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공지

아침묵상

아침묵상

아침묵상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어가세요.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은혜로 하루를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APdJm9ZBzDg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2)(창21: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APdJm9ZBzDg

 

 

1. 들어가며: 구약의 숲에서 발견하는 그리스도의 원형

  성경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 [구약]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당시 기록된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껍데기만 읽는 것과 다름없다. 씨앗 속에 꽃과 열매가 이미 들어 있듯이, 구약의 사건과 인물들 속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청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약의 복음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영권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이신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구약에서 아들되신 예수께서 어떻게 예표되었는지를 정확히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만 알 뿐, 그분을 구약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앙이 견고해지지 않으며, 이단의 교묘한 알레고리적 해석에 미혹되어 넘어가기도 쉽다. 우리는 '짝풀이'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언급한 바 있는 '모형론(Typology)'에 입각하여 예수를 보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완벽한 모형 중의 최고이다. 그의 출생부터 신분, 그리고 제단 위에서의 고난에 이르기까지 이삭의 생애는 십자가의 길을 미리 보여주는 한 편의 장엄한 예고편이다. 그리고 그가 사명을 완수한 이후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고 농사와 우물에 복을 받고 사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드린 자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 일컬어지는 한 분 하나님의 경륜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이삭의 생애 속에 투영된 우리 주 예수님 곧 아들이신 예수님의 삶을 대면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셨다(출 3:6). 왜 당신 자신을 소개할 때에, 굳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세 명의 족장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언급하신 것일까? 거기에는 심오한 영적인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처음으로 사용되어진 이 칭호는 하나님이 인간의 이름을 당신의 정체성과 연결하신 유일무이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계시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 세 사람의 생애는 각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자 한 분 하나님의 사역을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독자까지 아끼지 않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이삭을 통해서는 죽기까지 복종하는 성자 예수님의 순종을, 야곱을 통해서는 험악한 세월 속에서 성도를 다듬어 이기는 자로 만드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신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가 아들로 오신 것이요, 성령은 아들이 생명주는 영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셋은 하나인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홀로 계신 전능자이시지만, 동시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인류를 향한 당신의 구원 경륜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들로 이 따에 오셨던 예수께서도 역시 마태복음 22장에서 바로 출애굽기 3장 6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시간 밖에서 항상 동시 존재하시며, 아브라함 시대의 약속을 이삭과 야곱을 거쳐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삭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옛 족장들의 발자취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탐구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3. 이삭의 '불가능한 출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사실 예수님의 완전한 모형인 이삭의 출생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경우처럼 기적 그 자체였다. 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의 나이가 89세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장차 아들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다. 당시 사라는 이미 여성의 생리(폐경)가 끊어진 상태였다(창 18:11).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생산할 능력이 완전히 소멸한, 즉 죽은 몸과 다름없었다(롬 4:19).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죽은 태를 뚫고 생명의 씨앗을 사라의 태에 심으셨다. 이는 인간의 가능성이 0%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임신은 훗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성육신을 그대로 예표한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35)라고 물었던 마리아처럼, 사라도 "내가 노쇠하였는데 어찌 즐거움이 있으리요"라며 웃었던 것이다(창 18:12). 그러나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자, 그 약속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눅 1:35).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롬 4:19). 이것이 바로 5차원적인 믿음이다. 3차원의 물질세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실상으로 끌어당기는 통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믿음이요, 믿음이 얼마가 강력한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 이삭의 출생이다. 하나님의 방문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아브라함에게 정말 이삭이 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이야말로 장차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고(갈 4:4), 그 약속의 실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4. 성경이 이삭을 '독자'가 아닌 '독생자(Monogenes)'로 칭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을 가리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히브리어 맛소라 텍스트를 헬라어로 번역한 밥바스 그리스어 번역본(Vamvas Greek Text)과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독자'를 번역할 때에 아주 영감있게 번역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독자를 뜻하는 야히드(=Only Son)를 '외아들' 혹은 '유일한 아들'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모노게네스(Monogenes=Only Begotten Son)'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히 11:17). 여기서 모노게네스라는 말은 '약속을 따라 태어난 유일한 아들', 즉 우리가 예수님께만 사용하는 '독생자'라는 단어와 동일한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모노게네스)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모노게네스)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모노게네스)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모노게네스)을 드렸느니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모노게네스)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아브라함에게 독자는 이삭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이미 이스마엘이라는 또 다른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아이를 낳지 못하자, 그의 아내 사라의 제안으로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첩으로 맞이하여 난 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유일한 아들(독생자)'로 부르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비록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이기는 하지만 그는 육체를 따라 태어낳지만, 이삭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브라함의 생명을 유업으로 이을 유일한 상속자는 오직 이삭이었던 것문이다. 고로 이삭이 태어나기 13년 전에 이미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였지만 이스마엘은 육체적으로 태어난 자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여기지 않으셨다. 당신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따라 태어난 이삭만을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공개한 모형론적 성경 해석이다. 

