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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30. (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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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9o61XQdiPr0
날짜 2026-06-28
본문말씀 아가서 2:3~5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6-28(주일) 주일낮2부예배(투박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9o61XQdiPr0

 

 

1. 들어가며

  성경에는 참으로 특이한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아가서이다. 아가서는 '노래들의 노래', 곧 최고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 읽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신앙적인 용어들, 곧 '찬양', '기도', '회개', '하나님', '여호와' 같은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청춘 남녀의 사랑, 노골적인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풍부한 시적 언어로 압축되어 펼쳐진다. 신약성경에서도 단 한 번 인용된 적이 없으며, 유대인들은 이 책을 만 12세 이전에는 읽지 못하게 금할 정도였다. 잘못 읽으면 오해의 소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모형론적 성경해석 방법으로 읽는 순간, 아가서는 완전히 다른 책으로 변신한다. 모형론적 성경해석이란 구약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예수님에 대한 예표로 보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광야의 만나도 예수님이요, 쪼개진 반석도 예수님이요, 유월절 어린양도 예수님이요, 성막도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결혼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이 비밀이 크다고 선언한다 (엡 5:31-32). 이 열쇠로 아가서를 열면, 솔로몬은 신랑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술람미 여인은 그분의 신부 된 교회가 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렇게 읽을 때, 아가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가 된다. 왜 솔로몬은 부족함이 없는 왕이었음에도 멀리 레바논의 포도원까지 내려갔으며, 왜 그곳의 시골 처녀에게 청혼했고, 왜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왔으며, 왕궁에 데려온 이유가 단순히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과연 무슨 목적이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이 아가서 전체를 통해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로 펼쳐진다. 특별히 이번 기독론 시리즈에서는 아가서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미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처럼, 그의 아들 솔로몬도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형으로 등장한다. 다윗이 전쟁을 치르고 원수를 물리치는 용사로서 예수님의 초림을,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 왕국을 예표한다. 그리고 솔로몬이 신부를 찾아 왕궁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삼으시는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부를 사랑한 신랑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목적과 그 신부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는 왜 특별한 책이며, 어떻게 해석해야 그 참된 의미가 드러나는가?

  아가서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형식과 내용에 있다. 이 책은 가곡으로 쓰여진 대화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이 압축된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문자 그대로 읽으면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인다. 특히 등장하는 나무들과 꽃들, 동물들과 향품들이 모두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를 모르고 읽으면 그 깊이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

  아가서에서 '하나님' 혹은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가서 8장 6절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불'이라는 표현조차도 원어를 보면 '에쉬 솰르헤베트', 곧 최상급의 표현으로 '매우 강렬한 불'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톨릭성경은 '격렬한 불길', 권위역은 '가장 맹렬한 불꽃', 새번역은 '거센 불길', 쉬운말 성경은 '맹렬한 불길'로 번역했다 (아 8:6). 즉 하나님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책인 것이다.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서가 정경에 포함된 것은, 이 책이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비밀이라고 선언하면서 모형론적 해석의 열쇠를 제공했다 (엡 5:31-32). 이 열쇠를 사용하면 아가서의 모든 장면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다.

  솔로몬을 신랑 예수 그리스도로, 술람미 여인을 그분의 신부 된 성도로 볼 때 아가서는 완전히 다른 책이 된다. 솔로몬이 왕이지만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치는 목자의 모습은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비워 두시고 이 땅에 오신 모습이다. 술람미 여인이 포도원지기로 일하면서 오빠들에게 착취당하고 독수리와 매를 피해 바위틈에 숨어 사는 모습은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고통받는 인류의 모습이다. 솔로몬이 그녀를 찾아내어 청혼하고 왕궁으로 데려오는 과정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이다.

  아가서를 모형론적으로 해석할 때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이 책이 단순히 개인과 그리스도의 관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가서에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등장하고, 왕비와 후궁과 시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천국에서의 다양한 신분과 위치를 상징한다. 왕비, 후궁, 시녀는 모두 구원받은 성도들이지만, 그 위치와 역할은 서로 다르다. 아가서는 그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신분, 곧 솔로몬의 단 하나뿐인 신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신분으로 영원한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인지가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것이다.

  또한 아가서는 솔로몬이 자신을 신랑으로 내세우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목자로 행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술람미 여인은 처음에 솔로몬을 왕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목자로 생각했다.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를 가리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예언했다 (사 53:2). 왕이셨으나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믿음이 없는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알아보았듯이, 믿음의 눈이 열린 자는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를 단번에 알아본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처럼 아가서는 참으로 특이하고 놀라운 책이다. 신앙의 언어가 하나도 없이 쓰여졌지만, 실상은 가장 깊은 신앙의 비밀을 담고 있는 천국 신부 수업의 교과서인 것이다.

 

3. 솔로몬은 왜 왕궁을 떠나 레바논의 포도원까지 내려갔던 것인가?

