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천주교에서는 그가 세례받고 고행성사를 했다면, 그가 성인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연옥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연옥은 죄는 용서받았으나 그것에 대한 벌을 다 받지 못한 자가 일시적으로 들어가 형벌을 받는 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성경에 나온 말일까? 사실 이것은 외경과 전통을 바탕으로 고안해낸 교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옥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사실 기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생의 기도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도달할 수 있는지, 연옥에 들어간 자가 그곳을 빠져나와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기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022-07-15(금) 온라인금요기도회
제목: 연옥교리를 알면 기도가 보인다(눅16:19~31)_2022-07-15(금)
https://youtu.be/HT59Fm_6kGc
1. 들어가며
연옥교리는 사실 천주교에서 만들어낸 교리다. 그러나 연옥교리는 성경(정경) 66권에서 기인하지 않고, 외경(마카베오하)에서 기인하다보니, 이것이 정식으로 채택되기까지는 무려 1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연옥교리는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전해내려왔다는 전통에 따라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실은 연옥이라는 곳이 '음부'를 대신하는 장소인지 아니면 '낙원'을 대신하는 장소인지도 불명확하다. 천주교의 주장에 따르면 그곳은 음부도 아니도 낙원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연옥교리가 얼마나 성경에서 빗나간 교리인지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특히 연옥이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찾아보고, 불타는 연옥이 왜 지옥을 가리키는지 그것을 기도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영적인 눈이 놀랍게 열려지게 되기를 바란다.
2. 연옥이란 어떤 곳이며, 그곳에 있는 기간은 정말 단축될 수 있는가?
"연옥"이라는 은총 가운데 죽었으나 정화를 요하는 자가 들어가는 연단받는 일시적인 감옥과 같은 곳이다.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감에 적당해지도록 불로서 정결함을 입어야 하는데, 연옥은 바로 그와같은 장소인 것이다. 연옥은 누가 들어가는가? 이 세상에서 고해성사로서 죄사함을 받아서 죄용서를 받았으나, 이 땅에 있을 때에 보속(형벌을 받음)을 다 못 받았거나, 소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형벌을 받는 장소가 바로 "연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옥에는 불못이 있다. 불타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벌에 대한 단련은 불로서 단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연옥에 들어간 자가 그곳에 있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친지나 가족등의 관계자들)이 드리는 위령미사나 헌금 그리고 기타 경건행위를 바치게 되었을 때다. 또한 본인도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교회에 헌금을 바치거나 속죄적인 선행을 행한다든지 구제 그리고 고행과 금식 등을 하게 된다면 그는 연옥에서 보낼 날이 단축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진짜로 연옥은 일시적인 형벌의 장소에 불과한 것인가?
3. 연옥교리가 틀렸다는 것에 대한 4가지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연옥교리가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째, 연옥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 66권 어디에도 "연옥"이라는 장소가 나오지 않으며, 그것은 외경과 전통에서 나온 것 뿐이기 때문이다. 고로 연옥의 성경적인 증거는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전부 간접적인 증거일 뿐이다. 그렇다. 연옥교리의 시작은 구약외경인 마카베오하권 제12장 40~45절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 보면, 유다 마카비 시대에 유다 마카비가 전장에서 죽은 유대 군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모금했던 2천드라크마를 예루살렘에 속죄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통해서, 천주교에서는 죽은 사람을 위한 헌금이 효과가 있다고 하고는, 그것은 죽어서 천국에 못 들어간 자가 있는데 그를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행하게 되면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마카베오 하에서도 연옥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자를 위한 속죄제물이 효력이 있다는 개인적인 간증에서 시작된 것이다. 특히 초기교회들의 몇몇 교부들도 죽은 자의 보속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죽어서 정화의 불을 통과하고 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어거스틴은 그들 중의 한 사람들이다.
