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우리도 어떻게 기도할 때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가?(요11:39~44)_2019-03-15(금)

https://youtu.be/Zw6bNRLhgOc

 

1. 요한복음은 매우 독특한 복음서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말씀을 땅의 관점에서 하늘의 관점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와 마가와 누가의 공관복음서들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에 관해 촛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관해 촛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공관복음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오병이어의 기적만 일치할 뿐입니다(요6:1~15). 그러므로 신학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요한복음이 가진 성경으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1958년 유대 사막에 위치한 마르사바 수도원에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기적이었던 "나사로의 기적" 사건이 비밀마가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었음을 발견함에 따라, 요한복음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늘에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서 과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더 알 수 있도록 요한에게 요한복음을 쓰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사로의 육체 부활 사건은 왜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일까요?

 

2.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된 특별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기적 가운데 나사로의 소생기적과 같은 사건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것이었기 때문에 요한복음에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늘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기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려내심으로, 그것도 나흘이 되어 이미 육체가 썩고 있고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나사로를 살려냄으로서,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이요 그분이 부활이신 것을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요11:25~2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전갈을 받고서도 일부러 천천히 베다니로 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도중에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이미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12제자들과 마르다의 가족들이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생명이요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아 알도록 하기 위해, 나사로를 깨우러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나사로의 동생이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마르다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나요?

 

3. 마르다는 병든 자신의 오라버니를 고쳐 살려내기 위해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만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되던 날에 도착하셨으니, 그녀는 예수께서 오셨다고 해도 더 이상 하실 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죽기 전에 오셔서 병든 것을 고쳐주실 수 있는 주님으로 믿은 것이었지, 죽은지 좀 되어 썩어가고 있는 몸을 지닌 사람마저 원상태로 되돌려서 다시 살게 하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엇던 것입니다. 다만, 믿음이 있는 자는 죽은 자라도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살아날(부활할) 것이라고는 믿고는 있었습니다(요11:24).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새로운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구든지 예수님이야말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진정 믿는다면 그녀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것이었습니다(요11:40).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난 것(소생기적)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 곧 그녀의 오빠였던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와 믿음이 어떤 것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4.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당신 자신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8). 하지만 또하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훗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누군지를 그때도 많이 나타내 보여주셨구나 하고 깨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나사로의 부활소생기적 사건입니다. 물론 이 일은 영원히 부활체로 다시 사는 기적의 사건이 아니라 육체를 다시 살리는 소생기적 사건에 해당합니다. 고로,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도 안 되는 소생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주여, 이 일로 하여금 내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확실히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단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군신지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당신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존재인지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요11: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40).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가진 문제를 놓고서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내 유익과 만족을 위해 단지 하나님께서 내 청을 들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5. 마르다의 믿음은 주께서 병든 자라도 예수께서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즉시 살려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아직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마르다의 믿음 정도입니까 아니면 예수께서 가지고 있는 믿음에 가까운 것입니까?

 

2019년 3월 1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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