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는 섬기는 자도 있고 왕 노릇하는 자도 있다. 또한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보다 더 앞쪽에서 예배드릴 자가 있고 보다 더 뒤에서 예배드릴 자도 있다. 특히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예배드릴 자를 성경은 "이기는 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여러 고을들과 민족들 위에 "왕노릇하는 자"도 있다. 그 예표가 바로 창세기 46장에 나오고 있다. 그럼, 대체 어떤 자가 천국에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고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 오 놀라운 비밀이 이 말씀 안에 담겨 있다.
1. 들어가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세상 사람들은 단연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 많은 세상에 그런 것을 누리지도 아니한 채 오늘도 묵묵히 주님께 헌신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이 되어도 예배드려야 한다면서 어디 놀러도 가지 아니하고, 집안 형편이 쪼들려도 십일조를 내고 각종 헌금을 드리며, 일주일에 한 번은 교회에 와서 청소하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하지 않지만 식사 준비하고, 주일찬양 준비하고, 아이들 교회학교 준비하고, 매일 새벽에 나와서 자녀와 교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의 삶이 이생 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다(고전15:19).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것, 없어질 것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 하늘의 것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고후4:18).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비록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늘의 영원한 것을 바라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소망을 주는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 과연 무엇을 받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그때 하나님 가까이에 놓이게 되는 보좌 자리는 과연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지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오! 이러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2. 야곱이 자신의 70명의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간 애굽의 고센 땅은 어떤 곳을 상징하는가?
야곱은 자신의 나이가 130세가 되던 해에, 자기의 허리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아들 요셉이 기근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과 조카들을 애굽으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야곱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환상으로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브엘세바를 떠나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해 들어간다.
그렇다면, 애굽의 고센 땅이라는 어떤 장소인가? 요셉은 이때로부터 20년 전에 자신의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애굽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부모와 형제와 조카들을 기근으로부터 살리기 위하여 그들을 애굽으로 초청한다. 그런데 요셉이 자기 가족들이 살도록 초청한 그 장소는 아주 비옥한 장소였다. 그곳을 사람들은 고센 땅이라고도 불렀고, 라암셋이라고도 불렀으며, 소안 뜰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그 땅은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해 있어서 아주 비옥했고 아주 기름진 땅이었다. 아무리 기근이 찾아와도 나일강은 결코 마르지 않았기에, 물레방아와 같은 기구를 사용해 물을 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장소가 고센 땅이었고, 그래서 가축에게 언제든지 물과 풀을 먹일 수 있는 아주 풍요로운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애굽인들은 기본적으로 목축을 가증하게 여겼으므로, 애굽인이라면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땅이 바로 그 땅이었다. 그러므로 고센 땅은 이스라엘 민족이 혈통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구별되어 성장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볼 때 고센 땅은 살기좋고 풍요롭고 생명수가 가득한 천국의 새 예루살렘성과 같은 장소이자, 구별된 땅으로서 천국을 예표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창세기에서 천국의 예표는 다름 아닌 고센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왜 모세는 야곱이 데리고 간 식구들의 숫자를 70명이라고 기록했을까?
이때 아곱이 애굽으로 데리고 간 식구들의 숫자는 몇 명이었는가? 최소 70명은 넘는다. 왜냐하면 야곱의 허리에서 난 자가 66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창46:26). 즉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손자들과 손녀들의 숫자가 모두 66명이었던 것이다(창46:26). 그런데 그때 며느리도 함께 애굽으로 건너갔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때 애굽에 들어간 자들의 숫자는 78명이어야 한다. 자부가 12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세는 그때 애굽에 건너간 야곱 식구들의 숫자를 '70'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46:27). 왜그랬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70이라는 숫자가 산술적인 숫자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숫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일부러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럼, 왜 모세는 적어도 78명이나 되는 숫자를 70명이라고 기록한 것인가? 그것은 야곱의 식구 70명이야말로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 이긴 자들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바로 알겠지만, 천국에서는 예배드릴 때에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인다. 그들의 숫자는 수 천만 수 억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예배드릴 때에 겹쳐서 모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가까운 곳으로부터 차근차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우선적으로 70줄의 보좌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허다한 무리들이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70줄에는 다시 옆으로 많은 수의 보좌들이 놓여있을 것인데, 그 숫자를 요한계시록에서는 144,000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144,000명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서, 보좌 위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들 곧 이기는 자들의 숫자인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명은 결국 이긴 자들의 숫자인 것이다(이러한 사실은 창세기강해 158번과 159번을 검색하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70이라는 숫자와 144,000이라는 숫자는 실제 숫자이지만 동시에 매우 영적인 숫자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70'이라는 숫자는 '7 곱하기 10'이라는 숫자로서, 이 땅의 완전수를 뜻하는 '7'에다가, 작은 충분한 수를 가리키는 '10'이라는 숫자를 곱한 값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44,000'이라는 숫자는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이라는 숫자로서, 하늘의 완전수인 '12'에다가 다시 '12'를 곱한 것에, 많은 충분한 수를 가리키는 '1,000'이라는 숫자를 곱한 값이기 때문이다. 고로 '70'이라는 숫자값이나, '144,000'이라는 숫자값은 둘 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셔서 계획하신 이긴 자들의 충분한 숫자값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4. 왜 야곱의 가족들 70명과 하늘의 144,000명은 이기는 자들인가?
