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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하늘의 시신이여 노래하라,
인류 최초의 불복종과 금단의 열매에 대하여.
그 치명적인 맛으로 인해
죽음과 온갖 슬픔이 이 땅에 밀려오고
에덴을 상실하게 되었으니,
더욱 거룩한 이 있어 우리를 돌이켜주시고
그 복된 자리를 다시 찾게끔 해주실 때까지.

목차  숨기기 

책소개

요약본 본문

요약본 본문

실낙원(Paradise Lost)
존 밀턴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하나님(성부): 아담과 이브는 물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의 신.
그리스도(성자): 하나님의 아들로 사탄의 무리에게 치명타를 가하며 나중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희생을 자원한다.

사탄: 루시퍼로 반역 천사의 우두머리. 열정적인 웅변으로 반역의 무리들을 선동하며 뱀의 형상으로 이브를 찾아가 유혹한다.

아담: 최초의 인간으로 전 인류의 아버지. 에덴동산의 주인이다.
이브: 최초의 여인으로 전 인류의 어머니.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을 설득하여 함께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라파엘: 대천사로 아담에게 사탄의 계획을 미리 알려준다.
죄: 사탄의 머리에서 태어났으며 상체는 여인, 하체는 짐승의 모습으로 지옥문을 지킨다.
죽음: 사탄과 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죄와 더불어 지옥의 대사로이 세상에 파견된다.

사탄의 선동과 지옥의 회의

하늘의 시신이여 노래하라,
인류 최초의 불복종과 금단의 열매에 대하여.
그 치명적인 맛으로 인하여 죽음과 온갖 슬픔이 이 땅에 밀려오고
에덴을 상실하게 되었으니, 이윽고 더욱 거룩한 이 있어 우리를 돌이켜주시고
그 복된 자리를 다시 찾게끔 하여주실 때까지,
……
나의 어둔 점을 밝게 해주소서.
나의 보잘것없는 면을 들어올려 지탱해주소서.
이 위대한 주제에 걸맞게 내가 영원한 섭리를 밝히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 길의 정당함을 증명할 수 있도록.

사탄은 한때 하늘나라 최고의 천사 루시퍼였다. ‘빛의 아들’을 의미하는 루시퍼는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한 무리의 천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주도했다가 패퇴하여 지옥으로 쫓겨났다. 지옥은 완벽한 어둠으로 싸여 있는 추악한 혼돈의 영역이다. 이곳에서 사탄은 반역 천사들과 더불어 9일 동안이나 불타는 호수에서 고통을 당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뭍으로 올라온 그는 아직도 멍한 상태에 있는 무리들을 일깨워 복수의 결의를 선동했다. 그는 “하늘에서 섬기는 것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는 게 더 좋으니” 신의 권위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맞서 싸우자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선을 행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일이 아니오, 악을 행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낙“이라고 외치며,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을 지옥으로,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도 있노라“ 주장한다. 그는 주저하는 무리들을 향해 결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이 아님을 강변했다. 더불어 그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종족(인간)에 관한 오래된 예언과 최근의 소문을 소개했다. 이러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대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무리들이 모두 모여 회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맨몬의 지휘아래 지옥의 대궁전 ‘팬데모니움’(Pandemonium)을 건설했다.

사탄의 주재하에 회의가 시작되자 하늘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또 한 번의 전쟁을 감행할 것인가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호전적인 몰렉은 지금 당장 싸우러나갈 것을 주장했다. 현재보다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 패배를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전멸당하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좋다는 논리였다. 겁쟁이 벨리얼은 반대 주장을 내놓았다. 하늘은 방어가 완벽하기 때문에 패배가 불가피하며 패배로 존재 자체를 상실하는 것보다는 고통 속에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음 연사 맴몬은 “하늘에 대해서는 잊고 지옥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주장했다. 지옥에서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그 자원을 잘 개발하여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나가자고, 재물의 악마다운 제안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벨제부브는 사탄의 지원을 받고 일어나 또 한 번의 싸움, 그러나 이번에는 직접 맞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과 인간을 공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늘에 타격을 입히자는 전략을 제안하여 모든 악마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정탐활동에 사탄 자신이 지원하고 나서 다른 악마들이 동의할 겨를도 없이 지옥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여기에서 지옥의 수문장 ‘죄’와 ‘죽음’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들의 흉측한 모습에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이내 자신의 머리에서 태어난 딸 ‘죄’와 그 딸을 범하여 얻은 아들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준다. 이들과 작별한 사탄은 새로 창조된 세상을 향해 ‘혼돈의 바다’를 건너갔다.

