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가? 아니면 최소되거나 상실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누구로부터 들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보다 더 성경에 입각한 말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려면 3가지가 요청된다. 그럴 때에라야 잘못된 가르침이나 해석을 따라가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사도바울이 확증하고 있으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경고하셨던 바른 구원관에 관한 말씀은 대체 어떤 것인가? 오늘은 이것을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에, 많은 이들이 진리에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성경말씀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기록된 성경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말씀을 배웠거나 가르친 결과 때문에, 진리에 이르지 못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원문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자국어성경으로는 도무지 정확한 뜻을 찾기 어려울 때에 발생한다. 또 하나는 말씀을 들려주거나 가르치는 목회자(신학자들) 쓴 글이나 혹은 말을 무턱대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저렇게 위대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설마 우리에게 잘못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걸"하면서 그냥 믿어버린 경우다. 더욱이 성도들은 "저분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성경을 더 많이 알고 배웠으니까 나보다는 정확하겠지"라고 하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목회자나 신학자가 쓴 글이나 말을 검증도 하지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어떤 말씀이나 교리가 각 시대마다 어떻게 해석해왔는지에 대한 무지함 때문이다. 곧 어떤 말씀이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어떻게 해석되어왔는지 조금이라고 공부했더라면 진리의 진리을 찾는데 훨씬 더 수월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믿는 성도들치고,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헬라어성경과 같은 원문성경을 찾아보고 확인해보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회자의 말을 의심해 볼 수 있겠으며, 교회사 가운데 어떤 말씀이 어떻게 해석되어져 왔는지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실 성도들이 바른 진리에 지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목회자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은 성도들이 구원에 관한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어거스틴의 구원관은 어떠한가?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구원론은 사실 어거스틴의 구원론에서 왔다. 어거스틴(A.D.354~430)은 마니교에서 개종한 기독교 신학자로서, 사도바울이후 최대의 신학자라 불리운 사람이다. 그가 주장한 구원론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성경적인 주장으로서, 훗날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성경적인 구원론이다. 물론 성경적인 완전한 구원관은 믿음만은 아니다. 거기에다가 회개가 더 요청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려면, 첫째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회개해야 한다(막1:15).
둘째, 구원은 은총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은총은 교회를 통한 은총이다. 이것은 중세 로마카톨릭교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로마카톨릭에서는 은총을 베푸는 중보자인 사제 혹은 교황없이는 어느누구도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사제가 집례하는 은총의 수단은 총7가지가 있는데, 우리 개신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세례와 성만찬 이외에도 5가지 의식이 더 있다. 그중에 하나가 고해성사다. 고행성사는 낱낱이 지은 자범죄를 용서받는 방법인데, 이때 사제에게 찾아가 자신의 지은 죄를 자백하고 사제로부터 "네 죄를 사하노라"는 선언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가 없이는 로마카톨릭성도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로마카톨릭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은 세례를 통해 원죄를 사함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자범죄를 짓지 아니한 어린 아이들의 원죄는 어떻게 사함받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전염병으로 아이들이 많이 죽어갔다. 그래서 유아세례가 나온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으면 원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친 것이다. 만약 어린아이가 유아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으면 '림보'라는 중간장소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르쳤는데, 그것을 만들어낸 신학자가 바로 '어거스틴'이다. 그리고 자범죄들 중에서도 대죄가 아닌 소되는 고해성사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지만, 대죄는 어떤 벌이 부가된다. 금식한다든지, 화장실을 청소한다든지, 자비량으로 거지성지순례를 하다든지, 무릎을 꿇고 몇 시간이고 기도한다든지 등의 선행과 고행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지만 천국에 못들어가고 '연옥'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는데, 그것을 만든 이도 어거스틴이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셋째로, 구원은 신적 작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한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결국 칼빈에 의해 예정론의 근간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사람이 구원받거나 멸망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한 대로 되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칼빈은 이것을 받아, 이중예정론을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어떤 사람은 멸하시기로 예정해놓으셨다는 교리다. 그러므로 칼빈의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의 구원을 받느냐 마느냐는 하나님의 절대 작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누군가가 한 번 구원을 얻게 되었다면 그가 받은 구원은 절대 취소되거나 철회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 취소되지 아니한다는 교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성경적일까?