  솔로몬 왕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왕비가 60명이요, 후궁이 80명이며, 시녀들도 아주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왕궁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굳이 왕궁을 떠나 멀리 레바논에 있는 바알하몬의 포도원까지 내려간 것일까? 왜 왕궁 안에 있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신부를 택하지 않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시골 포도원지기 처녀를 찾아 내려간 것일까?

  아가서의 후반부에 가면 그 답이 나온다. 솔로몬은 자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 6:9). 그의 짝은 왕궁 안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레바논의 포도원에 있었다.

아 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를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더 나아가 아가서 8장 5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사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잃어버린 짝을 다시 찾기 위해 왕궁 밖으로 나선 것이다 (아 8:5).

아 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솔로몬이 신부를 찾아내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신이 왕임을 내세우지 않고 목자처럼 행동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처음에 술람미 여인은 그를 목자로 알았고, 자신의 양떼를 어디서 먹이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 1:7).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을 예표한다. 왕이시지만 종처럼 오신 예수님,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솔로몬의 모습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왕이 시골 처녀의 눈에 처음에는 단순한 목자로 보였지만, 나중에 그녀는 그가 솔로몬 왕임을 알게 된다. 우리도 처음에는 나사렛 예수를 단순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믿음의 눈이 열릴 때 그분이 만왕의 왕이심을 알게 된다.

아 1: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들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왕은 단순히 새로운 왕비를 하나 더 얻으려고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왕에게는 60명의 왕비와 80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솔로몬의 진정한 짝이 아니었다. 솔로몬이 원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자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예수님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당신의 신부를 다시 찾으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내려오셨다.

  또한 솔로몬이 왕궁이 아닌 곳에 포도원을 만들어 세를 준 것도 이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왕궁 안에 있는 여자들 중에는 거친 세상을 살아갈 자로서, 왕처럼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칠 만한 그러한 동역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단순히 자신을 바라보며 섬기는 여인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왕국의 일을 감당할 동역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시찰을 나가던 중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가 바로 자신의 유일한 짝임을 알아보고 청혼한다.

 

4. 술람미 여인은 왜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에 비유했는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처음 만났을 때, 솔로몬은 그녀를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아네모네) 같도다"라고 칭찬했다. 이에 그녀도 솔로몬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이렇게 말한다.

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류나무, 무화과나무, 고벨화나무, 유향나무, 계수나무, 몰약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솔로몬을 처음 보고 그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 하필 '사과나무'에 비유했을까? 단순히 생김새가 사과나무처럼 생겼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과나무의 히브리어는 '탑부아흐'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사과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를 상징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서 8장 5절을 다시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말한다 (아 8:5). 이 사과나무 아래가 바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장소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낳기 위해 산고를 겪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사과나무 아래'는 탄생과 만남, 그리고 생명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장소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솔로몬을 보고 사과나무 같다고 한 것은, 그 사과나무 아래에서 있었던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그녀를 잃어버리기 전,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처음 깨우고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솔로몬이 바로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다른 남자들이 가시나무 같다면, 솔로몬은 그늘을 주고 달콤한 열매를 주는 사과나무 같았다.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는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이다. 다른 나무들에서는 그늘도 없고 열매도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입에 달았다. 이것이 솔로몬이 다른 모든 남자들과 구별되는 이유였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인류는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관계가 끊어졌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면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솔로몬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깨웠다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생명나무 아래에서 인류와 함께하셨다가 죄로 인해 그들을 잃어버리셨다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잃어버린 짝을 다시 찾기 위해 포도원으로 내려간 것이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인류를 찾으시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알 수 있다. 나무들의 숲, 곧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은 유일하게 참된 그늘과 달콤한 열매를 주시는 분이다. 그 어떤 세상의 것도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예수님 아래에 앉으면 심히 기뻐하게 되고 그 말씀의 열매는 입에 달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보자마자 사과나무라고 알아본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만날 때 그분이 생명나무이심을 즉시 알아보게 된다.

  이처럼 '사과나무'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첫 만남과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그 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깨어났고, 솔로몬을 처음 만났으며, 그를 잃어버리기 전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 다시 솔로몬을 보게 된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사과나무의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 그늘에 다시 앉아 쉬고 싶었고, 그 달콤한 열매를 다시 맛보고 싶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만난 성도의 고백이기도 하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았지만, 예수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안식과 달콤함을 발견한다. 세상이 주는 위로와 기쁨은 일시적이고 금방 사라지지만, 예수님의 그늘 아래에서 얻는 안식과 그분의 말씀에서 맛보는 달콤함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수풀 가운데 유일하게 그늘을 주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5.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와야 했던 4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발견하고 청혼한 뒤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와야 했던 데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삶의 형편이 너무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그녀가 자신의 오빠들에 의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빠들의 노여움으로 인해 포도원지기로 일하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의 포도원은 지키지 못했다 (아 1:6). 자신의 것을 돌보지 못한 채 남의 것만을 위해 혹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서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둘째로, 그녀는 독수리와 매 등이 무서워서 늘 바위틈 낭떨어진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 2:14). 하늘의 맹금류들이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그녀는 숨어서 살아야 했다. 이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공격 앞에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현실을 보여 준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셋째로, 포도원이 위치한 곳이 사자 굴과 표범 산 근처였기 때문이다 (아 4:8). 솔로몬은 신부에게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너라"라고 말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환경이었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 세상이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가득한 곳임을 뜻한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너라

