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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연구

- 요한계시록 2:20~23을 중심으로 -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1. 서론

 

2. 본론

2.1 왜 사람에게 먹는 음식이 중요한가?

2.1.1 구약의 율법에서는 음식취식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2.1.2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왜 그리 중요한가?

2.1.3 우상의 제물은 왜 부정한가?

2.2 신약성경에서는 우상의 제물 취식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2.2.1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A.D.49~50)

2.2.2 사도바울의 권면(A.D.55년경)

2.2.3 두아디라교회에게 보낸 편지(A.D.95~96)

2.3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3.1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부정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2.3.2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2.3.3 우상의 제물의 섭취는 육신과 영혼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3. 결론

 

[참고문헌]

 

 

1. 서론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성한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음식취식의 문제에 있어서 더 이상 문제될 것은 없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음식의 정부정에 관하여 남아있는 문제가 더 이상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 중의 하나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과연 먹어도 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명예, 후원, 친족, 정결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바 있는 데이비드 A. 드실바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와 피에 덧붙여진 몇 가지 전략적인 부정에 관한 금기사항들의 증진이 남아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이어서 음식규례들은 비록 토라가 기술하고 있는 규례들보다 덜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주로 우상에게 바쳐진 동물에게서 나온 고기와 관련하여 더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유대인의 경우처럼 명절을 끼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3대 명절로서 무교절(유월절)과 맥추절(칠칠절, 오순절)과 수장절(초막절)이 있듯이(23:15~17),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2개의 큰 명절이 있다. 그것은 새해 설날과 팔월 추석이다. 명절을 맞이하게 되면 온 나라는 3일간 쉬며 부모가 계시는 고향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다. 특별히 대한민국은 이조 500년 동안 유교의 영향을 받아왔던 나라이기에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일지라도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데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런데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다 기독교인라면 조상제사 대신에 가정예배를 드리면 되기 때문에 그리 문제될 것은 없지만, 가족구성원들 중에는 불신자들이 있고, 친척들도 함께 모이는 명절에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제사를 거부한다든지 피하게 되면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게 된다. 듣기에 민망한 말부터 시작해서 비난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핍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이혼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애미애비도 몰라보며, 조상의 은혜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책망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너 때문에 우리 집안에 예수가 들어와서 평온한 가정에 불화만 가득 차게 생겼다는 비난을 송두리째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가족들의 성화 내지는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조상제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들은 자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안 하자니 불효자라는 말을 들을 까봐,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는 데까지 동참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죽은 조상에게 절은 안 하지만 제사상에 차려놓은 음식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제사음식을 먹어야 조상의 은덕이 임한다면서 그것을 먹으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조상제사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과연 바림작한 것인가에 대해서 늘 꺼림직한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조상일지라도 죽은 자에게 제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거기에 바쳐진 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온당하지 않는 음식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우상은 더 이상 없으며, 만물도 다 주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먹는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숭배와 같은 유교적 제의에 참석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이며, 제사상의 음식을 만든다거나 그것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먹게 될 때에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에 어떤 영향를 끼치는지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우상의 제물에 관한 신약성경의 여러 교훈들과 특히 요한계시록 제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교회에게 보낸 요한의 편지를 중심으로,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 그리고 먹지 말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본론

 

 

2.1 왜 사람에게 먹는 음식이 중요한가?

 