 갈4:23 여종(하갈)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사라)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일한 독생자라는 사실을 모형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8절에 나온 바,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이삭을 독생자의 예표로 보는 순간, 그는 단순한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투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삭이라는 렌즈를 통해 당신의 유일한 아들이 겪을 십자가 사건의 무게를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전달하고 계신 것이다.

  

5.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을 따라 난 자'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과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에게는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가? 사실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두 줄기의 흐름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갈을 통해 육체의 욕심으로 낳은 장자 이스마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얻은 차자 이삭이 있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4장에서 바울은 이 둘을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3가지 비유적 해석이 나온다.

  첫째, 율법(유대인)과 복음(교회)의 차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의 결과물인 율법적 신앙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말미암은 복음적 신앙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냥 믿는 자와 거듭나서 생명을 가진 성도의 차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은 오직 육체를 따라 태어났지만 이삭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으므로, 이스마엘은 그냥 단순한 아들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이삭은 아버지의 약속과 생명을 이어받은 독생자로 불리기 때문이다. 사실 '독생자'라는 표현은 아버지의 약속을 가진 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생자를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갈 4:2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태어난 것이며,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신 분임을 알 수 있다(요 5:2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성령을 따라 태어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씀하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육체를 따라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명주는 영인 성령을 따라 태어난 성령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하였다. 

  셋째,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는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고 괴롭혔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종교적 행위와 율법에 매인 자들은 은혜와 진리 안에 거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것 같다. 예수님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육체만을 따라 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을 가지고 온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나중에는 죽음에 넘기우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했다(마 8:11-12). 

마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결론지으셨는가?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결정이었다. 그것은 "여종(하갈)과 그[녀의] 아들(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자녀는 결코 영의 자녀와 함께 기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나는 단순히 교회의 마당을 밟고 있는 '육의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참으로 거듭난 '약속의 자녀'인가를 말이다. 천국의 유업은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는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독생자의 생명이 영 속에 들어온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이스마엘의 길을 버리고 이삭의 길, 즉 약속과 성령의 길을 선택하는 자만이 하늘나라의 참된 상속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 이삭이 겪은 '희롱'과 '핍박' 속에 숨겨진 영적 전쟁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삭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 기쁜 날에 열여덟 살 청년 이스마엘이 다섯 살 어린 이삭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기서 희롱한다는 히브리어 '메차헤크'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조롱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단순한 형제간의 다툼이 아니라, 장차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될 약속의 씨를 향한 사탄의 영적 공격이었다. 야살의 책을 보면, 이때 이삭이 다섯 살 되었고 이스마엘의 나이가 19살이었을 때에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다가가서 그 맞은 편에 앉았는데, 그가 활을 취하여 그리고 활을 당겨서 이삭을 죽이고자 하였다(야살의 책 21:14). 그런데 그 장면을 사라가 보았다. 그것으로 인하여 사라는 매우 슬퍼하였고, 즉시 아브라함에게 가서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너의 아들을 내쫓으라. 이 여조으이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21:10)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겪으셨던 수많은 조롱과 핍박의 모형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고 오히려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요 1:11). 다시 말해,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으로 난 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이삭의 어린 시절에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진리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핍박이 뒤따른다. 육체 소욕이 강한 자들은 성령을 따라 사는 자를 시기하고 방해하며, 때로는 이단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말살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롱과 핍박을 알게 하시고, 오히려 이삭을 보호하고 구별하셨다. 결국에 이삭이 이스마엘의 공격을 견뎌내고 결국 기업을 이어받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뚫고 부활하셨고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는 맏아들이 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진리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이삭의 줄기' 안에 들어 있다면, 하나님은 사자의 입 속에서도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고난은 하늘에서 큰 사응로 주어질 것이다. 