  넷째로,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포도원에 들어오는 여우들을 잡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 2:15).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익고 포도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작은 여우들이 그 포도원을 허물고 있었다. 포도원을 지키는 것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역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 힘으로 신앙의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이 네 가지 이유는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솔로몬이 그녀를 구해 오지 않으면 그녀는 착취와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 네 가지 상황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도 사탄마귀에게 착취당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도 사탄의 공격이 두려워 숨어 살았다. 우리도 악한 영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홀로 힘으로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켜낼 수 없었다. 그 처절한 현실 앞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찾아내신 것이다. 그분의 눈에는 우리가 비록 얼굴이 햇볕에 타서 거무스름한 시골 처녀처럼 보잘것없었지만, 당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이다.

  우리가 이 은혜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게 된다.

  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달라는 구절이 있다 (아 2:15). 왕이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을 처치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작은 여우들은 큰 짐승들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의 꽃을 물어뜯고 열매를 망친다. 우리 삶에도 이처럼 작은 것들, 곧 작은 죄들, 작은 게으름들, 작은 불순종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너뜨린다. 이것들을 혼자서는 잡아낼 수 없다. 왕이 직접 잡아주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작은 여우들을 처치해 나가는 것이 날마다의 신앙생활이다.

  또한 솔로몬이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녀에게 자신의 왕궁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그는 그녀에게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을 보여 주었고, 동산에서 함께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줍는 일을 했다. 왕이지만 종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마 20:28). 그 섬기는 왕의 모습에 감동받은 신부가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된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솔로몬 왕이 왕비 60명과 후궁 80명을 두고도 레바논의 시골 처녀를 찾아 내려간 것처럼,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지만 죄로 인해 잃어버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단지 감사하며 그 사랑을 받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랑에 응답하여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될 것인가?

 

 

6. 솔로몬은 신부를 얻기 위해 어떤 3가지 행동을 취했는가?

  솔로몬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신부를 얻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했다.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로, 그녀를 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녀를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이며 그녀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아 2:4-5). 포도주의 집, 곧 '야인 바이트'는 포도즙을 짜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솔로몬은 그녀 위에 '사랑'이라는 이름이 쓰인 깃발을 세워 주었다. 깃발은 정복과 소유의 표시이다. 왕이 그녀 위에 사랑의 깃발을 세웠다는 것은, 왕이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선언하고 그녀를 위해 싸울 것임을 공표한 것이다.

아 2:4-5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그녀가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고 고백할 만큼, 왕의 사랑은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건포도와 사과로 힘을 얻어야 할 만큼 그 사랑에 압도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압도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사랑이다.

  둘째로, 그녀가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아 2:15).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허물고 있었고, 그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왕이 직접 그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과 싸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싸움을 주님이 대신 싸워 주신다.

  셋째로, 그녀를 왕비로 삼기 위해 왕이 타는 가마를 보내고,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이스라엘의 용사 60명을 붙여 그녀를 호위하게 했다 (아 3:7-8). 왕은 연약한 그녀를 위해 자신의 가마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밤길의 위험에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칼을 찬 용사 60명을 보냈다. 왕이 직접 치를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아 3: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그녀를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이 세 가지 행동은 솔로몬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신부를 얻으려 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과 정확히 대응된다. 왕이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새벽에 돌아온 것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을 예표한다.

 

7. 솔로몬은 신부를 왕궁에 데려온 후 어떤 존재로 성장시키려 했는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온 것은 구중궁궐에 가두어 놓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었는가? 왕은 그녀를 자신의 진정한 동역자로 삼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왕이 그녀를 어떤 존재로 성장시키려 했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로 만들기를 원했다. 처음 왕궁에 들어온 그녀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안락함에 취해 있었다. 신랑이 와서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신랑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려 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라고 했지만 (아 5:2), 그녀는 이미 옷을 벗었다는 핑계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잠시 후 마음이 움직여 문을 열었을 때는 신랑이 이미 가고 없었다. 그녀는 신랑을 찾아 밤거리로 나섰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가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

  밤이었다. 순찰하는 자들이 그녀를 쳐서 상하게 했다. 성벽의 파수꾼들이 그녀의 겉옷을 벗겨갔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는 이들에게 신랑ㅇ르 찾아달라고 신랑의 아름다움을 10가지로 자랑했다 (아 5:10-16). 그러자 예루살렘의 딸들도 함께 왕을 찾아주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을 찾아냈을 때, 왕은 그녀를 이렇게 칭찬했다.