사탄의 방황과 음모
사탄이 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신은 하늘의 옥좌에 앉아 아들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지켜보던 그는 그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계명을 어기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그들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주어져 스스로 타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사탄과 반역의 무리들은 스스로를 유혹하여 타락한 반면, 아담과 이브는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당해 타락하기 때문에 용서와 자비가 미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죄를 대속할 희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신의 아들 그리스도는 기꺼이 자신이 희생자가 되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신은 기쁜 마음으로 이를 수락하고 이에 많은 하늘의 천사들이 인간에 대한 신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동안 사탄은 이 세상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구와 혼돈의 경계지역으로 나중에 바벨탑을 세울 자들이 살 곳이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고 접근한 그는 그것이 하늘로 향한 황금계단에서 나온 것이며 그 꼭대기에 하늘문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곁에는 낙원을 향에 열려 있는 문이 있다. 여기서 그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곳을 지키던 천사 유리엘에게 접근해 그가 새로 창조된 세상을 칭송하고 있는 동안 몰래 아담이 살고 있는 낙원을 향해 날아가 그 북쪽에 있는 산에 내려앉았다.

신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찾아온 에덴동산에 들어서기 전에 사탄은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비참하구나! 어느 길을 택해 날아갈 것인가,
끝없는 분노인가, 끝없는 절망인가?
내가 날아간 곳은 지옥이요, 내 자신이 지옥이니

오, 결국 약해지고 말았구나! 참회의 여지도 없고
용서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굴복을 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하고 시샘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킬 방안을 궁리하며 낙원에 접근했다. 아담과 이브의 완벽하도록 아름다운 모습과 행복한 생활에 마음이 또다시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금단의 열매에 대해 알게 돼 계획을 구체화했다.

아담과 이브의 상태에 대해 좀더 상세한 것을 알려고 궁리하는 동안, 유리엘은 낙원의 문을 지키고 있는 가브리엘 대천사를 찾아가 사악한 한 정령이 착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낙원으로 숨어 들어갔음을 알려주었다. 이에 가브리엘은 낙원의 불침번 중 가장 강력한 천사 둘에게 아담의 처소를 지키도록 명했다.

그러나 이미 사탄은 두꺼비로 변해 이브의 귀 가까이에 앉아 꿈을 통해 그녀에게 사악한 영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두 천사는 사탄을 가브리엘에게 연행했다. 낙원을 찾아와 아담과 이브의 꿈을 어지럽히려는 의도를 묻는 가브리엘의 취조에 냉소로 응하던 사탄은 하늘에 나타난 자기운명의 절망적인 모습을 확인하고는 투덜거리며 밤의 어둠 속으로 달아나버렸다.

라파엘의 경고와 ‘하늘에서의 전쟁’에 대한 설명
잠에서 깨어난 이브는 아담에게 뒤숭숭했던 꿈자리 이야기를 했다. 이를 듣고 아담은 언짢았으나 사랑스러운 반려자를 위로하며 아침기도로 안내했다. 아담과 이브에게 위험이 임박했음을 지켜보던 신은 이를 경고해주기 위해 라파엘 대천사를 낙원으로 파견한다. 멀리서 대천사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아담은 자신들의 기도가 통했다고 여기며 마중을 나간다. 아담과 이브는 대천사를 환영하는 의미로 가장 좋은 과일을 내놓았다.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라파엘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아담의 자유스러운 처지와 이를 악용하도록 부추길 적, 사탄의 존재를 상기시켜준 것이다.

