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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오 목사의 "성경의 맥" Part1 Lesson 2  설교말씀

2017. 5. 26. 11:42

 


2011.07.11. 벤자민 오 목사의 "성경의 맥" Part1 Lesson 2

2011.07.11. 사랑과진리교회 *source: www.ltchurch.com No Copyright Infringement Intended.

www.youtube.com

 

 


성경의 맥 Part1 Lesson2- 벤자민 오 목사

 


순종. 순종이 뭡니까? 순종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지 실제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성경을 기록하셨을까? 하나님이 이 성경을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요한복음 20장 말씀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또 성경전체를 통해서 보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기록한 목적이 뭐였습니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66권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정말 흥분되는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성경 66권 전체를 정말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여러분들이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을 도와주는 네 개의 키워드를 말씀드릴 텐데 이것을 제가 네 쌍이라고도 하기도 하고 또는 네 개의 키워드라고도 말합니다. 이 네 개의 키워드를 알게 되면, 이 네 쌍의 키워드를 알게 되면 정말 성경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그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분명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성경 66권을 읽을 때 그것을 여러분들이 즉각 즉각 감지하게 되고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아 여기 있구나, 여기 또 있네. 여기 또 있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 “이렇게 성경에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내가 왜 그동안 미처 몰랐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네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이 키워드를 말씀드리고 이것을 하나씩 하나씩 정말 그런가, 진짜 성경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첫날에 제가 소개했던 영어 교재들도 그렇고, “어? 성경이 읽어지네!” 나 “성경의 맥을 잡아라”도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중에 한 가지 맥을 잡았습니다. 그 한 가지 맥이 뭐냐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맥입니다. 그런데 그 맥은 굉장히 중요한 맥이고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보려고 노력했던 많은 신학자들이 있었고, 실제로 거기에 대해서 정말 대단히 훌륭한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문봉주 장로님 ‘성경의 맥을 잡아라.’도 그렇게 풀어가고 있고, 또 이애실 사모님의 ‘어? 성경이 읽어지네!’도 그렇게 풀어가고 있는데, 이애실 사모님은 용어를 바꿨습니다. 어떻게 바꿨는가 하면 ‘누가 왕이냐.’ 그분의 교재에는 성경을 보는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다. 하나는 ‘누가 왕이냐’는 것인데, 이 말을 바꿔서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성경을 쭉 보는 그런 눈이 있다고 말했고, 또 하나는 가인의 계열과 셋의 계열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 성경이 읽어지네!’ 교재에 나옵니다. 가인의 계열과 셋의 계열은 섞이면 안 된다. 반드시 셋 계열이 가인의 계열을 정복해야 된다. 이 두 가지 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라고 지적하셨는데 아주 잘 지적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관점에 가인의 계열과 셋의 계열에 대한 그분의 해석은 저는 동의할 수 없는데, 실제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설명해드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성경이 읽어지네!’는 굉장히 좋은 교재라고 생각합니다. 또 문봉주 장로님이 쓰신 ‘성경의 맥을 잡아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보려고 하셨는데 이것은 대단히 건전하고 바람직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너무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저희는 그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대가 되시죠? 지난 시간보다 오늘은 더 흥분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제가 하는 성경의 맥의 교재는 오직 성경 한 권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교재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시간이 걸려도 성경을 찾아보면서 할 것입니다.

일단 제가 여러분에게 이 중요한 네 쌍의 키워드를 말씀드릴 텐데 이 키워드는 오늘 여러분의 생각 속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두시면 평생 성경을 보실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창조, 그리고 새 창조(또는 재창조)”입니다. 창조, 새 창조.

두 번째 키워드는 “타락, 그리고 회복”입니다. 타락, 회복.

세 번째 키워드는 “생명, 그리고 사망”입니다. 생명, 사망. 이 세 번째 키워드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 그런데 많은 책들에서 너무나 좋은 교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놓치고 있고 아예 거의 다루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성경의 맥을 해야 되겠다고 작정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이 맥을 다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여러분들이 직접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맥이 무엇인가 하면 “생명과 사망”입니다. 생명과 사망.

