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약성경인 야고보서를 통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보게 된다(약2:23). 그런데 창세기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벗이 된다면 대체 어떤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가? 거기에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들어있다. 그것을 우리는 신약시대 예수님의 "고별설교"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1. 들어가며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칭함을 받았다는 표현이 나온다(약2:23).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당신의 친구라고 불렀던 것일까? 혹시 창세기가 그 힌트가 있을까 하고 창세기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했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예수님 친동생 야고보는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기록했던 것일까? 그래서 구약성경 전체를 뒤져보니, 딱 한 번 이사야서에 그러한 표현이 나온다(사41:8).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친구)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확히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도 또다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신약시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친구"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자들이 누리게 될 축복이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는 누구를 당신의 친구라고 말씀하셨는가?
초기교부 이레네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을 기록하기 위하여 기록한 네번째 복음서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관복음서에서 나오지 않은 독특한 말씀들을 요한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에 말씀하셨던 것들만 기록한 것이 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에 나오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들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밤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라 하여 "고별설교"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예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나의 친구"라는 표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과연 누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요한복음 15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당신의 친구라고 정의하셨는지가 나온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딱 3년반을 사셨다. 그리고 공생애의 마지막 전날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드셨다. 그리고 식사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으며 식사하시면서 성만찬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그때에 들려주신 말씀만을 기록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고별설교"다. 그런데 이때 비로소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그들을 더 이상 "종"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주인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친구"라고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친구가 되는 조건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다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는데 그 말씀들을 들었으면 그가 곧 예수님의 친구라고 하셨다(요15:15). 그렇다. 그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정말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들을 제자들에게 다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들을 "친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날 무슨 말씀을 들려주셨는가?
그렇다면 그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는가? 우리는 "고별설교"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가 바로 나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고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3:3, 16:27~28). 이 표현은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들로 어디선가 있었다가 육신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그때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성육신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가실 때에는 아버지에게로 가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하여 가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실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계3:21).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요13:19). 한글개역성경에는 "내가 그니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그것은 잘못 번역된 것이다. 그 표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당신만이 스스로 계신 분이시요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으로서, 출3:14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실은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자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그렇게 요청했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9). 그리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예수께서 스스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했다(요14:10). 고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버지를 믿는 것이라고 했으며(요12:44~45),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3:20). 결국 그날 예수께서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 자신인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그날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도 하셨다(요14:6). 그분을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이었다. 고로 제자들이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구약시대에는 왜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친구라고 칭함을 받았는가?
구약시대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직접 육체로 보고 만났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아브라함 뿐이었다. 그 장면이 창세기 18장에 나온다. 창세기 18장은 구약시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대접하는 식사를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는 장차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다. 그것은 "내가 다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그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창18:10,14)"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장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실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아들로 오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일러주신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의 이삭 번제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희생제물로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방법까지 그대로 알게하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인류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들었으며, 그 방법을 실행에 옮겼던 사람은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구약시대에는 아브라함만을 일컬어 "하나님의 친구"라고 하신 것이다.
5. 하나님의 친구가 되면 받게 되는 6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친구가 되면 어떤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이것을 정의하려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보통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중에서 앞의 3가지는 핵심적인 축복이요, 뒤의 3가지는 보조적인 축복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축복은 3가지인데, 앞의 2가지는 이 세상에서 받을 축복이요 뒤의 한 가지는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 받을 축복이다. 그런데 이 6가지 중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2가지 축복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친구가 된 자들이 받을 축복으로서, 이 세상에서 받을 축복 2가지다. 그럼, 이제 6가지 중 이 세상에서 받을 축복 2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그것은 한 마디로, 첫째는 예수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을 수 있는 기도응답의 축복이며(요15:16), 둘째는 예수께서 하늘로 가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시어 함께 하게 하시겠다는 성령동행 축복이다(요14:16~19, 26, 15:26, 16:1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기도에 관한 놀라운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듣게 된다. 그것은 예수께서는 과연 기도의 통로인가 아니면 기도응답의 주체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때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이 말씀만 놓고 보면 예수님은 기도의 통로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도에 관한 다른 말씀도 그때 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이 말씀에 의하면 기도응답의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렇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향하여 가시면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께서 앉으시기 때문에 그분이 아버지로서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서 응답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동행의 축복도 말씀해주셨다.
그럼, 그날 예수께서 하나님의 친구가 된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3년반동안 동고동락했던 예수께서 이제 제자들의 곁을 떠날 기약이 이르렀지만,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고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들려주신 것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이렇다. "너희들이 이전에는 아버지께 구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이름으로 나에게 구하라. 그러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내가 나를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줄 것이다. 그분이 내려오면 모든 것을 가르쳐줄 것인데, 내가 너희에게 말했던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며, 내가 누군지를 증언해 줄 것이며, 그분은 진리의 영이니만큼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시고 장래 일도 알려주실 것이며, 결코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게서 듣는 말씀만을 증언할 것이며, 오직 나의 영광만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제자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하늘에 마련된 처소(집)에 들어가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요14:1~2,17:24). 이것이 하나님의 친구가 받을 세번째 축복이다. 그리고 보조적인 축복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 동안 첫째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요17:11~12). 그리고 둘째로, 이 세상에서 손대는 일에 열매를 맺되 항상 열매가 있게 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요15:16). 그리고 셋째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할 것이고, 불안이 변하여 평안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 세상임금인 마귀를 심판하여 무저갱으로 쫓아버리실 것이고, 귀신들을 무장해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요16:8~11, 계1:17~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친구가 된 자들은 결코 근심할 이유도 없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죽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우리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가적으로 하나님의 친구된 제자들이 혹시 세상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박해를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요15:19, 16:33), 출교와 순교를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말라고 하셨다(요15:20, 16:33).
6. 나오며
알고보니 이제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친구이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우리에게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으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6가지 축복이 그냥 내 것이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자신들이 만약 내가 명령하고 있는 바 그것들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나의 친구라(요15:14)"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으니 가만히 있으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온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들어오도록 손을 앞으로 뻗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했다면 아브라함처럼 기도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을 때에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눈앞에 나타난 육신을 입으신 한 분 하나님께 롯의 구출을 위해 기도에 매달렸으며, 블레셋왕의 왕비와 여종들의 출산을 위해 기도를 했던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대로 되었다. 기도하는 것마다 그대로 응답이 된 것이다. 그렇다. 이제 나도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으면 이전처럼 기도해봤자 별로 소용없더라는 상실감에서 떠나, 이제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진리의 영이시자 돕는 보혜사로서 내게 오신 성령께서 기쁘게 일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고 그분이 하라고 하는 것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모르는 성경말씀이 있다면 그분이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지켜보호주시기를 요청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일을 위해서는 지혜를 주시고 동행하여 주심으로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슬픈 일이나 역경을 만나더라도 주님께서 그 모든 환경을 변화시켜주셔서 기쁨과 평강이 넘치기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부터는 성령을 의지하면서 진짜로 기도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면 예수께서 하신 일도 행할 것이지만 그보다 더 큰 것도 행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요14:12). 이는 능력의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행1:8).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도 하나님의 친구된 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출발해보자. 건승을 빈다.
2021년 05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