그는 아담의 청에 따라 이 적이 어떤 존재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주었다. 하늘나라에서 신 다음의 권위를 자임하던 루시퍼(빛의 아들)는 신의 아들에게 많은 권력이 귀속되는 것에 불만을 느껴 반역을 꾀했다. 그는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무리들을 규합해 반역의 군대를 조직했다. 하늘의 북쪽에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한 반역의 무리들에게 압디엘이 나타날 때까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지품천사인 압디엘은 사탄의 말 속의 거짓을 깨닫고 그의 유혹에 저항했다. 그만이 그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충실한’ 존재로서 사탄의 선동에 반발하며 무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가 거짓된 자들을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라파엘은 사탄과 신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사탄의 무리를 떠난 압디엘은 신의 천사들에게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양편은 중세의 기사들이 싸우는 것처럼 일전을 벌였다. 그 선봉에는 사탄과 압디엘이 맞서 먼저 모욕적인 말로 전쟁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압디엘이 사탄의 헬멧을 강타함으로써 양 진영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선의 천사의 대장격인 미가엘 대천사가 사탄에게 일격을 가해 상처를 입힘으로써 팽팽했던 균형이 무너지고 반역의 무리는 패퇴했다. 그러나 원래 천사인 사탄은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만 상처입을 뿐이다. 그는 곧 일어나 다음날의 싸움을 준비했다. 이때 그들은 대포와 같은 비밀 병기를 만들어냈다. 처음 이 새로운 병기 때문에 패배를 거듭하던 신의 군대는 다시 미가엘이 해결사로 등장하면서 전세를 만회했다. 다음날에는 신의 아들 그리스도가 직접 전차를 몰고 출전하여 반역의 무리들을 하늘문 밖으로 몰아냈다. 이들은 지옥에 닿을 때까지 아흐레 동안을 추락해야 했다.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의 탄생
아담이 천지창조의 이유와 그 과정을 알고 싶어하자 라파엘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에 앞서 라파엘은 지나친 지적 호기심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해주었다. 사탄과 그 무리가 타락한 이후 신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과 종족의 창조를 원했다. 사탄을 패퇴시키는 것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소극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승리를 통해 그는 사실 하늘의 상당한 부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를 보상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고”로 시작되는 천지창조가 엿새에 걸쳐 진행되고 아담이 마지막으로 창조된다. 창조의 전 과정은 신의 아들이 관장했는데 그는 자신의 형상을 본떠 아담을 빚고 그에게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신은 아담에게 낙원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허락했으나,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은 새로 창조된 세상과 아담을 보고 흡족해하며 제7일째에는 휴식을 취했다.

천지창조에 관한 라파엘의 이야기에 매혹된 아담이 이번에는 천체의 운행에 관해 질문한다. 단지 지구를 위해 수많은 항성과 행성이 떠돌고 있다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배열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였다. 이 부분에 대해 라파엘은 명백한 답변을 피했다. 한편 이처럼 복잡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브는 자신의 꽃을 돌보러 간다며 자리를 피했다.

라파엘의 이야기를 주로 듣던 아담이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창조되어 처음 깨어났을 때 신이 말해준 창조의 이유와 과정에 관한 이야기, 모든 피조물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해준 신의 축복, 그리고 금단의 열매에 대한 경고에 관한 이야기 등이 그것이었다. 아담은 다른 짐승들과는 다른, 자신과 대등하게 사귈 수 있는 동반자를 원했고 이 소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의 갈비뼈로부터 이브가 창조되었다. 이브가 창조되는 동안 잠들었던 아담은 잠에서 깨 더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반려자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이제 더이상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고 동반자와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아담이 이브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라파엘은 진정한 사랑과 정욕의 차이점에 대해 훈계해준다. 마지막으로 라파엘은 앞으로 아담과 이브가 직면하게 될 위험에 대해 경고를 되풀이하고 떠난다. 그후 아담은 다시 잠이 들었다.

타락과 심판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
가브리엘에게 쫓겨나 지구주변을 돌던 사탄은 제8일째 되는 날 어둠을 틈타 안개의 형태로 에덴동산에 잠입하였다. 사탄은 그동안 어떤 피조물로 둔갑해 이브에게 접근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가장 이지적이고 약삭빠른 뱀으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아담은 각각 자신의 일을 따로 하자는 이브의 제안이 탐탁하지 않았으나, 이브가 자신을 못미더워하는 것에 속상해하자 이내 동의해준다. 뱀 형상을 한 사탄은 이브가 혼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접근했다. 이브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은 그는 이내 자신이 할일을 상기하며 교묘한 연기와 칭송의 말로 이브를 유혹했다. 뱀이 사람의 말을 하는 것에 이브가 놀라워하자 사탄은 바로 선악과의 놀라운 위력에 대해 소개하며 시험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다면 왜 이를 금지했을까요?