둘째, 성경 66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구약시대에는 음부와 낙원(아브라함의 품)이었고, 신약시대부터는 천국과 지옥 딱 둘 뿐이기 때문이다. 천국와 지옥의 중간단계는 없다. 오직 천국과 지옥 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기 전까지 구약의 성도들은 셋째하늘에 있는 낙원(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지구의 한 중앙(땅 속)에 있는 음부 안으로 떨어진다. 한편, 낙원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씀한 것은 낙원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 들어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예수님은 드디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전15:20). 한편, 구약의 성도들은 셋째하늘에 있는 낙원에 들어간 상태에 있었으니, 단 한 사람도 아직 부활체를 입은 적이 없었다. 다 영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후에, 구약의 성도들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고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낙원은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천국의 중심은 새 예루살렘의 성전인데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은 그곳에 가서 지금도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보통 때에는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한, 천국의 자기의 집에서 산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집들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음부에 있던 영혼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심판의 부활을 얻고 사망의 부활체를 입게 되었다. 음부는 그대로 지옥이라 불리게 되었으니, 음부의 상태가 그대로 지옥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후 불신자들은 사망의 부활체를 입고 지금도 지옥 안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부활의 몸을 가진 상태이기에, 인간의 몸과 똑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옥(구약의 음부)에서 불로 태우게 되면 타들어가고 매우 아프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귀신들이 고문을 주게 되면 고문의 고통을 그대로 받는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있는데, 구더기는 이빨로 거기 있는 사람들의 몸을 파고 들어간다. 그러면 또한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천국와 지옥, 둘 중의 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셋째, 한 번 낙원(천국)과 음부(지옥)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 절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음부(지옥)에 있는 영혼이 낙원(천국)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이 이 세상으로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단 한 번, 낙원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체를 입지 않은 모세와 엘리야를 낙원으로부터 불러내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다른 어떤 누구도 그러한 일을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다). 눅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의하면, 부자가 있는 음부에서 나사로가 있는 낙원으로 결코 옮겨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거기에는 큰 영적인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건너가고자 하나 건너갈 수 없고, 건너오고자 하나 건너올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옥에 있는 영혼이 정화의 작업을 마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마디로 천국과 지옥은 이동불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미 그 사람에게 심판이 집행된 후이기 때문에 더이상 심판을 물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지만 죽은 즉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은 돌이킬 수가 없다(히9:27). 그러므로 한 번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지 왔다갔다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심판은 결코 번복되지 않기 때문이며, 심판이 다시 집행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음부와 낙원은 서로 왔다갔다 할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넷째, 음부(지옥)은 이미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장소이기에 그곳에서 비는 기도도 아무런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서 그들을 위해 비는 기도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부는 사실 둘째사망이 임한 장소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이후 모든 사람은 첫째사망을 입고 있으며, 둘째사망은 그것을 입는 자도 있고 입지 않는 자도 있다. 그런데 첫째사망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을 가리키며, 둘째사망은 영혼이 하나님이 서로 분리되는 죽음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옥을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불못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계20:14), 그곳을 또한 둘째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계20:6,14).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절된 곳에서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곳은 더이상 하나님의 이름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영혼의 기도는 다르다. 천국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이 왕으로 다스리는 장소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여전히 효력이 있다. 그러한 근거는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데, 이미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했던 자들이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장면이 나온다(계6:10). 그렇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처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요14:14,15:16,23). 하지만 지옥에서는 하나님과 단절된 장소이기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음부(지옥)에서 비는 기도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4. 나오며
