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38년된 중풍병자를 치유하셨을까? 우리의 시야는 과연 당시에 편협한 종교지도자들의 시야와 같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육체로만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름모를 시골 청년이요 한낱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100%소유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100%신성을 소유하신 하나님 자신이셨다. 특히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는 측면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하지만 그분 자신은 정작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자신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존재로 보였다. 사람이 행할 수 없는 능력들을 행하시고 사람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찌하든지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애를 썼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안식일임에도 병자를 치료하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넘어뜨릴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잡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했다면서 안식일을 어기는 자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고 하면서 신성모독자로 정죄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이 행하시는 일이 얼마나 합당한지에 대해 그 근거와 정당성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받아 그대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결단코 독단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친 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즉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의 한 예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자신에게도 생명을 주셨기에, 당신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님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예수님은 또한 자신이 사람의 아들(인자)이 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판하는 권한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심판을 행하는 것도 결코 독단적으로 행하는 것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기에 합당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넷째,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때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기에, 자신을 믿는 자는 그 시간 영생을 가지며 심판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 맨 결코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하신 후 심판 때에 일어날 일이 아님을 분명히 언급하셨다.
우리는 오늘날 부활의 때를 맨 마지막날 주님의 재림의 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그가 죽는 순간이 바로 부활의 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 순간 부활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눅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라. 그들은 죽은 다음에 무덤 속에서 부활의 날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죽은 즉시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 고통받는 곳에 떨어졌다. 그들은 결코 무덤 속에서 잠자는 수면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자신의 영 안에 생명을 가진 자는 생명의 부활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자신의 영 안에 생명을 가지지 못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을 받아 즉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심판이나 상급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가야 알게 될 것이라 생각지 말라. 우리가 오늘 죽으면 오늘 그 일이 우리에게 불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자, 생명주는 이이시며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4가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증거요, 둘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행하신 일들이요 셋째는 아버지의 증언이며, 마지막으로는 구약성경의 증언이 그것이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