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는 총 7가지 기적이 나온다. 그중에서 4번째와 5번째의 기적이 요한복음 6장에 나온다. 이 두 기적(miracle)은 초자연적인 역사이지만 하나의 표적(sign)이다. 그 기적들에 영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기적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요6:1~15)은 이어서 등장하는 가버나움 회당의 강화(오6:22~71)에서 그 영적 의미가 자세히 나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께서 바로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심을 나타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먹은 음식이었던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준 양식이었다. 하지만 이 양식은 진짜 하늘에서 주실 생명의 양식에 대한 예표이자 예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참 만나로서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모든사람에게 알려주시고자 그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기적(요6:16~21)은 예수께서 비록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시지만 그분은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여실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한편, 우리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2가지의 표적들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하는 다른 것들도 더불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어떻게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안드레의 드림과 순종이 적용된 것이다. 어찌 오병이어를 가지고 2만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빌립이 생각하기에, 2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을 사서 준다해도 2만명의 요기정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빌립은 그 군중들을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먹일 수 없다고 결론내린다.
하지만 같은 고향사람인 안드레는 달랐다. 그도 인간의 힘으로는 그 많은 군중을 먹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분명이 주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찾았다. 그리고 마중물과 같은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주님 손에 올려드린 것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결국 2만명의 군중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게 되었다.
오늘날 뭔가 일을 추진하려 할 때 우리는 먼저 어떻게 하는가? 먼저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나아가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까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와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당시 안드레는 자기들이 그 많은 군중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폈다. 그리고 도시락을 가진 어린 아이를 주님 앞으로 데려왔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일하시도록 하는 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안드레처럼 하면 된다. 그러면 기적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은 어떤 때에 풍랑이 우리에게 닥쳐오며 또 어떻게 할 때 그 풍랑을 이겨낼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우리 인생에 어떤 경우에 풍랑이 일어나는가? 딱 2가지의 경우다. 주님이 아니 계실 때요 어둠이 밀려올 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주님이 오실 때요, 주님이 요동치는 풍랑을 잔잔하라고 명령할 때이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도 예수님의 경우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풍랑을 잔잔케 명령할 수 있다. 당신은 혹시 그렇게 해 보았는가? 이제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렇게 실천해보라. 그것이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인간이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