연옥은 겉으로 보면 음부처럼 불타는 장소다. 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천주교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소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죽어서 한 번 음부나 낙원에 들어간 자는 다시는 자기가 있는 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고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눅16:26). 우리는 그것을 이미 누가복음 16장에 나온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 불타는 곳은 결코 연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불타는 곳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는 하나님과 단절된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들어가서 역사할 수가 없다. 또한 거기에 있는 자들이 기도해서 응답받을 수도 없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이미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기도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눅16장에 보면, 부자가 음부의 고통 가운데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물 한 방울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 주기를 부탁했지만 아브라함이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누구라도 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요, 또한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자. 그것이야말로 아직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지 않은 자의 최대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에 더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2022년 07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사람이 죽으면 천주교에서는 그가 세례받고 고해성사를 했다면, 그가 성인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연옥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연옥은 죄는 용서받았으나 그것에 대한 벌을 다 받지 못한 자가 일시적으로 들어가 형벌을 받는 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성경에 나온 말일까? 사실 이것은 외경과 전통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교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옥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사실 기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생의 기도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도달할 수 있는지, 연옥에 들어간 자가 그곳을 빠져나와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기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연옥교리는 사실 천주교에서 만들어 낸 교리다. 그러나 연옥교리는 성경(정경) 66권에서 기인하지 않고, 외경(마카베오 하)에서 기인하다 보니, 이것이 정식으로 채택되기까지는 무려 1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연옥교리는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전통에 따라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실은 연옥이라는 곳이 '음부'를 대신하는 장소인지 아니면 '낙원'을 대신하는 장소인지도 불명확하다. 천주교의 주장에 따르면 그곳은 음부도 아니고 낙원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연옥교리가 얼마나 성경에서 빗나간 교리인지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특히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찾아보고, 불타는 연옥이 왜 지옥을 가리키는지 그것을 기도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영적인 눈이 놀랍게 열려지게 되기를 바란다.
2. 연옥이란 어떤 곳이며, 그곳에 있는 기간은 정말 단축될 수 있는가?
"연옥"이란 은총 가운데 죽었으나 정화를 요하는 자가 들어가서 연단받는 일시적인 감옥과 같은 곳이다.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감에 적당해지도록 불로서 정결함을 입어야 하는데, 연옥은 바로 그와 같은 장소인 것이다. 연옥은 누가 들어가는가? 이 세상에서 고해성사로서 죄사함을 받아서 죄용서를 받았으나, 이 땅에 있을 때에 보속(형벌을 받음)을 다 못 받았거나, 소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형벌을 받는 장소가 바로 "연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옥에는 불못이 있다. 불타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벌에 대한 단련은 불로서 단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연옥에 들어간 자가 그곳에 있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친지나 가족등의 관계자들)이 드리는 위령미사나 헌금 그리고 기타 경건 행위를 바치게 되었을 때다. 또한 본인도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교회에 헌금을 바치거나 속죄적인 선행을 행한다든지 구제 그리고 고행과 금식 등을 하게 된다면 그는 연옥에서 보낼 날이 단축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진짜로 연옥은 일시적인 형벌의 장소에 불과한 것인가?
3. 연옥교리가 틀렸다는 것에 대한 4가지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연옥교리가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째, 연옥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 66권 어디에도 "연옥"이라는 장소가 나오지 않으며, 그것은 외경과 전통에서 나온 것 뿐이기 때문이다. 고로 연옥의 성경적인 증거는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전부 간접적인 증거일 뿐이다. 그렇다. 연옥교리의 시작은 구약 외경인 마카베오 하권 제12장 40~45절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 보면, 유다 마카비 시대에 유다 마카비가 전장에서 죽은 유대 군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모금했던 2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에 속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통해서, 천주교에서는 죽은 사람을 위한 헌금이 효과가 있다고 하고는, 그것은 죽어서 천국에 못 들어간 자가 있는데 그를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행하게 되면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마카베오 하에서도 연옥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자를 위한 속죄 제물이 효력이 있다는 개인적인 간증에서 시작된 것이다. 특히 초기 교회들의 몇몇 교부들도 죽은 자의 보속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죽어서 정화의 불을 통과하고 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어거스틴은 그들 중의 한 사람들이다.
