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에 관한 기독교 윤리적 입장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사회적 분석(analysis)
1)술과 담배의 유해성
(1) 술의 문화와 유해성
(2) 담배의 유해성
(3) 담배의 소비를 부축이는 힘
2) 오늘의 사회와 술 담배
(1) 오늘의 문제
(2) 흡연과 그리스도인
(3) 사회적 간섭의 영역
2.술과 담배에 대한 반성(reflection)
1) 성서적 반성
(1) 술 취함과 술 마심
(2) 술 마심의 적용
(3) 성경과 알콜중독
2) 신학적 반성
(1) 아디아포를 위한 원칙
(2) 문화 생활을 위한 원칙
3) 기독교 윤리적 반성
(1) 술 담배 아직도 문제인가?
(2) 왜 술 담배가 문제인가?
(3) 한국교회의 사회윤리적 책임과 담배
3. 목회적 사회적 실천(practice)
1) 역사적 실천-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강령
2) 교회 내적 실천
3) 교회 외적 실천
(1) 국가의 금연정책
(2) 드림바이러스
(3) 알코올 중독자 익명단체(Alcoholics Anonymous, A.A.)
Ⅲ. 결론
◆참고목록
술과 담배에 관한 기독교 윤리적 입장
Ⅰ. 서론
우리가 직면한 특별한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가?
술과 담배의 문제는 한국 기독교인에게는 어려운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술 담배를 하면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사회적 환경의 영향으로 계속할 수 밖에 없어 죄책감에 시달린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의 삶과 사회에서의 삶에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여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점을 보면 술과 담배의 문제는 비단 건강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신앙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폐암에 걸려 투병하는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강한 금연 호소가 방송되면서 연초부터 많은 남자들이 금연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여전히 금연구역에 치이고 주변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 또 수많은 사람이 담배에 처음으로 불을 붙인다. 담배는 술과 더불어 오랜 세월 사람들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도입된 초기에는 양반계급으로부터 퍼져서, 1980년대에 20세 이상 성인남자 흡연율이 79.3%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70% 정도로 세계 최고 흡연율을 유지했다. 1999년 현재 64.9%로 흡연율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과 여성흡연율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청소년과 여성흡연에 대한 사회적 금기 문화 때문에 흡연율이 높지 않았지만, 1980년대부터 그러한 사회적 금기가 무너지면서 청소년과 여성흡연율이 급증하여 왔다. 우리는 청소년 흡연율도 선진국의 2배정도이고, 세계 최고수준인 심각한 나라가 되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남용되는 약물이 술이다. 우리나라 성인(20~59세)의 절반 이상이 음주인구이고, 여성의 음주율은 47.6%로 계속 증가해 왔다. 청소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5~6학년)은 절반 이상이, 중. 고등학생은 약 62%가 음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지난해 음주실태를 조사한 결과, 18세 이상의 성인 80.1%가 음주자로 나타났다. 15세 이상의 알코올 소비량만 보더라도 91년 연간 1인당 8.8ℓ였으나, 99년 9.2ℓ, 2000년 8.9ℓ에 달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스웨덴, 뉴질랜드는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 이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과음자 비율은 전체 음주자의 60%(99년)에 달하고 있으며 과음자 비율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어떤 이는 술과 담배가 기호식품이란 말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중독에 이르게 되었다. 과음과 알코올중독은 중대한 현대 사회문제 중의 하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인 보건문제의 3%가 알코올 관련 문제(alcohol related problem)이라고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록 한국 사람들이 서구사람들 보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술 소비량은 이미 1982년에 1인당 5.4ℓ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또한, 남자 살인범죄자의 42%, 강간범죄자 76%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했으며, 교통사고 운전자의 30%가 음주운전자로 술로 인한 사회문제는 점점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술과 담배로 인하는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러한 술과 담배의 문제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되어 있어 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대답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헷셀의 사회적 목적이론에 근거하여 술과 담배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이론을 정립하고 한다.
Ⅱ. 본론
1.사회적 분석(analysis)
왜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가?
술은 물과 젖과 함께 인간의 3대 음료로서(사 55:1) 가치중립적인 물질이었다. 따라서 음주가 처음부터 윤리적. 종교적으로 부정적인 가치 판단 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음주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온 문제인데, 이에 대해 교회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입장은 무엇인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1)술과 담배의 유해성
(1) 술의 문화와 유해성
한 사회에 속한 일반 사람들의 음주행위(습관과 태도)는 그 사회의 음주문화를 형성하게 되며 또한 이미 형성된 한 사회의 음주문화는 음주자들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예로 한국 사람들은 술에 대해 비교적 과대한 문화적인 습관과 사회적 태도로 성인 남성이면 누구나 술을 마실 줄 알아야하고 술을 권하는 것을 예의로 생각한다. 또한 음주와 음주로 인한 행동의 실수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술에 취한 사람이나 주정행위를 수용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음주 시에 절재가 힘들고 과음이 많으며, 술에 취해 과격한 행동이나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따라서 과음으로 술에 취해서 다투거나 심지어는 음주장소에서 폭언이나 폭행 등의 만주 만행을 한국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계속해서 장기간 술을 마시게 되면 일정한 습관이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각 사람의 음주 습관은 서로 다르며 매우 다양하며, 개인의 음주습관에 영향을 주는 요인 또한 다양하다.
술은 종류가 다를지언정 어느 술이고 주성분은 주정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술은 하나의 접대용으로 손님이 오면 술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또한 수고한 사람들이 노고를 감사하고 위로하기 위한 표시로 술을 대접하는 풍속이 있었으며, 이를 주도로 생각해 왔다. 본래 한국 사람은 주정도가 낮은 약한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이는 한국민의 식습관이 육식을 적게 먹기 때문에 농도가 높은 술을 견디기 힘들다는 생리적인 이유도 있으며, 또한 이러한 체질에 맞는 농도가 낮은 술(탁주)을 만드는 주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도 부차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식생활의 변화와 생활방식의 서구화와 함께 점점 더 강하고 독한 술로 변해가고 있다. 또한 여성과 미성년자의 음주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는 알코올 중독을 3번째로 중요한 공중보건문제로 꼽는다. 심장질환, 암, 다음으로 알코올중독(Alcoholism)으로 사망률은 질병의 이완율(morbidity)에 있어서 1위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독특한 음주습관과 술에 대한 허용적인 사회 문화적 태도 때문에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하는 환자 비율이 적었으나 최근에는 가족들의 정신과적 치료의 관심과 함께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나친 음주, 무절제한 음주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 문제는 심리학적, 의학적, 사회학적 측면으로 대별할 수 있다. 심리학적 측면에서의 주된 문제는, 왜 사람이 과음하게 되며, 그 결과 개인이 심리적 손상과 정신적인 문제가 가족에게 어떤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가에 관한 것이며, 의학적으로는 알코올 습관성의 모든 문제와 알코올 남용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신체적 손상과 질병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지속적인 음주로 인하여 직장, 가정,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또 여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문제들이다.
음주관습은 일정에 윤리 및 종교적 패턴에 기인한다. 유태인들에게서 아직도 알콜중독이 가장 적게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은 종교적 의식으로만 알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종래 우리나라의 성인사회에서는 음주에 고나한 수용적이며 때로는 조장하는 경향도 있어서 오히려 비음주자가 소외되고, 주벽이 심한 일부 중독자를 제외하고는 애주가, 술꾼, 모주꾼 등의 표현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더욱이 음주를 통하여 주기와 승화된 정신적 체험을 터득한 경우에는 주선 혹은 주성이라고 까지 하며 예찬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종래에 는 사교성 음주자는 많으나 문제시되는 음주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어 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음주는 즐기는 것을 넘어서 알콜 중독으로 까지 나아가는 배경이 되었다. 최근에 알콜중독의 동기 및 습관화를 규명하기 위하여 학습이론을 적용하려는 경향도 활발하다. 여기에는 조건반사이론이나 조작적조건반사이론, 사회학습이론 등이 적용된다. 이들은 Miller, Dollard, Shoben, Horton 등의 이론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음주로서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재강화 때문이다. 알콜은 좀 더 다른 자연스러운 행동을 나타낼 수 있고 또 가족친지로부터 사회적 재확인을 증가시킬 수 있다.
2) 음주자의 공포나 갈등에 적응하려는 태도가 알콜에 의한 이완작용으로 시도된다.