그분은 아셨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따먹는 날, 그렇게도 맑아보이는
그러나 실제로는 침침한 당신의 눈이 온전하게
열리고 맑아져, 당신이 신과 같이 되리라는 것을,
신들이 그러한 것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사람처럼 된 것같이, 당신이 신처럼 되리라는 것을.

사탄의 현란한 수사에 넘어간 이브는 드디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곧 아담에게도 권했다. 아담은 처음엔 공포에 휩싸여 주저하지만 곧 이브 없이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홀로 외롭게 낙원에서 사느니 파멸의 길일지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이를 감내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대 없이 어찌 살아갈 수 있으리오? …
나의 운명은 그대의 것과 하나이니…
우리의 처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 우리는 하나요
한몸이니, 그대를 잃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잃는 것이라오.

그들은 열매를 먹을수록 자신들이 점점 신성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아담에게 이브는 예전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고 그들은 이내 정욕에 휩싸여 사랑을 나눈다. 잠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 그들은 자신들이 순수함을 상실했음을 깨닫고 발가벗은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들은 처음으로 분노와, 증오, 의심 등의 격정에 휩싸이게 되었고 서로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의 비난이 저주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브 없이는 낙원도 낙원일 수 없다고 생각한 아담은 “그것이 바로 여인을 너무 믿는 남자들에게 항상 생기는 일”이라는 말로 자신의 실수를 대변했다.

신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즉각 알아차렸다. 가브리엘이 찾아와 사탄의 재침입을 막지 못한 것을 보고하자 그는 그것이 능력 밖의 일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아들을 불러 지상에 내려가 심판을 대신 전하도록 했다. 아들의 처음 심판은 뱀을 향한 것으로, 여인과 뱀 사이에 영원한 적의가 있어 여인들이 “뱀의 머리를 짓뭉개고” 뱀은 “여인들의 발뒤꿈치를 짓이기리라”는 것이었다. 이브에 대한 벌로는 모든 여인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아담과 그 후손 남자들은 이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지옥문에 머물러 있던 ‘죄’와 ‘죽음’은 사탄의 성공을 알아채고 지상에 이르는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지옥과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이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사탄은 지옥으로 돌아가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며 환호의 함성을 기대했지만 그가 확인한 것은 뱀들이 내는 을씨년스러운 소리뿐이었다. 하늘의 심판에 의해 모든 악마의 무리가 뱀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이제 신은 천사들을 불러 우주를 변화시켰다. 그들은 지구의 축을 기울어지게 했으며 태양의 진로도 바꾸어버렸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낙원의 지속적인 온화한 기후 대신 극심한 더위와 추위를 반복하여 겪어야 했다. 또한 불화의 기운이 죄를 뒤따라 지상에 확산됨으로써 짐승들이 다투게 되었다. 아담은 이러한 변화를 슬퍼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후손들이 고통을 당해야 함을 한탄했다. 그는 삶을 저주하고 죽음을 통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게까지 되었다. 이브에게도 화를 냈지만 그녀가 함께 자살할 것을 제안하자 그는 이브의 후손들이 “뱀의 머리를 짓뭉개리라”는 예언을 떠올리고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심판받던 곳으로 되돌아가 “잘못을 겸허하게 고백하고,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이로 인해 신의 자비와 용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미가엘이 보여주는 인류의 역사
하늘에서 아담과 이브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아들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들의 옹호자가 되게 하고 마침내는 이들을 위한 대속을 허락하였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불러모아 당신의 계획을 설명하면서 대천사 미가엘로 하여금 아담과 이브를 낙원 밖으로 인도할 것을 명하였다. 이들은 순결하지 못하니 더이상 순결한 곳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아담과 이브는 대천사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졌다고 여겼다. 낙원을 떠나야 한다는 말에 낙담하였으나 낙원 이외의 모든 땅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소나마 위안을 얻었다.