  

7.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삭의 생애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이다. 그것은 이삭이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나무를 지고 올라가는 대목이다(창 22:6). 이삭은 자신의 몸을 태울 장작을 직접 지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몸이 못 박힐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독한 행군을 완벽하게 미리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었고, 이삭은 그 제단 위에 제물이 되기 위해 장작을 지고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때 이삭의 나이는 어떠했을까? 구약의 외경인 '야살의 책'에서는 이삭의 나이가 37세였다고 증거하고 있고(야살의 책,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25세로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맞든지, 이삭은 백 세 노인인 아버지를 힘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건장한 청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아버지의 뜻에 반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때문에 요동쳐서 제사가 흠이 될까 봐 자신을 단단히 묶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한 번에 정확히 찔러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겟세마네의 기도를 본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삭의 이러한 순종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가? 강요된 것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삭이 그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여, 자기를 내어준 자발적 희생이었다. 그러므로 이삭이 제단 위에서 죽음을 받아들일 때, 그는 영적으로 이미 순교한 자였다. 예수님도 역시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도 골고다의 그 길을 걸어가셨다. 고로 이삭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 나무 위에 달린 그 참혹하고도 아름다운 순종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8. 나오며: 승리자의 반열에 서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이삭의 생애를 통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한 예표를 보았다. 불가능을 뚫고 태어난 출생, 약속의 자녀라는 신분, 그리고 제단 위에서의 죽기까지의 순종.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확증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육체를 따라 난 자를 쫓으라. 내 유업을 그에게 주지 않겠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삭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이스마엘의 길'을 갈 것인지 물으신다.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종교인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예수의 피로 씻김 받아 천국을 상속받는 이기는 자가 될 것인지를 말이다. 

  진리의 길은 걸을 때면 때로는 외롭기도 하고 핍박도 뒤따른다. 이스마엘의 희롱이 있고, 모리아 산의 칼날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과 100배의 축복, 그리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품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하여 상속자가 되고, 악한 영을 때려 부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서라. 이삭의 순종이 당신의 순종이 될 때, 하늘의 모든 보화는 당신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 거룩한 승리자의 반열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 하늘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3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삭의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모형으로 제시하며,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설교는 사라의 단산을 극복한 이삭의 출생이 동정녀 탄생과 같은 초자연적 성취임을 강조하며, 이삭을 단순한 외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을 통해 난 독생자의 예표로 규정합니다. 특히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핍박한 사건을 통해, 오늘날 영적 상속자들이 겪는 고난과 분별의 필연성을 설명합니다. 결국 이 글은 독자들이 문자적 기록에 머물지 않고 원본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함으로써,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는 참된 생명의 신앙에 이를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아침묵상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기독론 #이삭 #예수그리스도 #모형론 #구약성경 #구속사 #독생자 #아브라함 #창세기 #성경해석 #순종 #십자가 #약속의자녀 #육체와성령 #이스마엘 #영적전쟁 #모리아산

 

 

 

unnamed (11).png.webp

 

unnamed (12).png.webp

 

unnamed (13).png.webp

 

unnamed (14).png.webp

 

unnamed (15).png.webp

 

unnamed (16).png.webp

 

unnamed (17).png.webp

 

unnamed (18).png.webp

 

unnamed (19).png.webp

 

unnamed (20).png.webp

 

unnamed (21).png.webp

 

unnamed (22).png.webp

 

 

 

 


  1. NEW

    [기독론(18)] 야곱의 생애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마22:29~32)_2026-02-05(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 야곱의 생애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마22:29~3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YR7T1OGmU8 1. 들어가며: 분리된 시각을 넘어 통합된 진리로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
    Date2026.02.05 By갈렙 Views15
    Read More
  2. Update