2.1.1 구약의 율법에서는 음식취식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구약의 율법에서는 먹는 음식과 먹지 못할 음식에 관하여 아주 구체적인 기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레위기 11장에 등장한다. 레위기 11장을 동물의 종류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짐승들 중에서 굽이 갈려져 쪽발이 되면서 동시에 새김질하는 짐승은 다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11:3). 그러나 쪽발이 되었으나 새김질을 못하는 짐승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새김질은 하는데 쪽발이 되지 않는 짐승은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했다(11:4). 예를 들어 전자에 해당하는 짐승들로는 돼지가 있으며, 후자의 짐승으로는 낙타토끼등이 있다. 둘째, 물 속에서 움직이는 생물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지느러미가 있고 동시에 비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11:9). 그러므로 물속의 생물 중에서 지느러미가 없거나 비늘이 없는 것은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어’, ‘미꾸라지’, ‘상어’, ‘고등어’, ‘오징어’, ‘낙지’, ‘문어등은 먹지 못하는 생물들이다. 셋째, 하늘을 나는 새들 중에서도 먹지 못하는 종류가 있다고 했다(11:13). 그러한 것에는 독수리’, ‘까마귀’, ‘솔개종류 등이 있는데, 이러한 새들은 주로 죽은 사체를 먹는 새들을 가리키고 있다. 넷째, 곤충들 중에는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은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했다(11:20). 하지만 이러한 곤충일지라도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뛸 수 있는 곤충은 깨끗하니 먹을 수 있다고 했다(11:21). 그래서 먹을 수 있는 깨끗한 곤충들에는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등이 있다. 다섯째, 네 발로 다니는 짐승 중에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부정하니 그것을 먹지 말라고 했다(11:27). 이러한 짐승으로는 사자’, ‘’, ‘표범’, ‘호랑이’, ‘치타등이 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이러한 짐승들은 다 육식을 하는 동물들이며, 자기 영역에 있어서 최고 정점에 있는 짐승들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여섯째, 땅 위에 기어 다니는 길짐승 중에도 부정한 짐승이 있다고 했다. 그러한 짐승에는 두더지’, ‘’, ‘도마뱀’, ‘악어’, ‘카멜레온등이 있다(11:29~30). 그리고 일곱째, 마지막으로 이미 죽은 채 있는 짐승도 먹지 말라고 했다(22:8). 죽음이란 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부정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노아의 홍수 이후에, 타락한 인류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을 뿐이다.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먹을 수 있는 생물과 먹을 수 없는 생물을 구별하여, 깨끗한 짐승만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한 마디로 율법을 통해서 부정하다고 언급된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라고 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깨끗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짐승의 고기는 먹을 수 있다고 명한 것이다.

 

2.1.2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왜 그리 중요한가?

그렇다면 왜 구약의 율법은 육식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는가? 그것은 먹는 음식에 따라 그 사람이 더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11:43~44). 즉 사람이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되면 더러워지기 때문에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깨끗한 음식만 먹으라고 권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하나님처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11:45). 그러므로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 더럽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정결케 하는 정결례를 통해서 다시 깨끗함을 얻어야 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정해준 정결의 방법으로는 자기의 옷을 깨끗이 빠는 것이었다(11:25, 40). 그리고 정결함을 얻으려면 당일 저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규례는 사실 온갖 불결한 것들로부터 자기의 몸을 지켜내기 위함이며, 또한 자신의 청결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에 해당한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위생학적으로 유익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음식규정은 종교의식적으로 볼 때에도 부정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해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이방인들과의 통혼금지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음식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거룩한 하나님과 분리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 있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음식규정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22:8~9). 결국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깨끗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부정한 사람이 되기도 하기에 음식의 섭취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1.3 우상의 제물은 왜 부정한가?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부정한 것인가 아니면 깨끗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구약의 레위기 11장에 규정된 음식법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모든 고기는 정한(깨끗한) 고기와 부정한(더러운) 고기로 구별되어 있다. 그런데 율법은 그것들 중에서 정한 짐승의 고기만을 먹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한 짐승이라도 그것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면 그것은 좀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에 구약시대에는 아무리 자연 상태에서 정한 음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단 우상에게 바쳐졌다면 그것은 부정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먹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먹는 날에는 온갖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106:28~29). 왜냐하면 비록 레위기 11장에서 깨끗한 짐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짐승의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지게 되는 순간, 그 고기는 더럽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전10:19~21).

 

 

2.2 신약성경에서는 우상의 제물 취식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2.2.1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A.D.49~50)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사역을 완성하면서,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구약의 음식규정에 관하여 모든 제한을 폐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레위기 11장에 나타난 유대인의 음식규정에 따르지 않아도 부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 음식규정이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A.D.36년경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기도하면서 본 환상을 통해서, 그는 이제 모든 짐승의 고기는 하나님께서 다 깨끗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음식의 문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혈통적인 문제로 인하여 그들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10:28,44~48).

그런데 사도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에서 구원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할례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라 할지라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A.D.49~50년경, 기독교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그 문제를 놓고 공의회가 열게 된다. 그 문제에 관하여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하고, 그리하여 사도들과 장로들의 의견을 듣기로 결정하였는데, 그때에 예루살렘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2가지를 결의하게 된다. 하나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더라도 이방인들 중에서 주께 돌아온 자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고 결정을 하였다. 그것의 중요 핵심사항은 먹는 문제였다. 그때 결정한 4가지 항목 가운데, 3개가 바로 먹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음행을 삼가도록 하고 어떤 음식들은 먹지 말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항목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 먹지 말도록 하자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모든 것은 다 먹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은 먹지 못하도록 결의하였던 것이다.

