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성도는 회개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회개 중에서도 열매 맺는 회개를 못했을 경우 결국에는 버림받아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던져진다는 경고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흘려 듣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회개는 대체 어떻게 행하는 것인가? 여기 그 방법이 들어 있다.
1. 들어가며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은 저마다 누구나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과 그 회개는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회개를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회개가 진정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회개가 됨으로 자신의 죄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내가 드린 회개 기도가 온전히 상달되어 그 죄들이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부분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놀라운 말씀 중의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시간에는 내가 드린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는지를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후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는 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회개는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동안 내가 왜 영적인 진보를 이루지 못했으며 회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를 한다. 그렇다면 회개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되어 자신의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서 지워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회개에 관한 기본 상식과 그리 멀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회개는 3가지 측면의 회개 즉 깨닫고, 뉘우치고, 고치는 회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는 어떤 회개인가? 첫째로, 죄를 깨달아야 한다(지적인 측면)는 것이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죄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회개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을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 법을 주셨고 더 크게는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죄를 안 채 기도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회개기도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죄에 대한 24가지 항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죄를 뉘우쳐야 한다(감정적인 측면)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을 애통해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잘못 되었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그 죄가 우리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은 죄를 정말 뼈아프게 생각했던 사람이 구약시대에 살았다. 그는 다윗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상한 심령과 통회(깊이 뉘우치는)하는 마음인 것을 알았던 것이다(시51:17). 그러므로 죄를 회개할 때에 통곡의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감정적인 측면에 좀 약한 분들이라고 하겠다. 셋째는 죄를 고쳐야 한다(의지적인 측면)는 것이다. 죄를 지었던 현장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회개한다고 했지만 다시 죄를 짓고 있다면 그 사람의 회개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것이다. 임시 회개인 것이지 완전한 회개가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말씀도 바로 의지적인 측면의 회개다. 고로 오늘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이 세 번째 방면의 회개를 잘 모르는 자는 자기가 지금 회개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회개가 아직 덜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 모를 수 있다. 만약 그러다가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그는 쭉정이라는 말을 듣고 바깥 어둔 데 내지는 불 못에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서, 회개의 의지적인 측면 곧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리는 가끔씩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문구에서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할 말은 '합당한'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언뜻 '타당한', 혹은 '적합한'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뜻이 아니다. '합당한'이라는 단어는 '악시우스'라는 단어로서, 이 단어는 동사 '악사'에서 온 단어다. 그 뜻은 '무게가 나가다. 무게를 가지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 뒤에 소유격을 달고 오면 '악시우스'는 '~만큼의 동일한 무게를 가지다. ~에 상응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회개에 적합한 무게를 가지는 열매'라는 뜻이며, 그 말은 자신이 진정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 어떤 행동들 곧 그것에 상응하는 무게 있는 열매들을 가리킨다. 고로 진정 누군가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하고 있다면, 그는 누가 보더라도 눈에 보여지는 어떤 열매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 남편에게 말을 건넸지만 남편이 자기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 어떤 아내들은 남편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궁시렁궁시렁거릴 수 있다. 남편이 되어 가지고 부탁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핀잔을 하거나 험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말을 퍼붓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설거지를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 사라는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을 주인 모시듯 섬겼다는데, 저는 제 남편을 제 자식처럼 부려 먹으려고 하였고 그렇게 안 해 준다고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기도를 끝내면 그 사람의 회개 기도는 끝난 것인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남편에게 다가가 "여보, 아침에 내 성질을 참지 못하고 궁시렁거렸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요 입이 방정이에요. 당신의 사정도 있을텐데 오직 내 생각만 했어요. 미안해요."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남편이 먼저 말하기를 "여보,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당신의 말을 그만 흘려 듣고 말았어요.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당신의 말을 꼭 경청해서 듣겠소." 그러면 아내는 "아니에요. 제가 먼저 당신을 두고 험담을 했으니 사과할 사람은 바로 나이지요. 미안해요, 여보." 그리고 "사랑해"하고 달려들어 와락 안아 준다. 이것이 바로 진정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라는 것이다.