아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아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이 여자가 누구인가

  그녀는 이제 밤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전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술람미 여인이 밤에 신랑을 찾아나선 이 경험은 그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불평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밤의 어둠 속에서 순찰자들에게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기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 고통이 그녀를 성장시킨 것이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신랑을 잃어버린 것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우리를 더 강한 전사로 만들어 가신다. 신랑이 문 앞에서 두드릴 때 빨리 열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막심이었지만, 그 실수가 오히려 그녀를 성장으로 이끈 것이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도 주님 안에서는 성장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신랑을 찾아나선 그녀가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10가지로 자랑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아 5:10-16). 그녀는 자신이 고통받고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신랑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랑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자랑했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모습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것, 이것이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위엄 있는 신부의 삶이다.

아 5:10-11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중에서 뛰어나구나 그의 머리는 순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왕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된 것이다. 왕이 새벽늦게까지 나가 일하고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돌아온 것이 왕의 삶이었다. 그 신랑의 모습을 보고 그녀도 자신이 왕궁에 온 목적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로, 왕의 동산에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재배하며 양떼를 치는 동역자로 만들기를 원했다. 어느 날 신랑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서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꺾는 것을 그녀가 보게 되었다 (아 6:2-3). 신랑은 그날도 피 흘려 순교한 꺾어진 백합화들을 모으고 홀로는 살 수 없는 양떼를 먹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이것을 본 그녀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왕의 동산에 자신의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나무와 석류나무를 재배하여 많은 과실을 거둬들인 후 그것을 왕에게 드리기 위해 함께 가자고 했다 (아 7:10-13). 왕궁에 들어올 때는 시골 포도원지기 처녀였지만, 이제는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진정한 동역자가 된 것이다. 왕이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온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였다.

  왕이 왕궁으로 신부를 데려온 후 그녀를 이 두 가지 존재로 성장시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녀가 신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 신랑을 잃어버리는 실수도 있었다. 성 안을 헤매며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기는 고통도 겪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이 그녀를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존재로 만들어 갔다. 왕이 그녀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랑이 늦게 들어오고, 그 신랑을 찾아야 하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성장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방식이다. 편안함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도전 속에서 우리의 영적 근육이 강해지고 진정한 신부의 모습이 갖추어져 간다.

  솔로몬이 새벽늦게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몰약은 죽음을 상징하는 향품이다. 왕이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그분은 이 땅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까지 잃어버린 양떼를 찾으시고, 백합화처럼 꺾어진 순교자들을 모으는 일을 하셨다. 신부는 신랑이 그 늦은 시간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그 순간, 안락함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왕의 신부라면 왕이 하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신부의 성장이고,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 늦은 새벽까지 동산에서 일하던 신랑의 손에 몰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부의 마음이 움직였다. 신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리고 그 헌신과 희생으로 신부의 마음을 이겼다.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음이 움직인다. 말이 아니라 피 흘려 죽으신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 사랑에 감동된 신부가 왕과 함께 포도원으로 나가는 자가 된다. 이것이 신부 사랑의 완성이며, 이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이다.

  또한 왕의 동산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치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바람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돌보라는 사명을 주셨다 (창 2:15). 죄로 인해 그 사명이 왜곡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그 원래의 사명을 회복하게 된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양떼를 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의 모형이다. 우리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일을 배워 간 그녀는 마침내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 7:11-12).

  "나의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함께 들로 나가서 동네(고페르나무의 숲)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왕비가 왕에게 하는 말이다. 이제 그녀는 왕궁에 편안히 앉아 있는 왕비가 아니라, 왕과 함께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나가는 동역자가 되었다(왕7:121~13).

  이것이 왕이 꿈꾸던 신부의 모습이었다.

아 7:11-12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들로 나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이 구절은 신부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왕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왕과 함께 일하는 자리로 나아갔음을 보여 준다.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는 고백은, 일하는 현장에서 왕을 더 깊이 사랑하겠다는 선언이다. 왕궁 침실에서만 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왕을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모습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8.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우리는 천국에서 어떤 존재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가?

  아가서는 술람미 여인의 성장을 통해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은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놀고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왕궁에 들어온 후 안락함에 취해 신랑이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술람미 여인처럼, 구원받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왕이 원하는 신부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가시나무밭의 백합화가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라고 했다. 이 세상은 가시나무밭이다. 악한 영들이 가득하고 죄와 고통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백합화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어둡고 딱딱하고 차갑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정결함으로 밝고 향기롭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밤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이 밤에 신랑을 찾아 나설 때, 그녀는 순찰하는 자들에게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는 이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함께 찾아나서도록 독려했다. 이것이 전사의 모습이다. 우리를 둘러싼 악한 세력들이 공격해 올 때 두려워하여 숨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맞서며 깃발을 꽂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이 포도주의 집에서 그녀 위에 사랑의 깃발을 세워 주었듯이, 우리도 원수의 영토에 복음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

  셋째로, 다른 신부를 산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은 단순히 자신이 왕비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밤에 신랑을 찾아나서면서 만나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증거했다. 그래서 그들도 신랑을 함께 찾는 자들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된 것은 다른 이들도 신부가 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나 혼자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신랑을 만나지 못한 영혼들을 찾아가 신랑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모습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가시나무밭의 백합화가 된 사람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고, 그 전사가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가 된다. 회개와 정결함으로 빛나는 삶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힘이 되고, 그 힘으로 이긴 자가 다른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된다. 이 세 가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왕이 신부를 데려온 목적이다.

