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은 왜 그토록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또 그것을 그토록 기뻐하시는가?(눅17;3~4)_2019-07-30(화)
1. 율법의 기본적인 심판의 법칙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출21:24)"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지은 범죄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사람이 되시어 그 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일까요?
범죄한 것은 사람이기에 사람이 그 벌을 받음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벌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당신이 대신 벌을 받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이 지은 죄로 죄값을 치르는 것은 하나님의 값진 희생을 욕되게 하는 것이요 아무 가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에게 범죄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자신이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한다면 아니, 그 죄를 하루에 일곱번씩이라고 와서 회개한다면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체를 지녔기에 그것 때문에 범죄하고 넘어지고 자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넘어졌어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면 꼭 용서해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얄팍한 자존심을 굽히기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꼭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하는 것은 의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주를 받고 영원히 불못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는 것인데도 굳이 하나님께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자존심을 사탄을 이용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룟유다도 어쩌면 그러한 인간의 자존심을 이용하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약해서 더 강한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을 주시려는 하시는 분의 존재를 인정해드리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바라고 계시며 또한 그렇게 해 주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4. 베드로는 왜 예수님에게 사람이 자기에게 범죄하면 일곱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까요?
그것은 많이 양보해주는 일이락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랍비들은 사람이 자기에게 범죄했을 때에 몇 번이나 용서해주도록 가르쳤는가 하면 3번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그것의 두 배하고도 한 번 더 용서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이 누구에게 죄를 범하였는데, 그 사람을 찾아가 또 용서를 구한다면 일곱번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씩이라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21~22), 주님은 사람이 약하다는 것을, 범죄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서를 바라는 자의 손길을 절대 뿌리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그것이 내 마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를 바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가 회개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까히 했던 말씀을 요약하면 3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를 잘 아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육체의 약점을 지녔기에 하루에 일곱번이라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위해 행하신 속죄를 값어치 있게 하는 것이 곧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신 이유는 속죄를 위함인데, 주님께서 이루신 속죄라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회개없이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희생이 아무 의미없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며 우리가 그 혜택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주께서는 우리가 회개하여 돌이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겔18:31~32)
겔18:31-32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2019년 7월 30일(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