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보는 신학자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신자를 위한 양육서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게 해주는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생명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요청되며, 당시 기독교에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초기 영지주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에 맞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요한일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요한일서는 구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교차대구법이 쓰인 것도 아니며, 직선론적인 논리전개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어쩌면 순환론적인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른 바퀴가 같이 굴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므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요 소제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한일서 1장에 보면 '빛'과 '어둠'과 '진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에서도 역시 '빛'과 '어둠'과 '진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일서를 큰 주제별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의 주제는 '교제'(코이노니아)로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더불어 사귀는 교제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1~2장의 말씀이다. 그리고 두번째의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제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존재이며 그리고 무엇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요한일서 3~4장에서 증거한다. 그리고 세번째 마지막 주제는 요한일서 5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승리'라는 주제다.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당시에 이미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었으나 떨어져나간 바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
사도 요한은 성도들간의 교제에 있어서 이제는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성도들에게 들어온 이단적 세력에 주의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한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들'이라고 하였고(요일2:18,22,4:3, 요이1:7),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요일2:26, 요이1:7).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바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초기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말씀을 통하여 적그리스도 혹은 미혹하는 자가 영지주의자라는 사실을 계속 언급한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요일2:18~29의 말씀에서, 영지주의 이단세력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이단세력은 정통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요일2:19). 즉 한 때는 영지주의자들도 정통 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더이상 참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자기들이 참 진리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알게 되어 교회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이단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진리는 진리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리를 외치는 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만약 참지 못한 채 참된 교회를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와 그리고 아들이 누군지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세력이라는 것이다(요일2:22~23). 즉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거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단세력이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셋째, 이들은 계속해서 성도들을 미혹함으로서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요일2:26). 누군가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점점 더 자신을 헤매게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참 진리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진정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이다(행2:33). 이때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4. 초기 영지주의가 당시 '이단세력'이자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당시 교회에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였다(요일2:26). 여기서 교회에 이미 들어와 미혹하고 있던 자들은 바로 다름 아닌 '초기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요(요일4:2~3), 둘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2:22a). 그리고 셋째,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하나님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22b). 넷째,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3). 그렇다면 이들의 고백이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4:2~3).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영은 선하고 육(물질)은 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결단코 육체를 가지신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나사렛 예수에게 들어갔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2:22). 이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당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날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다름이 아니라 그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까지 말했다. 왜냐하면 '영'은 결단코 죽을 수가 없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은 역시 아버지와 아들 중에 한 분을 부인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고백이 아버지도 믿어야 하고 아들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두 분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보면 하나의 하나님의 보좌에 다름 아닌 예수께서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루 우리 주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여호와를 무시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말한다. 둘 다를 한 분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울러 동시에 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때에 우리는 구별된 두 분을 또한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두 분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침투 내지는 상호내주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당시 유대교나 오늘날의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들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5. 요한 사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왜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어떤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장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주로 보내시는 분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증언하는 것으로서(사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라고 하였다. 더욱이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주실 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자에게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욜2:28~29), 사람 속에 내주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겔36:26~27, 렘31:33). 그러므로 마가다락방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보혜사 성령과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 그는 요한복음에 그것을 기록할 수가 있었다(요14:16).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교회의 성도들은 영지주의자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배울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일2:20). 그리하여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말라고 했다(요일2:27). 오로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예수께서 누구시며, 또한 그분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4;26).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미혹에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대체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통(코이노니아)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교통을 방해하는 이단세력이 있으니 그 세력을 잘 분별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후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 현재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3장 1~12절까지의 말씀의 핵심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난다고 했다(요일3:10).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키며, 마귀의 자녀들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였다(요일4: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면이 갖춰진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지금 그분이 깨끗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자라고 말했다(요일3:3).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거룩하며, 육은 악한 것이고 더럽다고 판단했기에, 자기의 육체를 성결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어차피 육은 영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는 자는 장차 주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자녀로 발견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둘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의롭게 있는 것처럼 자신도 의를 행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요일3:7).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뒷받침되지도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로움이 비록 발견되지 않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재림시가 되면 응당 자기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혹'이라는 것이다(요일3: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 속한 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는 결코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닌 것이다(요일3:8).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다(요일3:11~12).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야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는 사망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자라고 하였다(요일3:14). 만약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여전히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는 자이다(요일3:12). 그러한 자는 마귀에게 속했기에 결국 최초의 형제 살인자였던 가인처럼 자기의 형제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요일3:12).