 

2.2.2 사도바울의 권면(A.D.55년경)

A.D.55년경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에 자신이 개척해 세운 고린도교회에 한 통의 편지를 쓴다. 그 편지의 내용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관한 취식 문제도 함께 들어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에게 있어서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상의 제물의 취식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8장부터 11장에 걸쳐 길게 편지를 기록했다. 바울은 처음에는 지식을 갖고 있는 형제에게 있어서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신약의 성도들은 음식에 관하여 자유로운 권한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이 세상에 더 이상 우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기에 그것을 믿는 성도들에게 우상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고전8:1~4).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바울은 율법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고자 편지를 쓴 것이 아니었다. 결국에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지 않은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아는 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내 사도바울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 권한 사용에 대해 말한다. 그 요지는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를 넘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형제에게 죄를 짓게 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에게 고기를 먹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자기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고전8:9~13).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왜 절제해야 하는지를 고린도전서 9장 전체를 할애하여 썼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전서 10장에 가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때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우상의 제물과 관한 취식문제를 2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을 먼저 언급했는데, 그것은 우상숭배 행위와 동일하다는 것이었다(고전10:18~21). 그리고 둘째, 우상숭배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고전10:22).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일고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는 때문이라고 했다(고전10:20). 그러한 논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된 자들이 주님의 식탁(성찬식)과 귀신의 식탁(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겸하여 참여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고전10:21). 결국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그것이 신전에 바쳐지기 위해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게 된 고기인지 아니면 신에게 정말 제물로 바쳐진 후에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전10:25). 그러므로 불신자가 자신을 초대하여 고기 음식을 대접한다면 그때에는 초대한 자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했다(고전10:27). 하지만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한다면 알게 한 자와 자기 자신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했다(고전10:28). 이것은 고기음식을 차려놓은 자의 성의에 대한 아량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2.3 두아디라교회에게 보낸 편지(A.D.95~96)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관하여 요한은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어떻게 말했던 것일까?(2:20). 요한은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아디라교회의 이세벨 선지자를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왜냐하면 그녀가 두아디라교회의 성도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꾀하고 있었으며,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20). 그렇다면 여자 이세벨은 누구며, 그녀는 어떻게 해서 두아디라교회에 있는 주의 종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있었던 것인가?

먼저, 두아디라교회의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이 여자는 구약시대 아합 왕의 왕비였던 이세벨과 그 이름이 같은 거짓 여선지자다. 아마도 그녀가 행하는 활동이 구약의 실제인물이었던 이세벨처럼 우상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실제 구약의 이세벨은 시돈의 엣바알의 딸로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시집오면서 자신의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종교를 끌고 들어왔던 장본인이었다(왕상16:31). 그녀는 당시 종교의식으로서 예언하는 일도 하였고(22:13), 음행도 행했으며(7:9), 아이를 희생시키기도 하였고(19:5), 몸을 상하게 하는 일(왕상18:28)까지 행하던 자였다. 그리고 춤과 잔치에까지 바알의 제사장들의 지도를 따랐던 여인이다(1:4).

그럼, 그녀는 어떻게 해서 주의 종들까지 속여 그들을 영적으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것인가? 이한수는 당시 이세벨이 교묘한 말재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여, 그녀의 가르침이 곧 성령의 계시라고 말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신전 축제에 참여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복음에 저촉되지 않는 문화적인 요소라고 한 것이다. 또한 박수암은 이 여자는 당시 자칭 영지주의적인 여선지자와 같은 자라고 했으며, J. 매싱버드 포드는 두아디라 도시가 이미 몬타누스파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성령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몬타누스의 가르침도 그 교회에도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여자가 주의 종들을 가르쳐 행음하게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한수는 그것은 그녀가 실제적으로 간음을 저질렀다라고 보기보다는 영적인 간음 곧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불신앙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이교제의와 연관된 육신적인 음행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레고리 K. 비일은 그것을 다르게 보았다. 이세벨이 두아디라교회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하게 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해석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의 종들을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면서도 그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두아디라교회의 거짓교사들은 어느 정도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 두아디라의 문화이며 허용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순서는 다르지만 계2:14과 계2:20에 동일하게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는 문구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상황과 사회의 우상숭배적 측면과 타협하는 문제가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의 공통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특히 두아디라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곳은 번창하는 대규모 무역조합의 경제적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두아디라에는 거의 모든 무역과 관련된 조합이 있었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저런 조합에 속해 있었다. 또한 모든 조합이 수호신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조합의 그리스도인 회원들은 조합의 공식 모임에서 이교도 신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했다. 그런데 그 행사는 대개 성적 행위를 동반하는 축제였다. 참여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따돌림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제적인 요인이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두아디라교회의 거짓선지자 이세벨은 교회 안에도 두아디라의 문화를 허용하여 이교도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제의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박수암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우상에게 바친 고기(idol meat)를 먹는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그 우상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고전10:18.20).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곧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세벨은 영혼만 깨끗하다면 우상제사에 참여해도 상관없다고 부추겼던 것이다(13:12). 특히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당시 이방종교에 있어서 흔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일종의 문화로 본 것이다.

