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인생길에 낙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고린도후서 4:16~18)

[일시] 20250119(주일) 오전9, 11

[찬송] 65장 내 영혼아 찬양하라,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PW: 믿음, MIW:

T.S: 믿음이란 영으로 돌이켜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사람은 왜 낙심할까요? 낙심하다는 말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마음이 상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비슷한 용어는 낙망하다. 낙담하다. 상심하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럼 왜 사람은 낙심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형편이 자신의 기대와 예상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에 낙심합니다. 자신은 이러이러하게 기대하고 달려왔는데 그것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때에 낙심하고 낙망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성도들은 어떤 기대 때문에 낙심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에 그만 낙심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저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형편없는 사람이었을 때 사람은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기대는 너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그가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에게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 사람은 최고로 낙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자신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차도도 없을 때에 낙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 이러이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시고 더 힘든 형편이 되어질 때 사람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낙심을 이기게 해주는 대원칙 3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의 분량이 차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끝까지 믿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8:1~8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존중하지 않으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고통을 안겨주고 있으니) 내가 그[녀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무엇을 말했는지)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 밤낮 부르짖[고 있][자기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땅 위)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발견할 수 있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떨어지려면 기도의 분량이 차야 됩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교회도 부흥하고, 성도들도 온전한 자들로 채워집니다. 저는 사실 열심이라고 하다면 둘째 가라고 하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교회가 엄청난 속도로 부흥을 했지만 2년이 채 가기 전에 식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앞을 향하여 박차고 나가야 되는데, 계속해서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러자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약 10년간 부족한 것을 채워야 했습니다. 무려 10년을 채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를 채우는 일이었고, 그리고 믿음의 분량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교회의 부흥을 막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기도의 분량과 더불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습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지내온 것이 정말 한이 됩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주었다면 저는 아마도 불황의 시기를 훨씬 더 빨리 탈출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 속에 내가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더러운 영들이 너무나 많이 들어있어서 이것을 제거해야 하나님의 응답도 오고 형통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려고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몸의 상태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 속에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온갖 우상숭배의 영들이 꽉 내 몸에 들어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에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지 않았으니, 기도응답도 오고 있어도 내게 달라붙지 못했고, 내게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사가 와도 내가 그것을 내 것이 되게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물질이 항상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질이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힘들게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에게 매우 미안했습니다. 그런데도 물질을 막고 있는 영이 내 몸 속에 가득 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들이 물질을 막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다나 2020년부터 회개를 하다보니 물질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12년간 교회가 빚에 허덕였는데, 2020년부터는 마이너스 재정이 플러스 재정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러운 영을 내 몸에서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영적인 비밀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은 성도들의 영적인 어버이가 되기 때문에, 영적인 어버이가 물질이 풀리지 않으면 성도들도 물질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종의 집이 먼저 물질이 풀리면 성도들도 반드시 물질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회개를 통하여 악한 영들을 내보낸 후에야 비로소 기도에 대한 응답이 떨어지고, 물질도 풀려진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지금 자신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기도의 분량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하는데 믿음을 더 이상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더러운 영들들을 내 몸에서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는 이미 모태신앙이었기에 기도의 분량도 어느 정도는 차 있는 상태였고, 믿음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불굴의 투지로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님의 중재로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해 줌으로 그의 눈에서 뱀비늘이 벗겨지면서 귀신들도 어느 정도 떠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평생에 낙심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가 비록 기도의 분량, 믿음의 분량, 회개의 분량이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전파를 위해서 그가 받아야할 고난의 분량(적극적인 고난)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전파를 하려면 거기에는 희생과 고난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24 나는 이제 너희(골로새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나이가 성숙한 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인생에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낙심될 만한 일들이 또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런 상태에 처했을 때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지만, 자기 속에 있는 속사람은 날마다 더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순간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오히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으]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있]

사실 사람에게는 속사람이 있고 겉사람있습니다. 겉사람 우리의 육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육체는 엄마 뱃속에서 임신이 되어진 이후 약 10달가량 뱃속에서 자라다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70~100세 정도를 살다가 죽습니다.