네 번째 키워드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이 네 쌍만 알면 정말 여러분들이 성경이 보입니다. 이 네 쌍을 가지고 성경을 보기 시작하면 여러분들 깜짝 놀랄 정도로 성경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 네 쌍은 성경을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들입니다.

 


다시 한번 복습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가 창조와 새창조(또는 재창조.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타락과 회복. 세 번째는 생명과 사망. 네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와 새 창조에 관한 얘기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과 회복에 관한 얘기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그렇게 한 단어로 성경을 압축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키워드들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은 결국 생명과 사망에 관한 얘기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에 관한 얘기다.” 그렇습니다. 너무 쉽죠? 정말 쉽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러한지 성경을 살펴봅시다. 왜냐하면 제가 말한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 성경이 그런가, 정말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나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까 바울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당시에 바울이 성경을 가르치는데 누가 감히 바울의 성경 가르침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바울이 여기 와서 성경을 강의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 감격하겠죠? 그분이 하는 모든 말에 “아멘, 아멘” 그러겠죠?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안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서...” 신사적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바울이 성경을 강론하고 가르쳤는데 거기에다 대고 “틀림없이 맞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이 진짜 성경에 그러한가 하고 성경을 상고하니라” 아멘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저를 믿어도 제가 성경을 가르칠 때 진짜로 제가 가르치는 성경이 정말 성경에 있는 말이고 그러한가 여러분이 반드시 확인해보셔야 됩니다. 그래야지 여러분이 신사적인 사람입니다. 옆 사람에게 “신사적이 되십시다.”

 


그러면 첫 번째 키워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말 성경이 그런가 살펴보겠습니다.

창조와 새 창조 또는 재창조를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정말 흥분되는 시간인데 성경을 정말 열어보는 것입니다. 진짜 그러한가에 대해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보겠습니다.

*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여기서 하늘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땅은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은 하늘은 하나 이상이라는 겁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이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조입니다.

 


그 다음에 출애굽기 31장 16~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출 31:16~17-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분명히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맞죠? 하늘과 땅. 천지를 누가 창조했습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이. 하나님이 직접 그것을 증언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였다”

 


이사야 45장 11~12절을 보겠습니다.

* 사 45:11~12-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여기 분명히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땅을 만들고 내 손으로 하늘을 폈다.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다.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다. 그렇게 나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누가 창조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으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신약 골로새서 1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 골 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그것이 눈에 보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이 모든 것은 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경이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다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창조했느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무엇을 창조하셨냐?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여기까지가 창조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아주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사야 65장에서 이사야가 난데없이, 갑자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하늘과 땅을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65장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 것은 기억하지도 않게 될 것이요, 생각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하늘과 이 땅은 기억조차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또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흥분되지 않으세요?

 


요한계시록 21장 1절을 보겠습니다.

*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사도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봤습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그런데 그 다음에 충격적인 말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과 땅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장차 하나님이 다시 창조하게 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면서 뭐라고 말했냐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디 갔습니까? 지금 이 말씀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하늘, 이것은 하나님이 창세기 1장 1절에서 창조하셨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인데, 이것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어디 갔냐는 것입니다. 어디 갔을까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어디 갔을까요?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성경은 모든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안 보거나, 봐도 건성건성 보니까 이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어디로 갔는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중요하니까 1절부터 그 문맥을 보겠습니다. 문맥을 알고 보면 그 말씀이 더 선명하게 와 닿을 것 같습니다.

