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진짜 후손들이 치르는 것인가?(요9:1~4)
https://youtu.be/7jigB8K_iao [혹은 https://tv.naver.com/v/14652750 ]
1. 들어가며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과연 아들과 자손 등 후손들이 받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죄값에 대한 구약과 신약의 경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살펴봄으로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손들이 죄값을 받는 것에 대해 귀신들은 과연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더 자세한 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미 기록된 성경 66권의 성경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의 삶도 점검하여, 오늘의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2. 죄값을 처리하는 것에 대하여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했는가?
성경말씀에 보면,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는가에 대하여 구약성경의 말씀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다윗과 사울왕과 아합왕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 때문에 후손들이 고통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첫째, 다윗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정말 죄값을 물게 했는가를 살펴보자. 다윗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그는 먼저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 장수의 아내를 욕보였다. 그리고 그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우리야 장수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하였다. 먼저 남의 여인을 탐냈으니 그는 제10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남의 여인을 도둑질했으니 또한 제8계명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남의 아내를 욕보였으니 제7계명을 어긴 것이고, 우리야 장수마저 죽게 했으니 제6계명을 어긴 것이다. 다윗은 탐심죄, 도둑질죄, 간음죄, 살인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 죄값을 어떻게 받았는가? 우선 그는 살인죄에 대한 벌로서 4배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입술로 내뱉은 말에 근거한다(삼하12:5~6). 그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남의 것을 빼앗은 죄에 대해서 4배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같은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즉시 그 죄를 인정하였고 눈물로 회개를 하였다. "내가 여호와를 대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도 그의 회개를 들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 자신도 그 죄값으로 인하여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죄값은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그 죄값을 치렀는데, 그가 살인죄를 저지른 탓에, 그는 4명의 아들들이 잃어야 했다. 가장 먼저는 밧세바와 간음으로 인하여 잉태된 아이가 죽었으며, 셋째아들 압살롬에 의해 첫째아들 암논이 죽었고, 이어 압살롬이 쿠테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요압장군에 의해 압살롬도 죽었으며, 그의 아들 솔로몬 대에 가서는 넷째아들 아도니야도 죽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남의 아내를 겁탈한 죄값(탐심죄, 도둑질죄, 간음죄)도 혹독하게 치러야 했으니, 압살롬에 의해 자신의 후궁들이 대낮에 욕을 당하는 꼴을 보아야 했다. 고로 우리는 다윗이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값을 자신과 그의 후손들이 혹독하게 치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그의 후손들이 죽은 것을 두고서, 모두가 다 다윗의 잘못때문에 죽은 것으로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죄는 용서받았으나 벌을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사울왕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정말 죄값을 물게 했는지도 살펴보자. 삼하21장에 보면,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에 계속해서 3년간 연거푸 기근이 있었다. 다윗은 기도한 결과 그것이 선왕이었던 사울왕의 잘못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선왕인 사울이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기브온 거민을 죽였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수년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마침내 기근의 재앙을 그 다음 세대에 내리셨다. 이처럼 한 나라의 지도자의 잘못은 한 나라에게 징계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해야 온 나라가 기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다가 살아있는 기브온거민을 불러다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민족을 학살하기로 모해한 했던 사울의 자손 일곱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을 목매어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의 두 아들들과 외손자들 5명을 기브온 거민에게 내어준다. 그들은 사울왕의 첩(리스바)의 두 아들들이었고, 사울왕의 딸 메랍의 아들들로서 외손자들 5명을 그들에게 내준 것이다. 결국 7명의 후손이 사울이 범죄한 죄 때문에 대신 죽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땅에 가뭄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조상의 죄값을 후손들이 혹독하게 치렀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다.
