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어떤 사람이 과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를 수 있으며 구원을 받게 되는가?(딤전2:3~6)_2019-08-02(금)
https://youtu.be/behab0pZiRo
1.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알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진리의 온전한 지식을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 진리의 온전한 지식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딤전2:4). 그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딤전2:5).
딤전2:4-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딤전2:4-5[직역]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신다. 그리고 진리의 온전한 지식 안으로 [단번에] 오는 것을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의 중재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자기자신을 한 대속물로 주셨던 분이시다.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속한 때에 [주신] 증거[다]
2.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사도바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은 단 한 개의 문구로 정리해서 표현하였습니다. 그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 하나님"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딤전2:3). 이 문구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로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것입니다(딤전2:5~6).
딤전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3. 하나님은 한 분이요 그분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구주(구세주,구원자=소테르)"라는 용어를 하나님에게 붙혀서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함으로 하나님 한 분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음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딤전3:16에 의하면,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특히 디모데전서에서는 "구주"라는 명칭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딤전1:17, 6:15~16) 적용했지만, 디모데후서에는 "구주"라는 명칭을 "그리스도 예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딤후1:10). 그리고 디도서에 보면, 한 문단과 문장에서 "우리의 구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라는 용어를 동시에 세 번씩이나 사용했습니다(딛1:3~4, 2:10~14, 3:4~5).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구주로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카톨릭의 교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기독교에서는 아직까지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정의는 니케아종교회의(A.D.325년) 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타나시우스 신조(A.DS.420~450)에서 처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삼위일체를 믿어야 한다"고 규정해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이단으로 판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후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정의된 또 하나의 신앙고백 곧 벨직 신앙고백서(A.D.1561년)에서 놀라운 정의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처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의하면서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 또한 성부와 성자가 아니신 것이 명백하다"고 정의함으로써, 하나님을 세 분으로 묘사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9:6의 말씀을 보십시오. 거기에 의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바 아기이자 아들은 기묘자신 모사(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고 불리게 될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당신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말입니다. 즉 여호와의 이전에도 자신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신이 없었으며, 이후에도 다른 신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사43:10~11).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누구의 도움이나 협의없이 오직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44:24). 그렇지만 로마천주교의 신앙은 끝까지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맞기는 하지만 안에 규정된 세부내용을 보면 성경과 동떨어진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세시대에 그려놓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그림을 살펴보면, 전부 다 성부와 성자와 성자께서 각기 다른 보좌에 앉아계시는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세 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렇게 나눠놓으려 하다보면 진리의 온전한 지식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실 때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일하셨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결코 사람의 눈으로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개의 보좌 위에는 흰 세마포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 앉아계십니다(계3:21,7:17,22;1,3). 그리고 성령님은 그분이 이 세상에 보내신 당신의 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계5:6).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그분은 삼위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5.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지 못하면 어떤 결과는 나타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신앙고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도 니케아회의(A.D.325)에서 하나님이라고 정의하다보니, 칼케돈회의(A.D.451)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신앙고백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과연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같은 말도 안 되는 이단이 나오게 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 당연히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면서, 안상홍 씨의 영적인 부인으로서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신사도와 빈야드와 같은 단체의 이상한 신앙고백이 나오게 되는데, 그들은 성령을 벨직신앙고백(A.D.1561)처럼 예수님과 다른 존재로 고백합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같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었어도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시대이니, 성령 하나님을 또 알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하나님은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을 성령의 은사쪽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요14~16장)에서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립니다. 큰 일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요20:28)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는 일을 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은 오직 한 분임을 고백하면서, 이 땅에서는 삼위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한 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명하게 보이니까요. 건투를 빕니다.
2019년 8월 2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