4. 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왜 회개할 때에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까지 맺는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냥 하나님께 말로 혹은 마음을 다해 회개 기도해도 아니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회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가 덜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식으로 회개를 다 끝마쳐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열매가 없는 회개를 하게 되면 마귀가 우리의 죄의 약점을 알고 그 방면에 계속해서 죄를 짓게 만들어서 결국 마귀의 손아귀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섰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선고를 할 것인가? 그것은 "너는 쭉정이였느니라"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열매 없는 회개를 한 자는 결국 마귀의 손아귀에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십일조와 헌물(예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말3:8~9). 그런데 웬만한 그리스도인 치고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의 월급이나 보너스 정도는 십일조로 내고 살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들어오는 용돈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5천 원이나 만 원 정도를 십일조로 내야 하는데, 그것을 매번 십일조로 내자니 번거롭고 해서 모아서 내겠다고 했다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달에 나가야 할 돈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를 내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며칠 후에 내야지 하고 있다가,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제가 이번에 십일조를 떼어 먹었어요. 죄송해요"하고 회개 기도만 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죄를 용서받는 것인가? 아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회개하고 있는 장면을 하나님도 보고 계시지만 귀신들도 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귀신들은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 문제가 있다고 간파하고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을 만든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면 자신의 약점 때문에 사탄 마귀의 포로가 되어 계속해서 반복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열매가 뒤따르지 않는 회개를 하면 영적인 진보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 반복적으로 죄만 짓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는 쭉정이가 되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든지 아니면 쭉정이를 불태울 꺼지지 않는 맹렬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마3:12).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할 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국 자라지 못할 것이다. 계속 죄가 깨끗이 제거되지도 못한 채 반복적으로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죄들로 인해 우리의 신앙은 결국 껍데기만 갖춘 신앙인 곧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니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에 따라 죄를 짓도록 계속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 알곡의 모양은 갖추긴 했지만 결국 그 속이 차지 못해 쭉정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죽는 날, 주님의 심판대에서 쭉정이라는 판정을 받고는 쭉정이를 불태울 맹렬한 불 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정말 그 무시무시한 지옥에 던져지고 마는 것이다.
셋째, 열매 없는 회개를 하는 생활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주님 앞에 행한 일들마저도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럴지라도 그는 자기가 주님을 위해 행한 일들마저 제대로 상급으로 계산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의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린 헌신이 온전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린 모든 헌신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열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열심히는 살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권 신부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열매 맺는 회개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천국에서 시녀 신부로 살기보다는 왕권 신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5.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할 때에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회개 곧 열매 맺는 회개를 할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2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첫째는, 열매 맺는 회개를 하려면 '즉시' 하라는 것이다(마3:7,10). 왜냐하면 뒤로 연기했다가는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 위에 놓여 있는 싯점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로 회개를 뒤에 가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고로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려면 지금 가서 사과하기를 바란다. 용서해 줄 사람이 있으면 지금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즉시 감사를 표현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즉시 지금 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남을 도울 때에 없는 돈을 빌려다가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 정도로 한다 할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하면 된다. 남을 도와준다고 행한 것이 내 가정을 힘겹게 만들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천적인 회개는 사람에게만 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도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즉시 무릎을 꿇으라. 예배를 빼먹고 있었다면 즉시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든지 오는 주일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라. 혹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예물을 빼먹었다면 즉시 그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바치라는 말이 아니다. 떼어 먹은 것을 다 드리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서 주님 앞에 드리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철저히 계산해서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십일조와 예물을 가지고 사탄이 나를 장난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이 힘들더라도 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회개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지은 죄가 클수록 열매 맺는 회개를 하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유부남과 살고 있다고 치자. 상대가 원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에게 집을 얻어 주고 매월 돈도 준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을 떠나 보낸다면 내가 살기가 막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유부남하고 살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것은 음행의 죄로서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죄이기 때문이다(계21:8). 그런데 주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막9:43,45,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렇다. 열매 맺는 회개를 실천하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져서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 아무리 열매 맺는 회개를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져서 숨도 제대로 한 번 쉬지 못한 채 영원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귀신들이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수만 가지 고문을 주는 그 장소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아니한가? 고로 죄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죄를 청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우리가 무엇에 중독되어 있다거나, 물질에 묶여 있다거나, 사람에 묶여 있다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회개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이 장차 그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것을 생각하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6. 나오며
우리가 열매를 맺는 회개를 실천한다는 것은 실로 힘겹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의 핸드폰도 정지시키고 기도원에 들어가 한 달이나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으실 분이 결코 아니시다. 회개를 한 후에 들이닥칠 물질의 문제를 두고서도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난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다고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 그분이 진정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를 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으실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를 청산하려는 그 의지를 볼 때에 한걸음으로 달려오실 분이시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실 분이시다. 그분을 믿으라. 그분은 전능자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그동안 죄를 끊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죄를 끊어 내지 못했던 것일 뿐, 우리가 진정 죄를 끊어 내려고 결단하고 실행에 들어가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능히 감당하시도록 도와주실 분이시다. 그렇다. 회개란 단순히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끝내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반드시 행위를 고쳐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죄를 계속 그냥 놔두게 되면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약점이 될 것이고 그것을 빌미로 사탄 마귀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반복적으로 죄만 짓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속이 차지 않은 곡식은 쭉정이가 되어 불 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여! 이제라도 결단하라. 계속해서 사탄 마귀의 노예로 살다가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지 말라. 지금 힘들더라도 그 죄를 끊어냄으로서 주님이 도와주시는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라. 주님은 죄짓다가 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럽혀진 채 있는 자를 거룩한 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라. 죄를 회개하다가도 그것을 끝내지 못해 미완성된 채 그대로 죄를 남겨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열매 맺는 회개를 하라. 그것은 깨닫는 즉시 실천할 때 가장 잘 행할 수 있다. (건투를 빈다..지워주세요)
2021년 09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