셋째, 아합왕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죄값을 물게 했는지를 살펴보자. 왕상21장을 보면, 분열왕국 중에서 북이스라엘의 제7대왕이었던 아합 왕 때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봇이었다. 그 이유는 아합왕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아합왕은 왕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을 자신의 나물밭을 삼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 되자 자기의 아내를 통하여 포도원의 주인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는다. 그것은 도둑질의 죄요 살인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은 땅도 보고 하늘도 보고 있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즉시 선지자를 보내 아합왕이 지은 죄값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물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살인죄를 저지른 아합왕도 비참하게 죽었고, 자기자식들과 손자들도 비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전쟁터에 나갔던 아합왕은 적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았는데, 후송되는 과정에서 죽고만다. 그러자 피가 흥건히 적셔진 수레를 개가 핥으므로 나봇을 돌로 쳐죽이게 한 죄값을 자신이 도로 받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첫째 아들 아하시야왕이 병들어 자식없이 죽었으며, 둘째아들 여호람 왕도 창자가 썩는 중한 병에 걸려서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된다(대하22:19). 그리고 여호람이 낳았던 손자들 42명도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고, 아합왕의 다른 70명의 아들들도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과거에 자신의 조상이 나쁜 죄를 지으면 후손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스런 후손들이 징계를 받아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조상들의 지은 죄값을 후손에게도 묻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대단히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죽는 것이 100% 조상이 지은 죄값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조상들이 지은 죄를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조상이 지은 죄가 우상숭배의 경우라면, 그 죄값은 아들 손자 뿐만 아니라 더 내려가서 3~4대후손에게까지 물린다고 되어 있으니, 우상숭배의 죄값을 매우 크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출20:5). 고로 후손이 죄값을 받는다는 말은 헛된 말은 아닌 것이다.
3. 죄값을 후손에게 물리는 것에 대한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죄값을 물리는 것에 대한 구약시대의 처리방식과 신약시대의 처리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3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지만, 구약시대에는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치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구약시대는 아직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죄를 지었을지라도 본인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가 있었다(고로,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벌은 면제받지 못했고, 자기와 자기의 후손이 다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죄값을 대신 담당하신 이후부터는 상황은 반전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대신하여 온 인류의 죄값을 대신 십자가에서 치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인류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다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기만 한다면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치르신 후에 지은 죄들은 만약 그가 회개하기만 한다면, 다 용서받아 그 벌까지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온 백성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2~3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 우상과 귀신들을 섬겼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에게는 출20:5에 따라, 우상숭배의 죄값을 계속해서 후손들이 대신 받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조500년동안에는 죽은 조상을 신으로 떠받들어 섬겼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의식이었다. 결국 집집마다 귀신이 죽은 조상으로 나타나 제사를 받는지도 모른채 죄를 지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민족,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만 믿으면 과거에 지은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는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예수믿으면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값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만 믿으면 과거의 죄가 사함받는다고 하는 말씀이 단 한 개도 없다. 오직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만 비로소 그 죄를 용서받는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요일1:9). 고로 예수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기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과 자기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랬을 때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아직 메시야가 오시기 전의 상황이다. 고로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고 미리 구원받은 것이다. 장차 오시어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미리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자신이 지은 죄는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예수께서 죄값을 처리하기 전의 상황이므로, 비록 죄는 용서받아도 후손들에게 묻겠다는 죄값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조상대대로 귀신과 우상과 미신과 잡신을 섬겨온 민족이다. 우상숭배의 죄값이 수천년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후손들이 받아야 할 죄값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만 믿으면 조상들의 죄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의 후손들인 우리가 얼마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가? 이제는 우리부터라도 회개하여 조상들의 죄값을 다 끊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죄값이 더 이상 아래 후손에게로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의 경우 범죄했을 때에 악한 영들(귀신)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구약시대에는 누군가 죄를 지었다면 그는 자신이 회개했을 경우에는 그의 죄는 용서을 받았지만 그 벌은 받아야 했다. 그것도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출34: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그런데 예수께서 오실 무렵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적으로, 귀신들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구약에도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있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대체 누구였겠는가? 애굽의 술사들이나, 바벨론의 술사들이 섬기던 신들도 대체 누구였겠는가? 그리고 엔돌에 신접한 여자 속에 들어있는 신은 대체 누구였겠는가? 다 귀신들이었다. 타락한 천사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사탄의 왕국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사탄이 귀신들의 왕(통치자)가 되어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워 통치하던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니, 예수께서 탄생하기 직전에 용 곧 사탄마귀가 하늘의 천사들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계12:2~4). 그 즈음에 하늘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 용과 용을 따르는 천사들이 땅(지구)로 쫓겨나게 되었다(계12:7~9). 그뒤 사탄은 음부(땅속)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왕이 되어 귀신들을 자신의 부하로 두고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에는 귀신이라는 존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신약시대에 들어와 갑자기 귀신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개별적으로 타락하여 떨어진 천사들 곧 악령들만 조금 등장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신약시대가 되자, 귀신천지가 되었다. 