* 벧후 3:1~2-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쓴 이유는 이미 구약에 거룩한 선지들이 예언한 말씀, 또 구주되신 우리 주님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명하시면서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벧후 3:3~9-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절의 말세는 지금입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주님이 강림하신다는 약속,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이 창조될 때와 같이 아직도 그냥 그대로 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을 일부러 잊으려고 하고 그리고 다시 주님이 오시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그 이유 때문에 세상은 물에 넘침으로 멸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노아의 홍수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 멸망시키셨던 내용입니다. 7절의 하늘과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어떻게 됩니까? 불사르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셔서 지금까지 주님은 더디 오시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속도 모르고 “주님 오신 다는 때가 언젠데 왜 아직도 안 오셔. 에이 안 오셔” 이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재림을 늦추심으로 말미암아 한 영혼이라도 더 주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지금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시간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는 은혜요 기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그것을 은혜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이 오신다고 하시더니 아직도 안 오셨네, 안 오셔.”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이렇게 더디 오시고 우리에게 아직도 여전히 모든 것이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서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세상과 붙어살며 죄를 짓는 크리스천도 많이 있습니다. 이건 참 가슴 아픈 일이고 통탄할 노릇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 10절입니다.

* 벧후 3:10~12-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주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반드시 주의 날은 옵니다. 여러분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냥 사모하지 말고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하지도 않고, 더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비성경적입니까. 옥한흠 목사님의 “건전한 종말론”에서 옥한흠 목사님께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은 가장 성경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주님이 다시 오시고 재림하시는 것을 오히려 광신주의니,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를 통해서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지 않은 시대치고 타락하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아라. 간절히 사모해라.” 그 날은 어떤 날인가?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져버립니다. 그 다음에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져버립니다. 아, 이제 알았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어디로 갔습니까? 불에 다 타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다같이 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아멘입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죽 보면 성경이 무슨 얘기인가 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만물이 다 불에 타서 없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날이 이르면, 주의 날이 이르면 불에 다 타서 없어져버리고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정말 우리가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되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정말 그 날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경건한 삶, 거룩한 삶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첫 번째 키워드를 살펴봤습니다. 창조와 새 창조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두 번째 키워드는 타락과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 사람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왜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하면 그 만물 가운데에 살게 될, 하나님이 창조하게 될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잘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저희 교회는 자연적 교회 성장을 빠르게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자연적 교회 성장이라는 것은 밖에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가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아서, 아이들을 낳아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교회 성장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두 민족이 있는데 모슬렘들과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모슬렘들이 유대인을 따라잡고 있습니다. 성경적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경적입니다.

 


예를 들면 출산을 앞둔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을 다 준비해 놓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기가 있게 될 방, 침대, 아기가 쓰게 될 모든 물건들을 다 준비해 놓고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또 신랑이 결혼하면 신부를 맞이하게 될 텐데 그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서 미리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셋방이라도,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호화주택을 사서 거기에다가 신혼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신부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그리고 그날 신부를 맞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어느 신랑이 결혼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우리 어디로 가지? 지금부터 우리 찾아봐야 되겠는데...” 이런 신랑은 불합격입니다. 이런 신랑은 안 만나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을 창조하시려고 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다음에 맨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사람이 창조되면 사람이 살게 될 그 모든 것을 다 미리 창조해놓고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그러므로 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운명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운명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그 하늘과 땅은 결국 사람을 위해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창조하시고자 하는 이 사람의 운명과 이 하늘과 땅, 천지와 만물의 운명은 같이 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천지를 창조해서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스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타락을 했습니다. 사람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창세기에 보면, 사람만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면서 만드신 이 땅도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결국 사람을 위해서 지었기 때문에 사람하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도 이 사람의 타락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타락을 했습니다. 타락을 했는데 어느 정도 타락을 했는지 창세기 6장에 보시면 “도저히 이것은 수정이 안 된다. 혁신이 안 된다. 구제불능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기 6장 5절부터 보겠습니다.

