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아가서에는 신앙과 관련된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장 신앙적인 책이 바로 이 아가서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 곧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만 보아서는 이 책이 무슨 연애 이야기인가 하고 판단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상당히 내공이 필요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거듭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주인공이지만 내면에서는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여호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 혼인 예식을 치르게 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성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점점 더 성숙해 가고 있는 신부감에 관한 이야기다. 대체 술람미 여인에게 있어서 성숙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녀가 솔로몬을 데리고 갔던 포도원과 합환채 그리고 새것과 옛것으로 마련된 그녀의 집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
2. 솔로몬은 왜 그녀를 성숙한 여인이라고 칭찬하였는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항상 좋은 관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놓쳐 버린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놓쳐 버린 신랑을 다시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3가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끈질긴 기도와 진심 어린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높여 드림으로 가능했다. 그 뒤 그녀와 솔로몬은 더욱더 가까워졌다. 신랑은 그녀를 아주 칭찬해 주었다. 그녀를 부르는 명칭에 있어서도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고 했다(아6:4,9). 그리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라고까지 칭찬해 주었다(아6:4,9). 솔로몬은 그녀야말로 진정 신랑을 기쁘게 하는 가장 귀한 존재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는 그녀가 자신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하여 신랑을 놓쳐 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신랑이 기뻐하는 일까지 준행하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아가서 6~7장이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되어서 더 성숙한 여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도 솔로몬처럼 양 떼를 낳고 양육하는 자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의 과정은 솔로몬은 그녀의 유방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유방에 대해 예루살렘의 딸들은 두 개의 암사슴의 쌍둥이 새끼 같다고 말했었다(아7:3). 이것은 그녀의 성숙도를 말해 주는 표상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장하였고 나중에는 솔로몬은 그녀를 먼저는 종려나무의 열매송이와 같다고 하였고(아7:7), 포도송이 같다고도 하였다(아7:8). 이것은 엄청난 성장이다. 왜냐하면 둘만을 산출하여 먹이던 신부의 삶에서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고 양육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술람미 여인은 왜 신랑을 데리고 포도원으로 가자고 했는가?
그러던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데리고 자기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으로 데려간다. 그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보여준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때 그녀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들(야생의 들판)로 가서 어떤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얼핏 보면 여자는 시선들이 많은 예루살렘 궁을 벗어나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외박을 하고 거기서 둘이 서로 사랑을 나누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결코 청춘 남녀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하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의 초청 장소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바른 분석이 필요하다. 왜냐햐면 아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부르기 위한 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번역본만으로는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동네'라는 말에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동네'로 가서 유숙하자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낸 허성갑 목사는 '고페르 나무 숲'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씀은 아직 포도원을 개척하지 않은 야생의 들로 가서 거기에서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코페르'나무는 아가서 1:14에 나오는 적갈색의 '고벨화'나무의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벨화'는 '코페르'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속죄, 덮음, 속전'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그 나무도 흰 색 바탕에 빨간색을 두르고 있는 꽃잎을 가지고 있어서 죄 없이 순결하신 예수께서 보혈의 피를 흘려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나무다.
4. 그녀가 포도원에서 남편에게 드린다고 했던 '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야생의 코페르나무 숲으로 가자고 한 말은 그에게 '그녀의 사랑'을 드리고 싶어서였다(아7:12). 즉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 놓았는지를 신랑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남편에게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과 이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보자는 말은 그녀가 일구어 놓은 포도밭과 그리고 그동안 수고하여 얻은 결과들을 신랑에게 보여줌으로 그녀가 신랑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를 대신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새로운 개척지에 또다른 신부를 낳고 그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를 밤을 새워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었다.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나무에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나무의 꽃이 피었는지를 보자는 말은 그녀가 어떻게 포도원을 가꾸어 놓았고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같이 보자는 말이었다. 이는 그녀가 신랑을 되찾았을 때 신랑이 하고 있었던 일이 어떤 일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남편의 뒤를 이어 포도원을 가꾸어 열매를 산출하는 일이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었음을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그녀는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고, 이미 그녀가 거둬 놓은 새 열매들과 묵은 열매들이 있는데 그것은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아7:13). 이는 그녀가 얼마나 신랑을 사랑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5. 신부의 성숙도는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는가?
고로 우리는 신부의 성숙도는 열매로 평가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도 또 다른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고 자라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열매가 없는 삶이었다면 그것은 진실하고도 참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8-20)" 그렇다. 성숙의 척도는 열매인 것이다. 지금도 맺고 있으며 이미 맺은 것도 있고 앞으로 맺을 열매를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미 자라고 있는 것도 있고 이미 거둬 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씨를 뿌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그렇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하며,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나에게도 그분의 열매가 맺히고 있어야 한다. 성품의 열매, 말의 열매, 기도의 열매, 전도의 열매, 영혼의 열매 등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아가서의 말씀 중에서 6~7장의 말씀은 신부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말씀이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자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술의 고백만을 가지고서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의 사랑이라고 받아 주시는 것일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드렸던 것은 입술의 고백이었는가 아니면 열매였는가? 술람미 여인은 그것을 신랑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했다(아7:12). 그런데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솔로몬을 포도밭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은 이미 포도나무와 석류나무가 꽃이 피고 있었다. 그런데 두 나무들은 아주 많은 열매들을 산출하는 나무들이다. 그녀가 그만큼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여 양육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집에 새것과 묵은 것들도 저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랑에 대한 신부의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야고보의 말처럼(약2:26), 우리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열매가 놓여 있는지, 지금도 일구고 있는 새로운 땅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없었다거나 혹은 작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우리의 말로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의 열매로써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15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