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성도의 견인(堅忍)'이라는 교리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성도의 견인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은 결코 구원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보존하시어 천국에 이르게 하신다는 교리다. 이 교리에 의하면, 더 많은 성도들이 안전하게 천국에 입성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이 교리 때문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다가 수많은 성도들이 지금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칼빈의 예정론 중에서 가장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성도의 견인(堅忍)'교리가 과연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칼빈의 5대교리란 무엇인가?
여러분도 알다시피 칼빈의 예정론 교리는 크게 5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전적타락(Total deprivity),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이라는 교리가 그것이다. 흔히들 이것을 일컬어, 영어앞글자만 따서 “튜울립(Tulip)” 교리라고 부른다. 특히 이 5가지 교리 중에서 맨 마지막 교리가 바로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다. 흔히들 '성도의 견인'을 말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예정된 자를 이끄시되 천국까지 이끌어 데려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견인(堅忍)’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보면, 그 단어가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견인(牽引)'이 아니라, 굳게 참고 견딘다는 뜻의 '견인(堅忍)'인 것을 알 수 있다.
2)칼빈의 5대교리 중 성도의 견인 교리란 무엇인가?
우선, “성도의 견인교리”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보자. 장로교의 신조의 대명사라고 일컬어지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7장 1항을 보면 “성도의 견인” 교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안에서 용납해 주시고 그의 성령으로써 효력 있게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마지막까지 그 상태에 꾸준히 인내하여 머물러 있게 되며 또한 영원히 구원 받을 것이다.”
곧 “성도의 견인”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성도가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여러가지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견디어 결국엔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신앙이 끝까지 보존되어 죽는 날까지 자신의 신앙을 유지함으로 구원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이 교리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죄된 본성이 날마다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육체 밖에서는 더욱이 귀신들이 있어 할 수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지옥으로 끌고가는 마당에, 우리가 한 번 얻은 구원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그것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3)성도의 견인교리, 믿고 따라가도 되는가?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견인교리에 따라 성도가 한 번 구원받으면 결코 멸망받을 수도 없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없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만세전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성경에 근거한 교리인지에 대해, 성경을 유심히 들여다보아 확인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 외로 수많은 성도들은 이 교리를 무턱대고 신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원받기가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대로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빈의 교리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칼빈의 교리를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했다가는 우리의 영혼을 담보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성도의 견인만큼 무서운 교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탄은 지금도 이 교리를 이용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옥으로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도들 중에는 이 교리 때문에 자신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한 줄로 알고 있어,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짓고 있는 죄가 정말 나를 지옥가게 하는 죄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나를 회개시키겠지."하고 죄를 회개하지도 않은채 그냥 넘겨버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정말 내가 회개하려 하지도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강제로 회개시켜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장로교인들은 자기자신은 이미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이고 때가 되어서 자신을 구원으로 불러주셨으니, 자신의 구원은 이미 보장되어 있으며, 또한 안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구원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믿음의 경주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성도의 견인 교리만 믿다가 회개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성도가 얼마나 많은데 이러는가! 사실 예정론 가운데서도 이 다섯번째 교리 곧 “성도의 견인”교리가 결국 성도들을 지옥에 보내는데 가장 많이 쓰임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4)성도의 견인교리가 어떻게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는가?
이제는 성도의 견인교리가 왜 성도들을 지옥에 떨어뜨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셨으나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은 천사는 섬기는 종으로 예정하셨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후사로서 예정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특정한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적이 없으시다. 만약 어떤 사람에 관한 예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사역에 관한 예정일 뿐, 결코 그 사람의 구원에 관한 예정이 아님을 알라. 그러므로 내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정한 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무런 조건없이 구원의 안정성이 담보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성령을 의지하면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지,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한 번 믿어서 구원을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이미 구원 안으로 들어온 자라 할지라도 타락하거나 믿음에서 떠나게 됨으로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린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가룟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있다. 그리고 초대교회시대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다. 이들은 전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였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죄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리고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더니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떤 개인이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셋째, 칼빈주의자들은 믿음과 회개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향한 인간의 책임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셔야 믿는 것이고 회개도 하나님이 시키셔애 회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믿을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니, 믿을려고 일부러 시도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한다. 회개도 자신이 하려고 노력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시켜주셔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언제나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신다(딤전2:4). 날마다 말씀을 보고 기도하여 믿음이 더 견고해지기를 바라고 계신다. 우리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믿음이 스스로 견고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자동적으로 우리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믿지 말라. 신앙생활이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회개해야 하는가? 죄를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한다. 성령께서 회개하도록 시키실 때까지 회개를 뒤로 미루고 있다면, 당신은 죄를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 회개할 시간은 지금이다. 죄은 죄 때문에 사탄이 나를 공격하기 전에 회개하라!
그렇다. 하나님은 결코 만세 전에 예정한 어떤 사람만 구원하시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얻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회개하여 구원얻기를 바라고 계신다(딤전2:4, 벧후3:9). 그러므로 믿는 일과 회개하는 일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대신해 주는 줄로 착각하지 말라.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책임이 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회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결코 강제로 회개시키지는 않으신다. 다만 본인이 회개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5)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얻기를 바라신다.