고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1/3은 사실 귀신을 쫓는 사역이었다. 그만큼 귀신이 많았고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 사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에서 설교할 때에도 귀신을 쫓아내야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죄에 대한 징계(벌)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죄값을 비록 본인이 회개하여 용서받았음에도 자기와 자기의 후손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담당하신 후부터는 그 죄값을 담당하는 것이 훨씬 작아졌다. 아니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귀신들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 온갖 저주(질병, 사건사고, 가난, 빼앗김, 종노릇함, 기근, 사망)를 가져다 주는 것은 부쩍 늘어났다. 이는 귀신들위 숫자가 구약시대에 비해 아주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아담의 타락이후부터 귀신들은 죄를 짓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창3:14). 그러므로 신약시대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을 경우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 저주를 주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그의 후손에게 들어가 또 다시 저주로 역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연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았는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들이 용서되었는지는 귀신의 역사를 통해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귀신들이 집단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한지 2천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조상대대로 우상과 잡신과 미신과 귀신을 섬겨온 민족이기에 한국의 저주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사람이 만약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섬겼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도 온갖 저주를 받아서, 각종 질병과 사건사고에 시달리게 되고, 열심히 수고해봤자 얻은 것은 없으며, 가진 것도 빼앗기고 강탈당하며, 자식들은 어려움에 호소하지만 도움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라도 회개는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나와 내 자식의 앞 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5. 예수님의 시대에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자는 과연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당시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자에 대해서 왜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지은 죄값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가? 사실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저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하나님만을 섬기던 민족에게서 맹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죄가 그의 윗대에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때에 제자들이 먼저 입을 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채 있는 것은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입니까?(요9:2)"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으며, 그의 부모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다만 그이(그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되기 위함이다(요9:3, 헬라어원문직역)"라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에 대한 그동안의 해석은 이렇다. 이 일이 있던 시기는 초막절의 절기로서, 초막절에는 밤에 높이 들린 등잔대에 불을 밝혀 한 밤중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대낮처럼 밝게 해 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은예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영적인 세계를 알고 보니, 한 가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상들의 죄값을 후손에게 물으시겠다는 출20:5의 말씀이 이 일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살펴보니, 예수님의 말씀을 틀림없는 하나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맹인이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죄값은 3~4대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을 이 상황에 대입해보면,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2~3대 윗대의 조상들의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조부나 조모에게 우상숭배의 죄가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들어와서 손자손녀들이 받고 있는 저주가 대부분 조부나 조모의 우상숭배의 죄로 나타나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랬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 죄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냐하면 지체 장애는 결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장애는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출생으로 인한 지체장애는 결코 축복이 될 수는 없다. 고로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출20:5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우리가 진정 복을 받고 우리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6. 나오며
사람이 죄를 지으면 누구나 거기에 합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자기가 그 벌을 받지 않으면 그의 후손이라도 반드시 받는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율법의 정신이다(출20:5). 그러므로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십계명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나 자신이 십계명을 어기고 범죄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죄로 인해 반드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구약시대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기 이전의 상황이므로, 회개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 벌은 면제되지 아니하였다. 세 왕들 곧 다윗과 사울과 아합왕의 경우를 보라. 그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신 이후부터는,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 형벌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하늘의 집단적인 반역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탄의 왕국이 땅속 음부에 세워졌다. 그후로 사탄의 부하들인 귀신들이 올라와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사람 속으로 들어가(창3:14),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마12:43~45).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다시 그의 후손에게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3대만 올라가도 다 불신자였기에 적어도 2천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얼마나 귀신들이 많겠으며, 귀신들이 가져다주는 저주들이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회개했을 때에 비로소 죄를 용서받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아도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그리고 저주도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와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악을 인정하고 자백하고 통렬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죄가 용서되고 죄가 용서되면서 귀신들도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가 잘 되기 시작하고, 내 후손들도 복을 받는데, 손대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고 승승장구하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신28:12~14). 건승을 빈다.
2020년 7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