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아담성의] 회복, 그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창1:2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op6ncpmnW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22]
1. 들어가며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다.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시대에 부여하신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감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기업을 위해 지금 이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결해야 하고, 은혜를 나눠줄 줄 알아야 하며, 영적 수준을 높이는 자라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영적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시는 것일까? 과연 우리가 온전히 회복이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며,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했던 아담은 어떤 수준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 그중에 인간은 맨 마지막날 해가 넘어갈 무렵에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람의 창조는 다른 창조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육적인 피조물로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피조물로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직 온 우주 가운데 사람만이 영을 가진 존재로서 영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영적 수준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그리스도를 모델로 해서 창조했기 때문이다(고후4:4, 골1:15). 즉 창조된 아담의 수준은 예수님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의 수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 수준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그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종류로 창조되었기에, 그 지혜와 능력이 무궁하다는 것이다(창1:26~28). 사실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은 각기 자신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창1:24~25). 그런데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 창조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 장차 인간이 천국에서 예수님처럼 살게 하려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육신을 입으셨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시고, 베드로의 미래를 아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인이 자신의 옷가를 만졌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모습도 속사람(영)이 육체보다 더 빛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몸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둘째, 아담은 이 땅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는 왕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에 맨 마지막으로 창조된 고등 생명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다(창1:28).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 아담은 모든 만물 위에 있는 왕적 존재였다. 모든 만물이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음성에 순종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남의 나귀를 자신의 나귀처럼 가져다가 쓰실 수 있는 것과 같다. 사실 아담은 모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2:19~20).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자신의 왕이 누군지를 알아보았고 아담의 말에 순종했던 것이다. 만약 아담이 화가 나서 무화과를 저주했더라면 그때 무화과도 역시 뿌리채 말라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뱀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하면 에덴동산에서 나가야 했을 것이다. 뱀은 아담이 다스릴 수 있는 권한 안에 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특별했다. 육체적인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의 몸과 그리고 영혼의 몸 즉 2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육의 눈으로는 자연 만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영의 눈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빛처럼 볼 수 있었고, 천사도 사탄 마귀도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도 볼 수 있었고 지옥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의 귀가 열려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창3:8,10). 그것은 타락 후에도 얼마까지는 계속해서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영의 눈은 점차 닫히게 되었고 육의 눈은 더 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4.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영적인 감각과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이 엄청난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뒤에,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 하나를 창설하셨다. 그리고 그곳에 모든 종류의 나무들이 나게 하셨다. 그런데 동산의 한 중앙에는 생명나무를 두셨다. 그런데 그것과 가까운 곳에 선악과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나무는 특이한 나무였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생명수가 공급되어 자라고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생명나무는 이 땅에 속한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적인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는 하늘에 있던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가져다 심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고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담이 그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담은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고 말았다. 그러자 죄를 지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시키셨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전에 생명나무를 하늘로 올려가셨다. 그래서 지금 이 생명나무는 천국에 있다.
문제는 선악나무다. 선악의 지식의 나무는 어떤 나무였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나게 하신 평범한 나무였다. 하지만 마귀가 이 나무를 변조시켜 놓았다. 사탄 마귀는 원래 일반 나무의 열매에다가 자신의 악한 영들(뱀들)을 이용하여 선악나무의 열매로 만들었던 것이다. 보기에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비슷해 보였지만 뱀들이 그 나무의 열매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담과 하와가 이 열매를 먹게 된다면 평범한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열매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뱀들)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제사상에 올라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을 같이 먹는 구조와 같다. 그런데 그만 하와가 먼저 뱀의 꾀임을 받아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고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자 아담도 그것을 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속에 사악한 영들인 뱀들이 치고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인 감각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육의 눈은 더 밝게 열려지기 시작했다. 타락 직후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충만히 있었으나 자손으로 내려갈수록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은 희미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영의 눈이 닫혀 있고 영의 귀가 막혀 있어서, 빛이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동식물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하여 자연 만물에게 무슨 명령을 한다 할지라도 자연 만물이 복종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귀신에게 명령해도 귀신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다.
5.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통해서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첫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악한 영들을 받아들였지만, 그 후에는 사람이 범죄할 때마다 뱀들이 몸속에 치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창3:14).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후 뱀에게 "너는 흙을 먹고 살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흙은 '아파르'로서 사람의 몸의 재료에 해당한다(창2:7). 그러므로 뱀은 지금도 사람이 범죄하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통해서 몸속에 들어온 영들과 자신의 범죄로 인해 또 불러들인 뱀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몸은 더럽혀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로 인해 더럽혀진 몸을 예수님의 피로서 반드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악한 영들을 몰아내어 내 몸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주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되지 아니한가?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1년 동안 자신의 지은 죄가 다 용서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개인이 범죄했으면 개인은 반드시 속죄제사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 얄팍한 사람이 있어서 자신의 개인 속죄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고 1년에 한 번 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믿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인도 낱낱의 죄를 회개해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회개생활을 등한히 여긴다.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가 회개함으로 그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곧 충분한 회개만이 저주를 완전히 끝내고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고로 지금 내가 아담의 수준까지 회복되지 아니한 것은 아직 충분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결코 한꺼번에 내 몸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그것들이 우리 몸에 있어서 온갖 저주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재물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내게 재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마는 것이다. 또한 내 앞길이 방해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충분히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께서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것을 안다고 하여 순순히 그냥 나가지 않는다. 우리의 입술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까지도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도 우리 몸에서 합법적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충분한 회개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충분한 회개를 했다면 지금까지 내게 병을 주고 있는 귀신이 비로소 떠나갈 것이다. 그러면 병에서 곧바로 나을 것이다. 온갖 가난의 저주를 갖고 들어온 뱀들이 떠나가게 되니까,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신이 떠나가면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되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천사를 보고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돕는 천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고, 귀신들을 보고서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게 명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수시로 눈을 뜨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영의 귀도 열리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천사와도 대화가 가능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물을 말로서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무화과나무를 하루아침에 뿌리채 마르게 할 수 있고, 물 위를 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과거를 당겨서 볼 수도 있고, 현재의 영적 상태도 볼 수 있으며, 미래의 상태도 당겨서 볼 수 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 아담의 영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회복은 바로 이러한 회복, 곧 아담성으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