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어떤 그릇이든지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무엇인가(시32:1~11)_2019-04-02(화)

https://youtu.be/9V0kWjz6ufQ

 

1. 시편32편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쓴 시편이며 또한 어떤 종류의 시편입니까?

 

2. 시편32편은 다윗이 쓴 시편이며, 이 시편은 150편의 시편 중에서 7개의 회개시(참회시)(시6,32,38,51,102,130,143) 가운데 하나입니다(시32:1~7). 그리고 동시에 교훈시(시32:8~11)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이자 충성스러운 자신의 부하였던 우리아 장수를 죽게 한 뒤 나단선지자의 방문을 통해 그 죄를 책망받았을 때에, 자신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토설한 다음에 쓴 시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시편32편을 통해서 무엇을 언급하고 있습니까?

 

3. 시편32편은 죄를 용서받은 자의 기쁨을 표현한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죄를 지은 것을 지적하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날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의 진액이 다 쏟아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말라가고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가 와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고 하나님께서 다 그것을 보고 있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하나님께 하나도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토설하지 아니하면 괴로워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히 회개한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강물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진심어린 회개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회개했던 다윗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대체 무엇입니까?(시32:8)

 

4.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은 다윗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32:8)"는 음성이었습니다. 이를 직역해보면, "내가 네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고 지시할 것이며, 내가 너를 눈여겨보고 너를 조언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앞 길을 가르쳐 보이고 지시하시며 또한 조언해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을 요청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요청하는 자에게 그러한 길을 제시해주시지만 어떤 조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숨기지 아니하고 토설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존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래도 잘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부모이든지 아니면 학교 교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모나 교사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를 만드신 조물주(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는데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그냥 대충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부모의 유전형질에다가 그의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을 수 있는 복과 함께 그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더 잘 아시는 분은 사실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지를 이미 계획하시고 창조하신 뒤에 이 땅에 내보내고 있으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그분의 지음받은 목적대로 이 땅에서 쓰임받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안타깝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다만 몇몇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 사람을 보낸 목적대로 살아가고 그리고 쓰임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고자 했던 목적대로 쓰임받게 되는 것인가요?

 

5. 사람이 이 땅에서 제대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의 필수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부모의 유전형질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려는 목적에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사도바울은 그것을 여러 종류의 그릇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즉 큰 집에 가면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른 종류의 그릇일지라도 사람은 딱 두 종류로 쓰임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는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이요 또 하나는 천하게 쓰임받는 것입니다(딤후2:20~21).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이 세상의 풍조나 죄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면, 그는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그릇이든지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에 깨끗한 그릇이 되고 그래서 그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하게 쓰임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비로소 알았습니까? 지은 죄를 회개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큰 일입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큰 그릇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한다면, 그가 큰 그릇으로 지어진만큼 악하게 쓰임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큰 그릇으로 지음받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는 악한 쪽에서 큰 그릇으로 쓰임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이 어떤 그릇으로 지어졌든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쓰임받는 그릇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가 관건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시편32편은 참회시이지만 동시에 교훈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2019년 4월 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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