 

 

2.3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3.1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부정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제사의 음식 곧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종합해서 보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 이유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그 순간에 부정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어떠한 고기라도 구약시대와는 달리 다 깨끗하게 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사도행전 10장에 베드로의 보자기 환상 가운데서 이미 나타나 있다. A.D.36년경 베드로가 본 환상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거기에서는 이제 모든 짐승은 다 깨끗하게 되었으니 어떤 고기라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 환상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오순절 이후 어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부정한 자는 없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음식규정이 철폐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음식은 깨끗한가 아니면 더러운가? 고린도전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세상에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사도바울이 여기에서 언급했던 고기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에 제한된 것이었다. 시장에서 내다파는 고기는 그것이 신전제의에 실제로 참여했는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에, 먹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신전제의에 드려졌던 고기라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그 고기가 우상의 신전에 드려지는 순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원리는 성찬식의 원리와도 같다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성찬식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가 거룩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성찬식에 드려지기 전까지 빵과 포도주는 그저 단순한 빵이나 포도주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나면 그 음식은 거룩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를 함부로 먹고 마셔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함부로 먹고 마시게 되면 그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도 생긴다고 말했다던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음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이후 이 세상에 자연 상태로 있는 고기 중에서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속된) 고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더러운 귀신에게 드려졌다면 그때부터 그 고기는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기가 더러워짐으로 더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바쳐진 우상이 더럽기 때문이다. 사실 고린도전서 10:20에 의하면,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는 귀신에게 바쳐진 고기가 되기 때문에 그 고기는 더러운 음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지는 순간 더러운 영에 속한 고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주께 돌아온 이방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은 먹지 말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그 고기는 이미 더럽혀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2.3.2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는 요한계시록 2:20~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상의 제물의 취식 행위가 곧 우상숭배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2:20). 다시 말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면 그것이 곧 우상과 교제하는 것이 되어 우상숭배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두아디라는 예로부터 도시조합원의 수호신인 티림노스(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와 동일)와 그리고 황제숭배를 해 온 도시였다. 고로 두아디라 도시에 사는 자들은 누구든지 티림노스와 황제 숭배의식에 동참해야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제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에게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것은 아주 당연하였다. 그리고 신전제의에 참석한 자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음행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왕인성은 당시 그레코-로만시대의 신전연회는 대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연회의 첫 번째 시간에는 주로 고기를 먹는 저녁식사를 했고, 연회의 두 번째 시간에는 악기 연주와 각종 토론 등이 진행되는 사교적인 성격의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술이 제공되면서 결국 부도덕한 행위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두아디라교회의 선지자 이세벨은 이미 구원받은 자는 무슨 음식을 먹더라도 자신의 영혼은 더럽게 되지는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서, 우상숭배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성도들을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때 이세벨은 두아디라의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이 우상숭배적 교훈을 그다지 나쁘게 여기지 말라. 나는 그것을 허용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요한은 이세벨을 가르침을 따라가는 성도들에게 아주 강력한 경고를 한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곧 우상숭배행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순절 이후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만큼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3.3 우상의 제물의 섭취는 육신과 영혼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섭취하게 될 때에 자신의 육신과 영혼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룩한 성찬을 먹는 자가 거룩한 제단에 참여하게 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럽혀진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더러운 이방신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 우상의 더러움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시편기자는 민수기 25장의 사건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재앙이 크게 유행하는 이유가 바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106:28~29).