3) 음주행위는 목표와 수단 사이에 격차가 너무 클 때 일어나는 이상행위로서 이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4) 사회적 안정과 과음은 고도의 연관성이 있다. 그러므로 불안한 사회에 음주가 많고 중독자의 빈도가 높아진다. 사회에서 이탈하려는 경향이 많으면 음주가 증가하고 말과 행동이 멀어질수록, 즉 표리부동한 사회일수록 많은 술이 소비된다.
(2) 담배의 유해성
지금까지 밝혀진 담배의 유해성분에 관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담배연기 속에는 약 4000여종이나 되는 많은 발암물질과 독성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Dube and Green, 1982). 이중 20여종이 A급 발암물질이다. 담배연기는 기체에 액체 또는 미세한 입자가 섞여있는 혼합체인 연무질(aerosol)이다. 담배연기는 주류연과 비주류연이 있는데, 주류연은 담배를 필 때 입으로 빨아들이는 성분이고, 비주류연은 담배의 끝에서 나오는 연기와 종이를 통해 확산되어 공기 중으로 직접 나오는 물질이며, 담배를 내 뱉는 물질도 포함한다. 직접흡연자는 주류연과 비주류연을 다 마시게 되고, 간접흡연자는 비주류연을 흡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류연의 95%이상이 4000여종의 발암물질과 유해물질 성분으로 되어 있다. 부류연의 화학성분은 주류연의 것과 비슷하지만 절대량은 주류연보다 적은 편이다. 직접흡연자가 흡연시 들이마시게 되는 주류연에 포함된 발암물질과 독성물질 4000여종 중요한 것만 예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Co-일산화탄소(연탄가스 중독 주원인)
Acetone-아세톤 (페인트 제거제)
Formaldehyde-포름알데히드(매운맛, 최루탄 사용)
Naphthylamine-나프티라민(방부제)
Methanol-메타놀(로켓음료)
Pyrene-피렌
Dimethylnitrosamine-디메칠니트로사민(발암물질)
Napthalene-나프타린(좀약)
Nicotine-니코틴 (살충제, 제초제, 마약)
Cadmium-카드미움 (자동차 밧데리 사용)
Carbon Monoxide- 카본 모노사이드 (자동차 배기가스중에 있는 독성가스)
Benzopyrene- 벤조피렌 (강력한 발암물질)
Vinyl Chloride-비닐크롤라이드 (PVC원료)
Hydrogen Cyanide- 청산가리 (사형가스실에서 사용되는 독극물)
Toludian- 틀루이딘
Ammonia- 암모니아
Urethane- 우레탄 (산업용 용제)
Arsenic -아세닉 (비소, 흰개미의 독)
Dibenzacridine- 디벤즈아크리딘
Phenol- 페놀 (석탄산, 소독제)
Butane- 부탄 (라이터의 원료)
Polonium-210 --폴로늄 210 (방사선)
DDT--디디티 (살충제)
Tar-타르
이 중 흡연시 발생하는 물질 중 건강에 가장 해로운 물질은 타르, 일산화탄소(CO), 니코틴 3가지 성분이라 할 수 있다. 이중 타르는 일반적으로 담배진이라고 부르는 독한 물질로 수천 종의 독성화학 물질이 이 속에 들어 있다. 담배가 우리 건강에 주는 해독의 대부분은 바로 이 타르 속에 들어 있는 각종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에 의한 것으로 약 20여종의 A급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타르는 담배연기를 통하여 폐로 들어가 혈액에 스며들어 우리 몸의 모든 세포, 모든 장기에 피해를 주기도 하고, 잇몸, 기관지 등에는 직접 작용하여 표피세포 등을 파괴하거나 만성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담배 한 개피를 피울 때 흡입되는 타르의 양은 대개 10mg 이내로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울 때 1년간 모이는 타르의 양은 보통 유리컵 하나에 꽉 찰 정도로 많다.
일산화탄소는 무연탄 냄새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질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마치 적은 양의 무연탄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고 있는 것과 같으며, 일산화탄소는 혈액의 산소운반 능력을 감퇴시켜 만성 저산소증 현상을 일으켜 신진대사에 장애를 주고 조기 노화현상을 일으킨다. 니코틴은 담배의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는 마약성 물질로 담배 한 개비에는 10mg 정도의 니코틴이 들어있는데, 이 중 흡수되는 니코틴 양은 1mg 정도이나, 흡연 양상에 따라 3mg을 넘을 수도 있다. 니코틴은 빠르게 동맥내 혈류 속으로 흐르면서 심장을 거쳐 뇌로 운반되는데, 담배를 피우고 니코틴이 뇌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7초 정도다. 아편과 거의 같은 수준의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약학적으로 마약으로 분류되고 있는 물질로, 담배를 일단 피우기 시작하면 매 30-40분에 한 대씩 피워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담배 속에 있는 니코틴 때문이다.
흡연과 암과의 관계에 관한 의학적 연구는 20세기 이후 흡연 사망률이 급증하였는데 이것이 담배소비량의 증가와 일치하는 것에 의심을 둔 데서 시작되었다.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폐암은 희귀한 것이었는데,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폐암 사망률이 급속하게 증가하였으며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미국 등에서 폐암 사망률이 1위로 올라섰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흡연과 암의 관계에 관한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의학잡지 Lancet지에 발표한 Peto들(1992)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35세 이상 69세까지의 미국 남성 100만명을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흡연자는 비흡연자에서 보다 무려 24배나 더 많은 비율로 폐암에 의해 사망을 한 것으로 밝혀져 다시 한번 폐암과 흡연의 확실한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폐암발생에 대한 흡연의 건강적 피해는 특히 흡연의 정도나 흡연 방식, 그리고 흡연개시 연령 등에 따라 그 위험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 꼽히고 있는 Kahn(1966)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 반 갑 이내를 흡연하는 사람은 비흡연자보다 3.89배 더 폐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을 나타낸 반면 하루 한 갑에서 두 갑사이, 그리고 두 갑이상 흡연하는 경우에는 그 사망확률이 각각 16.7배와 23.7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기를 깊이 들여 마시는 정도에 따라, 어느 연령층에 시작했느냐에 다른데, 가령 15세 이전에 처음 시작한 사람은 전혀 흡연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18.7배나 높은 폐암 사망 위험이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Kahn의 연구에 의하면, 폐암의 경우 흡연의 기여위험도가 90%에서 95% 사이 수준이나 된다고 한다. 즉 이는 흡연을 하던 사람 중에 폐암에 걸린 사람의 90%에서 95%는 만일 이들이 흡연만 안 했던들 폐암에는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1998년 의과대학생의 필독서인 내과학 교과서 (1998년판)에는 흡연은 폐암의 원인이며,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이 13배 높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하루 2갑 이상을 20년 동안 피울 경우 폐암발생위험은 무려 60-70배까지 증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9년 국내에서도 흡연과 폐암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이 발표된 바 있는데, 두 편의 연구 모두 흡연이 폐암의 강력한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연세의대에서 발표한 강화코호트 연구는 6374명을 13년 동안 추적한 코흐트 연구로서, 이 연구에 의하면 폐암사망은 비흡연자에 비해 하루 1-19개피 담배를 피운 경우 폐암발생 위험이 10.5배, 하루 한 갑이상 담배를 피울 경우 16.8배 높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흡연의 만성중독증은 니코틴의 약리작용에 의해 초래되고, 가장 주요한 점은 습관성 및 금단현상이다. 흡연을 계속하게 되면 흡연시 니코틴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금연을 하게 되면 니코틴의 금단현상이 나타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게 되어 담배를 계속 찾게 된다. 이러한 의존성, 내성 및 금단현상은 습관성 약물 중독현상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금연시 나타나는 금단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에게나 나타나서 정신적 의지력만으로 금연을 실행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하루 4개비 이상의 흡연을 하는 사람들 중에 85-90%는 정기적인 흡연자가 된다. 미국 The Surgeon General의 보고서도 담배의 니코틴이 헤로인이나 코카인과 같은 물질과 같이 강한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흡연에 중독된 사람은 의학적 측면에서 습관성 약물 중독자와 같은 상태로 분류한다. 따라서 담배에 한번 맛을 들이게 되면 쉽게 중독이 되고, 일단 중독이 되면 장기 흡연자가 되어 폐암 등 각종 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많은 흡연자가 금연을 시도하지만 성공률은 지극히 낮으며 금연클리닉의 도움 없이 금연을 한 사람의 98%가 1년 안에 다시 흡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흡연자는 평균 수명이 20-25년이 감축하며 흡연자의 절반이 한창 일할 중년의 나이에 사망한다.