 

  술람미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더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처음에 왕궁에 들어왔을 때 자신이 검다고, 즉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 1:5). 그러나 왕은 그녀를 "여자들 중에 어여쁜 자"라고 불렀다. 왕의 눈에 그녀는 이미 아름다운 자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할 때, 왕은 우리를 당신의 신부라고 부르신다. 그 왕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신부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왕의 신부라는 정체성이 확고해질 때,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고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이며 (롬 8:17),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아무나 그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업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람미 여인이 왕과 함께 포도원에서 땀 흘리고 밤에 신랑을 찾아 거리를 헤맨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왕과 함께 고난과 수고를 감당할 때 비로소 그 유업을 함께 누리게 된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가시나무밭에서 피어나는 백합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밤의 두려움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다른 신부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에너지와 삶을 다른 이를 위해 쏟아부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고난이지만, 동시에 영광으로 가는 길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그 과정을 통과했을 때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칭찬했다 (아 6:10). 주님도 우리가 이 과정을 통과했을 때 그렇게 칭찬해 주실 것이다.

아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믿음이란 바로 이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원수를 멸하고 다른 이들도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왕비가 되었으니 그냥 왕궁에서 편히 쉬면 된다는 생각은 왕의 뜻과 맞지 않는다. 왕은 그녀를 구중궁궐에 가두어 두려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더 강한 군사로 만들어 악한 영들을 때려잡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

 

9. 나오며

  아가서는 특이한 책이지만 여기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면 놀라운 책이다. 비록 이 책에서 우리는 신앙의 언어를 하나도 발견할 수없지만, 이 책이 실상은 가장 완벽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임을 확인했다. 솔로몬이 레바논의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간 것은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해서였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라고 한 것은 생명나무 아래서 있었던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그녀를 착취와 두려움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왕궁으로 데려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마와 60명의 용사를 동원하며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왕궁에 데려온 목적은 그녀를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로,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동역자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착취당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오신 목적은 단순히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더 강한 군사로 만들어 악한 영들과 싸우게 하시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신부로 산출하는 자들로 만들려 하신다.

  천국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인지를 준비해야 한다. 왕궁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왕비 60명과 후궁 80명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왕의 단 하나의 진정한 신부로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다른 신부를 양육하는 자로 살 것인지, 지금 이 땅에서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한다. 가시나무밭의 백합화로,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로,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아가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술람미 여인은 광야에서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올라오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 8:5). 광야는 이 세상이다. 거친 광야를 걸어오면서도 그녀는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어 함께 올라온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삶의 모습이다. 세상이라는 광야가 힘들고 거칠더라도, 주님께 기댄 채로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올라와서 왕이 우리를 당신의 어머니 집으로, 영원한 집으로 들여보내 주실 것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아가서이며,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견되어 구원받은 존재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광야를 걸어가며 주님께 기대어 함께 올라가야 한다. 포도원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먹이며, 밤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로,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술람미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가서를 읽을 때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목적은 모두 하나이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동역자, 거룩한 신부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솔로몬이 레바논의 험한 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 근처의 위험한 포도원에서 그녀를 찾아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 손에는 몰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일어서야 한다. 왕의 동산에 나의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풍성한 과실을 왕 앞에 내어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부의 삶이고, 이것이 천국에서 영원히 왕과 함께 살아갈 자의 이 땅에서의 준비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그 준비된 신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빨리 달려오라 (아 8:14)." 이것이 신부의 마지막 간구이다. 신랑을 기다리며, 신랑이 오시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 8:14 나의 사랑하는 자야 빨리 달려오라 향기로운 산들 위의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목적을 온전히 이루어 왕이 영원히 기뻐하시는 진정한 신부가 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8일(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가서를 단순한 남녀의 연가로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을 풀어낸 심오한 신학적 강론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찾아오심과 죄인인 교회를 신부로 삼아가는 구속사적 경륜을 모형론적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신부가 정결한 백합화에서 시작하여 원수를 이기는 전사로, 더 나아가 다른 영혼을 돌보는 신랑의 동역자로 성숙해가는 단계를 강조하며 성도의 사명을 일깨웁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아가서를 성도가 천국 왕의 짝으로서 합당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기 위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라고 정의하며 신앙의 성숙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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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8(주일) 주일낮2부예배(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책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 “여호와”, “기도”, “회개”, “찬양” 같은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만 읽으면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향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향품과 포도원과 동산과 사과나무와 백합화와 몰약과 포도주를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으면, 이것은 단지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요 연애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겉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제자들에게 풀어 주셨다(요 5:39, 눅 24:44).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원리를 붙들고 아가서를 읽으면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솔로몬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술람미 여인은 단순한 시골 처녀가 아니다. 그녀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신부, 곧 교회를 예표한다. 아가서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출하기 위해 내려오신 왕의 사랑이며, 자기 피를 포도주처럼 쏟아 신부를 살리려는 사랑이며, 마침내 그 신부를 왕궁으로 데려가 왕의 동역자로 세우려는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말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해석하였다(엡 5:31-32). 그러므로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 안에서 읽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번 본문은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였고, 그의 사랑이 자기 위에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신부를 위해 무엇을 하시며, 그 신부를 장차 어떤 존재로 세우려 하시는지가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왜 잃어버린 신부를 찾아오셨으며, 그 신부를 어떤 존재로 세워 가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는 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인가?

