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은 왜 40년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을까? 그냥 그곳을 탈출하여 나오면 될 것을 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민33장을 보면, 그들이 이동하여 진을 쳤던 42군대의 장소들이 나온다. 그런데 민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텐트를 치고 또한 떠나야 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그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름이 떠오르게 되면 텐트를 걷어 이동해야 했고, 구름이 멈추게 되면 그곳에 진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모세는 민9장15~23절에서 그 의미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것이 3가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역할과 하나님의 보호자역할을 하였으며, 세번째로 안내자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간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안겨다준다.
1. 들어가며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은 자신의 의지로 광야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왜 40년이라는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을까? 왜 그토록 그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야 했던 것일까?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민족은 적어도 시내산까지는 같이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내실 때에 "너희가 이 산에서 나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3:12). 그런데 시내산을 떠난 후에도 이스라엘민족은 약 38년간을 광야에서 배회했다. 왜 그들은 광야를 탈출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을 끈으로 붙잡아둔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사실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기까지 여정을 살펴보면, 총 42번에 걸쳐 이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민33장을 읽어보면, 그들이 진친 장소가 다 나온다(민33:5~49). 그런데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은 곧장 가나안땅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시도 한 번 해보지 못했을까? 그래서 오늘은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을 보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스라엘민족의 이동경로와 진친 경로는 무엇에 따른 것이었나?
민수기 9:15~23의 말씀은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하여 약 3개월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게 되었고, 거기서 율법을 받아 성막을 세운 뒤부터는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텐트를 치기도하고 이동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자신이 자의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고,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만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틀만에 또 어떤 경우에는 한 달만에 또 어떤 경우에는 일년만에 텐트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하면 이동해야 하고, 계속 있고 싶어도 구름이 떠오르면 떠나야 했으니 구름만 보아도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길을 떠날 할 때는 구름기둥이 없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무려 40년동안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갔다. 그것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3.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까?
그렇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까? 출애굽기부터 신명기의 말씀과 구약의 성경들을 찾아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대체로 3가지 역할이었다.
첫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임재역할을 수행하였다(출13:22, 느9:19, 시99:7).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있음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은 자신의 장막에서 서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았을 때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든든했을까? 물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고, 양식이 떨어져도 하나님이 함게 계시면 광야에서 식탁을 베풀어주실 것이니 그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든든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둘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보호자역할을 수행하였다(시105:38, 출14:19~20). 또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보호와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알려주는 도구였다. 왜냐하면 낮에 구름은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시원한 그늘에 거주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기둥은 애굽군대가 광야에 갇히 이스라엘민족을 죽이려고 달려왔을 때, 감히 이스라엘백성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가림막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광야의 인도자역할을 수행하였다(출13:21, 신1:33, 시78:14). 광야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성실하고 가장 안전한 인도자가 되어주었다. 그것들을 따라가면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요, 그것만 따라가면 그들이 가야할 최종적인 목적인 가나안땅에 도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4.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간 것이 곧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민9:18,20,23). 그런데 이러한 번역은 성경의 원문과 상황에 따른 번역문으로는 조금 부족한 번역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원문으로 번역하면, "여호와의 입을 따라" 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간다는 말은 강압적인 뉘앙스가 많이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가는 측면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고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이었다.
5. 이스라엘민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갈 때 억지로 따라갔는가 자원하여 따라갔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은 억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갔는가, 아니면 자원하여 따라갔는가? 만약 억지로 따라갔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간 것이고, 자원하여 따라갔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스라엘민족은 자원하여 따라갔다. 왜 이스라엘민족은 자원함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갔던 것일까? 그것은 처음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갈 때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그 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숙곳에 진을 쳤고 이어서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쳤을 때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때부터는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지 아니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13:21~22). 그렇다면 그때 무슨 사건이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민족이 두번째로 진친 곳 곧 광야 끝 에담에서부터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귿르은 매우 기뻐하여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그들을 인도한 곳은 애굽땅의 끝인 광야와 바닷가 사이 비하히롯(오늘날의 누웨이바 항구)였다. 그런데 그것은 독안에 든 쥐와 같은 꼴이 되는 겪이었다. 누군가 뒤쫓아 오면 탈출할 탈출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소식이 바로왕의 귓가에 들려지자, 바로왕은 곧바로 특별병거(전차부대) 600승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뒤쫓아왔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홍해를 마르게 하여 그들을 건너게 하였다. 그리고 뒤쫓아온 애굽군대를 전부 수장시커버렸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왔더니 막다른 골목에 갇혀 죽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신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의 신분까지 바꾸어주었다. 그것은 탈출노예도망자에서 자유민이 되게 해주신 것이다. 그 일은 곧 바로와 그의 군대를 전쟁에서 이겨 승리한 것이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면 당장 보기에는 그것이 미련한 것 같아보이고 어리석은 것 같아보여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기적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자원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가게 된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대제국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을 보았고, 홍해에서 애굽군대가 전멸당하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분을 따라가면 언제 어디서든지 어떤 민족이나 나라도 꼼짝 못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분을 따라가면 가장 확실히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현재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고 있을까? 사도바울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교회생활을 점검하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노정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고전10:1). 이 말의 원문을 살펴보면, 미완료 능동태문장으로서, 이스라엘민족의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어왔고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오늘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지 그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려는 천국에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제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바라보고 그것을 따라가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바로왕와 그의 군대와 같은 마귀과 귀신들도 이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적으로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가장 안전한 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천국이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0월 7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