1994년 미국 보건총감보고서(The Surgeon General Report)는 니코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담배1대를 피울 때 니코틴은 1-2 mg이 흡입되고, 인체에 미치는 주요 작용은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말초혈관을 수축시키며, 혈압을 올리고 많은 량을 흡입할 경우 구토증세를 보인다. 1995년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니코틴을 규제대상의 중독성 마약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해 미국 의학회지(JAMA)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담배회사 Brown and Williamson의 문서를 통해 담배회사들은 니코틴을 담배 맛을 내기 위해서 첨가한 것이 아니고, 니코틴의 인체 흡수를 통해 중독을 시키고, 흡연습관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로서 니코틴을 연구하고 악용하여 왔다고 밝히고 있다.
(3) 담배의 소비를 부축이는 힘
수 백가지의 담배 성분 어떤 것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유해 성분만 가득한데도 사람은 담배로부터 떠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담배는 어떤 경로로 인간사회에 퍼져 나갔으며, 대다수의 흡연자들이 담배로 인해 자신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가? 그 이면에는 수많은 청소년과 여성 등 새로운 흡연층을 유혹하고 흡연자를 붙들어 놓기 위해 지금도 수 백개의 화학물질을 혼합하고 있는 거대기업이 도사리고 있다.
1994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담배소송에서 담배회사가 그동안 비밀로 간직하여 오던 문건들이 폭로되었다. 문건에 의하면 담배회사들은 니코틴의 중독작용을 오래 전부터 연구하여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악용하여 왔다. 즉 흡연자들에게 니코틴이 많이 흡수되는 기전을 연구하여 왔다는 비밀 문건이 미국 미네소타 담배소송과정에서 폭로된 것이다. 비밀문건의 주요내용은 1998년 미국 의학회지(JAMA)에 발표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주요 담배회사들은 담배연기의 PH를 낮추면 니코틴이 인체에 흡수가 잘된다는 원리를 악용하여 PH 조작에 가담하였다. 1989년 B&W 문서에서 Johnson은 암모니아 기술(AT, ammonia techonology)은 세계적 기업인 필립 모리스사 담배의 경쟁력의 열쇠이며, 미국의 모든 담배회사들은 담배에 암모니아를 첨가하여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담배사업은 연초의 생산 및 잎담배 수매, 담배제조 및 판매에 관해 국가만이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전매사업으로 오랫동안 시행되어 왔다. 즉 정부 수립직후부터 피고 대한민국이 행정부서인 재무부 전매국을 통하여 국가가 직접 담배의 생산 판매를 하는 국영사업으로 운영하여 오다가 1987. 4.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전매공사를 설립하여 이때부터 한국전매공사가 담배의 독점 제조판매권을 행하여 이때까지는 '담배의 국가전매제도'였다. 1989. 4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설립된 것은 외국산 담배의 수입자유화와 함께 외국산 수입담배의 판매권에 대해서는 수입업자에게 판매권을 주게 되자, '전매'라는 용어가 이에 걸림돌이 되므로 '한국전매공사'를 폐지하고,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설립하였다. 이때부터 '국가전매제도'는 없어지고 종전에 국가가 가진 국산담배의 독점 제조판매권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가지게 되었다. 1997. 10. 한국담배인삼공사법이 폐지되고, 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거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정부투자기관에서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되어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담배인삼공사는 담배사업법에 의거 국산담배의 제조 및 판매의 독점권을 여전히 갖고 있다.
2) 오늘의 사회와 술 담배
(1) 오늘의 문제
우리 사회는 음주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음주 문화가 제한되어 있지 않다. 대중 매체의 술에 대한 광고나 프로그램 속에서 음주하는 모습이 아무런 제약 없이 반영되고 있다. 술에 대해서 여러 국가들은 많은 제한과 범죄 행위로 규정하여 음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음주에 대한 우리 관계당국의 자세는 매우 행정 편의적이다.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치관을 잃고 각종 사회악에 오염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 매체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매체 종사자들은 그들을 미끼로 사회악을 조성하는데 앞장서는 듯한 인상을 준다. 술 광고에서부터 각종 드라마와 기타 프로그램에 술 마시는 장면들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데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음주를 미화하고 있다. 그리고 음주로 인하여 사건이 발생하면 뉴스화 하는 물질 만능주의적 속물근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담배는 생명력, 힘, 지성미, 성적 매력, 어른스러움, 현대성의 상징처럼 광고되어 왔지만,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상의 성인 3명 중 1명은 흡연인구이며, 그 수는 약 11억에 이른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전반적으로 흡연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흡연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6%인데, 그 중 15세 이상 남자의 흡연율이 약 68.2%로 세계 선두이다(1996년 통계). 중. 고등학교 흡연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2) 흡연과 그리스도인
이러한 현상은 교회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흡연 습관을 버리지 못해 교회 내에서 갈등을 겪는 신자들이 없지 않다. 한 금연학교에 오는 청소년들의 30%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보고도 있다. 교회 내의 흡연 문제도 이제는 공개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성경은 담배나 흡연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담배의 원산지가 미대륙이며, 6-7세기부터 인디언들이 종교의식으로 또는 질병의 치료를 위해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탐험하고 담배를 선물로 받아 귀국한 후 담배를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한 것을 계기로 담배가 유럽 전역에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00년 후인 1590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하여 담배가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 이후 1602년경 광해군 초에 담배씨를 일본에서 도입 재배하기 시작함으로써 담배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된 상식과 성숙한 판단력을 따라 신앙적 지침을 찾아야 한다. 구원의 효력과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사회적 관계와 모든 피조물과의 상호 관계에까지 확장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문제의 도덕적 결정을 위해 동기와 결과, 자신과 이웃과 공동체를 항상 함께 생각해야 한다.
(3) 사회적 간섭의 영역
많은 사람들은 흡연을 가치중립적인 불간섭의 영역에 해당되는 문제로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은 없다’(롬1:14) 따라서 담배 그 자체는 불결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호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폐해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상황에서 흡연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영역에 있을 수 없으며 사회적 간섭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초기 한국 교회의 일부 선교사들도 흡연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을 취했지만, 그 해악의 심대함을 발견한 뒤에는 신앙과 건강과 국민계몽의 차원에서 금연을 강조하여 한국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했다.
2.술과 담배에 대한 반성(reflection)
기독교인 500명을 대상으로 술 담배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평가에 보면, 절대금지(35.6%), 약한 자를 위해 금함(21.4%), 취하지 않는 한 허용(17.8%), 허용(10.6%), 건강상의 이유로만 허용(9.0%), 기타(5.6%)정도로 나타났다. 이 결과로 보면 기독교인의 약 66%정도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성서적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반면에 28.4%는 술 담배를 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기독교인들 가운데 술을 마시는 사람을 직분별로 조사한 결과 평신도의 48.0%, 집사와 권사의 32.3%, 장로와 목회자의 5.9%가 비정기적이든지 주 1회든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평신도의 11.8%, 집사와 권사의 6.3%, 장로와 목회자의 3.0%가 가끔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기독교인 중 술이나 담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사람들 모르게 은밀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술 담배의 문제에 관한 한 모순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끊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윤리적 관점에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술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긍정적 용도로 사용된 면에 있어서 술-주로 포도주를 가리킨다-은 음료로서만이 아니라 선물. 강장제. 치료약. 무역품. 제사 제물 등으로 가정과 사회 종교 생활에서 큰 구실을 하는 주요 음식이었고, 또한 즐거움의 상징이었다. 예수님께서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 성찬의 한 요소로 재정하시기까지 했다.(요 2:1-11, 마26:27-29)
한편, 성경은 술의 부정적 측면을 간과하지 않는다. 비록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진 않았지만, 성경은 음주의 위험을 경고하며(잠 20:1; 사5:11; 합 2:15-16), 술취함을 죄로 여긴다(신 21:20-21; 고전 6:9-10; 갈 5:19-20). 예수님께서도 술의 역기능을 아시고 과음을 단죄하셨다(눅 21:34).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술에 취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엡 5:18), 형제를 죄짓게 할 위험이 있으면 아예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함을 가르쳤다(롬 14:21). 나아가, 그는 과음하는 이는 교회 공동체의 합당한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고전 5:11-13). 특히 교회의 중직자들에 대한 금주 요구는 더 강력하다. 제사장과 나실인이 직무를 수행하거나 서원기간 중일 때는 음주가 금지되었고(레 10:9-11; 민 6장), 교회에서 감독과 집사로 일하는 이들은 술을 즐기지 말아야 하고 과음해서는 안 된다(딤전 3:3,8). 성경이 술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술 자체보다는 절제 없는 과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술이 갖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부패한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 결과가 파괴적이기 때문에, 음주에 대한 절제를 강조한 교회의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금주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과 요리문답에 잘 나타나 있다.