  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정경 안에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교리 문장으로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때로는 인물과 사건과 제도와 성막과 제사와 왕권과 결혼의 그림자를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신다. 아가서가 바로 그러한 책이다.

  모형론적 성경해석은 구약의 인물과 사건과 사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광야의 반석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성막도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특히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요 성전 건축자였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깊이 연결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원수를 이기시고 평화를 이루셨으며, 하나님의 지혜로 사탄을 멸하셨고,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쓴 아가서는 단순한 궁중 연애시가 아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왕이라면, 아가서는 물질적 성전 너머에 있는 영적 성전, 곧 교회가 어떻게 산출되고 어떻게 신부로 준비되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과 금과 나무로 지어졌지만,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성령으로 세워진다. 이 교회가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다.

  아가서의 신랑은 왕이다. 그는 부족함이 없는 자다. 왕비도 있고 후궁도 있고 시녀들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가 한 여인을 찾는다. 이것이 아가서의 비밀이다. 신랑에게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신랑에게는 반드시 찾아야 할 “단 하나의 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은 그 짝을 찾아내어 사랑하고,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고, 왕궁으로 데려오고, 자기 동산에서 함께 일할 동역자로 세운다.

  이런 의미에서 아가서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신부수업이란 단지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신부수업은 왕의 마음을 알고, 왕의 고난을 이해하고, 왕의 피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왕의 전쟁에 동참하고, 왕의 동산에서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일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는 성도는 “나는 예수 믿었으니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낮은 생각에 머물면 안 된다. 왕이 신부를 부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가서 8장 6절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한 질투로 표현된다. 여기서 “여호와의 불”로 번역된 표현은 원문상 최상급의 의미를 가진 강렬한 불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죽음도 이기는 사랑이다.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가장 맹렬한 불꽃과 같으니라

  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향한 소유욕이 아니라 구원과 성숙과 동역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알 때 아가서는 육체적 사랑의 노래에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로 열린다.

3. 왜 솔로몬은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는가?

  솔로몬은 왕궁에 있었다. 왕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평화의 왕이었고 지혜의 왕이었다.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 시녀들이 무수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다. 이 장면은 단순한 농장 시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왕이 내려간 깊은 이유는 자신의 잃어버린 짝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가서 6장 9절은 이 비밀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하나”는 히브리어로 에하드의 의미를 가진다. 에하드는 고립된 하나가 아니라 연합된 하나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그 하나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많은 여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신랑이 찾던 단 하나의 짝이다.

아 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를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솔로몬이 바알하몬 포도원으로 내려간 것은 왕궁 안에 사랑의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다. 왕궁 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왕의 동역자가 될 여인은 없었다. 왕과 함께 포도원을 알고, 양떼를 알고, 광야의 두려움을 알고, 사자굴과 표범산의 위험을 알고, 여우가 포도원을 허는 현실을 아는 여인이 필요했다. 신부는 왕궁의 장식물이 아니라 왕의 마음과 사역을 함께 감당할 짝이어야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계셨고,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셨으며, 만물의 주인이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죄와 귀신과 사망과 저주가 가득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왜 내려오셨는가? 잃어버린 신부를 찾기 위해서다. 자기 생명을 나누어 받을 짝을 얻기 위해서다. 사탄과 귀신들에게 억압당하던 사람들을 건져 새 예루살렘의 신부로 세우기 위해서다.

  술람미 여인은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은 자유로운 사명이 아니라 억압된 노동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준다. 악한 영들이 인간을 종처럼 부리고, 인간은 자기 포도원을 지킬 힘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러므로 솔로몬의 내려옴은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을 예표한다. 신랑은 높은 왕궁에 머물며 신부가 스스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신부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것이 은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4. 술람미는 왜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

  아가서 2장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히브리어 도드다. 도드는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부르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한 고백이다.

