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하실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 우리가 만약 그 방식을 모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과 상반된 삶을 살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방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에 대해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알려 주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일하시는지 그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사실 우리가 구원받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방식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시는 방식을 서로 비교 검토함으로서, 우리가 받을 구원도 이루어 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도 풍성하게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구원은 한 번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난 일인가?
사람은 믿을 때에 구원을 받는가? 그렇다. 사람은 믿을 때에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분명히 그와 같은 사실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렇다. 사람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음을 믿을 때에 속죄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거듭남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이해하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부분은 아직도 우리가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자신의 구원의 문제는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한다. 정녕 믿고 회개한 자는 구원의 문제가 정말 이미 끝난 것인가? 만약 이와 같은 진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가 읽었던 빌립보서 2:12과 같은 말씀은 그 말씀과 충돌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12에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충돌되는 듯한 말씀을 볼 때에 이 말씀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개의 말씀은 서로 충돌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서로 다른 측면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구원의 이중성이란 무엇인가?
사실 성경은 2가지 구원을 말한다. 하나는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 있다. 이것은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에게 거저주심으로 우리가 얻는 구원이다. 이때 사람들은 죄사함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중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영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구원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혼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평생 지속되어지는 경험 속에서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할 구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이 혼의 구원을 '성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성화와 혼의 구원은 조금 차이가 있다. '성화'는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굳이 안 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혼의 구원은 성화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혼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는 죽는 날에 우리의 영의 구원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는 날에 성령께서 그 사람을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이 떠나가심으로 그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성밖에 있거나 혹은 불못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혼의 구원을 이뤄 가야 한다. 오늘 빌립보서 2:12에서 말씀하는 구원이란 바로 이 '혼의 구원'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의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영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영의 구원은 사실 믿음과 회개로 거저 받는 구원이지만 혼의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스스로가 이뤄 가야 할 구원이기 때문이다.
4.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혼의 구원은 하나님이 해 주시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그렇다면 혼의 구원 즉 이미 영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자신의 혼의 구원을 위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는 구원은 누가 해야 하는 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인가? 그것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12에서 정확히 알려 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중생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구원이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얻어야 할 구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던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빌립보서 2:12의 말씀을 다시 보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 본문의 주어는 분명 '너희들'이다. 다시 말해 이미 예수님을 믿어 영의 구원을 받은 빌립보 성도들이 그들이다. 구원을 이루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사용할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세는 '두려움과 떨림으로'이다. 즉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야 할 주체는 '너희들' 곧 '우리들'인 것이지 하나님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문장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빌립보서 2:12의 후반절의 말씀을 이제 직역해 보자. "너희들은 두려움과 떨림과 함께 너희들의 구원을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힘써서 완수하고 있어라." 이때 동사를 보니, '카테르가제스테'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의 원형은 '카테르가조마이'라는 동사의 '현재 명령법 중간태 수동태 디포넌트 2인칭 복수'다. 이 단어는 '카타'라는 강조 접두어에다가 '에르가조마이'가 결합되어 생긴 단어다. 이때 '에르가조마이'가 '만들다. 생산하다' 혹은 '완성하다. 성취하다. 완수하다'라는 뜻이므로, 강조 접두어와 합치면 그 뜻은 '힘써서(애써서) 완수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동사는 현재 명령형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힘써서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중간태 수동태 디포[넌트]' 동사다. 이는 형태는 수동태형을 띠고 있지만 해석은 능동형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요, 중간태인 만큼 '자기 자신을 위하여' 혹은 '스스로'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카테르가제스테'라는 동사는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힘써서 완수하고 있어라'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무엇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우리 한글성경에는 단지 '구원을'이라고 나와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너희 자신들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너희 자신들의 구원'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문장을 헬라어로 번역해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 것이 분명하다. 혼의 구원까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혼의 구원은 우리가 부지런히 노력하여 순종함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다 알아서 해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5. 혼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해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중생의 구원까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혼의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다 맡겨 버리시고 하나님은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그럼, 주님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혼의 구원을 위하여 애쓸 때에 어떻게 우리를 도와 주시는가? 그것은 바로 13절에 나와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그렇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딤후1:13~14)께서는 우리 속에서 계속해서 어떤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신다'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그분이 우리 속에서 일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동사가 현재 분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일하시되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중생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망만 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어떤 일을 행하심으로 우리의 혼이 구원받도록 도와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 곧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자 곧 '보혜사(돕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성령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소원을 불러일으키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날 우연히 '회개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 울림이 계속 내게 남아 있어서 이제는 나도 회개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이제 회개를 시작해야겠어'라고 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은 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때는 즉시 성령께서 우리 속에 갖게 하시는 바로 그 소원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곧 혼의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일하시는 방식인 것이다.
6. 우리가 가진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인지 내 육신이나 사탄이 주는 소원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문제는 우리 안에서 올라오고 있는 소원이 과연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빌립보서 2장 14~16절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소원이 우리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본문을 고영민목사님께서 번역하신 원문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다.
빌2:15-16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불평하거나 다투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렇게 해서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하게 되어 삐뚤어지고 타락한 세대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들 가운데 이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리고 생명을 말씀을 굳게 붙들어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게 자랑할 것이 있게 하십시오. 그 이유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수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우리가 어그러지고 타락해 버린 세대 가운데서도 책망받을 것이 없어야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에 점이 없고 순결하게 될 때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일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소원이 생기게 하려면 반드시 회개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면 회개할수록 우리 속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일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우리 속에서 올라오는 소원이 육신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로 그것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그 소원을 우리가 붙잡게 되는 것이다.
7. 우리의 혼의 구원은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때에 대부분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거나 또한 불못에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지만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가 그를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한 것이다(계21:8). 누가 성밖이나 누가 불못에 떨어지는가?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소원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소원이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인지 아니면 타락한 육신이나 마귀가 주는 소원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육신이나 마귀가 주는 소원도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으로 잘못 알고 따라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소원이 실은 그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데도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른 채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은 죽을 때에 그만 구원에서 탈락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회개에 집중해야 한다. 더더욱 회개에 집중하여 우리 안에 더러운 영이 남아 있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내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그것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붙잡는 것이 곧 우리의 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심으로 우리에게 불러일으켜 준 소원을 붙잡고 그것에 순종(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되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사명이 되며,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된다.
8. 나오며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제 일주일을 보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 소원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켜 준 소원을 우리는 과연 붙들었으며 붙들고 있는가? 아직 그러한 소원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진심으로 회개하자. 회개 기도문을 갖다 놓고 진심으로 회개에 집중해 보자. 그리하여 우리 속을 깨끗하게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이 나도 느껴질 것이다. 그 소원을 이루는 것이 곧 우리의 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임을 명심하자.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심으로 일하게 하시는 그 소원을 목숨처럼 사수하자. 그것에 100% 순종해 보자. 그것을 가감하지 않고 그냥 순종해 보자. 그럴 때에 우리의 혼의 구원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들의 구원을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힘써서 완수해 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죽을 때에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 상도 받게 될 것이다. 면류관도 받게 되고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신분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2022년 01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
[다운로드]
2022-01-09 주일낮예배_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빌2,12_13).pdf
2022-01-09 주일낮예배_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빌2,12_13).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