(1)성서적 반성
신약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술 취하지 말라는 명백한 교훈이 나와 있다. 마 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 (술꾼들, drunkard)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눅 12:45; "만a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등이 나오며, 행 2:15; 롬 13:13; 고전 5:11; 고전 6:10; 갈 5:21;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살전 5:7 등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술 취하는 것은 폭행, 방탕, 후욕(비방), 호색, 음란, 토색(사기로 갈취하는 것) 등과
함께 언급된 죄라는 것
(마 24:29, 눅 12:45; 21:34, 롬 13:13, 고전 5:11; 6:10, 갈 5:21, 엡 5:18),
(2)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게 만드는 심각한 죄라는 것
(고전 6:10, 갈 5:21)
(3) 술 취하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가 붙어 있다는 것(갈 5:21),
(4) 술 취함은 특별히 마지막 날(심판 날)의 심판과 관련해서 경고되어 있다는 것
(마 24:49, 눅 12:45; 21:34, 롬 13:13, 살전 5:7),
(5) 술 취하는 것이 윤리의 허리띠를 풀고 자신을 쾌락에 던지는 방탕과 짝이 되어 언급되어
있다는 것 (눅 21:34, 롬 13:13, 갈 5:21, 엡 5:18),
(6) 술 취하는 것은 성령충만 및 마지막 때 깨어 있는 생활과 대조된다는 것
(마 24:49, 눅 12:45; 21:34, 롬 13:13, 갈 5:21, 엡 5:18, 살전 5:7) 등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시 헬라인들의 종교의식 속에 나타난 육욕적 황홀경(sensual ecstasy)이나 난교(亂交)적 열정(orgiastic enthusiasm)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생활, 즉 깨어 있고, 단정하고 올바른 삶을 살았다. 헬라인들의 종교의식은 음란과 방탕과 술 취함, 즉 윤리적 문란이 그 특징이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부관계, 부자관계, 노사관계(엡 5:22-6:9)를 올바르게 맺는 윤리적 생활을 강조했다. 방탕한 상태에서 쾌락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지배되는 삶을 강조하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이다(엡 5:18).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에 걸맞는 삶이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그렇게 살지 못할 때에는 심한 경고를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술 취함은 '깨어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잠든 상태'의 심각한 죄이다.
①술 취함과 술 마심
성도들은 결코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는데. 취하지 않고 그저 술을 마시는 것은 어떤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이런 질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구주시요 생활의 귀감이신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는데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는 질문도 역시 이해할 만하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마신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고 반박하지만 신약성경이 그것을 명시하거나 암시했는가 하는 반문이 다시 제기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갈릴리 가나 결혼식 장면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결혼식에 참석하여서 각기 39리터짜리 여섯 항아리 분량의 물을 총 234리터나 되는 포도주로 만드셨다. 이 사건을 두고 예수님 일행(모친과 제자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포도주는 마시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물론 본문 요한복음 2:2-11에 그들 중의 누가 포도주를 마셨다는 명시적인 기록은 없지만 거기에 참석했던 자들은 다 마셨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만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마시지 않았다면 234리터나 되는 포도주를 만드시지도 말았어야 하고(자신은 안 마시고 남들은 마시게 하는 것은 비겁한 죄이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시는 모친에게도 "포도주는 마시면 안 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라는 책망을 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이 가나 결혼식에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또한 성경의 명백한 기록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구약 나실인 전통에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포도주 마시는 사람', 헬라어로 '오이노포테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셨다(마 11:19; 눅 7:34).
예수님은 이런 종류(금식과 함께)의 비난에 대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는 말씀으로 답변하심으로써(막 2:22),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한 특징이 신랑이 함께 즐기는 잔칫집 분위기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셨거나 만드신 것이 아니라 포도즙을 만드셨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나 신약성경에 언급된 '오이노스'는 '포도주'(wine)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것을 포도즙으로 보는 것은 신약성경보다 더 보수적인 발상이다.
신약에 언급된 포도주는 풍성한 포도 생산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구약의 교훈(창 27:28,37)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라는 사실과 포도주를 음료로 마시고 기뻐하는(시 104:15) 팔레스타인의 문화적 배경을 알면 이해가 된다. 구약성경에 포도주를 많이 마시면 안된다는 경고는 분명히 있으나(잠 20:1, 23:29-35) 나실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약성경의 포도주는 팔레스타인의 자연스러운 음료수로서의 포도주였지, 포도즙이 아니었음을 쉬게 알 수 이싿. 그러므로 헬라어로 '오이노스'가 포도주냐 포도즙이냐 하는 것은 당시 팔레스틴 배경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에 보면 성찬식 때 포도즙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포도주를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행사에서 포도주를 사용했는데 예수님도 같은 방식으로 유월절 행사를 치르셨다(눅 22:17-18). 초대 교회는 애찬식을 겸해서 성찬식을 할 때도 포도주를 사용했다(고전 11:20-30). 다만 유월절 의식에 포도주 사용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었고, 성찬식 때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포도주를 많이 마셔 취한 자들이 약해지거나 병들거나 죽는 징계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고전 11:30).
신약의 경우를 살펴볼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포도즙이 아니라 포도주를 마신 것이 사실이고 성찬식에서도 포도즙이 아니라 포도주를 사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포도주를 마셔서 취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은 술 취하는 것을 엄하게 경계하고 경고한 것이 분명하다(눅 21:34, 엡 5:18). 예수님과 제자들은 포도주를 음료수로 마셨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약용으로 조금 사용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딤전 5:23).
②술마심의 적용
예수님과 제자들이 술 취함을 죄로 보고 경고하긴 했으나 반면에 포도주를 자연스러운 음료로 마신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도 술 취하지 않고 마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전체적으로 비추어 볼 때 정당한 추론이 못된다. 이런 식의 결론은 하나만 보고 다른 하나는 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에서 구약의 음식규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문제를 다루면서 사랑과 건덕의 원리를 제시했다.
신약 시대에는 구약의 음식규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구약에 금지된 것(가령 돼지고기)도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먹는 신자도 있고, 그럴 만한 믿음이 없어 먹지 못하는 신자도 있었다. 그때에 먹는 신자는 먹지 못하는 신자를 보고 "당신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것에 매여 있는가?"라고 책망하면서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믿음을 키워 주는 방식으로 교훈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 14:13)고 했다.
물론 이런 원리는 먹지 못하는 자가 먹는 자에 대해 가지는 태도에 해당된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롬 14:3).
구약에 금지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와, 그래도 마음에 걸려 먹지 못하는 자가 서로 판단하지 말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침돌에 넘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은 결국 신자들간에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하지 말라"(롬 14:15).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형제를 먹는 문제로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사랑의 원리와 동시에 건덕의 원리를 제시했다.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롬 14:16),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8-19).
바울은 구약에 금지된 음식을 신약시대에 먹을 수 있으나 사랑과 건덕의 원리에 따라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14:21).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사랑과 건덕의 원리를 통합하여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느니라"고 하였다(고전8:1).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죄짓는 것이 아니라는 지식만 가지고 행동하면 그것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 약한 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해게 되지만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거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면(고전 8:9) 사랑으로 덕을 세우게 된다. 바울은 사랑에 따른 건덕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는 결의에 찬 각오를 밝혔다(고전 8:13).
술 마시는 것과 담배 치우는 것은 바울 시대에 부정한 음식을 가리는 것과 유사한 문제라고 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경에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정죄하지 않았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롯해서 팔레스틴의 초대교회 신자들이 포도주를 마셨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성경의 명시적인 교훈에 근거해서 반대할 수는 없다.