* 창 6:5~7-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7절에 하나님께서 “내가 창조한 사람을 다시 고쳐서 쓰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것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도저히 이것을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유일한 처방책은 다 쓸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완전히 다 쓸어버리십니다. 노아의 가족 8명만 빼고. 그것이 아까 읽은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는 불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타락했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고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이것을 나중에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를 비롯한 일부 종교개혁자들이 뭐라고 표현했냐면 완전히 타락했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은 타락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완전히 타락했다고 합니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다시 갱신이 불가능하다. 사람이 이렇게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쓸어버리시고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또 타락합니다. 그들이 또 타락해서 세운 것이 무엇입니까? 바벨탑을 세웠습니다. 왜 바벨탑을 세웠습니까? 또 홍수가 오면 높은 바벨탑에 올라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한테 “한번 해 볼테면 해 보자”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니므롯이란 사람입니다. 그렇게 또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번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언어를 다 흩어버렸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은 타락을 하고 하나님은 또 뒷정리 하시고, 사람은 또 타락하고 하나님은 뒷정리 하시고... 결국은 성경의 모든 기록을 보면 처음에 아담이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셋으로부터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러다가 다 멸망시키시고 노아로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또 타락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흩어버리니까 사람들이 또 타락할 길을 찾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또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서 그 맥을 이어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타락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 타락과 하나님의 그것을 다시 어떻게 회복하시느냐, 타락과 회복하고, 타락하고 회복하고... 이것의 계속적인 반복입니다.

그러다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주의 날이 오면 타락한 모든 것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시대가 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세상을 볼 때에 “정말 이 세상에 소망이 있는가?” 어딘가 있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결코 지금 밝아보이진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은 정말 소망으로 가득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소망을 버리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어디에다가 그런 약속을 하셨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20절을 보겠습니다.

* 행 3:20~21-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텐데 하나님은 만물을 회복하시겠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 보겠습니다.

*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입니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계시록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께서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고 그곳에 다시는 사망도 없고 애통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고... 그 이유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너무나도 놀라운 말씀입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우리가 성경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타락하고 무너지고 깨어지고 병들고... 지금은 우리가 볼 때 어떤 것은 과연 회복이 가능할까 생각하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리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성경은 타락과 회복에 관한 얘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회복이라고 하는 주제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생명과 사망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66권 안에 이 생명이라고 하는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망이라고 하는 물줄기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맥이라고 하는 단어를 쓴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생명의 맥이 흐르고 있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사망의 맥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도 바로 우리가 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요 흐름이 바로 이 생명의 맥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망의 맥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살펴보시면 정말 깜짝 놀랄 것입니다. 성경은 생명이라고 하는 맥으로 쭉 뚫려버립니다. 동시에 사망이라고 하는 맥으로 정확하게 성경이 뚫려버립니다. 66권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확인하게 될 겁니다.

 


