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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개신(개혁)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사도신조)"는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인가 아니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초기교회의 신앙고백이었는가? 그리고 사도신조는 어떻게 되어서 추가보완되었는가? 그리고 언제 완성되었는가? 또한 로마카톨릭(천주교)에서는 과연 사도신경을 어떻게 잘못 해석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사도신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신앙고백해야 하는가? 사도신경이 갖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보완하고 수정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은 사도신경이 가진 한계와 개선점을 찾아보기로 하겠다.

2019-10-11(금) 금요기도회
제목: 현재 사도신경이 갖고 있는 한계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계22:12~17)
https://youtu.be/iUnUTV5lLqo

 

1. 들어가며

  "사도신경(혹은 사도신조)"이란 예수님의 제자였던 12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고백으로서,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인격과 사역을 요약한 신앙고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중세시대에 로마카톨릭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종교개혁자들도 이어받아 개신교회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사도신경은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잘못된 신앙고백이라 주장하고 또한 이것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죽은 자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에 동참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로마카톨릭이나 개신(개혁)교회가 동시에 같이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며, 사도신경이 지니고 있는 한계점과 이 내용 중에서 개선할 점은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사도신경은 중세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인가?

  오늘날에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신경(사도신조)"이 중세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런데 아니다. 그러나 잘못 알려진 정보에 다라, 어떤 이들은 어떻게 개신교인들이 되어서 천주교의 신앙고백할 수 있느냐면서 빨리 사도신경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말 사도신경은 중세시대 로마카톨릭이 만들어낸 신앙고백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중세시대(약A.D.500~1,500)에 만들어진 신앙고백이 아니었고, 고대교회로부터 사용하고 있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천주교(로마카톨릭)나 개신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이른 초기교회 때부터 사용되어 온 아주 오래된 고대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도신경은 A.D.170년에도 이미 교회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거의 온전한 형태의 사도신조는 A.D.340년경이 이미 완성되어 통용되고 있었다. 다만 교회의 공회의를 거쳐, 정식적으로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결정만 하지 않은 상태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떤 특정 기독교 교단이나 이단들에서는 사도신경은 천주교의 신앙고백이기에, 당장 버려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한 단체는 누구인가? 예를 들어보면, 자유독립교회, 형제교회, 미국 침례교회, 신천지 및 각종 이단단체들이 여기에 속한다.

 

3. A.D.340년경에 통용되고 있던 사도신조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A.D.340년경 이미 교회들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사도신경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때 통용되고 있던 사도신경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해보자.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유일하신 아들이며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으로부터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분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있던 분을,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분을, 그리고 장사지내셨던 분을, 그리고 삼일에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을 받은 분을, 하늘 안으로 오르셨던 분을, 그리고 아버지의 우편 안에 앉으셨던 분들, 거기로부터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고 있는 분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교회를, 죄들의 용서를, 육체의 부활을,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다]."

  그렇다. 오늘날의 사도신경과 거의 비슷한 형태와 구조를 가진 사도신경이 A.D.340년경에는 이미 교회들 가운데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교회의 필요에 따라 더 분명한 신앙고백이 나오게 되었으니, A.D.750년경에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과 똑같은 사도신경을 로마카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A.D.340년에 나왔던 고대교회의 사도신조와 A.D.750년에 완성된 로마카톨릭의 사도신조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총 9가지 면에서 수식어와 문장에서 차이가 난다. 아래에서는 추가된 신앙고백이 무엇이었는지 새번역 사도신경과 비교하여 고대교회의 사도신경과 비교해보자(참고로, [   ]안에 있는 문장이나 문구가 새롭게 첨가된 것이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다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니,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Fomula Marchelli Ancyrani -

 

4. 사도신경은 어떤 내용과 구조로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사도신경은 대체 어떤 내용과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먼저, 사도신경의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이었던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고전12:3)"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도마의 신앙고백(요20:28),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서, 예수님을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바 "메시야(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던 신앙고백의 내용을 따라 그 내용이 점차 확립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신경의 순서와 구조는 마28:19의 예수님의 지상최대의 명령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하신 말씀에 입각하여, 고대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한 인격과 사역을 신앙고백의 순서로 잡았다. 고로 사도신경은 크게 "성부"에 대한 신앙고백(1개), "성자"에 대한 신앙고백(6개), "성령"에 관한 신앙고백(1개), "성교회"에 관한 신앙고백(1개), "성도"에 관한 신앙고백(3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겠다.

 

5. 로마카톨릭(천주교)에서는 사도신경을 어떻게 잘못 해석하고 있는가?