이것은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의 '아디아포라' 문제, 즉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해당된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지식의 원리, 즉, 그리스도안에서 구약의 그림자가 실체화되었으므로 구약적인 음식 규정의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원리에 따라 구약에 금지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담배도 피울 수도 있고 피우지 않을 수도 있다. 공식 석상에서 예의상 술 한잔 한 것을 놓고 술을 마시지 않는 신자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정죄하는 것이나, 다른 나라 신학자나 선교사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지나치게 정죄하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술 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당하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신자가 그렇지 않은 신자를 보고 믿음이 약한 신자라고 비난하면서 그 앞에서 대범하게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성경적인 태도가 아니다. 더욱이 술 담배를 못하는 '약한 신자'를 교육해서 강하게 하기 위해 도전적으로 술 담배를 하는 것은 바울 사도의 태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바울은 이런 의미의 '믿음이 약한 신자'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포도주나 고기가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고기(구약에서 금지된 고기)도 영원히 먹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고전 6:15)이고, "성령의 전"(고전 6:19)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된 고귀한 몸을 해로운 술이나 담배로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술과 담배가 해롭다는 분위기 속에서 신자가 술 담배를 하면 불신자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다른 신자들은 마음이 상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술 담배가 불신 사회에서 교제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직장 생활에서 소외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신자가 술 담배를 하면 불신자가 그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도 바울처럼 술 담배를 영원히 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 태도인 것이다.
③성경과 알코올 중독
성경의 현대 의학이 정의하고 있는 알코올 중독의 모든 증상과 그 영향, 나아가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의 모든 증상과 수로 인해 치러야할 결과와 그 대가를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알코올에 대한 전적인 금주(abstinence)가 아니라 자기통제(self-control)와 적정음주(moderation)에 토대를 둔 절주(temperance)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가 인식할 것은 알코올중독은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곳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상징으로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보거나 경험하는 대다수의 질병과 아픔을 인간의 타락이나 사단의 영향으로 무조건 비난하기에 앞서 이것들의 대다수가 인간 스스로 만든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William Macarrell 목사는 술에 관하여 다음 8가지를 열겨하면서 술을 끊어야하는 성경적인 근거를 들고 있다.
1. 음주는 다른 죄를 불러들인다.(신 21:18,20)
2. 음주는 가정을 파괴한다.(신 21:18-21)
3. 술을 가볍게 마시던 사람이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린다.(신 21:20)
4. 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신 21:21)
5. 음주에는 너무 큰 희생의 대가가 따른다.(신 21:18-21)
6. 음주는 방탕과 연관되어 있다.(잠 23:20)
7. 음주는 가난하게 만든다.(잠 23:21)
8. 음주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전 6:9-10)
음주에 대해 단호함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 없을뿐 만 아니라 보다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인 정신과 하나님의 성전인 육체의 파괴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단절 즉 영적 죄악으로 인함이다. 따라서 신구약을 통해 바라본 하나님의 술에 대한 입장은 분명한 절제이다.
2)신학적 반성
성경에는 신자들의 실제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아디아포라’라고 한다. 아디아포라란 그 자체로는 선악이 될 수 없는 것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행위들, 신자 각자의 판단과 양식에 따라 자유롭게 행하는 일들을 말한다.
교회 내에서는 신앙이 연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취향, 견해 등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장 문제, 소비생활, 가제 도구나 자동차, 각종 문화 생활 술 담배에 관한 기호식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개성을 중시한다고 하여 이런 것들을 잘 다루지 않으면 서로가 많은 어려움을 당한다. 이런 것들은 어떤 기준으로 다루어야 하나?
(1) 아디아포라를 위한 원칙
성경 시대에는 예배의 날이나 절기, 우상숭배를 하고 난 후 시장에서 판 고기를 먹는 경우가 문제가 되었다(롬 14장; 고전 8-10장).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는 선악의 기준이 되지 않지만 믿음의 정도에 따라,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서로의 의견이 달라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술 담배의 문제등, 이런 성격을 가진 다른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기나 고기 먹는 문제를 다룬 그 원칙으로 오늘날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9, 12-1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내 행동으로 인해 형제가 실족하지 않게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롬 14:13-16).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내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19-22).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런 기준에 따라 나의 공동생활, 취미생활, 여가생활, 문화생활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2) 문화 생활을 위한 원칙
문화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영위해 나가는 모든 정신적 육신적 활동과 그 결과를 말한다. 사람이 누리는 문화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이 말씀을 문화 명령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문화도 타락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과 사탄을 위해 오, 남용되기도 하므로 문화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기독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플라톤주의가 기독교의 뼈대가 되었다면서 둘의 조화를 주장했다.
문화를 변혁시키는 기독교 -어거스틴과 제롬의 입장으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탈취물”로써 성막을 지었듯이 세상의 좋은 것은 취하고 잘못된 것은 변혁시키자고 주장했다. 이것이 신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이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문화는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과 사탄을 위해 오, 남용되고 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문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문화 속에 사셨지만 죄 없는 삶을 사셨다. 우리도 그 본을 따라야 한다.
기독교 윤리에서는 비본질적인 것, 중립적인 것이라는 아디아포라를 매우 중요한 주제로 취급하여 왔다.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에서 적극적으로 금하고 있지 않는 것은 선과 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루터를 비롯한 루터파 신학자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누린다는 라인홀드리버교수가 바로 이런 입장이다.
반대로 쉴라이에르마허는 아디아포라라는 말을 거부한다. 아디아포라를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윤리의 일관성에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중립을 인정하면 신자의 생활과 행동에 있어서 통일성과 계속성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디아포라라는 말은 거부하지만 성경에서 명령되거나 금지된 것이 아닌 것들은 그리스도인에게 허용되어진 것들로 본다고 주장한다.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아디아포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일관성과 행동의 통일성 그리고 계속성을 차원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연관시켜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디아포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행위들이 결코 선과 악에 무관한 중립적인 지대에 속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피조계의 인간의 자율성과 주권을 더 앞세우려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피조물의 생활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행동이란 없다. 어떤 행동이든 옳거나 그르거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아니거나로 판단될 수 있을 뿐이지 중립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칼빈주의 학자들도 아디아포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지만 아디아포라의 영역, 즉 성경에서 금하거나 명령하도 있지 않는 것은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 행할 자유가 있다고 본다.
칼빈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양심에 따라 이 허용된 것에 관해서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고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 문제는 약한 양심으로 인하여 얽매이고 상처를 받는 이웃과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소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 하나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가를 분별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술 담배의 문제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에 기여할 것인가 아닌가를 항상 살펴야한다. 즉 기호품으로서 술과 담배를 즐기는 문제는 한국교회 전통과 공동체에 속한 형제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들 또는 행동’을 의미하는 아디아포라라는 말은 이웃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에 우선권을 두는 칼빈주의 신학에서 볼 때 일종의 낮은 단계의 윤리적 개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기독교 윤리적 반성
(1) 술 담배가 아직도 문제인가?
21세기를 논하고 준비하기에도 바쁜 요즘에 술 담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것은 이미 선교 초기, 혹은 60년대에나 토론의 대상이 될 만한 정도의 주제가 아닌가? 과연 성경이 이 문제들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내려 주고 있는가? 과연 성경이 이 문제들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내려 주고 있는가? 단지 문화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술 담배의 문제를 오늘날에 다시 재론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우리는 던질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술 담배와 한국교회는 이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일까? 21세기를 책임질 우리 청소년들의 육적, 영적 건강을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들이라는 점에서, 또한 가임여성의 음주, 흡연율 급증이 태아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정신문화와 직장생활의 구조 및 기업문화 전반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항력의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술 답배의 문제를 새롭게 정리하여야 한다.
술 담배를 둘러싸고 벌어지기 쉬운 교리적인 논쟁은 여기에서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술 담배문제를 논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그것이 한국 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상황에 비추어 매우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라는데 있다.
그러나 혹자는 왜 술 담배가 기독교인으로서, 또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서 사는 문제와 관계되느냐는 질문을 여전히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현 상황에서 술 담배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먼저 살펴본 후에 그 영향력과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삶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하여 볼 것이다. 이러한 관찰과 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복음적인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의 태도를 모색하려 한다. 또한 사회윤리 구현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 의심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금주 금연을 내세웠던 한국교회의 전통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2) 왜 술 담배가 문제인가?