    [기독론(17)]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3)(창22:9~19)_2026-02-04(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3)(창22:9~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fF3BcZoBF0 1. 들어가며: 구약의 안개를 걷어내고 실체를 대면하라 성경은 인류 구원을 향한...
    Date2026.02.04 By갈렙 Views29
    Read More
  3. [기독론(16)]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2)(창21:1~13)_2026-02-03(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2)(창21: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APdJm9ZBzDg 1. 들어가며: 구약의 숲에서 발견하는 그리스도의 원형 성경은 단순한 역사서가 ...
    Date2026.02.03 By갈렙 Views47
    Read More
  4. [기독론(15)]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1)(창21:1~13)_2026-02-02(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1)(창21: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Q9O451Y9YU 1. 들어가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그 이름에 담긴 비밀 성경을 읽다...
    Date2026.02.02 By갈렙 Views31
    Read More
  5. [기독론(13)]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충격적인 예표는?(창18:1~15)_2026-01-30(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3)]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충격적인 예표는?(창18: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aSUmKsLnL0 1. 들어가며: 성경을 꿰뚫는 두 가지 핵심 질문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명확하게 ...
    Date2026.01.31 By갈렙 Views72
    Read More
  6. [기독론(12)]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이었는가?(창6:13~22)_2026-01-29(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이었는가?(창6:13~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7kQJ9tC9bs 1. 들어가며: AI 시대의 번영, 그것은 축복인가 심판의 전조인가? 지금 전 세계는 인공...
    Date2026.01.29 By갈렙 Views75
    Read More
  7. [기독론(11)] 여자의 씨(제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은?(창3:9~16)_2026-01-28(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 여자의 씨(제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은?(창3:9~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cgEGtg-ksDg 1. 들어가며: 구약의 숲에서 예수라는 나무 찾기 성경은 단순한 역사책이나 윤리 교과서...
    Date2026.01.29 By갈렙 Views71
    Read More
  8. [방언통역(03)]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2)(고전 14:12~18)_2026-01-27(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방언통역(03)]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2)(고전 14:12~18)_2026-01-27(화) https://youtu.be/B2YzNhNP9vQ 1. 들어가며: 준비된 자가 누리는 영적 통치권 방언 통역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몰라서 못 하...
    Date2026.01.27 By갈렙 Views93
    Read More
  9. [방언통역(02)]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1)(고전 14:12~18)_2026-01-26(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방언통역(02)]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1)(고전 14:12~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izonuTRWb0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를 여는 첫 관문, 방언 많은 성도가 영적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
    Date2026.01.27 By갈렙 Views102
    Read More
  10. [기독론(10)]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창1:26~28)_2026-01-23(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창1: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RrhXHiKVLk 1. 들어가며: 장롱 면허를 가진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 엄청난 권...
    Date2026.01.24 By갈렙 Views90
    Read More
  11. [기독론(09)]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의 의미와 그 어마어마한 활용(창1:26~27)_2026-01-22(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9)(풀영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의 의미와 그 어마어마한 활용(창1:26~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ouzHRBryVY 1. 들어가며: 왜 나는 영적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가? 예수께서는 제...
    Date2026.01.22 By갈렙 Views118
    Read More
  12.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2026-01-21(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OWbBUOJxls 1. 들어가며: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오염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
    Date2026.01.21 By갈렙 Views134
    Read More
  13. [기독론(07)]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2)(열왕기하 19:15~19)_2026-01-20(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7)]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2)(열왕기하 19:15~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tk4ytaEY7U 1.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을 몇 분으로 믿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성부, 성자,...
    Date2026.01.20 By갈렙 Views147
    Read More
  14.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https://youtu.be/GXQ4VPjxu3U 1. 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인가, 섞여진 것인가?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한다...
    Date2026.01.19 By갈렙 Views327
    Read More
  15.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2026-01-16(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Ufpe5Q7u2I 1. 들어가며: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님...
    Date2026.01.16 By갈렙 Views453
    Read More
  16. [기독론(02)]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2)(창1:1~3, 26~28)_2026-01-15(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2)]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2)(창1:1~3, 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tK7VDmsjxQQ 1. 들어가며: 그림자(한자)를 넘어 실체(예수)를 마주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한자 속...
    Date2026.01.15 By갈렙 Views547
    Read More
  17. [기독론(01)]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1)(창1:1~3,26~28)_2026-01-14(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1)]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1)(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I6_OpRuGfY 1. 들어가며: 그림자에서 실체로, 욕단에서 벨렉으로 우리는 고대의 한자(漢字) 속에도 숨...
    Date2026.01.14 By갈렙 Views642
    Read More
  18. [한자와 창세기(12) 최종회] 창세기 1~11장만을 알았던 욕단민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면?(딤전2:4~6)_2026-01-13(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12) 최종회] 창세기 1~11장만을 알았던 욕단민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면?(딤전2: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npu4OIyPNM 1. 들어가며: 창세기 11장에서 멈춘 욕단 민족의 시계 하나님은 인류 구...
    Date2026.01.13 By갈렙 Views680
    Read More
  19. [한자와 창세기(11)] 동이족(東夷族)의 명칭에 깃들어 있는 또 하나의 기억장치 무지개(창9:8~17)_2026-01-12(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11)] 동이족(東夷族)의 명칭에 깃들어 있는 또 하나의 기억장치 무지개(창9:8~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eFtcxA9u_c 1. 들어가며: 동이족, 그 이름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총...
    Date2026.01.12 By갈렙 Views700
    Read More
  20. [한자와 창세기(09)] 바벨 탑(塔) 사건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자(漢字) 이야기(창11:1~9)_2026-01-09(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09)] 바벨 탑(塔) 사건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자(漢字) 이야기(창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0atrWj10fs 1. 들어가며: 바벨탑은 신화인가, 역사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노아의 홍수가 전 지...
    Date2026.01.09 By갈렙 Views114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2 Next
/ 112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