  오늘날에 그리스도인 중에는 잘못된 정보를 통하여, 사도신경을 곡해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마치 마귀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로 전락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사실 2세기에 이미 교회 가운데 통용되면서 보완되다가 지금과 같은 유사한 틀을 갖춘 신앙고백은 이미 A.D.340년경에 완성되었고, A.D.750년에는 고착화되었다. 그렇더라도 A.D.750년경에 사용된 로마카톨릭의 사도신조라 할지라도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 내용을 해석했던 로마카톨릭이 잘못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종교개혁자들도 본뜻을 받들어 사도신조를 신앙고백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카톨릭이 잘못 해석한 사도신조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대표적인 몇 가지 예만 들어본다. 첫째, "동정녀 탄생"에 관한 것을 보자.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났다는 조항을 한사코 부인하라고 종용한다. 왜냐하면 "동정녀"사상은 마리아 숭배의 음흉한 속셈이 숨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이다. 그러나 사실(팩트)은 사실인 것이지 그것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죄없이 성령으로 잉태되려면 처녀의 태를 빌려서 잉태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로마카톨릭에서 그것을 어떻게 교리적으로 변천시켰는가 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인 것이다. 예수님은 사실 사7:14의 예언을 따라 분명히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이 분명하다(마1:20~21, 눅1:31~36). 하지만 로마카톨릭에서 만들어낸 "마리아의 종신처녀설"(1962~1965년), "마리아의 무죄잉태설"(1854년), "마리아의 지속적 무죄설"(1854년), "마리아의 부활승천설(성모몽소승천설)"(1950년), "마리아의 은총의 중재자설"(1917년)은 다 천주교에서 만들어낸 가짜 교리들일 뿐이다. 다만, 에베소공회의(A.D.431년) 때부터 칼케돈신조(A.D.451년)에 이르기까지 이미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정의함에 따라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가설들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씨앗이 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둘째, "음부에 내려가사"는 A.D.360년 아리안신앙고백에 처음등장하며, A.D.750년에 가서야 비로소 사도신조 안에 들어온 신앙고백이다. 다시 말해서 이 조항은 가장 나중에 첨가된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에 "음부에 내려가신 것"은 사실인 만큼 이것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천주교식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예수께서 내려가셔서 연옥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내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에 복음을 전파하러(유앙겔리조마이) 가신 것이 아니라, 이미 되어진 일을 단순히 전파(선포)(케뤼소)하기 위해 내려가셨기 때문이다(벧전3:19). 다시 말해 이때 예수께서는 이미 음부에 들어가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 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이미 되어진 십자가의 구속사건을 선포하러 그곳에 가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거룩한 공회(거룩한 공교회)"는 천주교(로마카톨릭)만이 교회라는 것을 신앙고백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은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비록 사도신조에는 처음부터 교회를 "거룩한 교회"라고 정의해왔지만, A.D.325년 니케아종교회의 때부터 교회를 "보편적이요(카톨릭) 사도적인 교회"라고 정의하고 있었고, A.D.381년 칼케돈회의에서는 교회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라고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카톨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카톨릭"이라는 말은 어떤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만인이 보편적인 받아들일만 공적인 교회인 것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서, 오늘날 교회가 개인사유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놀라운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로마카톨릭이 자신의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는 "보편적인(카톨릭) 교회"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로마카톨릭"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로마카톨릭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그들이 죽은 성인들과 지금 현세의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여, 이미 죽은 성도들 가운데 공고가 많은 성인들의 공로를 기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후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러한 신앙고백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서로 교제(코이노니아)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요, 초기교회들의 5대 속성(예배, 교육, 봉사, 교제, 전도)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 있었기에 이것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6. 사도신경의 한계와 보완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개신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온전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거의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죄인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신앙들이 거기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것들이 사도신경에 꼭 들어가야 할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적어도 5가지 측면에서 시정조치가 필요함을 갖게 된다.

  첫째,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앙고백의 첫 줄에서 , "나는 한 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 아버지를 믿습니다..."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둘째,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인 "천국"과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 "지옥"에 관한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부활관은 기존의 부활관도 다르다. 즉 회개하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는 죽은 즉시 부활체가 입혀지고 심판을 받은 뒤 곧장 천국에 들어가게 되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심판의 부활체를 입고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사도신조 가운데 유일한 상징적인 고백으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심"이라는 문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실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하게 되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도 또 한 개의 보죄가 있는 것을 가정하게 된다. 그러나 천국에 올라가보면(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는 증거들에 따라),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셨지만 그분이 사실상 앉게 된 의지는 하나님의 보좌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우편 안에 앉아계셨던 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셨던 예수님을 가리킨다. 넷째, 성령에 대한 신앙고고백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성령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정의가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신앙고백을 축조한다면, 성령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중생과 생명공급과 은사수여자이면서 동시에 교사로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신성한 대한 고백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다음과 같이 추가하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나는 그분이 하늘에 올라가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본래의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셨으며, 거기에서 인간의 중개자 곧 중보자요, 대제사장이자, 대언자로서 일을 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7. 나오며

  그렇다. 사도신경은 중세로마카톨릭에서 갑자기 만들어낸 신앙고백이 아니다. 사도신경은 초기(고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정보완되어 사용되다가 A.D.340년경에는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을 중세 로마카톨릭교회가 이어받아서 추가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이 중세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세례를 받게 할 때에 참된 신앙고백으로 사용하였던 것이요, 여러가지 이단들이 발흥함에 따라 그들로부터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다만, 로마천주교가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다르게 해석함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는 원래 만들어진 대로 믿고 거기에다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가르치고 교육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의 건전한 교단의 대표가 모여서 수정보완하여 새로운 개신교회의 신앙고백을 만들어낸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2019년 10월 11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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