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을 우리가 체험할 때에는 세 분으로 체험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예 처음부터 세 분으로 정의하고는 그분이 하나님으로서는 모두 같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A.D.4세기에 생겨났다. 그 전에 성경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A.D.4세기에 니케아신조로서 결의가 되어버리자, 그때부터는 그 신조를 따르지 않는 자는 다 이단이라고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신조가 정말 성경적인 신조였는지 따져보지도 않는다. 다만 그 신조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개신교에도 생겨난 것이다. 과거에는 로마카톨릭이 그렇게 했다. 성경 위에 교황의 가르침을 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교황의 말씀은 성경 위에 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버렸다. 바벨론종교와 기독교가 합쳐진 괴상한 형태의 기독교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마리아를 신의 위치까지 올려놓고야 말았다. 그것은 세미라미스로 시작된 바벨론종교를 혼합시킨 것이다. 마리아는 결코 신이 아니다. 마리아는 결코 사위일체의 신이 아니다. 마리아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성경 위에 교회의 신조를 두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것으로 인하여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하나님을 믿으려는 자들을 이단으로 매도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2.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당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몇 분인가? 아마 세 분일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당신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시리며 섭리하실 뿐만 아니라 오늘도 하늘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아버지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중보자요, 구원자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을 것이다. 또한 승천하신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여러가지 은사(성령의 선물들)를 주시고 있음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세 분으로 계셨고, 만세 후에도 계속해서 세 분으로 계시는 것일까? 다시 말해, 하늘에서 우리가 만날 하나님은 과연 세 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옥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은 세 분으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3.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이신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계시의 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66권의 성경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과연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후의 하늘의 광경에 대해서 더욱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며,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스가랴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재림하실 여호와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이 땅에 오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은 분명 사람의 인성을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사람의 인성을 취하셨기에 그때에는 철저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분께 기도하셨고 그분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권한에 있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건드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언제 아들신 예수님을 이 세상 다시 보낼 것인지, 이스라엘 나라를 언제 회복할 것인지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해서는 아들 자신도 모른다고 답하셨다. 그렇다. 이 땅에 사람의 인성을 취하시고 사람으로 사셨던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셨고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와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
하지만 그분은 원래 사람이 아니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 엄마의 뱃속에 잉태될 때 창조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 속에 잉태될 때 창조되신 분이 아니다. 육체는 그때에 생겨난 것이지만 그분의 영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임하신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육체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조성되었지만 그분의 영은 하늘에서 왔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셨던 것이다. 그분은 태초에 상고부터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야로 오실 분에 대해서 그분은 아기로 태어나실 분이며 아들로 오실 분인데 그분은 원래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하였던 것이다(사9:6). 그러므로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은 그분의 종이라고 했다(약1:1).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니, 그분은 자신의 친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도 마찬가지였다. 부활하기 전에 그는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로만 알았다. 하지만 부활하신 그분은 메시야이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여호와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보고 "나의 주(아도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가둬놓으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인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을 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 사탄마귀다. 예수님은 분명 이 땅에 33년반의 생애를 사실 때에는 아들이셨다. 하지만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하나님 자신이 되셨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요 보혜사로서 사역을 계속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와서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그분의 아들되심이 아니라 그분의 하나님되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천주교를 보라. 그곳에서는 예수님을 항상 아기의 형태로 만들어 마리아의 품속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만을 보여준다.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마리아의 품에서 응석이나 부리는 존재로 가두워놓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세미라미스의 후예인 마리아를 예수님보다 더 큰 신으로 만들려는 속셈이 들어있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라. 세종대왕을 깨벅쟁이 시절의 어린 세종으로 말해야 옳은가? 아니면 세계 최고의 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시한 분으로 말해야 옳은가? 하지만 천주교는 예수님을 마리아의 품속에 있는 아기로 묘사하려고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아들로만 가둬놓으려고 한다.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 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분의 최종적인 모습은 천상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분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계7:15~17).
5. 나오며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시절에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서 온 아들이지만 그분은 구약시대에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요8:24~25,28,56,58). 하지만 성경원문을 가지고 있는 일반 성도들은 그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조차 모른다. 로마카톨릭에서도 한 때는 그렇게 했다.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갖게 되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을 우려하여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지 못하게 했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해놓은 것을 소지하는 자를 불법자로 하여 화형시켜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마귀의 계략에 그들이 속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책이 있다. 그것도 조금만 신경쓰면 그것을 원문으로 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서서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드러나고 있다. 조만간에 하나님에 바른 진리가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6년 04월 01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