이 생명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 도대체 이 생명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물론 그 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물들 가운데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직접 사람에게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된 사건.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에게 들어와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아메바도 아니고 생명의 근원은 원숭이도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생명이 아담 속에 들어가므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시작됐던 이 생명의 맥은 이제 아담의 후손을 타고 계속해서 흐르다가 계시록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금하시므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계속해서 상기시키신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너의 모든 것을 다해서 지켜야 될 것은 생명이다. 내가 너에게 준 생명이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그곳에 가장 중요한 곳에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가장 아름답게 꾸미시고 그리고 에덴동산에 아담을 두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에덴동산의 한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한쪽 구석에 두시지 않고, 동산 한 중앙에다가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두셨다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다른 건 다 먹어도 되는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먹으면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반드시 죽게 된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동산 중앙에 나무가 몇 그루가 있습니까? 두 그루입니다. 한 그루는 생명의 나무, 한 그루는 지식의 나무. 생명의 나무와 지식의 나무. 그러면 날마다 아담은 그 동산 중앙을 볼 때마다 두 개의 나무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생명이냐 지식이냐. 그런데 그 지식의 나무는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것은 곧 ‘생명이냐 사망이냐’ 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질문은 뭐냐면 “아니 목사님,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입니다.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잘 들어보십시요. 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실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즉시로 내가 선과 악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선과 악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 어떻게 되는가 하면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됩니다.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된다는 말은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는 말이고, 그것은 내가 선과 악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과 악으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나는 선과 악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선하다 이것은 악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가장 어려운 일들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선이냐 악이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선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악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선이고, 어떤 사람에겐 선한 것이 어떤 사람에겐 악입니다. 도대체 선과 악의 기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에게 있어서 한두 번 거짓말하는 건 괜찮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한 두 번 거짓말 할 수도 있지... 누구나 다 거짓말 하지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 한 두 번의 거짓말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두 번 거짓말하는 것도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운전할 때 제한속도가 시속 80km이면 어떤 사람은 그 제한속도를 절대 넘기면 안 됩니다. 죽어도 넘기면 안 됩니다. 제한속도를 넘으면 큰일나는 것이고 그것은 악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속 85km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관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한속도가 시속 80km이면 시속 95km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고 상담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가, 특히 부부끼리 다투는 이유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투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실제로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걸 때 앞으로 잡아당기게 걸던 남편과 뒤로 잡아당기게 걸던 아내가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화장지를 뒤로 잡아당기게 걸었더니 남편이 다시 앞으로 잡아당기게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시 뒤로 잡아당기게 바꾸었더니 남편이 또 바꿉니다. 그것 가지고 다투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맞고 상대방이 틀리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옳고 자기가 볼 때 선하다는 철저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다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을 다 정죄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둘 중에 하나의 길을 가야합니다. 하나는 “당신이 틀렸어, 당신이 악이야” 그러면서 “당신은 틀렸고 악이니까 당신은 죽어야 돼”입니다. 이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부부가 살다가 너무 마음이 안 맞습니다. 아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맞고 남편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끝까지 자기가 맞고 아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못 살겠다해서 이혼을 할까 말까하다가 서로 미워하다가 어느 날 남편이 아내를 쏴 죽이고 자기도 죽었습니다.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안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랑 틀리고, 내가 생각할 때 옳지 않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워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미움은 살인하고 똑같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미움은 살인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남편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니까 아담이 숨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었구나. 왜 따먹었니?”하고 물으시니까 그때 아담이 하는 말이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가 따 먹지 말아야 되고 하와도 먹지 말라고 해야 되는데 저도 사실은 먹고 싶었는데 ‘하와가 먼저 따먹으면 나도 같이 따 먹어야지’고 있었는데 하와가 먼저 따먹는 것을 보고 나도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회개했습니다.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즉시로 “하나님이 만들어준 저 여자가 잘못했어요. 저 여자가 먼저 그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한테 주어서 내가 그것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와도 피할 길을 찾으려고 뱀의 탓을 합니다. “저 뱀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선과 악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당신만 없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 당신이 문제의 근원이야. 당신만 없으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거야”하고 남의 탓을 하게 됩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이것이 바로 마귀의 거짓말 아닙니까? 이것이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명목으로 사람도 죽이게 되고 한 민족을 쓸어버리게 되고 한 나라를 전쟁으로 다 초토화 만들어 버리고... 그것이 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멸망시키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반대로, 정반대로 “아니야, 나 때문이야”입니다. 사단이 또 교묘하게 속입니다. 사단이 “너 때문이야, 바로 너 때문이야”하고 속입니다. 그러니까 또 ‘맞어, 나 때문이야“하는 것입니다. 하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정말 자기 때문이거든요. ‘나 때문에 남편까지, 내가 죽일 놈이지. 맞아 내가 죽어야 돼.’ 그러다가 자살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사망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살인, 나를 정죄하면 자살. 자살까지 안 가더라도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도 죽지만, 내버려 두어도 또 죽게 되어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도태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우리는 죽고 죽이고... 그래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동산 중앙에 있는 두 나무는 생명이냐 사망이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올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지금도 교회는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따먹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가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 옳고 그른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선이냐 악이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하면 살리느냐 죽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생명을 얻는 일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이 맞고 내가 틀렸냐,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냐” 이것은 질문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다 틀렸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 앞에 서면 나도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살리는 일이냐 죽이는 일이냐’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얻는 일이냐 아니면 사망을 얻는 일이냐” 이것이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서 우리가 던져야 될 질문은 “이것이 살리는 일이냐, 죽이는 일이냐.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일이냐 아니면 사망을 얻는 일이냐?”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관계에서의 어려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언제나 “이것이 저 사람을 살리는 일인가, 이것이 나를 살리는 일인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나무를 따먹어야 됩니다. 지식의 나무를 따먹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제가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지식의 나무열매를 따 먹으면 먹을수록 정말 비참해집니다. 자꾸 사람이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알면 알수록,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그것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생명을 선택해야 됩니다.