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멸한다'는 표현은 그것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것을 폐하여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귀가 아무리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고 해도 쓸모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해 놓으셨기에, 믿고 회개하는 자는 지금도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마귀가 어떤 일들을 해도 그 일은 무효화되어버릴 것이며, 폐지될 것이다.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때에 사람 속에 '하나님의 씨'도 주셨다고 말했다(요일3:9).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성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믿은 후 거듭날 때에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때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싹이 트게 되고, 말씀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려면 최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가인은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아훙수 이전까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가인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잃고 만다. 그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악한 자 곧 마귀의 인도를 따라갔기 때문이다(요일3:12). 결국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영원한 멸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누구의 음성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의 특징에 대해 3가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들에 관하여 3가지를 언급하였다. 요한이 자꾸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미혹하는 영에게 속지 말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서 꼭 영생을 얻으라는 권면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신천지나 하나니의 교회와 같은 이단이 횡횡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끌어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당시 이단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으니,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이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서 마지막 날에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12월 01일(수)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보는 신학자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신자를 위한 양육서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게 해 주는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생명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요청되며, 당시 기독교에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초기 영지주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에 맞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요한일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요한일서는 구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교차대구법이 쓰인 것도 아니며, 직선론적인 논리 전개 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어쩌면 순환론적인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른 바퀴가 같이 굴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요 소재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한일서 1장에 보면 '빛'과 '어둠'과 '진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에서도 역시 '빛'과 '어둠'과 '진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일서를 큰 주제별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의 주제는 '교제'(코이노니아)로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귀는 교제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1~2장의 말씀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제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존재이며 그리고 무엇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요한일서 3~4장에서 증거한다. 그리고 세 번째 마지막 주제는 요한일서 5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승리'라는 주제다.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당시에 이미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었으나 떨어져 나간 바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
사도 요한은 성도들 간의 교제에 있어서 이제는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성도들에게 들어 온 이단적 세력에 주의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한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들'이라고 하였고(요일2:18, 22, 4:3, 요이1:7),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요일2:26, 요이1:7).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바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초기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말씀을 통하여 적그리스도 혹은 미혹하는 자가 영지주의자라는 사실을 계속 언급한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8~29의 말씀에서, 영지주의 이단세력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이단세력은 정통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요일2:19). 즉 한 때는 영지주의자들도 정통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더 이상 참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자기들이 참 진리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알게 되어 교회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이단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진리는 진리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리를 외치는 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만약 참지 못한 채 참된 교회를 뛰쳐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누군지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세력이라는 것이다(요일2:22~23). 즉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거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단세력이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셋째, 이들은 계속해서 성도들을 미혹함으로서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요일2:26). 누군가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점점 더 자신을 헤매게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참 진리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진정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믿는 자들에게 보내 주시기 때문이다(행2:33). 이때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4. 초기 영지주의가 당시 '이단세력'이자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당시 교회에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였다(요일2:26). 여기서 교회에 이미 들어와 미혹하고 있던 자들은 바로 다름 아닌 '초기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요(요일4:2~3), 둘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2:22a). 그리고 셋째,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하나님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22b). 넷째,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3). 그렇다면 이들의 고백이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4:2~3).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영은 선하고 육(물질)은 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결단코 육체를 가지신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나사렛 예수에게 들어갔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2:22). 이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당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날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다름이 아니라 그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까지 말했다. 왜냐하면 '영'은 결단코 죽을 수가 없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은 역시 아버지와 아들 중에 한 분을 부인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의 신앙고백은 아버지도 믿어야 하고 아들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두 분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 보면 하나의 하나님의 보좌에 다름 아닌 예수께서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여호와를 무시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말한다. 둘 다를 한 분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울러 동시에 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때에 우리는 구별된 두 분을 또한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두 분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침투 내지는 상호 내주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당시 유대교나 오늘날의 여호와의증인은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들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5. 요한 사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왜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어떤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장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주로 보내시는 분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증언하는 것으로서(사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라고 하였다. 더욱이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자에게 보내 주실 뿐만 아니라(욜2:28~29), 사람 속에 내주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겔36:26~27, 렘31:33). 그러므로 마가다락방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보혜사 성령과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 그는 요한복음에 그것을 기록할 수가 있었다(요14:16).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교회의 성도들은 영지주의자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배울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일2:20). 그리하여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말라고 했다(요일2:27). 오로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예수께서 누구시며, 또한 그분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4;26).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미혹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대체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통(코이노니아)을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교통을 방해하는 이단세력이 있으니 그 세력을 잘 분별해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후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 현재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3장 1~12절까지의 말씀의 핵심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난다고 했다(요일3:10).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키며, 마귀의 자녀들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였다(요일4: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면이 갖춰진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지금 그분이 깨끗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자라고 말했다(요일3:3).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거룩하며, 육은 악한 것이고 더럽다고 판단했기에, 자기의 육체를 성결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어차피 육은 영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는 자는 장차 주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자녀로 발견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둘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의롭게 있는 것처럼 자신도 의를 행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요일3:7).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로움이 비록 발견되지 않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재림시가 되면 응당 자기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혹'이라는 것이다(요일3: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 속한 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는 결코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닌 것이다(요일3:8).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다(요일3:11~12).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야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는 사망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자라고 하였다(요일3:14). 만약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여전히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는 자이다(요일3:12). 그러한 자는 마귀에게 속했기에 결국 최초의 형제 살인자였던 가인처럼 자기의 형제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요일3:12).
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멸한다'는 표현은 그것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것을 폐하여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귀가 아무리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고 해도 쓸모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해 놓으셨기에, 믿고 회개하는 자는 지금도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마귀가 어떤 일들을 해도 그 일은 무효화되어 버릴 것이며, 폐지될 것이다.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때에 사람 속에 '하나님의 씨'도 주셨다고 말했다(요일3:9).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성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믿은 후 거듭날 때에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때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싹이 트게 되고, 말씀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려면 최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가인은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 이전까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가인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잃고 만다. 그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악한 자 곧 마귀의 인도를 따라갔기 때문이다(요일3:12). 결국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영원한 멸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누구의 음성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의 특징에 대해 3가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들에 관하여 3가지를 언급하였다. 요한이 자꾸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미혹하는 영에게 속지 말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서 꼭 영생을 얻으라는 권면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이단이 횡행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끌어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당시 이단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으니,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이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서 마지막 날에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12월 01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