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어떤 것이 진짜 방언통역이며 어떤 것이 가짜 방언통역인가?(고전14:12~15)_2019-03-27(수)

https://youtu.be/TLVCxUImc_M

 

1. 방언은 지금도 있으며, 방엉통역도 역시 현존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으나 하나님께 말하는 영의 언어이면서 영의 기도며, 이것을 초자연적으로 통역해 내는 것을 일컬어 "방언통역"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 방언은 결코 외국어가 아닌 것이며, 방언통역도 외국어를 통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방언이 외국어이고 방언통역이 외국어를 통역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바울은 더욱 영적인 은사로서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방언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외적인 성령세례가 주어진 결과로서 있는 선물이며, 이것은 초자연적인 어떤 것일 뿐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을 하려면 당연히 방언이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은 방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받게 되는 더 나은 영적인 은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통역은 초자연적은 은사이기 때문에, 내 방언을 누군가 통역한 것이 과연 진짜 방언을 통역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마음이나 귀신이 주는 생각대로 통역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진정 어떤 것을 "방언통역"이라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2. 성경에서 방언에 대한 "통역"은 명사로서 쓰일 때가 있고 동사로서 쓰일 때도 있습니다. 명사로 쓰일 때에는 "헤르메니아(hermenia)"로서 성경에 딱 2번 나오며(고전12:10, 14:26), 동사로 쓰일 때에는 "디엘메뉴오(diermenuo)"로서 성경에 6번 나옵니다. 둘 다 비슷한 의미인데, 그 뜻은 "통역하다. 번역하다. 해석하다"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방언통역은 직독직해하는 통역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방언통역들 즉 상대방의 영을 읽거나 영의 파장을 읽어서 영감으로 말하는 거의 모든 통역은 다 "방언통역"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방언을 듣고 그것을 해석해주는 것은 방언통역이 아닙니다. 방언통역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냥 상대방의 방언이 통역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방언통역은 실제로 통역하는 것이 아니며, 영의 흐름을 읽어서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훈련도 시키고 방언통역의 은사를 전수해주는 세미나까지 열고 있지만, 이것은 성령을 우롱하는 처사인 것이지 진짜 방언통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영의 느낌을 말해내는 것일 뿐, 그것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방언통역"의 실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어떤 것이 실제로 방언을 통역하는 것일까요?

 

3. 자신은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방언통역자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스스로를 "대언자"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이 사용하는 "대언자"라는 단어는 방언 중에서 자신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해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스스로를 "대언자"이기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가짜입니다. 물론 그러한 말해냄 안에는 영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놀라운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두고서, 100% 성령의 음성이거나 하나님의 뜻을 통역한 것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이 깨달아서 말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는 귀신이 영감으로 집어넣어 그 사람의 생각을 파고들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두고 성령이 주신 방언통역이라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어떤 것들이 방언통역이 아니라 자기의 영이 그냥 말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그것은 다음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자신이 현재 어떤 당면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만약 방언통역으로 어떤 결과를 미리 알려준다든지 어떤 시기를 말해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100% 방언통역이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누군가의 영의 느낌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결코 성령의 음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래도 그것을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믿고 따라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는 반드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을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결코 당면한 문제의 답을 우리에게 찾아서 들려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시기를 통역하거나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통역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100% 가짜 방언통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이러한 사실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으나, 수많은 시행착오나 경험을 통해서 나중에 확인하게 되실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이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 자신이 전혀 믿기지 않거나 내키지도 않는데 그래도 그것을 선택한다면 그때에 주어지는 대박같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까지든지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을 받을 때에 어떤 문제를 놓고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방언통역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기독교무당점쟁이에게 점을 치고 있는 행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한 방언통역은 없으며, 성령은 그렇게 지시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방언통역을 통해서 나오는 방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 미래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을 주께서 우리의 믿음과 선택에 따라 이뤄가실 것이라는 내용인 것이지, 이번에는 이것을 하나님께 이뤄주실 것이고, 다음에는 그것이 안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5. 또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과연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즉 A양과 결혼해야 하는가 B양과 결혼해야 하는가? 혹은 이번에 내가 과연 땅을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고, 신앙 양심과 지성의 판단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이지 "네가 A양과 결혼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니라"라든지, "이번에 그 문제에 당신의 손을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결코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자는 방언통역을 빙자하여 무당점잼의 일을 하고 있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에게 무례하게 행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성령님은 결코 당신의 결정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결코 시기를 당신이 정해놓고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분량에 따라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되, 혹시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일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거나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것을 우리가 또한 선택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정해놓은 답안을 미리 알려주시며 그것을 강요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내일 또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2019년 3월 2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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