그렇다면 속사람은 무엇일까요? 속사람은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자신을 가리키는데, 그중에서도 혼이 아니라 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고로 자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나게 된 채 있는 부분을 육신이라고 부른다면,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게 된 채 있는 부분을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3:6). 이때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만났을 때에 DNA가 서로 결합으로 인해 새 육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6 육으로[부터] [태어][채 있는] 것은 육이요 [] 영으로[부터] [태어][채 있는] 것은 영이니

 

그렇다면 사람의 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낙원에서 영을 창조하여 자라게 하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엄마의 자궁 속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의 나이는 각자가 다릅니다. 평신도들은 대개 4세부터 9세의 나이에 보내어집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나이는 10세부터 16세까지 보내어집니다. 그래서 엄마의 자궁 속에 있는 육체 속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자라고 있던 영을 집어넣으면 그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혼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엄마의 뱃속에서 10달을 지낸 후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영의 나이는 육체의 나이처럼 1살부터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낼 때의 영의 나이만큼 자란 후에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영이 내 육체 속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과연 내 영이 자라고 있는 영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의 겉사람은 비록 날마다 낡아지고 쇠약해져가지만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거듭난 내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겉사람인 육체는 사실 날마다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우리 육체가 낡아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속사람인 영은 날마다 새롭게 되어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6년경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약 6개월이 지난 후,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네 번째 편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여기서 자기에게 낙심될 만한 일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날마다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비록 안 좋아진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낙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낙심될 만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투덜거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낙심될만 상황에 깊이 묻혀서 하나님의 일하시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어떻게 낙심되는 상황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해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그만 좌절과 낙심에 푹 빠지고 말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떻게 낙심하게 않는지 그 방법을 터득하여 빨리 낙심의 구렁텅이에게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비밀은 낙심을 이기는 대원칙과 순간적으로 이기는 법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겉사람과 속사람, 옛사람과 새사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도 바울은 사람을 구분할 때에, 겉사람과 속사람 그리고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겉사람이란 사람의 바깥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것은 육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속사람 속에 들어있는 사람으로서 또 속에 들어있는 나 곧 영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옛사람새사람은 구분점이 다릅니다. 옛사람이란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기 전의 나로서, 죄된 본성으로 살아가던 나 자신을 가리킵니다(4:22). 그리고 새 사람은 예수께서 들어와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 자신으로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고 있는 나 자신을 가리킵니다(4:23~24).

사실 모든 사람은 겉사람과 속사람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옛사람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새 사람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인생길은 왜 그리 힘이 드는 것일까?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자신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낙심하는 일이 찾아왔을 때에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오히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으]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있]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비록 기도와 믿음의 분량을 채우고 회개의 분량을 채웠음에도 역시 계속해서 낙심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드로아에서 꼭 만나보았어야 했던 자신의 제자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낙심하고 있었습니다(고후2:13, 7:5~6). 왜냐하면 디도의 편에 고린도교회에 눈물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기를 원했는데,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낙심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고후2: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발견하지, 찾아내지) 못하므로 내 <>령이 편하지 못하여 [오히려] 그들을 작별하고 [나는] 마게도냐[안으]로 갔노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고후4:8).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였지만 많은 환난을 겪어야 했으며 짓눌리는 일과 곤란한 일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고후4:9).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모든 것 안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겨]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오히려] 낙심하지 아니하며 9 [우리가] 박해를 받아도 버린(방치된)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그렇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는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복음전파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받고 있었을 뿐입니다. 복음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육체 뿐만 아니라 영에게 강한 눌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는 사탄의 공격도 쉬지 않고 계속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낙심하지 않으려면 자기 속의 상태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내 영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영이 지금 과연 강해지고 있는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순간순간마다 거듭난 영 곧 예수께서 거하고 계시는 자신의 영으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8:5~6).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믿음이 있어도 환경만 바라보면 사람은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자신의 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 예수여!’라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그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뛰놀던 바다가 순간적으로 평온한 바다가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시고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고후4:7, 요일4:4).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래서 그분으로 돌이키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고후4:10~11). 그때가 되면 주님께서도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고후4:14).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둘째, 생각을 바꾸어 우리에게 불어닥친 고난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고후4;17). 왜냐하면 잠시 받는 고난은 우리 앞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8:17~18).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가벼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무거운) 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8:17~18 [그런데 만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셋째, 눈에 보이는 것을 보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고후4:18).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니 [왜냐하면] 보이는 것[]은 잠깐(일시적)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영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인생의 거센 파도 뿐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잠깐만이라도 지그시 눈을 감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품 안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모든 것도 때가 되면 다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를 위협에 빠뜨리고 있는 악한 영들을 우리에게서 잠잠케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39).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회개할 때에 더 많이 찾아옵니다. 힘들 때일수록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영으로 돌이켜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육체만 바라보면 우리는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한 보이는 환경과 사람만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도 역시 항상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는 낙심을 이기는 대원칙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분량을 채웠는데, 믿음의 분량을 채웠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순간순간마다 자신의 거듭난 영으로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지만 내 속에 있는 생명주는 영으로 돌이키시면 그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분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남으면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사람이 낙심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영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주여, 영은 사람의 속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낙원에서 주님에 의해 창조되고, 이어 엄마의 자궁 속으로 보내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주여, 사람이 낙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성취되지 않을 때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주여, 기도의 분량, 믿음의 분량, 회개의 분량이 채워질 때에라야 비로소 기도도 응답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주여, 사람이 낙심하지 않으려면 고통이 찾아올 때 순간적으로 영으로 돌이키고, 생각을 바꿔 고난은 있으나 반드시 지나간다는 사실을 믿으며, 영원한 하늘의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주여, 그동안 상황과 사람만 바라보다가 낙심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영으로 돌이키겠습니다.

