  사십 일은 성경에서 시험과 고난과 준비의 기간으로 자주 나타난다. 모세는 사십 일 동안 시내산에 있었고,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예수님은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시험을 받으셨다(마 4:1~2). 그러므로 남자아이를 낳은 여인의 사십 일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인간이 회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함을 보여 준다. 정결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결에는 기한이 있고, 회개에는 견딤이 있으며, 회복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과정이 있다.

마 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여기에는 육체적 지혜도 담겨 있다. 해산 후 산모에게는 몸이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다. 레위기 12장은 여인이 성소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기간을 말함으로, 산모가 무리하지 않고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보호하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오늘 성도는 이 규정을 율법주의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과 회복의 시간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영적인 정결만 말하며 육체를 함부로 쓰는 것도 지혜가 아니다. 몸의 회복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 왜 팔십 일이 주어졌는가. 설교의 핵심 해석은 여기에 있다. 남자아이에게는 여덟째 날 할례가 행해졌다. 할례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겠다는 표이다. 남자아이에게는 출생 후 여덟째 날에 회개의 표지가 새겨진다. 그러나 여자아이에게는 육체에 할례가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레위기 12장의 두 배 기간은 여자아이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하와를 통해 죄가 들어온 창세기의 기억과 할례의 표지가 없다는 점을 함께 반영한 의식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해석은 남자에게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아담도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었다. 남자도 죄 아래 있고, 남자도 귀신의 역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질서와 타락 질서를 가르치기 위해 해산의 정결 기간을 다르게 명하셨다. 성도는 이 차이를 차별로 읽지 말고, 죄의 깊이와 회개의 필요성을 더 깊이 깨닫는 표지로 읽어야 한다. 핵심은 남녀가 모두 정결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십 일과 팔십 일은 회개의 분량과도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회개를 시작하자마자 빨리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씨름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다. 사람마다 조상의 죄, 우상숭배의 분량, 육체 속에 자리 잡은 악한 영의 세력, 살아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결에는 기한이 있다. 성도는 자기 회개의 기간이 길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의 길을 끝까지 통과해야 한다.

 

 

6. 할례는 왜 육체를 벗는 회개의 표인가?

 

 

  레위기 12장의 핵심 힌트 중 하나는 여덟째 날의 할례다. 하나님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여덟째 날 그 포피를 베라고 하셨다(레 12:3). 이 명령은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표와 연결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그 후에 할례를 명하심으로, 육체의 방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라는 표를 주셨다.

레 12: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할례는 히브리어 물(mûl), 곧 베다, 잘라내다와 연결된다. 헬라어로는 페리토메(peritomē)라 하며, 둘레를 잘라낸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할례의 참뜻은 단순한 육체 절개가 아니다. 그것은 육체를 의지하던 삶을 잘라내고, 죄된 본성을 따라 살던 길을 끊어내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겠다는 회개의 표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구약의 외적 표지였지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을 벗는 영적 할례로 완성된다(골 2:11).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로새서의 말씀은 할례를 정확하게 해석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손으로 행하는 외적 절개가 아니라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와 직결된다. 회개는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로서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적 회개는 마음의 후회만이 아니다. 육체를 따라 살던 삶을 끊고, 죄와 귀신의 지배를 거절하며, 성령의 길로 돌아서는 실제적 돌이킴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회개의 표이고, 회개는 신약의 정결례다.

  여기서 성도는 창조 질서도 함께 보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고전 11:3). 하와가 뱀의 말을 들었을 때 남편에게 묻지 않고 선악과를 먹은 일은 창조 질서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아담이 하와를 따라 먹은 일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씀보다 사람을 앞세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죄는 단지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은 문제였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할례는 바로 그 뒤집힌 질서를 다시 세우는 표다. 육체가 머리가 되는 삶, 욕망이 주인이 되는 삶, 귀신이 생각을 끌고 가는 삶을 잘라내야 한다. 남자에게 할례가 주어졌다는 것은 남자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남자는 가정과 교회에서 영적 책임을 져야 할 존재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남자가 회개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물러나며, 가정의 영적 전쟁을 아내에게만 맡긴다. 이것은 성경의 질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육체의 핑계를 끊고 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회개와 천국복음은 이 지점에서 할례의 영적 의미와 만난다. 회개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일이 아니다. 회개는 육체 안에 자리 잡은 죄와 귀신의 역사를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로 끊어내는 일이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와 음란과 폭력과 거짓과 교만의 영을 그대로 둔 채 천국을 준비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의 몸을 벗는 것이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속의 죄를 드러내고 잘라내는 회개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므로 할례는 남자아이에게만 주어진 옛 의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할례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회개의 표지로 완성된다. 육체를 따라 살던 자가 영을 따라 살고, 귀신에게 끌려가던 자가 성령께 순종하며, 조상의 죄에 매여 있던 자가 예수님의 피로 풀려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다. 이 할례가 없으면 정결도 없고, 정결이 없으면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삶도 없다.