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왜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 아가서에는 많은 나무들이 나온다. 포도나무도 있고 석류나무도 있으며 무화과나무도 있고 고벨화나무와 유향나무와 계수나무와 몰약나무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사과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타푸아흐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숨쉬다, 향기를 내다, 생명의 기운을 연상시키는 의미와 연결하여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사과나무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다. 사람은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에서 쫓겨났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런데 술람미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이것은 그녀가 신랑 안에서 잃어버린 생명의 근원을 본 것이다. 신랑은 숲의 많은 나무들 가운데 특별한 나무다. 그 나무는 그늘을 준다. 그 나무는 열매를 준다. 그 열매는 입에 달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과 안식과 말씀의 달콤함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으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신랑이 사과나무 같다는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신부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이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또한 아가서 8장 5절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을 암시한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는 말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근원과 연결된 관계임을 보여 준다.

아 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신부는 신랑의 그늘 아래 앉아 기뻐한다. 이것은 피곤한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신부는 그의 열매가 입에 달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말씀이 꿀보다 달고, 생명이 영혼을 살리며, 그리스도의 공급이 세상 어떤 즐거움보다 더 깊은 기쁨을 준다는 뜻이다.

5. 포도주의 집과 사랑의 깃발은 무엇을 뜻하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잔칫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를 살피면 이것은 단순한 잔칫집이라기보다 야인 바이트, 곧 포도주의 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도주의 집은 포도가 눌리고 짜여 포도주가 되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곳은 신랑이 신부에게 자기 사랑의 본질을 보여 주는 자리다.

아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포도가 으깨어지고 짓눌려 포도주가 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녀를 위해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피 흘림의 사랑이다. 신부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7-28). 포도주의 집은 이 피의 언약을 예표한다.

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런데 신랑은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도 보여 준다. 깃발은 소속과 승리와 전쟁을 의미한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깃발이다. 신랑의 사랑은 신부 위에 꽂힌다. 이것은 “너는 내 것이다”라는 소속의 표시이며, 동시에 “너는 원수의 영토에서도 승리할 자다”라는 승리의 표시다.

  아가서의 신랑은 신부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는 피 흘리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원수의 영토 위에 꽂힐 승리의 깃발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긴다. 피는 속죄를 이루고, 증언은 깃발을 세운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포도주의 집은 신부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치는 장소다. 신부는 거기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원수를 이기는 전쟁의 깃발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부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랑은 신부를 전사로 세운다.

6. 왜 신부는 포도원에서 왕궁으로 옮겨져야 했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포도원에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려 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오빠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아가서 1장 6절에서 그녀는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빠들은 단순한 혈육으로만 볼 수 없다. 모형론적으로 보면, 이는 인간을 억압하고 자기 일에 종처럼 부리는 타락한 영들을 예표한다. 그녀는 포도원지기였지만 자기 포도원조차 지키지 못했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둘째, 그녀는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위험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 준다. 비둘기는 순결한 새이지만, 포식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숨어야 한다. 신부는 순결을 지키고 있었지만 두려움과 위협 속에 있었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셋째, 그녀가 있던 곳은 사자굴과 표범산이었다. 아가서 4장 8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레바논에서,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 사자와 표범은 포악하고 빠르며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다. 성경의 상징 세계에서 이것은 악한 권세와 적그리스도적 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들과 표범들의 산들에서 내려오너라

  넷째, 그녀 혼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을 수 없었다. 포도원에 꽃이 피었는데 여우들이 들어와 포도원을 허문다. 이것은 열매가 맺히기 직전에 들어와 사명을 망가뜨리는 작은 악한 영들의 역사를 보여 준다. 신부는 포도원을 맡았지만, 여우를 잡을 힘이 없었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그러므로 왕은 그녀를 데려와야 했다. 왕궁으로 데려온다는 것은 단지 편안하게 살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왕의 보호 안으로 옮기는 것이며, 왕의 훈련 안으로 들이는 것이며, 왕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자로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구원은 위험한 포도원에서 건져지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구원의 목적은 왕궁에서 놀고먹는 것이 아니다. 왕과 함께 다스리고 왕과 함께 싸우고 왕과 함께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데 있다.

