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어떤 존재로 구원해 주셨는지 아는가? 우리는 주님이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받을만한 존재로 구원해 주셨다(사43:4).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코 우리의 행위들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사실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악된 삶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제12-1과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나를 누리라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행위를 통해 나를 평가하는 일을 그치는 것이 좋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귀가 우리를 평가해주는데로 살아가서도 아니 된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상대평가하려 한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래서 못배운 사람은 못배웠다고 주눅들게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주눅들게 한다. 이것은 그에게 곧 열등감으로 나타난다. 열등감만큼 사람을 좌절시키는 것은 없다. 사실 열등감은 비교의식에서 출발하는 데,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누군가로부터 비교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마귀는 늘 비교의식을 심어주고, 열등감을 갖게 하여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우리의 자존감마저 무너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내 행위로 나를 보지 말아야 하고, 마귀가 주는 비교의식이나 상대평가로 나를 보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를 평가하거나, 상대방이 나를 평가하게금 내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은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참고로 이 평가는 마지막 심판 때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는 3가지 관점이 있다. 사43:4을 보라.
첫째, 가치면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다 하신다. 우리는 강가의 흔한 돌멩이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걸작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시고 창조하실 때에 하나하나를 각각 따로 따로 만드셨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우리를 죄와 저주로부터 건지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목숨과 맞바꾸셨다. 이것을 우리는 '대속(속량)'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저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당신의 아들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는 예수님의 목숨의 가치다. 즉 우리값은 예수님짜리인 것이다. 우리의 이름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아신다.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둘째, 신분면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다 하신다. 그렇다. 우리의 신분은 이제 하늘의 왕족이 되었다. 그 전에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였기에 마귀에게 속한 자요 일종의 마귀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늘의 왕족이 되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종의 약혼식을 치렀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예수님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약혼의 관계는 법적으로는 완전히 결혼의 관계와 똑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왕족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한 존재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며느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 개나 돼지처럼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신분이 상승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메이커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관계면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믿기 전에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원수관계에 있었고 진노와 저주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하나님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샀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지금 죄짓고 있다고 해서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 그때는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라. 가룟유다처럼 자신을 학대하다가 자살하면 지옥행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구원하시려고 하셨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그러한 사람이 되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그러면 차츰 예수님짜리다운 행동이 나올 것이고, 하나님의 가문의 사람답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가장 사랑하고 주님의 가장 사람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 실패자로 바라보고 있는가? 낙오자로 바라보고 있는가? 구제불능의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가 된 것이다. 그분이 대속의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실 때에 그분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받는 존재로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참고 기다리신다. 때로는 장계하기도 하지만, 잘못되었으면 즉시 회개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계획하신 나의 정체성을 선포하라. 그러면 어느순간부터 우리는 신의 아들과 딸처럼 말하고 행동하게될 것이다. 아무데라도 덜썩 눕지 말라. 입이 있다고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 가볍게 행동하지 말라. 남들에게 굽신거리듯 살지 말라. 당당하라. 자신감을 가지라. 나는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받을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사43:4)
2014년 03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