2. 주여, 이제는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3. 주여, 이제는 하늘의 것을 바라보겠습니다.

4. 주여, 이제는 기도와 믿음의 분량을 채우겠습니다.

5. 주여, 이제는 회개의 분량도 채워나가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낙심을 이기는 대원칙을 발견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게 막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영으로 돌이키지 못하게 하면서 바깥의 환경만 의식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낙심을 이기는 대원칙을 지키며 낙심되는 순간에는 영으로 돌이킬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람이 낙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와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갖고는 있지만 합당한 삶이 부족해서였구나.

2. 아무리 좋은 기대를 갖고 있어도 기도의 분량과 믿음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면 응답은 더디 오는구나.

3. 속사람은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낙심되는 그 순간을 이기려면 자기 속에 주님이 계시는 영으로 돌이켜야 하는구나.

4. 내가 주님을 향해 바로 서 있다면 어떠한 좋지 못한 환경일지라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구나.

5. 육체의 한시적인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가치있는 것을 바라볼 때에 낙심하지 않는구나.

6. 육체와 환경만 바라보며 낙심하고 있어도 순간적으로 영으로 돌이킨 후 기도와 믿음의 분량을 채우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면 어느새 모든 것이 다 지나가면서 응답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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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교회론(11) 교회는 영이신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하는 진리 공동체이다(요4:20~26)_2024-12-22(주일) 갈렙 2024.12.22 47
525 교회론(05) 지금 우리 교회는 과연 하나의 새 사람일까?(엡2:11~18)_2024-12-15(주일) 갈렙 2024.12.22 56
524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복을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세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창50:15~21)_2024-12-08(주일) 갈렙 2024.12.22 38
523 신론(神論)(30)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예정을 하셨는가?(갈1:13~17)_2024-12-01(주일) 갈렙 2024.12.22 32
522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천사들은 지금도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시103:20~22)_2024-11-24(주일) 갈렙 2024.12.22 37
521 예수님의 살과 피는 한 분 하나님의 살과 피다(마26:26~28)_2024-11-17(주일) 갈렙 2024.11.17 125
520 [신론(神論)(11)] 요한계시록 나오는 하나님은 그분이 과연 누군지를 말해주는가?(계1:8)_2024-11-10(주일) 갈렙 2024.11.12 83
519 [신론(神論)(05)] 신약시대에 비로소 계시된 하나님의 놀라운 칭호는 무엇인가?(갈4:4~7)_2024-11-03(주일) 갈렙 2024.11.12 63
518 보좌 앞에 선 허다한 무리들은 왜 자기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는가?(계7:9~10)_2024-10-27(주일) 갈렙 2024.11.12 45
517 마지막 시대에 활동하다가 불못에 던져지게 될 가라지는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마13:24~30)_2024-10-20(주일) 갈렙 2024.10.20 83
516 대환난의 때는 언제 찾아올 것이며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계13:6~8,15~18)_2024-10-13(주일) 갈렙 2024.10.20 85
515 이스라엘과 이란의 확전이 알려주는 하나님의 시간표는 지금 어디쯤인가?(계9:13~21)_2024-10-06(주일) 갈렙 2024.10.08 111
514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절기인 나팔절은 무엇을 예표하는 절기인가?(레23:23~25)_2024-09-29(주일) 갈렙 2024.09.29 128
513 하나님께서는 왜 이 시대에 또다시 귀신쫓는 권세를 주고 계신가?(막6:7~13)_2024-09-22(주일) 갈렙 2024.09.22 175
512 [성경을 보는 눈(19)] 마귀론(08) 성도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무엇이 필요한가?(눅10:17~20)_2024-09-15(주일) 갈렙 2024.09.15 119
511 마귀론(02) 원래 천사였던 사탄마귀와 귀신들은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유1:6)_2024-09-08(주일) 갈렙 2024.09.08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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