한국사회에서 술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술 담배를 통하여 이익을 보는 곳은 대한민국 정부라고 할 수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막대한 수입과 기타 담배와 관련된 세금과 주류세 등을 통하여 얻어지는 세입은 자못 많다. 그러한 세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꽤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오죽하면 교육비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소주에 세금을 부가하며, 담배에 세금을 더 많이 매겨서 문화를 진흥할 생각을 하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술 담배를 하는 사람들은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납부함으로써 교육과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애국자들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술 담배가 만연하는 것은 이러한 범국가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술 담배가 이른 바 사회화의 상징적인 행위로까지 생각될 수 있을 정도의 문화적 상황에서 살고 있다. 즉, 우리가 사회적으로 무리 없이 어울리며 살기 위해선 술 담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술 담배가 횡행하는 문화적 상황은 자연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모방할 수 있는 학습체계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선생님들이, 가정에서는 아빠가, TV와 영화에서는 동경하는 연예인들이 멋있게 마시고 뿜어내는 모습은 곧 그들에게 하나의 학습과정인 것이다. 또한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광고물 속에서 유명 연예인이나 외국 광고 모델들이 술 담배로 초대하는 것 역시 청소년들을 비롯한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여 모방학습을 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의 성년 됨의 기준을 바꾸어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술 담배를 해야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비공식적 문화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특별히 또래 집단의 압력(peer pressure)은 그 어떤 사회적 압력보다도 강력한 것인데, 이러한 압력이 술 담배에 관해서는 항상 적극성을 띠게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컨데 자신의 남성다움이나 성인다움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술 담배를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친구와 동료로 구성되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기본적인 두려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갈수록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여성층이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남성과의 동등함을 과시한다는 차원에서 음주와 흡연을 하게 되는 것도 주초 인구의 증가율에 한몫하고 있다. 또한 필사적인 교육열과 대학입시의 과중한 압력으로 인한 청소년층의 스트레스 해소 및 탈출수단으로서 술 담배는 매력을 대해가고 있다. 국가가 술 담배를 직간접으로 권장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제도와 술 담배가 한 사람의 성인됨과 사회화됨을 가늠하여 주는 기형적인 대중문화의 어울림이 우리의 삶의 기본자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술 담배는 어떠한 의미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 청소년 및 여성의 흡연율과 음주율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3) 한국교회의 사회윤리적 책임과 술 담배
청소년과 여성을 망라한 한국인들의 흡연 음주율이 증가하는 것, 곧 더 많은 사람들이 술 담배를 가까이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앙적인 관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술 담배의 폐해에 대하여 객관적인 기준에서 많은 견해를 발표하고 있다. 특별히 담배에 대해서는 마약류로 판정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간접흡연의 폐해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인정되어서 법적으로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야 비로소 비흡연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제는 술의 무절제한 남용으로 인하여 피폐화되는 우리의 가정과 직장의 문화에도 시선을 집중시킬 때이다.
어떤 이들은 술 담배가 가지는 사회화의 기능, 즉 술 담배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나아가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앙과 술 담배를 관련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보수적인 신앙인의 반사회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반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술 담배란 신앙인이 문제 삼기에는 너무도 하찮거나, 신앙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적인 성향이 어떠하든지 간에 한국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술 담배를 권장할 논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건강의 보존이라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술담배는 결코 긍정적인 입장에서 논의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개인의 기본권이라는 논리로 흡연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간접흡연의 폐해나 비흡연자들의 불쾌감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자신의 흡연 및 음주 습관이 자신의 2세들에게 자연스러운 학습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음도 반드시 지적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한다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
신앙적인 책임의 영역은 자못 우주적이다. 개인적인 건강관리에서부터, 하나님의 피조 세계인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부문이 모두 신앙적인 책임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왜 술 담배가 이러한 신앙의 책임적인 맥락에서 유독 문제가 되는가? 개인적인 건강관리의 문제라면 술 담배만큼 나쁜 음식들도 많지 않은가? 이와 같은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술 취하는 것은 나쁘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술 조금 하는 것과 담배 조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 담배가 여전히 문제되는 것은 우리의 현실로서의 한국사회를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술과 담배의 역기능이 매우 심각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그 심각한 역기능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은 책임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3, 목회적 사회적 실천(practice)
우리는 그것에 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역사적 실천-초기 선교사들의 강령
교회는 금주운동 뿐 아니라 금연운동을 초창기부터 시작했다. 흡연의 폐해는 주한 미국 공사를 지냈고 후에 주 페테스부르크 대사를 지낸 록웰이 한국의 내륙지방을 여행하고 나서 “이 세상 가장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선교사들은 가난하여 굶어 죽는 이들이 많은 때에 한국인들은 어디서 돈이 생겨서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하면서 금연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 정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신적 황폐화를 염려하고 있던 교회 지도자들은 금주운동을 실시하였다. 1893년 8월에 감리교 선교사 연회에서 시작하여 1903년 연회록에는 절제와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으로 술에 대한 여러 규정들이 있었다.
금주운동은 단순히 교회 내적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를 살리는 운동이라는 차원으로까지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특이 이 금주운동에 적극성을 보인 교회는 구세군이었다. 교회가 금주운동을 전개하는 중에 가장 괄목할 만한 일은 미성년자들에게 술과 담배를 금하는 법령을 만드는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1938년 4월에 ‘청소년 보호법’을 만들때 그 속에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 조항이 들어가게 되었다. 1931년 「신정찬송가」에는 임배세가 지은 ‘금주가’가 정식 찬송가로 채택될 정도였다.
1907년 한국 교회의 대부흥 운동은 한국 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전기가 되었다. 1903년 함경남도 원산지방에서 선교하던 감리교 선교사들이 스웨덴 목사 프란슨이 이 지역에 왔을 때 원산의 바닷가에서 기도회 겸 성경공부를 갖게 되었다. 이 기도회와 성경공부에서 수년간 강원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한 하디가 자기의 무력을 깨닫고 통회자복의 기도를 드린 것이 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으며, 이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후에 목사)가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부흥운동은 전국으로 번져나갔으며 부흥운동의 결과로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종래의 전통종교와 문화(양반,유교)를 기반으로 한 윤리 체계와는 구별되는 기독교 윤리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영적 각성을 통해 거듭남을 체험한 것처럼 윤리와 문화도 거듭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윤리는 교회 공동체 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영향을 끼쳐 사회를 개혁하고 정화시키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일어난 거룩한 삶의 윤리들은 범 국민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어 사회 전반에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생활을 뿌리내리게 하였는데, 그중 한국교회가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적한 것이 술과 담배의 금지였다.
“개화를 크게 해하는 물건은 술인고로 옳게 생각하는 사람마다 이것을 없이 하기에 힘쓸지니 술은 바른 생애를 수고하여 모은 재물을 빼앗으며 검인과 죄인을 만들고 집을 망하게 하며 협잡과 뇌물과 사정을 성행케하여(중략), 국재를 남용하며(중략), 경제상으로나 도덕상으로나 술은 없이할 물건이거늘..."
형제들아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교인들도 술 담배를 멀리 하려니와 전도 선생들은 더욱 그럴지니라."
"흡연의 해되는 증거가 무엇이뇨? 여러 형제와 자매는 각각 자기 몸이 하나님의 전 됨을 알고 이런 무익한 관습을 거절하야 그 몸을 정결케 할 뿐 아니라 더욱 어린 자녀나 젊은 학도의 흡연하는 것을 금지하야 신체와 총명과 영혼과 경제를 온전케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또 개인적으로 술과 담배를 거절하자는 호소문을 신문에 낸 사람도 있었다.
"담배라는 것이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이요 조금도 유익 되는 것이 없는 물건이라. 위생에도 여러 가지 해가 되는 것인즉 어찌 해가 되는 것을 거절치 아니하리요. 담배라 하는 것은 슬픔이나 울화가 있는 사람이 항상 먹거늘 우리 구주님 예수를 만난 형제 자매야 슬픔이나 울화가 어디 있나뇨. 결단코 담배를 거절합시다. 담배를 거절치 못하옵시면 어찌 몸을 이길 수 있으며 성경에 가라사대 '몸을 이기어 날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어다' 하셨으니 우리가 힘써 몸을 이기어야 하겠나이다. 우리 형제 자매가 다 하나님의 성전 된 줄을 생각하옵시면 좋겠나이다. 그런 고로 결단코 술과 담배를 거절하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인쇄매체를 통해 계몽하면서 또한 교회 안에서는 교회법으로 강력하게 치리하였다. 감리교의 존스(G.H.Jones,1867-1919)선교사는 전도인, 권속, 속장들의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교인들을 즉시 출교 하겠노라고 경고하였고, 새문안 교회에서는 술을 먹는 교인을 치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교인중 이기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회에서 그 사람이 술 먹은 일이 있다 하여 불러서 물으니 '약으로 먹고 시장하여 먹었다'고 하므로 오히려 당회에서는 이기용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권면하여 보내었다. 이 사람은 그 후에도 노지순이라는 사람과 더불어 술을 마시기도 하고 화투 놀이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당회에서는 이기용을 석달간 책벌에 처하였다."