예수께서는 성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셨을까? 칼빈의 예정론자들은 제한속죄를 신뢰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고 죽을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속죄를 이루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속죄사역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딤전2:6).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의 효능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을만큼 크고도 충분하다. 다만 누군가가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자신이 주님의 속죄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 뿐이다.
딤전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만약 성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만 구원하신다고 하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외쳐서는 절대 아니 된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으리라(요10:1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그리고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도 이렇게 말해서는 아니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신다(요일4:15)"라고 말이다. 그러면 만약 그렇게 누구든지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는데, 행여 성부가 계획하지 아니한 자가 와서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6)성도의 견인교리를 지지하는 성경구절이 있는가?
이제 우리는 성경을 직시해야 한다. 칼빈주의자들은 이때껏 “성도의 견인교리”를 성경처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칼빈주의의 교리는 교리일 뿐이지 결코 정확무오한 성경말씀이 아니다.
이제 지금부터는 칼빈주의자들이 성도의 견인교리의 근거로 말하는 성경구절을 좀 들여다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인용한 성경구절은 성경말씀의 본뜻을 잘못 주장한 것에 불과하며, 성경을 억지로 꿰맞추려고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 그 실례들을 들어보자.
첫째,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예수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결국 내쫓지 않고 다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요6:37). 하지만 본문은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중성, 단수)이 나를 향하여 장차 다다를(도착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즉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지혜와 명철과 능력과 권세 등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뜻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예수에게 주시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특별한 사람만을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주님께로 가지 않아서 문제다. 이는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아가되, 자기 자신을 위하여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에게 나오는 자를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믿다가도 주님을 믿지 않거나 혹은 주님을 따르다가도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7-28)".
칼빈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한 번 주시는 영생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손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도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느냐고 하면서, 그러니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도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내 음성을 들으며"와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에 사용된 동사형태가 둘 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인칭, 복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으며,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뜻이며, 그들이 영원히 멸망당하지도 않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이 문장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따르느니라"다. 그렇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지, 결코 한 번 듣고 한 번 믿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도 계속해서 주의 음성듣기를 거부하거나, 주님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는 결국 멸망받고 말 것이다. 그런 자는 결국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다른 구절들도 다 이와 비슷한 맥락들이다. 그렇다.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는 현재진행형인 것이지 결코 완료형이 아니다(빌2:12). 사실 구원에 관한 모든 준비는 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 마련해 놓으셨다(마22: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시켜 이 잔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시고 계신다. 그때 그 잔치자리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라. 거기에 보면, 언약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은 왕의 아들의 잔치에 가겠다고 이미 약속해놓은 상태였지만 그날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았다. 어떤 이는 밭을 사놓았는데 그곳에 가보야겠다고 했으며, 어떤 이는 소 다섯 쌍을 사놓았으니 그 소들을 검사하러 가보아야겠다고 하면서 가지 않았다. 보라. 이들은 전부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잔치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날 그들을 구원 안으로 초청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이었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책임은 그들 자신이 져야 한다. 그리고 훗날 주님께서 이런 자들을 심판하실 때에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심판받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의의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잔치를 그들 자신이 스스로 거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에, 당신이 예정해 놓은 사람만 구원하고, 당신이 예정하지 않는 사람을 버리신다면, 하나님은 마지막 날 그들을 심판할 권한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마저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하나님, 공평하지 않는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7)칼빈교리는 엄청나게 큰 맹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리를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 그것을 따라가면 결국엔 지옥행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사람은 없다. 칼빈도 온전하지 않음을 알라. 사실 우리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 죄된 본성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고, 자기 밖에는 온갖 것으로 유혹하는 귀신들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칼빈의 교리를 따르는 자는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개를 하지 않아도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자신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회개할 마음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시므로,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회개시킬 것이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잘 회개하지 않는다. 회개를 늘 뒤로 미룰 뿐이다. 죄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라. 회개는 탕자가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버지가 대신 해 주고 있는가를 말이다. 회개는 하나님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자 보라. 그때 둘째아들이 거지가 되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말이다.
눅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자, 누가 회개하고 있는가? 과연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회개할 책임은 다 죄를 지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은 둘째아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자는 둘째아들인 것이다. 그가 지은 죄는 무엇이었는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한 것이 죄였다. 그러니 마귀에게 홀리어 허랑방탕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거지신세가 되었으며,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니 죄를 지은 자는 아들이지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자도 둘째아들인 것이지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책임은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면 즉시 자백하고 고백하기를 바란다. 회개를 뒤로 미루어서는 큰 일 난다. 회개를 자꾸 뒤로 미루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는 죽을 때에도 회개하고 죽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에 예수 믿었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라. 지금 스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말 것이다. 천국은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결국 죄를 처리한 사람이다. 죄를 해결한 사람이다. 천국은 죄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하여서 죄로부터 빠져나오라.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천국에도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