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다음날 아침 진도앞바다에 침몰하고 말았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300여명이 죽거나 실종상태다. 특히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고등학교 2학년생이 많이 희생당했다. 이 사건을 두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가 지금 방송에 오르내린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몰라 전부다 몸을 도사리고 있다.
정말 이 사건은 과연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나온다. 실로암 수로공사중에 그만 망대가 무너저 그 흙더미 아래 깔려 18명이 희생되었다. 그러자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그 18명의 사람이 죄가 많아서라고 수근거렸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같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세월호와 함께 사망했거나 실종된 사람은 그들이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회개하라는 싸인이라는 것이다. 요9장에서도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 과연 부모의 잘못인가 아니면 자신의 잘못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그의 부모나 그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고 하셨다. 오히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죽은 나사로의 소생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죄가 많아서도 아니며, 주님이 늦게 도착해서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그의 아들인 자신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불행한 사건도 그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질병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불행으로 빠뜨리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의 죽음이란 결코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며, 파멸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휴식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사로의 죽음은 그대로 그의 인생을 파멸로 끝내버린 사건이 아닌 것이다. 나사로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드러내주는 사건인 것이다.
그렇다. 믿는 자는 죽는다해도 자신 안에 들어있는 영원한 생명 때문에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혹시 살아서 주님을 믿게 된다면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사탄마귀라 할지라도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일부러 늦게 가셨다.
문제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어떤 자는 마르다처럼 죽음 후 끝날에 가면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믿는다. 다시 말해 주님의 재림 때가 되면,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휴거의 대열에 참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정해버린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마르다는 죽어가는 오라버니를 주님께서 살려주실 것에 대해서는 믿었지만 죽은 후라면 주님이시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 그런 자에게서는 기적이 일어나기 힘들다. 주님의 능력은 한이 없음을 알라. 죽음도 정복하는 능력이 주님에게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는 꼭 하나님께 기도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여!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우리에게는 사망이 건드릴 수 없는 생명을 가진 자들이다. 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가? 죽음 때문에 치졸한 삶을 살려고 하는가? 죽음 앞에 당당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