 

 

7. 번제와 속죄제는 정결의 완성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레위기 12장은 정결 기간이 찬 뒤에도 여인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말한다. 기한이 찼다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가져가야 했다.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했고, 그때 산혈이 깨끗하게 되었다(레 12:6~7). 여기서 정결의 완성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피로 받는 속죄다.

레 12:6~7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번제는 자기 전부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다. 번제물은 일부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불살라져 하나님께 드려진다. 이것은 정결케 된 자가 이제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드려야 함을 보여 준다. 회개는 죄만 버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자기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더러움에서 빠져나왔지만 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아직 정결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이다.

  속죄제는 죄가 반드시 피로 처리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산모에게도 속죄제를 명하셨다. 이것은 해산이 죄라는 뜻이 아니라, 해산을 통해 드러난 인간 존재의 부정과 죄의 문제를 피로 처리해야 함을 뜻한다. 성도는 아무리 깊이 회개해도 자기 눈물로 죄를 씻을 수 없다. 눈물은 회개의 표현일 수 있지만 죄를 속하는 능력은 없다. 죄를 속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히 9:22).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가난한 여인을 위한 길도 열어 주셨다. 어린 양을 바칠 힘이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게 하셨다(레 12:8). 이것은 정결례가 부자에게만 주어진 길이 아님을 보여 준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하고, 누구든지 정결케 되어야 한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정결을 미룰 수 없고,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회개를 피할 수 없으며,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정결을 생략할 수 없다. 정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레 12: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정결을 반드시 요구하시지만, 정결의 길을 막아 놓지 않으신다. 어린 양을 드릴 수 없는 자에게는 비둘기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회개의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우상숭배가 많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삼대째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많이 배운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영적 신분과 배경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 속에 죄가 있고 귀신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번제와 속죄제는 정결의 완성을 보여 주는 두 기둥이다. 하나는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라는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만 용서됩니다”라는 믿음이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 피를 말하면서 헌신이 없으면 값싼 은혜가 되고, 헌신을 말하면서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 의가 된다. 참된 정결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씻고, 씻김받은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데서 완성된다.

  이 원리는 오늘의 예배와 헌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술로만 회개하고 삶을 드리지 않으면 정결의 열매가 약하다. 반대로 열심히 봉사하지만 예수님의 피 앞에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그 열심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제사가 되기 어렵다. 성도는 속죄제와 번제의 질서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 몸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8. 나아만의 치유는 나병 정결례의 소망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이번 설교의 본론은 레위기 12장의 산모 정결례에 집중되어 있지만, 레위기 13~14장의 나병 정결례는 반드시 이어서 보아야 할 주제다. 히브리어 차라아트(tsāra‘at)는 오늘날 의학적 의미의 한센병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피부의 병증뿐 아니라 의복과 집에 나타나는 재앙성 부정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나병은 죄의 속성을 보여 주는 탁월한 모형이다. 죄는 피부에 번지는 병증처럼 드러나고, 퍼지고, 공동체를 위협하며, 반드시 진단과 격리와 정결의 절차를 요구한다.

  나병 환자는 제사장의 진단을 받아야 했다. 병증이 애매하면 이레 동안 격리되어 다시 살핌을 받았다. 이것은 죄의 문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도 있고, 동시에 죄가 분명해졌을 때는 단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뜻도 있다. 영적 질병은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겉으로 옷을 입고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속에서 죄와 귀신의 병증이 퍼지고 있다면 결국 드러난다. 나병의 진단은 성도의 자기 점검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엘리사 때의 나아만을 언급하셨다.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지만 깨끗함을 얻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고 하셨다(눅 4:27). 나아만은 이방 나라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는 지위와 명예가 있었지만 나병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습은 겉으로는 성공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죄와 부정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나아만이 고침받은 길은 단순했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다. 처음에 나아만은 분노했다. 자기 생각에는 선지자가 직접 나와 손을 흔들고 병을 고쳐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의 교만을 꺾는 방식이었다. 나아만은 결국 종들의 권면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고,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었다(왕하 5:14). 여기에서 정결의 길은 인간의 자존심과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임이 드러난다.

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의 치유는 나병 정결례의 소망을 보여 준다. 이방인이라도 말씀에 순종하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깊은 부정 가운데 있던 사람도 하나님이 고치시면 회복될 수 있다. 나병 환자처럼 격리될 수밖에 없는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과 회개의 순종 안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만 나아만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 체면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몸을 씻는 순종이었다. 오늘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피와 회개의 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아만은 고침받은 후에도 중요한 고백을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흙을 싣고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부터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번제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왕하 5:17). 이것은 단순한 감동의 표현이 아니다. 나아만은 자신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병이 낫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고침받은 자는 이제 누구를 섬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결케 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야 한다.