미가엘은 이브를 잠들게 하고 아담을 높은 산 위로 이끌어 장차 전개될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아들인 카인이 또 다른 아들 아벨을 살해하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던 아담은 인간들이 질병과 전쟁 등으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어서 빨리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에 대천사는 “생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지니, 짧든 길든 하늘에서 허락한 생을 그대로 잘 살지어다”라고 충고했다. 다음으로 아담이 목격한 것은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무신론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어 전쟁에서 대규모 군대가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도시를 황폐화하는 모습을 보았고, 간음과 겁탈 등 육신의 쾌락에 젖어 자행되는 각종 죄악의 형태들도 목도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 이런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노아였다. 그가 거대한 방주에 모든 피조물 한 쌍씩을 싣자 대홍수가 닥쳐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미가엘은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이를 정화하려는 계획을 함께 설명하였다. 홍수 뒤에 무지개가 나타났으니 이는 다시 홍수로 벌하지 않겠다는 하나님 약속의 증표였다.

계속해서 미가엘은 그 이후 전개될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노아를 통해 거듭난 인간은 그 이후 하늘에 순종하며 살아갔지만 점점 오만해져 결국 니므롯이라는 ‘인간 사냥꾼’이 나타나 하늘에 이르겠다는 야망에 바벨탑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 벌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그래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점점 사악해지는 종족들에 실망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새로운 가능성의 종족으로 선택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머물던 이들은 요셉의 청에 따라 이집트로 이주하고 파라오의 노예상태에 있다가 모세라는 탁월한 지도자를 만나 홍해를 건너 다시 가나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됐다. 그 뒤 사사들과 왕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 왕 중에 다윗이 있으니 그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결국 바빌론 유폐를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반복되는 인간의 죄는 오로지 메시아의 대속을 통해서만 씻겨질 수 있었다. 다윗의 가문에서 처녀의 몸을 빌어 태어난 그는 하늘과 땅을 하나 되게 하려 하지만 그전에 수모를 당하는 바 그의 신성은 모독되고 강제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는 그 죄의 씻음을 받으니 그는 인간에게 사탄이 행한 것을 파괴함으로써 사탄의 계획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이 세상이 새로운 낙원으로 정화될 때까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된다.

아담은 여기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인 메시아의 도래가 가능했음을 감지한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려 하지는 않지만 그는 타락이 ‘운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니 이 섭리가 안고 있는 심오한 의미를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땅에서 핍박받는 정의로운 사람들을 위무하기 위해 성신이 찾아오기까지, 긴 인류의 역사를 들은 아담은 최고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지혜에 믿음과 인내, 절제와 사랑의 덕을 더한다면 낙원을 잃는다고 서운해할 일만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또 다른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담과 이브는 희망과 믿음을 지닌 채 에덴동산을 떠날 수 있게 됐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의 대서사시
『실락원』은 원래 1667년 출판될 때에는 10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1674년 두 번째 판이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12권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위대한 서사시를 쓰려던 밀턴이 본래 의도했던 주제는 아서 왕에 관한 것이었다. 버질이 『이니드』로 로마를 영광스럽게 한 것처럼 자신의 서사시를 통해 영국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청교도혁명 과정에서 격렬한 종교적 정치적 논쟁에 참여하면서 생각을 바꾼다. 한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좀더 심오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택한 것이다. 한 나라 한 민족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의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것이어야 한다. 『실락원』은 이처럼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의 서사시이며 동시에 밀턴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입장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그것이 당시의 중요한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논쟁거리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거리들은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실락원』은 고대의 보편적인 서사시들에 비해 제한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밀턴이 비중을 두고 있는 사회적 관심사 중의 하나는 여성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입장은 대체로 남자를 여자의 주인으로 여기는 성경구절에 충실하다. 그러나 때로는 ‘여성혐모증’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징후를 보여주기도 한다. 밀턴의 이러한 경향은 첫 부인과의 불행한 결혼 때문에 생긴 부정적 감정과 부분적으로는 연관이 있다. 그러나 중세부터 널리 퍼져 있던, 여성은 그 근본부터 사악하다는 통속적 믿음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믿음이 아담의 입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타락 이후의 일로 사실은 분노와 절망 탓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밀턴의 견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여성혐오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온화한 것이며 성경의 기준으로 보면 온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능력에 대한 믿음
또 하나 밀턴이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의 문제다. 그는 팜플렛 논쟁에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적극 옹호했다. 그는 제도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혐오했다. 이러한 입장은 종교적 태도와도 이어진다. 그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로마교회의 권위적 제도를 ‘바빌론의 창녀’로 비유하기도 했다. 성공회든 장로교회든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참된 신앙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낭만주의자들을 매료시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에 대한 믿음이 서려 있다. 이것이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이 때문에 반인본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엘리엇 같은 시인으로서는 밀턴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인본주의자라 할 수 있는 밀턴은 개인과 양심 혹은 ‘올바른 이성’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도구라 여겼다. 그가 성경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입장에서 천지창조나 타락의 의미를 해석하며, 반역을 선동하는 사탄을 그처럼 매력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참고로, 그의 충실한 제자이자 그에 대한 ‘오역‘(misreading)의 대가라 할 블레이크는 밀턴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악마의 편에 서 있다”고까지 하였다. 물론 블레이크에게는 악마가 타기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천사가 수상한 존재다.