그렇다면, 야곱의 70명의 가족들은 왜 "이긴 자"라고 불리는 것이며, 천국에서 144,000명의 사람들에 대해 사도요한은 왜 그들을 "이긴 자"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둘 다 천국에서 이긴 자들의 무리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야곱의 가족들 70명에 대한 영적 의미부터 살펴보자. 창세기의 기자였던 모세는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70명의 가족들을 야곱의 가족들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가족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창46:8). 그리고 야곱의 12아들들을 기록할 때에도 그들을 야곱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46:5). 여기서 '야곱'이라는 말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다. 곧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이긴 자'라는 뜻이다. 고로 모세가 야곱의 가족들을 이스라엘의 가족들이라고 기록한 것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바로 이긴 자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는 용어를 우리는 '이긴 자의 아들들'이라고 고쳐 불러도 되는 것이다.
이제는 하늘에 있는 144,000명의 사람들을 일컬어 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긴 자'라고 했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예수께서 보좌자리에 앉아있는 144,000명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그들을 '이긴 자들'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왔다가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긴 자가 되셨다. 고로 예수께서도 이긴 자가 되셨기에, 아버지의 보좌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계3:2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그 보좌자리에 앉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바로 144,000명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70줄에 걸쳐서 순서대로 하나님의 보좌 앞쪽에 앉아있는 144,000명의 사람들을 가리켜 '이긴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5. 야곱의 가족 70명의 명단을 통해서 살펴보는 이기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야곱이 애굽에 데리고 들어간 70명의 가족 명단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과연 어떤 자들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자들이 탈락하는지까지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마땅히 이기는 자로서 애굽 땅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끝내 못 들어가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창46:12). 그것은 유다의 장남과 차남과 같은 경우의 일이다. 유다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기는 자들 중에서도 중요한 왕으로 다스릴 자의 하나의 표상인데, 그의 아들들 중에 장남이었던 '엘'과 차남이었던 '오난'은 당연히 이긴 자의 손자들이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간 멤버가 되었지만, 그만 죄를 범하는 바람에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둘 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긴 자가 되어 보좌자리에 들어갈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자는 결국 그 보좌자리에 못 들어가는 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이기는 자들 중에 약간의 구별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들도 왕의 보좌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창46:7,15). 훗날 모세는 애굽에 들어갔던 이긴 자들의 명단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는데 거기에 보니, 여자의 이름과 여자들이 들어갔다고 쓰고 있다. 그들은 야곱의 딸들이자 야곱의 손녀들이었다. 야곱의 딸로서 레아의 소생 '디나'는 그 이름이 아예 70명의 명단에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딸들과 그리고 손녀들도 이름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거기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인류의 죄가 하와에 의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자는 실로 남자의 머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데에 여자도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고 좌절하거나,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약간의 제약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144,000명의 명단에 여자들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셋째, 이기는 자들로서 자격을 갖춘 자는 일찌감치 먼저 그곳에 들어가는 영예를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창46:20). 조금 있다가 더 살펴보겠지만 144,000명의 명단에는 요셉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요셉이 그 명단에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기는 자들 중에 이기는 자이었기에, 왕으로 여러 도시들을 다스릴 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의 4대 후손으로 태어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사명을 잘 완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애굽으로 건너가서 자기의 부모와 형제들과 조카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과 손자들 중에는 요셉과 그리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처럼 그곳에 들어갈 준비가 먼저 된 자들은 그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 부모나 조상이 심어놓은 것이 있는 자식이나 자손은 천국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많은 좋은 영향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의 특징 중 하나다.