왕하 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나아만 이야기는 레위기 13~14장의 나병 정결례를 향한 문을 열어 준다. 나병은 죄의 전염성과 격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지만, 나아만은 그 가운데서도 회복의 길이 있음을 보여 준다. 죄가 아무리 깊어도, 귀신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낮아지고 회개하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성도는 자기 병증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씻겨야 한다.

  이것이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가 만나는 지점이다. 산모의 정결례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결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고, 나병의 정결례는 살아가며 드러나는 죄의 병증도 반드시 진단받고 회복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처음부터 정결이 필요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정결이 필요하며, 마지막 천국 입성 앞에서도 정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회개는 어느 한 시기의 사건이 아니라 성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길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의 예고를 통하여 속죄받은 성도가 왜 반드시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를 통해 인간이 죄 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레위기 13~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를 통해 죄가 드러나고 퍼지고 격리되며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속죄받은 성도가 회개와 정결의 삶으로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영적 원리를 가리킨다.

  성도는 속죄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속죄받은 자는 그 은혜를 핑계 삼아 더러움 속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속죄는 구원의 시작이고, 정결은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죄의 본성과 귀신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성도는 자기 회개의 기한이 길다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빨리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오래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죄의 분량과 영적 상태를 아신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정결의 기한이 차기까지, 하나님이 “되었다”고 하실 때까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성도는 정결을 개인 경건의 문제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정결은 공동체 회복의 관문이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어야 성소와 공동체로 돌아오듯이, 오늘의 성도도 회개로 깨끗해져야 교회와 천국 공동체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가 죄와 귀신의 영향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결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성도는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아만은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결국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깨끗함을 받았다. 정결의 길은 인간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우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다. 고침받은 자는 나아만처럼 자신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오직 한 분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속죄만을 말하는 신앙에서 멈추지 말고, 정결의 길까지 걸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 사함을 받고, 회개로 더러움을 씻으며, 자기 삶을 번제처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흰 세마포를 준비하고 성 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7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12장에서 14장에 나타난 산모와 나병 환자의 정결례를 통해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회개와 성결의 필수성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속죄의 단계를 넘어,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공동체와 천국 시민의 자격을 회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정결 예식을 오늘날의 철저한 회개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산모의 부정과 나병의 진단을 인간 내면의 죄된 본성과 악한 영의 침투라는 영적 원리로 풀이하며, 구원은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성도가 천국에 입성하기 전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인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헌신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레위기강해(09)] 인포그래픽.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

[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1_vora.jpg.webp

 


  1. NEW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2026-05-27(수)

    2026-05-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i9yKuuuIAQ 1. 들어가며 정결례는 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
    Date2026.05.27 By갈렙 Views15
    Read More
  2. [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_2026-05-20(수)

    2026-05-20(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NsNBU-wgpE 1. 들어가며 음식과 관련된 정부정법(淨不淨法)을 우리가 굳이 배워야 하는가? 신약 시대에 ...
    Date2026.05.20 By갈렙 Views63
    Read More
  3. [레위기강해(07)] 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레10:8~20)_2026-05-13(수)

    2026-05-13(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7)] 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레10:8~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9RZSmMcQ2k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흔히 신약 성도에게 가장 거리감이 큰...
    Date2026.05.13 By갈렙 Views92
    Read More
  4. [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10:20)_2026-05-06(수)

    2026-05-0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10: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szjMxlXeDc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는 철저한 팩트와 질서로 움직인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
    Date2026.05.06 By갈렙 Views69
    Read More
  5. [레위기강해(05)] 제사장은 어떤 절차를 따라서 위임하라고 하셨는가?(레8:1~36)_2026-04-29(수)

    2026-04-29(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5)] 제사장은 어떤 절차를 따라서 위임하라고 하셨는가?(레8:1~3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nYuqEF4DJDg 1. 들어가며 거룩하고 흠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죄로 더러워지고 추악해진 인...
    Date2026.04.29 By갈렙 Views98
    Read More
  6. [레위기강해(04)] 5대제사에 대한 특별규례는 어떤 것이었는가(레6:8~7:38)_2026-04-22(수)

    2026-04-2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4)] 5대제사에 대한 특별규례는 어떤 것이었는가(레6:8~7:3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CDrXS50qMI 1. 들어가며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사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레위기에 들어서면...
    Date2026.04.22 By갈렙 Views100
    Read More
  7. [레위기강해(03)] 5대제사 중 속죄제와 속건제는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레4:1~6:7)_2026-04-15(수)

    2026-04-15(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3)] 5대제사 중 속죄제와 속건제는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레4:1~6: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zJWPcM7GTk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는 성도들 중에는 레위기에 접어들면서 딱딱한 제사 규례...
    Date2026.04.15 By갈렙 Views177
    Read More
  8. [레위기강해(02)] 5대제사 중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레1:1~3:17)_2026-04-08(수)