본격적으로는 1923년 5월 세계기독여자절제회(The World 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에서 파송한 틴링(Miss C. L. Tinling)의 내한을 계기로 절제운동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교회 내의 금주운동이 일반의 계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1931년 신정찬송가가 발행될 때 임배세 작곡의 금주가를 편입하여 아예 계몽운동을 노래하게 하였다. 1928년 장로회에서 조직한 절제회의 총무 송상석 목사는 좌수의 약지를 끊어 혈서를 쓰면서까지 당시 조선 총독에게 진정하여 미성년자 금주, 금연법을 제정하였다. 사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미성년자 흡연이 1900년에 법률로 제정하여 금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통치가 근본적으로 우민화정책이었고, 따라서 한국에 유곽을 설치하고 공창제도를 도입하는가 하면 아편을 공공연히 허용하여 나라를 피폐케 했던 것이다. 그런 일제가 한국 청소년들의 건전한 육체와 정신 함양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짐작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금주 단연 운동의 결과로 한국교회 초기부터 예수 믿는다는 것은 술과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깨끗하고 단아한 신앙생활로 성결을 유지했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기독교인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몸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전한 삶을 유지해야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2)교회 내적 실천
위에서 본 것처럼 초기 선교사들과 교회의 정책은 금연과 금주에 대해 아주 엄격하였다. 특히 세례문답 시에도 술에 대한 조항을 넣어서 금주할 것을 교인의 기본자세로 넣고 있다. 현재도 많은 교회와 기독교단체들은 금연학교와 금주학교를 열고, 강연회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계몽활동을 통하여 금연과 금주를 권유하고 있다. 한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청소년 금연교육을 살펴보자.P
교회내의 금연 금주학교 실례
“ <교육방향> 금연이나 성교육은 어릴수록 교육의 효과가 크다고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가진 우리아이들은, 이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을 거라서 전혀 필요 없다는 이중적 사고를 먼저 버려야한다. 이 교육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간과 시간을 투자했느냐에 따라서 성패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문제청소년을 적발해서 단 1회의 교육으로 금연이나 성으로부터 완전한 교육을 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러한 교육은 면역효과를 가져오게 할 수도 있다. 먼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도 교육을 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청소년 흡연 문제를 가지고 이들을 도울 방법을 이야기할 때 크게 예방과 치료 또는 돌봄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가 있다.
<예방교육> 아직 담배나 성적 문제에 접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나, 집단속에는 접한 학생들도 포함될 수 있는 교육의 형태로 이 교육의 주안점은 대부분이 일회성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볼 때 흡연이나 성에 대한 자세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흡연에 대한 혐오감 형성과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을 포인트로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방교육은 담배나 성 문제에 관련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 많이 듣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면 교육의 효과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예방교육도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실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절하게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예방교육의 형태> - 가급적 집중이 가능하고 인원이 적을수록 효과가 좋다고 볼 수 있다.
․ 강당에서 하는 전체교육 - 일단 인원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간다는 점과 단 시간 내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게 되며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으나, 효과 면에서는 강사위주로 전개되므로 효율성은 다소 뒤진다고 볼 수 있다.
․ 학급순회교육 - 한 학급씩 돌면서 교육을 하게 되므로, 시간과 비용의 면에서는 전체교육보다는 부담이 되나, 학생들의 참여를 유발하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다소 유리하다.
․ 방송교육 - 방송실에서 전교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형태로 각 교실에서의 적절한 통제만 이루어진다면 학급순회교육에 버금가는 교육의 효과를 누릴 수 있으나, 적절한 통제가 없을 시는 학생들이 딴 짓을 하거나 자는 학생들이 많아서 교육의 효과를 누리기가 힘들며, 강사가 청중의 반응을 살필 수가 없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방송실내에 소규모의 학생들을 모아서 그들의 반응을 보며 교육을 하는 것도 좋은 예 중의 하나이다.
<교육의 대상>
․ 초등학생 - 교육의 내용이 본인들의 삶과 너무 무관하게 느껴져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일으키는 데는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흥미위주의 교육과 함께, 구체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보다는 “담배가 정말 나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도록 함과 성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상황에 따른 예방 교육을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 중학생 - 흡연자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성적 호기심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단계가 될 수도 있다. “담배가 나쁠 뿐만 아니라, 이래서 나쁘다”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과 함께 성에 대한 그릇된 지식이나 편견을 버리고 옳고 바른 지식과 이미지를 심어주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 고등학생 - 흡연경험학생의 수가 절반이 넘어가고, 상습흡연자도 학교에 따라 절반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단계이며 성적 문제에 다양하고 많은 고민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장차 사회에 나가 겪어야 할 대처방안과 함께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 단계의 교육에는 흡연이 좋지 않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실제적인 흡연학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금연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금단증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 교육이 되어야 전체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성 교육도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식 제공으로 임신, 출산, 피임, 성병, 이성교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실제적 참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교육 내용>
* 금연 교육 -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일회적으로 흡연에 대한 바른 지식과 혐오감을 주는 기회이다.
* 금연 학교 - 흡연자를 대상으로 5일 연속 집단 상담과 함께 훈련하는 극기 프로그램이다.
* 금연 선포 및 켐페인 -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결 서약식과 같이 금연을 다짐하는 서약과 함께 학교가 함께하는 켐페인이다.
* 금연 캠프 -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단기간에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방학을 이용하여 실시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교회 내에서는 흡연성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금연운동을 벌이고 있다.
3)교회 외적 실천
(1) 국가의 금연정책
보건복지부는 2007년 성인흡연율 30% 달성을 목표로 금연구역을 확대하고, 담배가격 인상 계획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OECD 최하수준인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설정하고, 개념적 틀을 완성하였다. 적극적인 담배가격 인상 추진 및 금연구역 확대 정책에 대해 살쳐보면, ’04년 하반기에 담배가격을 인상하되, 조성된 재원의 50%는 금연 프로그램, 암검진 및 치료, 지역 암센터 설치, 공공보건의료체계 구축 등에 배분하고, 나머지 50%는 지방세수 보전 및 엽연초 경작 농가 손실보전 등 지역균형발전 재원으로 활용키로 하였으며, 병원, 어린이집, 학교를 “금연시설”로 지정, 모든 공중이용시설의 승강기, 화장실, 복도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금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해 나가는 정책을 펴기로 하였다.
금연에 대한 사회단체들의 운동을 보면,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범국민 금연운동본부 등의 사회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금연 강연회와 금연 상담, 흡연 피해 등을 신고 받아 금연운동을 확산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2) 드림바이러스
금주운동에 있어서 독특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예가 있다. 상지대학교 최현숙 교수를 지도아래 김소희씨를 팀장으로하는 드림바이러스팀을 운영되고 있다. 이 드림바이러스팀은 ‘금주’를 주장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되 폭음을 피하고 적정량을 마시자는 것이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젊은 시절 과음·폭음은 건강을 해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또 중독에 이르면 폭행 등 범죄에 빠지게 되고 치료를 받아도 99%가 재발하는 치명적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적정음주량은 성인남자의 경우 맥주나 소주 4잔‚ 여자는 2잔 정도인데, 의학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신·신체적으로 피해가 없는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최현숙 교수는 “음주 피해의 경우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생 회원들이 중·고교생 예방홍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했다. 드림바이러스팀은 또 중·고등학교를 돌며 아직 술에 찌들지 않은 어린 동생들에게도 예방홍보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시내 5개 중·고교에서 상황극·심리극·퀴즈대회 등 재미난 프로그램을 통해 예비 청소년들이 음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음주습관은 어릴 때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어른에게 술을 배워야 한다’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는가 하면 매스컴도 음주장면을 너무 많이 노출시켜 청소년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범죄의 80%가 음주 뒤 일어난다는 통계는 음주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드림바이러스 김소희 팀장은 “술에 의지해 사는 것은 마약에 의지해 사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앞으로 청소년·대학생 절주캠페인뿐 아니라 금연과 마약퇴치 운동에까지 팀의 활동범위를 넓히겠다”고 한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50명의 중학생들 술과 한 판 대결!!!