7. 왕은 신부를 어떤 전사로 세우려 했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데려오기 위해 자기 가마를 보냈다. 그 가마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왕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보내는 영광의 수단이다. 그 가마 주변에는 이스라엘 용사 60명이 둘러섰다. 그들은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자들이었다. 밤의 두려움 때문에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

아 3: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그녀를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그의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이것은 신부가 왕에게로 가는 길이 단순한 꽃길만은 아님을 말해 준다. 밤의 두려움이 있다. 영적 원수들이 있다. 그러나 왕은 신부를 홀로 두지 않는다. 왕은 자기 용사들을 보내고, 가마를 보내며, 신부를 안전하게 인도한다. 이 장면은 성도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천사의 호위가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왕은 신부를 영원히 보호받는 연약한 자로만 두지 않는다. 신부는 왕궁에 들어온 뒤에도 성장해야 한다. 아가서 5장에서 그녀는 신랑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신랑은 밤이슬을 맞고 돌아와 문을 두드리며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 문을 열지 않는다. 이미 옷을 벗었고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힐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신부는 왕궁의 안락함에 젖어 신랑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그런데 신랑의 손에서 몰약이 떨어진다. 몰약은 죽음과 희생의 향품이다. 신부는 신랑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밤길로 나가 신랑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순찰자들에게 맞고 상처를 입으며 겉옷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숨지 않는다. 신랑을 찾기 위해 밤을 통과한다.

  이 과정을 지난 뒤 신랑은 그녀를 향해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당당함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두려움을 주는 위엄이다. 신부는 이제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성장한다.

아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아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이 여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신부의 두 번째 단계다. 첫째 단계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순결을 지키는 단계다. 둘째 단계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신부는 사랑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왕의 권세를 받아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단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왕의 사랑을 힘입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8. 신부는 왜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해야 하는가?

  솔로몬이 술람미를 왕궁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녀를 구중궁궐에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는 왕궁에서 신랑의 사랑만 받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랑의 마음은 더 넓었다. 그는 신혼의 밤에도 밖에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했다. 신랑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가서 6장 2절에서 그 답이 나온다. 신랑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고 있었다. 여기서 백합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아가서의 흐름에서 백합화는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신부, 곧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성도를 상징한다. 꺾어진 백합화는 피 흘린 순교자와 고난받는 성도를 떠올리게 한다. 신랑은 지금도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피 흘린 백합화들을 거두고, 또 다른 신부들을 돌보고 계신다.

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들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치는구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신부의 시야가 바뀐다. 신랑은 나만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신랑은 지금도 양떼를 먹이시고, 또 다른 신부들을 찾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순교자들을 맞이하신다. 그러므로 신부가 성숙하면 신랑의 마음에 동참해야 한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신랑이 하는 일을 함께해야 한다.

  아가서 7장 10절에서 13절은 성숙한 신부의 고백을 보여 준다. 그녀는 이제 신랑에게 함께 들로 가자고 말한다.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왕의 동산과 포도원 사역에 동참하려 한다는 뜻이다.

아 7:10-1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이 신부의 세 번째 단계다. 첫째는 백합화 같은 신부다. 둘째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다. 셋째는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신부다. 왕의 신부가 되었다면 왕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고생하는 다른 술람미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여우들에게 포도원을 빼앗긴 자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는 일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붙들어야 한다. 신부의 성장은 한 번의 감정적 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술람미가 처음부터 깃발을 세운 군대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햇볕에 그을린 포도원지기였고,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자였으며,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였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을 보고, 왕의 가마에 실려 왕궁으로 옮겨지고, 밤에 신랑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점차 강한 신부로 빚어졌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도 한순간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와 말씀과 영적 전쟁과 양육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신부다운 신부로 성숙해야 한다.

  또한 신부가 다른 신부를 양육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랑이 어떤 분인지, 왜 피 흘리셨는지, 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아야 하는지, 왜 천국 왕의 동산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양육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랑의 마음을 전수하는 일이다. 신부가 신랑의 마음을 모르면 다른 신부를 낳을 수 없다. 신부가 포도주의 집의 비밀을 모르면 피의 사랑을 전할 수 없고, 신부가 여우를 이긴 경험이 없으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자신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를 구원하신 신랑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주님이 나를 신부로 부르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나를 통해 또 다른 신부를 얻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신부는 신랑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양떼를 먹이고, 여우를 잡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또 다른 신부를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을 중심으로 신부를 사랑한 신랑의 목적을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솔로몬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는 왕궁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해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오셨다.

  신랑은 신부를 보자마자 자기 짝임을 알아보았다. 신부도 신랑을 보며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고백하였다. 그 사과나무는 생명나무의 그림자요, 그 그늘은 그리스도 안의 안식이며, 그 열매는 말씀과 생명의 달콤함이다. 신랑은 그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여 자기 사랑이 피 흘림의 사랑이며 원수의 영토에 꽂히는 깃발임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편하게 쉬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셨고, 왕의 가마와 60용사를 보내 왕궁으로 데려오셨다. 그리고 그녀를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세워 가셨다. 나아가 그녀가 신랑의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줍는 신랑의 일을 깨닫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동역자로 성숙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자신이 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받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도 천국 왕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돕는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여 왕궁으로 데려온 목적이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신부는 신랑의 마음도 알아야 한다. 신랑의 마음은 아직도 포도원에 있고, 양떼에게 있으며, 꺾어진 백합화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궁의 편안함만 바라보지 말고,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다녀오신 동산의 일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랑의 피와 사랑으로 정결하게 되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으며,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하여 천국 왕의 동산에 함께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8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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