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요한은 왜 당시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요한일서를 써야 했는가?(요일2:18~26)_2019-08-09(금)
1. 도마복음서와 영지주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도마복음서'는 1945년 12월,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자들의 책들 중의 한 권의 책입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이름만 알려져 있던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부시대의 초기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유스(A.D.260~340)가 자신의 저서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중 제25장 "진서로 인정된 성경과 인정되지 못한 성경"의 부분에서, 이단자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만들어낸 책 가운데 "도마복음"이 있다고 언급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45년까지는 도마복음서가 진짜 존재하고 있었는지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45년이 그 책이 발견되었는데, 그때에는 콥트어(이집트 고대언어)로 번역된 사본책이었습니다. 물론 사본은 잘못 기재된 부분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A.D.1898년에 이미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서의 일부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콥트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은 A.D.340년경에 필사된 것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A.D.324년에 완성된 유세비우스의 책을 보니, "도마복음"이라는 책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A.D.324년이전에 이 책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교회사 책에서, 베드로복음, 도마복음, 안드레행전, 요한행전 등은 다 사도들의 이름을 빌린 위서(가짜성경)이라고 기록해두었습니다. 고로 우리는 도마복음은 약 3세기에 기록된 위서인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2. 영지주의가 교회에 당시 미치는 폐해는 얼마나 컸습니까?
유세비우스보다 약 100년 앞선 시대에 살았던 초기 교부이자 변증가였던 "이레네우스(A.D.130?~202)"은 자신이 기록한 "이단을 반박하며"라는 변증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세기 전체를 통해서 영지주의만큼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여러 이단들이 잘못된 사상과 주장들을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기록하기 변증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영지주의"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들은 사도들이 세워놓은 온전한 신앙을 허무는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적 논리들이 결국 사도들이 증거했던 신앙과 성경기록들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기독교 영지주의의 창시자 마르시온(A.D.85~160)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영지주의주의자들 중에 유명한 인물들로는 "마르시온",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 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람을 들다면, 그는 아마도 "마르시온(A.D.85~160)"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사도바울의 후계자라고 하면서, 사도들의 신앙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성경말씀이 아니라고 거부하면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신(여호와)은 물질세계를 창조한 저급한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사도바울의 저작으로 알려진 사도바울의 10개의 서신들과 복음서로서 "누가복음"만을 성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은 깨끗하고 육은 더럽다고 여기는 영지주의의 사상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이끄는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물질세계를 만들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저급한 신이라 했고, 예수님을 영지주의의 최고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성육신(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심)인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그것을 부인했습니다.
4. 사도요한은 A.D.90년경 왜 "요한일서"라는 서신을 써야 했습니까?
사도요한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젊었던 가버나움의 부자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이후, 그는 예수께서 죽으시던 현장 곧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죽음을 무릎쓰고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온 그를 귀하게 보셨고, 그를 끝까지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A.D.34년경 스데반의 순교이후 다른 사도들은 비록 각자의 선교지 현장으로 떠나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거의 다 순교했지만 사도요한만큼은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요한은 A.D.90년경에 요한일서를 기록할 수 있었고 A.D.95년경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일서"는 1세기말 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놀라운 말씀인데, 사도요한은 당시에 적그리스도이자 거짓선지자들이 교회가운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원래는 사도요한과 같은 정통기독교에게 속해 있었으나, 자기들로부터 떠나간 자들로서(요일2:19), 그들은 진리(영지)를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로서(요일2:21),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자(요일4:2~3) 교회를 "미혹하는 자들"(요일2:26)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벌써 영지주의가 소아시아와 로마에 있는 교회 가운데서 침투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려고 했습니까?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여,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빛과 어둠"의 개념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임을 알려주려고 했었고(요일1:5~6, 2:8~11), 사람은 마귀에게 속하여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으며(요일3:4~5,8),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그분의 피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요일1:9,2:12)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요일1:7~9, 2:12). 그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은 빛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에에 죄인은 결코 그곳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없애주시고 살려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요일2:2, 4:9~10). 그런데 당시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요일2:22); 또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요일4:2~3).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으며, 단지 예수님을 영지주의의 선각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영지를 깨우쳐 주려고 온 선각자가 아니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 구세주로서(요일4:14),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자(요일5:5) 그리스도이시며(요일5:1), 하나님 자신(요일5:20)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영지를 깨달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서영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으로 알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요한일서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도마복음을 놓고서, 이것만이 진짜 역사적인 예수님의 말씀이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은 다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속임수와 장난에 넘어가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도들과 그의 속사도들에 의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달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속죄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만을 나 자신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믿고 따라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년 8월 9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