국내최초의 대학생 음주 예방팀 ’Dream Virus’
서초구 내 중학생들 음주 교육
대학생들로 구성된 음주문제 예방전문가들이 5월 16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초구의 서초중학교‚ 세화여자중학교‚ 영동중학교의 35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학생 대상 음주예방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학급별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시간에 이뤄지며 총 4회로 이루어진다. 모든 프로그램은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와 ’(재)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대학생 음주예방 전문가 과정’을 거친 대학생들로 구성된‘Dream Virus’팀에서 총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서초구 보건소와 가톨릭대학교 간호 대학과 함께 진행된다.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의 대학생 음주문제예방전문가들이 ‘Dream Virus’팀을 구성하여 초‚ 중‚ 고등학교 후배들의 ’눈높이 음주교사’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 4월말 경이었다. 대학생예방전문가들의 이러한 활동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음주문제가 어릴 적부터 음주교육을 받아야 만이 해결가능 하겠다는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생 음주문제예방전문가들로 구성된 Dream Virus 팀에서 진행하는 중학생대상음주예방프로그램 ‘4HC(4Hours Change with Dream Virus)’는 만남의 날‚ 지식의 날‚ 행동의 날‚ 미래의 날로 구성되어 일주일에 한 시간씩 4회 동안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아직 중학생 음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여 교과과정 내에서 교육시간을 배정하지 못하는 학교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다.
[만남의 날]에는 중학생과 대학생들의 만남을 위한 시간으로 진행된다. 처음 만난 음주문제예방전문가 대학생들과 중학생들 간에 신문에서 알코올과 관련된 단어를 찾아보는 ‘신문지 빙고’ 게임을 통하여 상품을 제공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지식의 날]에는 중학생들이 알아야 할 알코올 상식으로 ‘알코올 섭취 시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알코올 상식을 전달하는 강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이 시간에는 알코올에 대한 지식을 알게된 중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음주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되도록 하는 시간이다.
[행동의 날]은 대학생 사회 심리극 팀에서 중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음주상황 중에 ‘수학여행’ 상황에서 친구들이 술을 가져와서 음주를 권유할 때에 대한 상황극을 공연한다. 이 상황극을 통해 청소년들이 마주칠 수 있는 가족의 권유‚ 선배의 권유‚ 시험 후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권유 등의 상황을 제시하고 이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발표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날]에는 중학생들이 단순히 술에 대한 지식과 대처방법습득 만이 아닌 자신들의 꿈을 위하여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하여 발표를 하여 미래를 위한 계획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특히‚ 지식의 날에 진행된 강의에서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이 강의 후 ’알코올 상식 퀴즈’에서는 정확한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음주문제예방프로그램 수료증을 받으며‚ 참여한 학급은 친구들을 위한 ’음주문제예방 지킴이’ 학급으로 지정되는 지정서도 받게 된다. 중학생대상 음주문제예방 프로그램 ‘4HC(4 Hours Change with Dream Virus)’을 통해 4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중학생들은 올바른 알코올 상식을 습득하고 음주강요 혹은 음주유혹의 상황에서 대처하고 거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며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을 알고‚ 그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와 한국대학생 알코올문제 예방협회가 공동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학생들의 음주 경험은 4명중 3명이 한번쯤은 술을 마셔 본 것으로 76%의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학생 시기부터 음주문제에 대한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은 음주가 허용되는 시기에 있는 대학생들이 형‚ 누나‚ 언니‚ 오빠의 입장에서 중학생들에게 올바른 알코올지식과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눈높이 음주교사’들의 활동이 매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 알코올 중독자 익명단체(Alcoholics Anonymous, A.A.)
전세계적으로 수십만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발적인 친목단체로서 1935년 미국 Ohio주 Akron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주식 브로커와 외과의사 두 사람에 의해 창설된 익명의 단주 단체모임이다. 이 모임은 정신의학적 접근이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 기초한 일종의 종교적 집단치료 단체로서 중독자들에게 소속감, 친구, 종교적 성실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알코올 중독의 전력을 갖고 있는 같은 입장에 처했던 구성원들이 제공하는 지지와 격려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A.A.에서 진행하고 있는 12단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자료> A.A. 12단계
1단계: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스스로 생활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했다.
2단계: 우리보다 위대하신 힘이 우리를 건전한 본 정신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3단계: 우리가 이해하게 된 대로 그 신(하나님)의 보살핌에 우리의 의지와 생명을 완전히 맡기기로 결정했다.
4단계: 철저하고 두려움 없이 우리의 도덕적 생활을 검토했다.
5단계: 솔직하고 정확하게 우리가 잘못했던 점을 하나님과 자신에게 또 어느 한 사람에게 시인했다.
6단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모든 성격상 약점을 제거해 주시도록 우리는 준비를 완전했다.
7단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점을 없애주시기를 간청했다.
8단계: 우리가 해를 끼친 모든 사람의 명단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기꺼이 보상할 용의를 갖게 되었다.
9단계: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들에게 직접 보상했다.
10단계: 계속해서 자신을 반성하여 잘못이 있을 때마다 즉시 시인했다.
11단계: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게 된 대로의 하나님과 의식적인 접촉을 증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의 뜻만 알도록 해주시며,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간청했다.
12단계: 이러한 단계로써 생활해본 결과, 우리는 영적으로 각성되었고 알코올 중독자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으며,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려고 했다.
Ⅲ. 결론
술과 담배는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근래에 와서는 청소년과 여성의 음주 및 흡연이 늘어나면서 그 피해는 태아에게까지 이르고 있다. 슬과 담배는 건강식품이다. 기호식품이다. 유해식품이다. 마약이다. 등의 서로의 입장이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술과 담배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술과 담배의 남용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자와 만성 흡연으로 인한 합병증과 여러 병증들이 나타나는 이때에 보다 성서적인 기독교윤리적인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금지할 수 없는 문제이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 담배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술 담배의 폐해에 대한 경고는 많이 있지만, 성서적인 연구가 부족하며,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연구가 미비하다 생각했다.
이상으로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음주 문제를 다룰 때에 성경에는 술 취함을 심각한 죄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다는 점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포도주를 마신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포도주를 마신 것이 오늘 우리에게 여과 없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의 '아디아포라' 문제에 대한 사랑과 건덕의 원리로 제시했다.
담배의 문제도 이와 같은 원리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술 담배가 몸에도 해롭고 가정에도 해롭다는 인식에 비추어 사랑과 건덕의 원리를 적용하면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지적했다.
한국교회 신자의 입장에서 공직자가 공식석상에서 예의상 술 한잔을 하는 것이나 외국 신자가 술 담배를 하는 것을 정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지식과 자유의 원리에 의해서 음주와 흡연을 대법하게 하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술 담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형제에게 상처를 준다면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것이 가장 합당한 태도인 것이다.
교회의 전통과 사회적 인식의 차원에서 한국의 경우 초기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청교도적 신앙 양심을 따라 한국인의 개화와 진보를 위해 술을 금하였다. 그래서 금주는 마치 한국 교회의 외적 표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음주는 사회에서도 결코 미덕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금주에 대한 강조는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이요, 이어가야 할 전통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 사회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여 음주와 흡연에 제동역할을 감당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금주 금연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문화의 변혁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폭음으로 인한 높은 발병율과 경제적 손실로 많은 사회비용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의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흡연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생하며 여러 가지 병리현상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건전한 생활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제 이 사회의 다수 집단으로 자리 잡은 한국교회가 사회의 무절제와 낭비문화를 선도할 책임이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술이 아닌 복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폭음과 담배로 인한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손실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인의 음주와 흡연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육체의 기회로 삼는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과 덕이 되지 않을 기꺼이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특권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이다(갈 5:13).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고전 6:10)와 이웃을 위하여(롬 14:21) 필요하다면 술을 멀리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나아가 술로 인해 담배로 인해 고통하는 이웃을 돕고 격려하며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는 음주를 구원에 직결된 문제인양 율법적으로 다루지 않도록 주의하고, 음주 습관을 갖고 교회에 가입하려는 구도자들이나 초신자들이 그로 인해 교회 내에서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용납하며 포용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단행본>
1. 아가페출판사편집부, 『술 담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서울, 아가페, 1997
2. 강인한, 『기독교윤리 다이제스트』, 서울, UCN
3.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출판부, 『복음과 교회 (제10집)』, 서울,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출판부, 1998;
4. 노영상, 『영성과 윤리』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5. W. 비치 / H. R. 니버, 기독교윤리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서울, 2003
6. 김인수,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연구자료>
1. 박진균, “알콜중독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 목원대학 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7
2. 이종원, "알콜중독자에 대한 목회상담",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학위논문, 2004
3. 곽은진, “알코올중독 치료모델의 평가-기독교 통합이론의 관점에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기타자료>
1.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윤리학교수, 고신 2000년 5월호,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술과 담배”
2. 담배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넷 기사
3. 연합뉴스, 인터넷 검색자료
4. 대전 한빛교회의 금주 금연교육 자료
노 영 상 교수 / 장로회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