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민족은 출애굽의 기적과 홍해도강 후에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그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높히어 찬양을 올려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선포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소고를 치며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도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 가르쳐준 방법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예배의 시작이 된다. 천상에서 예배드리는 광경을 보니, 이것과 같기 때문이며, 천상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린양의 노래"이자 "모세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제사와 예배의 차이를 통하여 제사에서 어떻게 예배로 변천되었고, 예배가 과연 무엇이며, 예배의 요소 안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도 온전한 예배자가 되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자신이 드리는 예배가 제사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쯤은 다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사제도는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이났고 새로운 예배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뀐 것인가? 무엇을 보고서, 이것은 제사이며, 무엇을 보고 이것은 예배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제사와 예배는 대체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진정한 예배라는 것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과연 이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는 예배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며, 우리가 드린 예배가 진정 예배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2. 하나님을 섬기는 구약과 신약의 방식은 무엇이었는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방법들이 구약시대에는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예배였다. 그렇다면, 똑같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들인데, 제사와 예배는 어떻게 같으며 어떻게 다른 것인가?
구약시대에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과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던 방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제사제도"였다. 성막이 존재하기 전에 족장들은 제단을 쌓았고 거기에 희생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성막이 완성되고 성전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는 훗날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의 대표가 되었던 것이다. 성막이 존재하기 전에 족장들 곧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와 야곱 등은 다 땅 위에 제단을 쌓고 거기에 희생제물을 바쳐서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제사였으며, 제사제도의 가장 큰 핵심은 희생제물이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족장들의 제사제도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출애굽한 후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크게 2가지였는데, 하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자신들을 애굽과 바로의 군대로부터 구출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출15:1, 시106:8~12). 그리고 또 하나는 노래와 더불어서 여인들이 소고를 치며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출15:20~21). 이들에게 출애굽과 홍해도강 사건은 크고도 놀라운 기이한 사건이었으며,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이 만천하에 드러난 놀라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배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예배를 살펴보니, 천상에서 천사들 및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그들도 찬양을 주께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계15:2~4,4:10, 5:8~11). 그러므로 홍해도강 후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은 제사제도와는 다른 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시도였음을 알 수 있다.
3. 제사와 예배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제사와 예배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 있어서, 구약의 제사제도가 희생제물을 바침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면, 예배는 찬양을 올려드림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족장시대에 드렸던 제사나 율법에 기록된 제사에는 단 한 번도 찬양의 요소가 들어간 적이 없다. 물론 신약의 예배에 있어서도 희생제물을 바치는 순서가 들어간 적도 없다. 둘 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동일한 계통에 속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제도라는 것도 예수의 속죄제사로 인하여 끝이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이제는 확실히 예배로 바뀌게 된다. 이것을 살펴보면, 구약의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위한 예표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죄지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구약의 희생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로 올려드리는 경배의 행위가 된 것이다.
4. 신약의 예배는 어떤 것을 가리키며, 무엇이 기본요소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예배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적어도 그것은 희생제물을 잡아서 바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출15장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들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천상에서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천상에서의 예배의 핵심은 2가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의 하나는 찬양이었으며, 또 하나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선포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드리는 찬양에 대해 사도요한은 그 노래를 "어린양의 노래이자 모세의 노래"라고 했다. 출15장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바로의 손으로부터 구출받았을 때에 불렀던 그 노래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어린양의 노래이자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래를 특별히, "어린양의 노래"라고 명명한 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어린양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속죄제물로 되셨기 때문이며, 그것을 "모세의 노래"라고 명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처럼 이들도 짐승과 그의 이름의 숫자를 이기고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상에서는 노래가 예배의 핵심요소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그것은 바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난 후에 불렀던 노래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홍해도강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보니,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인 단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높고도 위대하심과 그분이 행하신 일의 기이함을 놀랍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래로 인하여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렵고 떪으로 섬기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출15:14~15).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날 불렀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위대한 선포였던 것이다(출15:1b~2,11).
출15:1b-2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5. 천상에서의 예배는 어떻게 드려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천상에서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모습도 출애굽후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선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은 그분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것이며(계4:11), 그분이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되시어 사람들을 피값을 주고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계5:8~10).
계4:11 [24장로가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8-10 [어린양이]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6. 나오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의 위대한 일 앞에서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렸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이 행하신 일을 높여 기리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만방에 선포했던 것이다. 이것이 예배의 시작이었고, 예배의 진짜 기원이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경험한 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알고보니, 이것이 예배였다. 그러므로 힘이 빠진 찬양, 말씀이 살아있지 않는 예배는 더이상 예배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할 때 우리의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리고 그분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선포하는 살아있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하여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 10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