이런 입장에서 밀턴은 아담과 이브의 선택에 있어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하늘의 뜻이니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책임에 있어서는, 이브나 아담처럼 불가피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택한 것과 사탄이나 그 무리처럼 스스로 선택한 것과 차이가 있다. 조금은 논리적으로 궁색해보이는 이 틈새에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이 끼여들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밀턴은 또한 작품 내내 소위 ‘행운의 타락’ 개념을 피력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의 사랑과 용서의 계기가 되었으며, 인류 역사에 가장 찬란한 사건이라 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테스탄트들이 공히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근거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독교 신학의 체계적 이론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기에는 밀턴은 너무나 독창적이고 자기 완결성을 지향하는 시인이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시작품을 대하면 감상의 재미가 반감된다. 밀턴의 유장한 문체와 풍부한 상상력, 눈 먼 상태에서 구사하는 빛과 어둠 등의 절묘한 상징, 그리고 절망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너그러움 등을 주목하며 읽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특히 신교든 구교든 점점 인습화, 교조화하는 기독교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350년 전에 이미 그러한 경향성을 비판했던 선지자 시인의 질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작품감상의 묘미가 될 것이다.

▣ 밀튼의 생애와 작품
1608 12월 9일 유복한 청교도 가문에서 출생하다.
1625 케임브리지의 그리스도대학에 입학한다.
1638 『리시더스』출간
1638-39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등을 여행한다.
1641 ‘팜플렛 전쟁’ 시작되다.
1642 메리 파웰과 결혼한다.
1652 시력 상실. 메리 파웰 사망. 『투사 삼손』 집필을 시작한다.
1656 캐더린 우드콕과 재혼한다.
1658 부인과 딸 사망. 『실락원』 집필을 시작한다.
1660 왕정복고. 잠시 수감되었으나 곧 방면된다.
1663 엘리자베스 민셜과 결혼한다.
1667 『실락원』 출간
1671 『복락원』, 『투사 삼손』이 함께 출간된다.
1674 『실락원』 제2판이 현재의 모습으로 출판된다. 11월 8일 통풍으로 사망했다.

 

▣ 참고 문헌
윤종혁 역, 『실락원』, 삼성당, 1987
이창배 역, 『실락원』, 삼중당, 1984
박연성, 「‘실락원’에 나타난 Milton 낙원관」, 서울대학교 대학원, 1983
허정명, 「Milton의 ‘실락원’ 연구: 서사시적 배경을 중심으로」, 계명대학교 대학원, 1980
류현정, 「Paradise Lost에 나타난 Milton의 Eve 재고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7

 

▣ 글쓴이 이종민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용서의 서사시: 블레이크의 ‘예루살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활발히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시인의 죽음: 셸리의 ‘아도니스’에 관한 연구」, 「중층적 글읽기: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의 경우」, 「블레이크의 ‘밀턴’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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