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표현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최종적으로 입성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다 입성할 수 있는가?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입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믿음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자는 장차 천국에 신부로서 입성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은 신약의 주의 종들 곧 세례요한과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 예수님께서 직접 그것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신부상과 신약의 신부상의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구약의 신부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약시대의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다. 그녀는 고된 노역의 생활을 하다가 솔로몬을 만나 왕의 아내가 됨으로 고된 노역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남편을 찾는 과정에서 기도와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왕이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정작 자신도 그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난 완전한 신부의 모습이다('아가서 강해 30강'을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술람미 여인 말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부들은 주로 창세기에 나온다. 그러한 여인들로는 하와, 사라, 리브가, 야곱의 4명의 부인들과 12아들들 그리고 이방 여인 룻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자 고엘(구속자)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다. 그러자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부의 예표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신약에 등장하는 신부들로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신약시대에 출현한 신부상은 구약시대에 나타난 신부상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시대의 신부상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비밀을 아는 자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신부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부상의 예표는 구약성경의 술람미 여인말고 있는가? 있다. 그들은 주로 창세기에 집중하여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신부상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창세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의 신부의 예표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이다. 그녀는 아담의 짝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자신의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징계를 보면, 하와는 임신과 해산의 고통이 더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남편이 그녀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도 둘째, 셋째, 넷째 신부의 예표는 다 족장들의 아내들인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이다. 우리는 '사라'의 예를 통하여,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했다는 것과 남편을 주인으로 섬김으로 신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리브가의 경우를 통해서 신부는 기도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과 신부는 남편을 머리로 아는 존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네 명의 아내를 통하여서는, 아내라 할지라도 신분이 다 똑같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아내들을 통해 난 자식들 12명의 사례를 통하여,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신부가 가려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거룩한 신부의 대열에 동참했던 자가 있다는 것도 배웠으니, 그녀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었다. 그녀는 과부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되어 준 보아스를 만나 신부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신부가 되려면 죄를 지으면 안 되는가? 그러한 사례에는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겼던 에서의 사례가 있고,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간통죄를 저지름으로 왕권과 제사장권과 땅의 축복을 잃어버린 르우벤의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야곱의 둘째부인이었던 라헬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는 그녀가 남편을 따라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그만 아버지의 가신(우상)인 드라빔을 훔쳐서 나오는 바람에 결국 노중에서 사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약속의 땅인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했다. 그렇다. 신부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신부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과 천국에서 누리게 될 신분이 강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맡은 일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누릴 신부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사례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기는 자의 예표를 보자. 그는 바로 '야곱'의 경우다. 야곱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얍복강에서의 기도도 혼신을 다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부러 져 주셨다. 그리고 그를 이기는 자라 불러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기도의 훈련을 잘 쌓고 기도로 어둠의 세력을 뚫는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맡겨진 일이나 모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여 계급이 올라간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예로는 바로 레아의 아들 '유다'와 라헬의 아들'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유다는 타고난 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왕중의 왕이신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형제가 위기의 순간에 몰렸을 때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음으로 그는 왕권신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왕권신부가 된 자이지만 조금 다른 자가 있으니 그는 '요셉'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늘에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래서 그는 꿈의 계시대로 절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룻이라는 여인은 이방 여인이어서 결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규정을 뛰어넘어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의 계명에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참신이라는 알고 그분을 붙듦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신부들의 전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3. 신약시대에 신부상은 구약시대와는 어떻게 달라지기 시작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구약시대에 살았더라면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신부의 대열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경우,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들을 총족시키기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시대에 태어난 자들로서,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나를 24시간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라고 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입과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신부가 될 수 있는 경륜상 더욱더 복받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약시대에는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이 이 땅에 있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란 한 마디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4. 신약시대에 이기는 신부가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신약시대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신부를 일컬어 '이기는 자(우세하는 자)'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신약의 이기는 신부가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라는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이기는 자들은 대체 누구이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선포했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경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회개(메타노이아)'였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고 외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을 가져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막1:4).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둘째, 이제 공생애를 첫 시작하는 예수님께서도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역시 '회개'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애를 다 마치고 승천하기 직전에도 주님께서는 회개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눅24:47~48)
눅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셋째,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이후, 방언을 듣고 물려준 자들에게 맨 처음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가 외친 말씀의 핵심은 회개해야 성령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이었다(행2:38). 그리고 그가 순교하기 전에 남긴 말씀도 역시 주님은 회개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벧후3:9).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넷째, 사도 바울의 바톤을 이어받아 이방인의 복음 전파에 힘썼던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선포의 주제는 회개였다. 그가 각 성에 가서 외쳤던 말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20:20-21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다섯째, 사도 요한 역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지만 그것이 효력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은 죄를 그냥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자백해서 용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요일1:9). 회개없이는 지은 죄가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섯째, 무엇보다도 승천하신 주 예수께서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을 불러 정말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 역시 그 중심 주제가 회개였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때 요한에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는데,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회개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계2:5[에베소교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16[버가모교회]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21-22[두아디라교회]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계3:3-4[사데교회]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18-19[라오디게아교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끝에 가서도 예수님께서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기의 더럽혀진 겉옷(두루마기)을 빨아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올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4).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회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했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회개하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자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고 하셨으니(계21:2,9), 신약시대에 최대의 신부의 관건은 회개에 있었던 것이다.
5.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자신의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결국 흰옷을 입은 자가 이기는 자인 것을 알 수 있고, 이기는 자가 될 때에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3:4~5, 4:4, 6:11, 7:13~14, 19:8, 19:14, 22:14). 그러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입혀진 흰옷은 어떻게 더럽혀지는가? 그것은 죄를 지을 때다(계22:15). 십계명을 어기면 옷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옷을 씻어서 희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를 위해 친히 고엘(구속자)로 오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피뿐이다.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만이 사람이 지은 죄를 깨끗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가 나의 더럽혀진 옷을 씻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요일1:9). 그때에 어린 양의 피가 우리의 더럽혀진 옷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계7:13~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은 수천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가 않는 것이다.
6. 나오며
회개는 백 번 천 번을 외쳐도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결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결국 그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정말 달라지고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인 것이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부지런하며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의 상급과 신분을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해결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지은 죄로 인하여 자신의 옷이 더럽혀져 있는 자는 결국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하늘에 있는 24장로의 음성을 통하여 말한다. 오직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려면 예수의 피에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아 희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그리고 예수 믿을 때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음을 본다. 죽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지 그때 가 보면 다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영이 겸손한 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서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날마다 희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그 날에 반드시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05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