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일곱교회 중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였는가? 그들은 자신의 영혼이 열린 문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보전하고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들을 핍박하는 세력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믿는 유대인들이었고 더불어 불신 로마교황세력이었다. 왜 그들은 기독교인을 핍박했을까? 그리고 두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되어 진리의 말씀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내야 할 구원에 관한 진리의 말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들어가며
소아시아에 일곱교회들 가운데, 서마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칭찬과 격려와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도 분명 죄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며, 사탄마귀와 귀신들의 유혹과 시험과 핍박을 받았을텐데, 어떻게 되어 그들은 책망이나 꾸중 하나 없이, 주님으로부터 오직 칭찬과 격려와 약속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 우리는 이 두 개 교회에 대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통해서(계2:9, 3:8~10),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들 교회 구성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불어닥친 환난과 고난을 이겨냈다는 점이다. 특히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작은 능력밖에 가지지 않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켜냈으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열어둔 채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셨으며,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환난과 고난 때문에 하늘에서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지켜냈던 예수님의 말씀 즉 예수님에 관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현 시대에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 곧 천국에 들어가게 도와주는 참된 진리의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무엇일까?
2. 주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지키다'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테레오'라는 단어로서, "지켜내다. 보존하다. 보전하다. 그대로 간직해내다"라는 뜻이며,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준수하다. 실천하다, 준행하다. 순종하다"는 뜻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이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는 "보전하다"이다. 그러므로 이들 교회가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했다는 의미보다는 그들이 깨달았던 말씀 그리하여 열린 천국문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말씀을 그들이 지키어 보전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들이 믿음으로 지켜내려 했던 말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추론해볼 수 있다.
계2:9-10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3:8-10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3. 주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 참된 성도들이 받아야 했던 환난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서머나교회 성도들이나 빌라델비아성도들이나 칭찬들었던 공통적인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환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왜 기독교인에게 해를 가했을까? 그것은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지키려고 했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께서 주님이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하지만 오직 여호와만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저주받을 신성모독자들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했는가?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선민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에 그들은 이미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마16:16), 더 나아가 그분은 주님이요 하나님이시다(요20:28). 하지만 이것을 믿는 믿음 때문에 서머나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이어서 로마정부로부터도 핍박을 받았다. 당시 로마는 도미시안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은 그 칭호를 예수님에게만 적용할 뿐, 세상통치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도미시안황제는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원형경기장에 굶주린 사자에게 풀어놓아 물어뜯어 죽게 하였으며, 화형시켜 죽인 것이다.
4.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어떤 자가 환난을 받고 있으며 또한 고난을 받고 있는가?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다고 하면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고 정죄하려고 한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만들어낸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면 정통이라고 말한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주장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니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를 입고 계셨을 때에 예수님에 대한 칭호이다.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신 이후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신다. 동시존재가 가능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이후 그리고 승천이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적이 있었던 하나님이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찍 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요, 사람의 아들 같으신 이이시다. 세종대왕을 아무도 장헌세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제한시켜 칭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불러야 한다. 하나님으로 신앙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아무 일이 없는데,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서, 그분이야말로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전능한 하나님이자 보혜사라고 하면 이단이나 삼단이니 하면서 핍박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그래서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신앙고백하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로마황제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두 교회는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켰다. 그 믿음을 보전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었기에 그렇게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팩트(사실)이기에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지켜나갔던 것이다.
5. 오늘날 우리가 보전해야 할 진리의 말씀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진리의 말씀을 보전해야 하는 것일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한 번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게 된다는 것을 보전해야 하는가? 그리고 한 번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만세전에 예정하신 작정대로 된 것이니, 내가 어떻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지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보전해야 하는가? 아니다. 둘 다 틀렸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없다. 아니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께서는 오직 복음을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셨다(막1:15, 마4:17). 예수께서는 때가 찾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막1:15). 여기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기쁜 소식으로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으며,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로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에 대한 소식이다. 이것을 믿을 때, 사람은 자신의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자신의 과거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난 죄를 다시 돌이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죄값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의 타락이후 곧바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흠없는 속죄제물의 희생제사를 통한 대속을 약속해주셨다. 그래서 그 약속을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인류는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요14:6). 그렇지만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것만으로 자동적으로 죄가 용서되지는 않는다. 회개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자백할 때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는 것이다(요일1:9). 그러면,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자신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열리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지은 죄들은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것이다. 자백하는 것은 마음 아파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회개는 거기에다가 의지적인 행동의 변화도 수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첫째는 흠없는 속죄제물인 예수의 피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우리의 자백과 회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아담의 후손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의 죄도 동시에 같이 자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그 순간에 갑자기 죽게 된다면 그 사람은 죄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날 죽지 아니한다. 더 많은 시간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살 때에 자기자신 속에 있는 죄된 본성이 자신을 가만 놔두겠는가? 아니다. 또한 우리 밖에서 활동하는 귀신들이 우리를 유혹하지 않고 가만 놔두겠는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 사람은 사실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죄를 짓기 마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날마다 지은 자범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때 회개할 것은 어떤 것들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율법말씀이나 그 말씀의 정신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행한 것이나, 하라고 한 것이지만 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때에는 먼저 지은 죄를 자백하고 그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께서 용서를 간구한 다음, 다시는 그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는 다짐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7. 구원에 관한 바른 영적인 말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므로 한 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며,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 없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칭의를 얻은 것이 곧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그후에도 계속해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통해 칭의의 옷을 입은 자라도, 지은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더렵혀진 옷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자신의 더럽혀진 행실을 깨끗히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를 뿌리는 것 뿐이다(계7:14). 그렇다. 믿음으로 구원의 노정 안으로 들어온 자라도 얼마든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노정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알라. 그리고 믿음에서 파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그랬기 때문이다(딤전1:19~20). 그리고 최초의 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의 교인이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그랬기 때문이다(행5:1~11).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즉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가운데 사데교회에서 주신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서 지는 자는 이미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울 수도 있다고 경고하셨다(계3:5). 그러므로 구원은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라고 권면했다(빌2:12).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라는 명령은 명령법 현재 형태다. 이것은 계속해서 그렇게 행함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나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그것은 내 안에 죄된 본성이 들어있어서 그것이 언제든지 일어나 나를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으면 성령충만을 받아서 육체를 쳐 복종시키는 일을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한다(고전9:27). 그렇지 아니하면, 이미 얻은 구원이라고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구원관이며,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구원관이다.
8. 나오며
이렇듯 오늘날 성도들은 바른 구원관을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믿음을 간직하고 보존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어떠한 환난과 핍박과 죽음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간직하고 보존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의 구원은 보장받을 수가 없다. 구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다 준비해 놓았지만, 그러한 구원의 은총이 내게 머물게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은 죄들에 대한 자백과 회개를 날마다 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보전해야 한다. 한 번 믿는 것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회개하여 자신의 모든 죄들을 다 씻어낸 다음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