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는 것일까? 칼빈주의자들은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이요, 선하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니 그것을 번복할 수 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바른 주장일까?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한 번 그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불가항력적인 은총에 의해 그는 결국에 구원받게 되는 것일까?
오늘날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잘못된 부분까지 이어받은 한국교회는 지금 값싼 구원론에 빠져 있다. 한 번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았다고 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특히 값싼 구원론이나 완성된 구원론을 외치는 자들은 롬8장에 나오는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에 근거가 되는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롬8장에 나오는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인간은 정말 불가항력적인 은총에 따라 구원받게 되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은 값싼 구원론이나 완성된 구원론 때문에 나타난 요즘 한국교회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1990년전까지만해도 급속한 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이후 성장세가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리고 나타난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도덕적인 탈선과 부정부패는 도를 넘고 있다. 왜 이런 증상이 이제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까지 나타나는 것일까? 여러가지로 그 이유를 분석해볼 수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값싼 구원론과 완성된 구원론이 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그 뒤에 어떤 삶을 살든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값싼 구원론 내지는 완성된 구원론이 앞으로도 더 많은 범죄를 양산해 낼 것이라로 판단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원론은 성도들의 신앙투쟁을 무장해제시키는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귀가 아무리 유혹한다 해도 그것이 구원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여기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았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는 상당수가 마귀와 영적 투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도 넘어뜨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데, 자신의 구원은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사람은 죽는 그 날까지 구원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구원에서 떨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위협하는 순간,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이 구원받는 것이 만세전의 성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지도 생각해 본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를 신앙의 안일함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보아도, 어떤 개인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이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전부 어떤 공동체 무리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 공동체는 회개하여 복음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맺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롬8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자, 롬8장에 나오는 중요한 성경구절 두 개를 살펴보자.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에 그리스도의 무한하고도 끊없는 사랑이 나온다. 그런데 값싼 구원론자들은 이것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에 대한 끊없는 사랑으로 해석해버린다.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신 사람만 끊없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 롬8:21~32을 읽어 보자.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대상이 누군지가 나온다. 그 대상은 "우리 모든 사람(32절)"이다.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바로 그 대상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롬8:35,39에 나오는 하나님의 끊없는 사랑의 최종적인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분명하게 '우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우리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값싼 구원론자들이나 완성된 구원론자들은 그 대상을 무작정 칼빈의 예정론 교리에 따라 해석해 버린다. 성경 본문에 따라 해석하지 않고, 교리에 나온대로 해석해버린다. 그들은 성경의 문맥을 따라 해석하기보다는 그들이 정한 교리에 따라 해석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최종적인 대상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 우리는 롬8장 전체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롬8장에서 분명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롬8:4에 이르러,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대상은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 공동체이다. 그들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그 영 곧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계속해서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는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는 자들은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죄된 본성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철저히 죽음에 넘기우는 자들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아니, 날마다 자신을 내려놓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려는 자들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값싼 구원론이나 완성된 구원론을 말하는 자들은 그만 칼빈의 교리 때문에 착각하고 만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으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이다.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죄된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행하는 자를 끊임없는 사랑으로 보호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잘못된 주장이 다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잘못된 예정론에서 나온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비록 죄를 짓고 있어도 그것이 자신의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죄를 지어도 그 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을 충분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만약 그렇게 안일하게 지내다가는 그만 구원에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깨어있으라. 정신차려야 한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집어삼킬 자를 찾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찾고 있는 대상은 자기 자녀들이 아니다. 자기 자녀였으나 하나님의 자녀로 소속이 바뀌어 있는 자들을 찾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구원의 경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마귀는 얼마든지 우리들을 구원의 노정에서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자신의 자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얻었지만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알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구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경주자임을 잊지 말라. 혹시 경주하다가 그만 중간에 탈락될되는 자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 아니,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했는가? 그러면 일차적으로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구원의 완성은 지금이 아니다. 우리가 죽는 그날이다. 아직도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있는가? 회개하고 끊어버리라. 아니 죄된 본성을 아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겨버리라. 그리고 성령을 좇아가라. 그리하여야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가 있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