    2026-04-08(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2)] 5대제사 중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레1:1~3: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9jkbapoMDsI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
    Date2026.04.08 By갈렙 Views164
    Read More
  9. [레위기강해(01)] 레위기서, 과연 어떤 책인가?(레1:1~2)_2026-04-01(수)

    2026-04-01(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1)] 레위기서, 과연 어떤 책인가?(레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IMGO60h3RE 1. 들어가며 성경을 통독하기로 결심한 수많은 성도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지나다가, ...
    Date2026.04.01 By갈렙 Views162
    Read More
  10. [마태복음강해(66)](최종회) 예수님의 부활의 4가지 특징과 주님께서 당부하신 지상대명령(마28:1~20)_2026-03-25(수)

    2026-03-25(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6)](최종회) 예수님의 부활의 4가지 특징과 주님께서 당부하신 지상대명령(마28:1~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smOyz-Yx1M 1. 들어가며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서'이자 '천국 복음서'다. ...
    Date2026.03.26 By갈렙 Views141
    Read More
  11. [마태복음강해(65)] 예수님의 장례와 예수님의 부활의 놀라운 비밀들(마27:57~28:10)_2026-03-18(수)

    2026-03-18(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5)] 예수님의 장례와 예수님의 부활의 놀라운 비밀들(마27:57~28: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30Nq8PO91s 1. 들어가며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심장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Date2026.03.18 By갈렙 Views146
    Read More
  12. [마태복음강해(64)]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2)(마27:11~56)_2026-03-11(수)

    2026-03-11(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4)]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2)(마27:1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yCNy5yfCO8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
    Date2026.03.11 By갈렙 Views110
    Read More
  13. [생명책과행위책(04)]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계3:1~6)_2026-03-04(수)

    2026-03-04(수) 수요기도회 제목: [생명책과행위책(04)]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계3: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PVMD3_W5No 1. 들어가며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Date2026.03.04 By갈렙 Views119
    Read More
  14. [마태복음강해(63)]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1)(마27:11~56)_2025-02-25(수)

    2025-02-25(수) 수요기도회 제목:[마태복음강해(63)]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1)(마27:1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tfPsQpH06k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마지막, 곧 십자가 고난과...
    Date2026.02.25 By갈렙 Views131
    Read More
  15. [마태복음강해(62)]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최후(02)(마26:57~27:10)_2026-02-11(주일)

    2026-02-11(주일)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2)]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최후(02)(마26:57~2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l15JjrZK6o 1. 들어가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가장 어둡고 무겁게 돌아가던 ...
    Date2026.02.11 By갈렙 Views153
    Read More
  16. [마태복음강해(61)]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최후(01)(마26:57~27:10)_2026-02-04(수)

    2026-02-0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1)]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최후(01)(마26:57~2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qMsXMbjNKFI 1. 들어가며: 네 개의 시선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 우리는...
    Date2026.02.05 By갈렙 Views112
    Read More
  17. [마태복음강해(60)] 베드로의 부인예고와 겟세마네 동산의 간절한 기도와 붙들리심(마26:31~56)_2026-01-28(수)

    ㄴ2026-01-28(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0)] 베드로의 부인예고와 겟세마네 동산의 간절한 기도와 붙들리심(마26:3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tzKlWa3oi2U 1. 들어가며: 십자가를 향한 비장한 전주곡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
    Date2026.01.28 By갈렙 Views140
    Read More
  18. [마태복음강해(59)] 마지막 만찬과 겟세마네 기도에 나타난 예수님의 순종(마26:26~46)_2026-01-21(수)

    2026-01-21(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9)] 마지막 만찬과 겟세마네 기도에 나타난 예수님의 순종(마26:26~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f5jSUgL45w 1. 들어가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천국을 상속받는다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
    Date2026.01.21 By갈렙 Views157
    Read More
  19. [마태복음강해(58)] 향유부은 여인과 마지막 만찬(02)(마26:1~30)_2026-01-14(수)

    2026-01-1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8)] 향유부은 여인과 마지막 만찬(02)(마26:1~3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En_PV1zdjg 1. 들어가며: 성 금요일이 아니라 성 목요일이다 성도들은 새로운 해가 되면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
    Date2026.01.15 By갈렙 Views283
    Read More
  20. [마태복음강해(57)] 향유부은 여인과 마지막 만찬(01)(마26:1~30)_2026-01-07(수)

    2026-01-07(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7)] 향유부은 여인과 마지막 만찬(01)(마26:1~3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ajdFYywpxw 1. 들어가며: 유월절 이틀 전, 두 가지 음모와 하나의 헌신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마태복음에 기록...
    Date2026.01.07 By갈렙 Views28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