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기는가?(계15:1~4)_2019-06-17(월)
1. 요한계시록 2~3장에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서 보낸 편지 가운데 "이기는 자"에 대한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그 축복들로는 첫째,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계2:7). 둘째,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계2:11). 셋째, 감추었던 만나를 받고 흰 돌을 받게 될 것이다(계2:17). 넷째,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새벽별을 받게 될 것이다(계2:28). 다섯째, 흰 옷을 입게 될 것이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인정받을 것이다(계3:6).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과 그분의 새 이름이 그 사람 위에 기록될 것이다(계3:13). 일곱째,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줄 것이다(계3:21) 등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뜻은 "굴복시킨다. 정복한다(conquer)"는 의미라기보다는 "승리한다(triumph. win)" 혹은 "이겨낸다. 극복한다(overcome)"는 의미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결국 이긴다는 것은 사탄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어 죽음을 맞이하게 때에 자신의 영혼이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 마귀가 있는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이긴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이 이기려면 무엇인가가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이겨야 할(이겨내야할, 극복해야 할) 상대는 대체 누구입니까?
성도들이 어떤 싸움(영적 전쟁)에서 이겨내야 할 상대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입니다(계15:2). 여기서 "짐승"이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불신세력(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계13:1~10)과 더불어 교회내에서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세력(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계13:11~18)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더불어 짐승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경제시스템)이 첫번째 우리의 상대입니다. 둘째는 용(사탄마귀)입니다(계12:11). 용은 옛뱀이자 사탄마귀로서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장 루시퍼를 가리킵니다. 셋째는 열 뿔입니다(계17:14). 이들 "열 뿔"은 세상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짐승의 머리에 난 뿔들로서 짐승이 하는 일을 돕는 세상 왕들을 가리킵니다.
4. 성도들이 짐승과 용과 열뿔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도들이 대적들을 이기려면 2가지가 필요합니다(계12:11). 하나는 "어린양의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모든 죄를 사해주는 도구이자 근거입니다. 결국 성도들이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회개하면 대적들이 성도들을 결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주 하나님이신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때로는 죽임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5.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의 현장에 맞부딪힐 때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적자들은 결코 성도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대적자들은 우리 성도들의 육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마10:28~29). 그들이 설령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는 그들과 영원히 이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우리의 대적들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앞에서 비굴하게 행동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가는 지름길로 안내해주고 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죠. 더욱이 사람이 죽는 일에 있어서는 단 한 건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목숨 하나 때문에 벌벌벌 떨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6월 17일(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