 


방금까지 한 내용을 성경이 그러한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9절을 보겠습니다.

*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3장 22절을 봅시다.

*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 말은 아담이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었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원히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가 3장 24절을 보겠습니다.

*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결국 이때부터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차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인류는 사망의 그 길, 사망의 그 흐름, 사망의 그 맥을 드디어 타게 된 것입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0절부터 보겠습니다.

* 계 22:10~14- 10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자기의 겉옷을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씻고 또 씻어서 정결하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결국 이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게 됩니다. 아까 창세기에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그룹들로 하여금, 불 칼 화염검으로 하여금 지키게 해서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다시 열렸습니다. 생명나무로 우리가 나아갑니다. 그 다음에 19절을 보겠습니다.

*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는 생명나무에 참여하게 됩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이 생명나무가 얼마나 멋있는지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을 보겠습니다.

*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드디어 창세기에서 접근이 차단되었던 생명나무로 나가는 길이 계시록에서 열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그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시작되었던 이 생명의 맥이 계속 흐릅니다. 흐르다가 결국은 계시록에까지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은요? 사망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사망의 열매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면 가인에게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인이 결국 아벨을 죽입니다. 그 사망의 줄기가 거기서부터 계속해서 흐릅니다. 성경 전체에 흐릅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그 사망의 줄기가 어떤 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의 줄기는 그냥 실오라기처럼 겨우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는 듯한데, 사망의 그 맥은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온 세상에 창궐하게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너무나 놀라운 것은 이 생명과 사망이 끊임없이 흐르다가 대부분 경우는 생명이 더 우리 눈이 보기에 약해 보이고 왜소해 보이고 사망이 훨씬 더 창궐해 보이지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끝, 결말입니다. 결국 이 사망의 끝, 이 사망의 맥은 이 사망의 흐름, 이 사망의 줄기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이 사망이 어떻게 끝나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계시록 20장 11절부터 보겠습니다.

* 계 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책들은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책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책대로 심판하십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 그리고 이 책들에 기록된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 계 20:13~15-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이 사망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입니까? 불 못입니다. 사망도 결국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사망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불로 활활 타는 못에 사망 자체도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결국 불 못에서 끝나게 됩니다. 영원토록 불 못에서 있게 됩니다. 계시록 21장 7절을 보겠습니다.

* 계 21: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7절의 이기는 자는 앞의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사망의 마지막입니다. 사망의 끝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됐던 이 사망의 줄기가 끊임없이 흘러서 수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계속해서 도도히 흐르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그가 이른 곳은 바로 둘째 사망이요 불 못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생명의 물줄기는 너무나 도도히 흐르고 때로는 그 생명의 물줄기가 없어져 버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끝까지 그 맥을 이어가시다가 결국 이 생명의 물줄기는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 생명나무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정리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이걸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줄기가 흐르고 사망의 줄기가 흐른다. 생명의 줄기를 타게 되면 반드시 생명나무로 이어지게 되어있고, 사망의 줄기를 타게 되면 반드시 불 못으로 가게 되어있다.” 이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66권의 다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디에서 요약해줍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구약 36권을 결국 요약하면 몇 권이라 그랬습니까? 5권.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것이 구약의 다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그대로 그들이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구약에 다 있는데 전부 모세오경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어떤 분들이 제게 와서 “목사님, 제가 시간이 없어서 구약을 다 못 읽었는데 혹시 5권만 추천해 주세요”라고 하면 저는 모세오경을 추천해 줍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바빠서 못 읽겠다고 해서 “목사님, 5권 말고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라고 하면 제가 “그러면 신명기를 읽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신명기도 너무 많아요. 한 장만 골라 주세요”라고 하면 제가 “신명기 30장을 읽으십시요”라고 합니다.

