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지금 당신도 믿고 있는가?(렘7:1~7)_2019-07-31(수)
1. 남 유다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렘7:4)
솔로몬이 건축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당시 유다 사람들은 매우 신성시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매우 화려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하나님의 눈이 늘 함께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거기에 두신다고 했으니, 하나님의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왕상9:3). 특히 유다인들은 남유다 제13대왕이었던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 침입 때에 그것은 확증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대제국 앗수르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끄떡없이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예루살렘과 거룩한 성전이 보존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람들은 깊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 남 유다인들의 생각처럼 하나님은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아니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성전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경배했을 때에는 하나님이라도 그것을 기꺼이 던져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왕상9:7).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절대 성전이 파괴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 제13대 히스기야왕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의 아들 므낫세왕 때부터 남유다의 신앙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13대) - 므낫세(14대) - 아몬(15대) - 요시야(16대) - 여호아하스(17대) - 여호와야김(18대) - 여호야긴(19대) - 시드기야(20대)의 왕들 중에서 히스기야와 요시야왕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준으로 왕들이었습니다. 두 왕이 여호와로의 신앙회복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많이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남유다의 성전은 시드기야(남20대) 왕 때, B.C.586년 10월 5일에 파괴되고야 말았습니다.
3. 오늘날 성도들도 그가 만약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결코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는 것일까요?
오늘날의 성도들 중에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자신은 결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너무나 과대확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함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회개는 항상 같이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막1:15). 그러므로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가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에 대하여, 성경(특히 예수님과 사도바울와 히브리서 기자)은 무수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주의하여 읽어보십시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19-20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히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4.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거룩한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왜 그만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들도 죽고 말았던 것일까요?
그들이 비록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고, 벨리알의 아들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 성막에서 여인들과 간음하고 있던 악행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즉각 법궤를 들고 전쟁터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큰 살륙이 있었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날에 죽임을 당했으며, 법궤는 빼았겼으며, 그 소식을 들은 엘리 대제사장은 그만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비느하스의 아내도 난산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삼상4:17~18).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데 무슨 법궤가 그들에게 효력이 있었을 것이며,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겠습니까?
5. 오늘날에도 자신은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 심판을 면제받고 꼭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오늘날에 성도들 중에는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고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 "교회는 방주라고 했어. 그러니 심판 때에 면제받고 나는 꼭 구원받을꺼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노아와 같은 신앙과 충성심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왕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7장을 보십시오. 당시 우상숭배와 심각한 도덕적인 타락으로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도, 많은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은 절대 파괴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렘7:4).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있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책임져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이스라엘을 때리시는(심판하시는) 이가 되시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할례받았어"라면서 자신의 언약백성인 것처럼 착각하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나는 예수믿고 교회다니고 있어"라고 말하는 자들은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데, 십자가 목걸이를 들이내민다고 해서 과연 귀신이 벌벌 떨고 떠나갈까요? "예수의 피"를 외친다고 귀신들이 무서워하며 움쭉딸싹하지 못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가 얼마나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는지, 그가 얼마나 회개생활을 통해 깨끗함을 받았는지가 관건인 것입니다. 무턱대고 예수의 이름을 외친다고 해서 귀신이 굴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예수믿는 신앙을 부적처럼 사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19년 7월 31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