넷째, 이기는 자들 중에는 정말 더 크게 왕 노릇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창46:19, 45:8, 49:8,10). 애굽의 고센 땅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 요셉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형제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 온 나라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고 심지어 애굽 왕 바로(파라오)도 그를 아버지처럼 대하였기 때문이다(창45:8). 그러므로 그는 이기는 자들 중에 왕 노릇하는 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천국에서 144,000명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왕 노릇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최소한 이들을 섬기는 자들이 따로 그들에게 따로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민족 위에 왕 노릇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계2:26~27), 고을들(도시들)을 다스릴 자도 있을 것이다(눅19:16~17). 그러한 사람의 대표가 바로 요셉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왕이 되어 왕 노릇할 자로서 요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곱도 있고 유다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야곱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아예 이기는 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창35:10). 그리고 그는 왕이 될 자들을 산출한 자였기에 충분히 중요한 왕 노릇 할 자다(창35:11). 또한 야곱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 이삭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할 자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8:11). 그리고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도 중요한 왕 노릇하는 자에 해당한다. 이는 유다도 144,000명이 앉아있는 70줄에서 보다 앞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는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을 죽음에서 구출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 시므온과 자신의 베냐민을 구원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넷째 아들이었지만 영적으로 장자가 되는 축복을 받았으니,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게 될 것이며, 그의 직계 후손으로는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야곱이 축복하기도 하였다(창49:8~10).
6. 어떤 자들이 천국에서 이기는 자가 되고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이기는 자가 되고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기는 자로서 144,000명 가운데 보다 더 70줄의 앞쪽에 있는 자들 곧 천국의 고을들에서 왕 노릇하거나 민족들 위에 왕 노릇할 수 있는 자들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창세기의 족장들 가운데 이기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과 유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례를 좀 더 들여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왕 노릇하는 위치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바로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5명의 모든 삶을 통틀어 조사해 보았을 때에, 이들만이 갖고 있는 놀라운 특징이 2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천국에서 이기는 자로서 보다 더 왕 노릇할 자는 깨끗한 자 곧 순결한 자로서, 적어도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죄를 짓지도 않을 뿐더러 죄와 싸워서 이기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 가문의 저주를 끝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삭은 자기의 것을 빼앗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하지 않고 양보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미워하거나 분노하거나 살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으며 주인의 처로부터 모함을 받아 죄수가 되었어도 끝까지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이렇듯 천국에 왕 노릇하는 자는 죄를 끝냈거나 죄가 없는 깨끗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죄부터 청산해야 한다. 내가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지은 죄까지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이기는 자들로서 보다 더 크게 왕 노릇할 자가 되기 위해서는 충성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충성'은 천국에서 면류관을 얻고 좋은 천국 집에서 살게 해주는 핵심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보좌자리를 얻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므로 충성되지 않은 자가 천국에서 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주님 가까이서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매우 영광스러운 지위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맡겨준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주님께서 명령했던 말씀에 항상 충성했던 인물들이다. 그중에 이삭은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면 멈추었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려야 할 상황에서 그는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던 자였다. 그리고 야곱은 장자계승권 곧 하늘 소망에 대한 열정을 가졌고 그것을 얻었으나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환도뼈가 위골되면서까지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형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으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다. 더욱이 유다는 형제들 중에 넷째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동생 요셉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 시므온과 동생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줌으로 장자로서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적인 꿈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알고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 보면, 이기는 자들 중에서도 더 중요한 왕이 될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한다. 이것은 부활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들]을 지키는(준행하는, 이행하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만국 위에 있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계2;26~27)" 그렇다. 이기는 자들 중에서도 주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일에 충성하여 그것을 끝까지 준행하는 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은 충성된 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감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그 전제가 자신에게 어떤 직무가 주어졌거나 사명이 주어졌을 때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맡은 일이 없다면 그는 충성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자기가 일을 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천국에서 왕 노릇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자신이 수고할 일이 없지만, 정말 충성된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렇다. 이미 주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거나 사명을 맡은 자와 함께 충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게 되고,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게 되며,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중 한 사람에게라도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면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0:41~42).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사명을 맡아서 일하는 주의 종과 협력하여 일함으로 충성할 수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면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조상들의 저주까지 끊어낼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고 죄와 싸우는 자가 되면 어떤 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어 시키신 일에 충성하거나 직임과 사명을 받은 자들과 함께 충성하게 되면 그는 어떤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는 천국에서 이기는 자가 되고, 왕 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서 144,000명에 속하는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예배할 때에 제사장으로서 영광스러운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천국에서 144,000명 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에게는 자기를 돕는 자가 배정될 것이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마다 지정된 좌석에 앉게 될 것인데, 그런 자는 주님 보좌 가까이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보다 더 앞쪽에 있는 중요한 왕은 여러 고을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거나 여러 민족들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야곱의 70명의 가족들 중에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야곱'과 '유다'와 '요셉'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간신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정도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특별히 배정해주는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인가? 기왕이면 보다 더 앞 줄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깨끗이 하자. 그리고 충성하자.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우리의 신분을 결정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