둘째, 성경 66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구약 시대에는 음부와 낙원(아브라함의 품)이었고, 신약 시대부터는 천국과 지옥 딱 둘 뿐이기 때문이다. 천국와 지옥의 중간 단계는 없다. 오직 천국과 지옥 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까지 구약의 성도들은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지구의 한 중앙(땅 속)에 있는 음부 안으로 떨어진다. 한편, 낙원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씀한 것은 낙원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 들어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예수님은 드디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15:20). 한편, 구약의 성도들은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에 들어간 상태에 있었으니, 단 한 사람도 아직 부활체를 입은 적이 없었다. 다 영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에, 구약의 성도들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고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낙원은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천국의 중심은 새 예루살렘의 성전인데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은 그곳에 가서 지금도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보통 때에는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한, 천국의 자기의 집에서 산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집들이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음부에 있던 영혼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심판의 부활을 얻고 사망의 부활체를 입게 되었다. 음부는 그대로 지옥이라 불리게 되었으니, 음부의 상태가 그대로 지옥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 불신자들은 사망의 부활체를 입고 지금도 지옥 안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부활의 몸을 가진 상태이기에, 인간의 몸과 똑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옥(구약의 음부)에서 불로 태우게 되면 타들어가고 매우 아프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귀신들이 고문을 주게 되면 고문의 고통을 그대로 받는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있는데, 구더기는 이빨로 거기 있는 사람들의 몸을 파고 들어간다. 그러면 또한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천국와 지옥, 둘 중의 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셋째, 한 번 낙원(천국)과 음부(지옥)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 절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음부(지옥)에 있는 영혼이 낙원(천국)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이 이 세상으로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 (단 한 번, 낙원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체를 입지 않은 모세와 엘리야를 낙원으로부터 불러내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다른 어떤 누구도 그러한 일을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다). 눅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의하면, 부자가 있는 음부에서 나사로가 있는 낙원으로 결코 옮겨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거기에는 큰 영적인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건너가고자 하나 건너갈 수 없고, 건너오고자 하나 건너올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옥에 있는 영혼이 정화의 작업을 마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마디로 천국과 지옥은 이동 불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미 그 사람에게 심판이 집행된 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을 물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지만 죽은 즉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은 돌이킬 수가 없다(히9:27). 그러므로 한 번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지 왔다갔다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심판은 결코 번복되지 않기 때문이며, 심판이 다시 집행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음부와 낙원은 서로 왔다갔다 할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넷째, 음부(지옥)은 이미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장소이기에 그곳에서 비는 기도도 아무런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서 그들을 위해 비는 기도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부는 사실 둘째 사망이 임한 장소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첫째 사망을 입고 있으며, 둘째 사망은 그것을 입는 자도 있고 입지 않는 자도 있다. 그런데 첫째 사망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을 가리키며, 둘째 사망은 영혼이 하나님과 서로 분리되는 죽음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옥을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불못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계20:14), 그곳을 또한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계20:6,14).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절된 곳에서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영혼의 기도는 다르다. 천국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이 왕으로 다스리는 장소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여전히 효력이 있다. 그러한 근거는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데, 이미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했던 자들이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장면이 나온다(계6:10). 그렇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처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요14:14, 15:16,23). 하지만 지옥에서는 하나님과 단절된 장소이기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음부(지옥)에서 비는 기도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4. 나오며
연옥은 겉으로 보면 음부처럼 불타는 장소다. 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천주교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소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죽어서 한 번 음부나 낙원에 들어간 자는 다시는 자기가 있는 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고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눅16:26). 우리는 그것을 이미 누가복음 16장에 나온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 불타는 곳은 결코 연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불타는 곳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는 하나님과 단절된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들어가서 역사할 수가 없다. 또한 거기에 있는 자들이 기도해서 응답받을 수도 없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이미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기도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눅16장에 보면, 부자가 음부의 고통 가운데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물 한 방울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 주기를 부탁했지만 아브라함이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누구라도 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요, 또한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자. 그것이야말로 아직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지 않은 자의 최대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에 더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07월 15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