3.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아니하는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면 정말 구원이 취소되지 아니하고 멸망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반드시 구원받게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는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성경적은 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말씀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구원은 취소되지 아니한다는 주장은 어거스틴이 씨앗을 뿌렸고 칼빈이 완성하였으며, 칼빈주의자들이 그것을 퍼뜨렸다. 이 교리는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한 번 구원받으면 계속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요. 둘째, 하나님은 설령 예수믿고 죄를 지어서 오래 참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구원이 보존된다는 것이며, 넷째, 한 번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이다. 즉 한 번 얻은 구원은 아무도 구원을 철회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4. 성경구절이 알려주는 참된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우선, 어거스틴-칼빈-칼빈주의자들로 이어지는 그들의 구원론 즉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한 번 얻는 구원은 결코 취소되거나 상실되거나 철회되지 아니한다는 주장이 과연 성경 어디를 근거로 나온 주장인지를 보자.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약 3가지 정도다. 요10:28과 요5:24 그리고 엡2:8~9의 말씀이다.
첫째로, 요10:28의 말씀을 보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칼빈주의자들은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그를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 절대적으로 보존된다고 주장한다. 얼핏 듣기에는 참 좋은 말씀이며 듣기 좋은 말씀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된 자는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한다고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생을 얻는 자는 바로 "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이것은 요10:29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앞의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요10:26~27에 의하면, 그들은 3가지를 계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자다. 하나는 계속해서 믿고 있는 자요, 둘째는 계속해서 주의 음성을 듣고 있는 자이고, 셋째는 계속해서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자다. 그렇다.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는 대상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따라 ,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행하신 일을 그대로 믿는 자인 것이다. 곧 회개하고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니,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된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없다.
둘째로, 롬8:35,38~39의 말씀을 보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칼빈주의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는 절대로 그 어떤 요소들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한 영원히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롬8:35,38~39에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일까? 그것은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롬8장 35절 이전에 있는 1인칭복수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롬8:28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에 의하면,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한가가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현재 입어가고 있는 자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어떠한 고난이 와서 그것을 감내하는 자다(롬8:17). 더욱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다(롬8:14). 그렇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작정한 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사랑하는 자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고 있는 자이며, 고난도 달게 받는 자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라야 한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이 사람들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로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적인 주장인가?
그렇다면, 믿음을 통해서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에서 얼마든지 미끄러질 수 있을까? 그래서 구원이 취소되거나 상실될 수 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사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천상에 오르신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나와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 다음 사도바울이 쓴 헬라어 원문성경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첫째, 예수께서 지상에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그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고 있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요3:16,36, 5:24, 6:35~40), 그리고 이어서 주님깨 구원을 바라고 주님께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가 구원받는다고 했다(요6:35). 그리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마4:17). 그렇다. 예수님을 한 번 믿어서 그 믿음으로 미래까지 다 구원받을 수는 없다. 믿는 순간 분명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믿는 자는 다만 죽는 그순간까지 앞으로 더 살아야 하므로, 자신의 믿음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죄된 본성과 사탄마귀와 귀신들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는 계속해서 죄짓게 하여 넘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사도바울의 말이나 다른 서신서의 말을 들어보자. 사도바울은 딤전1:19에서, 먼저 믿었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그만 양심을 저버리고, 믿음에 관해서는 파선된 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 믿음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믿음에 파선할 수 있는 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의 경우를 보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3~7)"고 했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는 이런 자는 회개하지 못해서 지옥갈 들어갈 자들이므로, 이런 자들은 가짜로 믿고 있었던 자들이거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잘 보라. 히6"4~5에 나오는 자는 믿는 척하고 있는 가짜 신자를 지칭하는지 말이다. 아니다. 이미 성령을 받아 거듭난 체험을 한 자다. 그래도 그렇게 살다가 타락했을 경우에는 영영 회개하지 못해 지옥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이 말씀에 의하면 이기는 자가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하늘의 생명책에 이미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다시 지워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6. 나오며
그렇다. 믿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환경에 따라, 죄된 본성의 유혹이나 귀신이나 사탄마귀의 시험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자신의 믿음에서 넘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고 죄를 계속해서 짓거나, 주님을 버리고 떠나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얼마든지 믿음에서 파선하여 구원이 철회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었으나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따르지 않는 자는 결국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구원관이다.
그렇다. 믿는 이들은 소망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롬8:24).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그런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이미 그가 성령 받고 회개했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다시 범죄한 후에 회개하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무시한다면, 그는 다시는 회개를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같은 성경구절을 통해서, 믿는 자도 얼마든지 구원이 상실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믿음과 회개로 얻은 구원을 잘 보존할 수 있도록,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말씀을 먹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꼭 따라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나도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