 


신명기 30장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맥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 보겠습니다.

* 신 30:15~16-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우리 앞에 생명과 복, 즉 생명이 복입니다. 사망과 화를 우리 앞에 두었습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이 이것을 다시 한번 반복하십니다. 성경은 중요한 것을 반복합니다.

* 신 30:19~20-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이 복이고 사망이 저주입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이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역시 똑같은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간단하고 이렇게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성경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복잡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애매모호한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하나님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볼 때 사지선다를 합니다. 사지선다가 어렵습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4개 중에서 고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시험은 육지선다입니다. 육지선다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든지 간단하십니다.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 앞에 생명과 사망을 놓았다. 생명은 복이고 사망은 저주이다”라고 하십니다. 생명과 사망.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해야 되지? 생명? 사망? 사망이 옳을 것 같기도 하고... 생명이 옳을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답까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생명을 선택하길 원한다. 정답은 생명이다!”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못 맞춥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나는 너뿐만 아니라 너도 살고 네 자손까지 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선택하길 원한다. 정답은 생명이다.”라고 하십니다. 에덴동산이랑 똑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상적인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소위 우리말로 기본이 된 사람은 생명을 선택할 것 같습니까? 사망을 선택할 것 같습니까? 생명을 선택할 것 같죠?

그런데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줬는데도 사망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보면서 열화가 터져갖고 ‘이런 멍청한 것들, 이렇게 말해줘도 못 알아먹어?. 귀가 없니?’ 그래서 ‘너희들은 고생해도 싸다. 너희들은 포로로 잡혀가도 싸다. 싸다. 싸다. 그렇게 말해줘도 못 알아들으면 방법이 없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다시 깨닫고 보니까 내가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 탓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매일의 삶 속에서, 매순간에 생명과 사망의 선택의 기로에서 생명을 선택하기 것보다 사망을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더 많은지 모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탓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제대로 잘하고 있는데 당신이 틀렸다’가 아니라, ‘아, 나도 안 되는데 당신은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라”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예를 들어 오른손에는 백만원이 있고 왼손에는 바퀴벌레가 있다면 어느 손을 택하시겠습니까? 백만원? 왜? 왜 바퀴벌레는 안 됩니까? 그러면 오른손에는 천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똥을 들고 있다면 둘 중의 하나,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여기서 누가 똥을 선택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미친 사람입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생명이 천만 원밖에 안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생명이 천만 원의 가치만도 못하겠습니까? 그 가치는 무한정입니다. 측정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것과 그 펄펄 타오르는 그 고통의 지옥.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망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것은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 이것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미쳤습니다. 우리가 다 미친 사람입니다. 너무나 분명한데 우리는 사망을 선택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애가 타겠습니까? 안 타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해줘도 안 됩니다.

 


성경은 “생명이냐 사망이냐. 네가 선택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 “나는 너희가 생명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생명을 얻기를 원한다. 생명나무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성경의 다입니다.

66권을 보고, 또 보고, 또 보십시오. 하나님은 똑같은 얘기를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십니다.

생명을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다!!!

쉽습니다. 너무나 분명합니다.

 

 

[출처] 벤자민 오 목사의 "성경의 맥" Part1 Lesson 2|작성자 루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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