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는가?(계5:7~10)_2019-05-30(목)
1. 천상에 계신 어린양은 왜 찬양받기에 합당한가?(계5:9~10)
2. 하늘에 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천상에 계신 어린양이 찬양받아야 할에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새 노래로 노래했다. 그것의 내용은 3가지였다(계5:9~10). 첫째, 어린양께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어린양께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이다. 셋째, 어린양께서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왕국)과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린양께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왜 그분이 찬양받기에 합당한 이유가 되는 것일까?
3.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찬양받으셔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계5:9~10) 그것은 첫째로 그분이 죽음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부 다음의 두번째 하나님인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계3:12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새 이름을 "예수"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이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신성의 전능자이시다. 그분이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요,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죽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셨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분이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그것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위해 영이신 그분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딤전3:14, 요1:18). 그리고 실제로 때가 이르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셨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스스로 죽기 위해 피조물이 되셨고 정말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찬양받으셔야 할 합당한 첫번째 바로 그 이유다. 사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해 기존의 헬라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제2위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것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유대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홀로 유일하시다는 관점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이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면서 7가지 송영(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으로 찬양을 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유대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나는 그분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사칭하는 사깃꾼이든지 말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자들을 통하여 오직 한 분 이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도 하나님께 바쳐야 할 동일한 경배와 찬송을 돌리고 있다. 그러니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R.보쿰(Richard Bauckham)은 캠브리지 대학 신약신학 강의 시리즈에 나오는 "요한계시록신학"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고서 또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을 사칭하는 두번째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4. 특히 R.보쿰 신학자는 이어서 한 분 하나님에 예수님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책의 서두의 인삿말이다. 즉 보쿰은 요한계시록은 다른 서신형태의 신약성경 책들과는 달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아주 독특하게 소개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소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다른 서신책들은 책의 서두의 인삿말이 보통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이와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점으로는 첫째, 편지의 인삿말에 "하나님 아버지"라 공식명칭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대신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1:4)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계1:8에 나오는 "주 하나님이요 전능자이신 분 곧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에 대한 소개를 그렇게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칭호인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칭호는 계1:17과 2:8과 22:13에 나오는데 이 때는 이 명칭을 예수님에게 붙이고 있다. 고로 예수님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둘째, 보통 서신서에서는 서두의 인삿말에 "성령"이 들어가지 않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계1:4). 그런데 "보좌 앞에 있는 일곱영들"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스가랴서에서는 "하나님의 눈들"로 묘사되어 있고(슥4:10), 계5:6에 의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눈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영이 곧 성령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은 세번째 하나님이라기보다는 한 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당신의 또 다른 영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못하시겠는가? 고로, 요한계시록의 인삿말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지 다른 여러 서신서들의 경우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즉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다른 묘사였던 것이다.
5. 결국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성부 하나님으로 고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분 하나님은 원래 보이지가 않으니, 그분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것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 한 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 돌려여야 할 찬양과 경배를 고스란히 예수님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각각 따로 있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소개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헬라적 기독교에 익숙해 있는 오늘날의 우리 믿는 이들에게 유대적 기독교적인 시각의 차원으로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한 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인류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주권자이시다.
2019년 5월 30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