그러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2:20~23의 나오는 말씀에 나온다. 거기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가 받게 될 재앙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우상을 숭배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자에게 2가지 징계가 있을 것을 언급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받을 징계가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죽어서 받을 징계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게 되는 자가 받게 될 징계 가운데 이 땅에서 받을 징계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자는 본인이 질병의 침상에 던져진다는 것이다(2:22).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가르친 본인에게 내려질 징계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상으로는 두아디라 교회에 있는 이세벨 거짓 선지자가 제일 먼저다. 사도요한은 그의 눈이 불꽃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빌려서 말하기를, 그녀는 필히 침상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침상에 던져진다는 말은 질병에 걸려 눕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6:6, 41:3). 그래서 그레고리 K. 비일은 이세벨에게 내린 침상에 던질 것이라는 심판은 질병을 가리키는 것에 대한 환유법에 해당하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난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한편 이한수는 여기서 침상이란 그녀가 음행을 저지른 장소를 지칭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둘째, 그러한 가르침에 동조하는 자들은 큰 환난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동조하는 자들이란 그녀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을 가리킨다(2:22). 그런데 이 표현은 이세벨의 거짓된 교훈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여선지자의 육신적 음행을 함축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하다. 그러므로 그녀의 가르침에 동조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두아디라 성도들 중에서 그녀의 지시를 따라 행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들이 받을 큰 환난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박수암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환난(3:10)”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것은 곧 7인과 7나팔과 7대접의 환난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들에게 엄청난 재앙과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또한 그레고리 K. 비일은 땅에 거하는 불신자들에게 임한 시험의 때(3:10)”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요한계시록 7:14에 나오는 큰 환란’”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고통이요 아픔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녀의 자녀들이 살해당하는 것이라고 했다(2:22~23). 그렇다면 여기서 이세벨의 자녀들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총신대 이한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는, 이세벨의 교훈에 완전히 몰입되어 그녀를 추종하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필찬의 해석에서 가져온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그레고리 K. 비일도 그녀의 자녀들이란 이세벨의 추종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한수는 둘째로, 그들은 육체적 음행을 통해서 낳은 이세벨의 실제 자녀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고 했다. 일례로, 마운스는 이세벨의 자녀들을 죽게 한다는 것은 사마리아의 통치자들이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여 그들의 머리를 바구니에 담아 이스르엘로 보낸 잔혹한 사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왕하10:1~11). 그레고리 K. 비일도 이세벨의 70명의 아들들이 예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이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하지만 세 번째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의 실제적인 자녀일 가능성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나 불치병으로 죽는다든지, 외국에 나가 비명횡사를 당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러한 일이 다 우상숭배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요한은 우상숭배 내지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었다. 그러한 죄가 자기 자신의 징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오는 자들에게도 동시에 징계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의 육적 자녀나 영적 자녀에게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J. 매싱버드 포드는 부모의 질병과 자녀의 사망의 문제에 대해서 여자 이세벨과 함께 그녀의 자녀에게 내린 벌은 부모의 죄가 그 자녀에게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유대인의 믿음(34:7) 혹은 전 가족이 한 사람의 가족 구성원의 죄악으로 인하여 벌을 받는다는 유대인의 믿음을 암시하고 있다(7장의 아간사건, 6:24)”고 말했다. 그렇다.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이처럼 이 세상에서도 심각한 폐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과 아픔이 찾아오는 것에는 우상숭배의 죄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으로부터도 올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받을 육신적인 질병이나 환난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은 다음에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자신의 영혼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우상숭배 내지는 우상의 제물을 먹었던 자가 죄를 회개치 못하고 죽었을 경우, 불못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21:8). 이는 우상의 제물의 문제가 자신의 영혼에도 치명적인 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3. 결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고기 음식은 귀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볼 때 그것을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딤전4:4~5).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사람이기에 음식을 통해서 힘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모든 고기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 의식적인 부정으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있었다. 그중에서 정한 짐승만을 먹도록 허용한 것이 구약의 율법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후 음식을 먹는 문제는 달라졌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오순절 이후에는 자연 상태의 모든 동물들은 자체로 더럽지 않으며 또한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음식만큼은 다르다. 만약 누군가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게 된다면 그는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다면 그것을 먹는 사람도 같이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자체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우상 자체가 더럽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 뒤에 더러운 귀신이 있어서 그 제사와 제사음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0:20).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결국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와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에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고 마신다면 그는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는 사도바울처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단지 사회적인 문제만을 야기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먹는 자신이나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 혹은 그러한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 자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단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상숭배 행위가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음행의 죄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음식이든지 다 자기 맘대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작은 이유로도, 자신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서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실족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 크게는 그 행위가 자신의 육체와 영혼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재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안 좋은 사실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면 자기 자식과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자손 3~4대까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20:5, 34:7). 그러므로 초대교회나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다. 특히 누군가가 우상을 숭배한다거나 혹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음식은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은 결코 먹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불신자가 있는 집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명절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해결하려면 우리에게도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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