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빌립보서 강해(11)] 바울의 생각 속에 들어있는 복음전파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빌3:12~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lCenbjiuk
1. 들어가며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로 투옥된 상황(A.D. 60-63년경)에서 기록한 옥중서신 중 하나이다. 그것들 중에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들어간 상태에서 약 2년 정도 지난 상태에서 A.D. 62-63년경 썼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죄수의 몸이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면 모든 사역을 접는 수순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추구한다(뒤쫓아간다)고 말했다. 대체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랬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잘 마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한참 먼 경주자처럼 저 푯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12절)이자, ‘앞에 있는 것’(13절)이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14절)이라고 말했다. 사역을 그만두고 접을 때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고 갈 길이 멀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가야할 길을 보여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감옥에 붙들려 있는 상황과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A.D. 63년경에 감옥에서 잠시 풀려나, 그가 로마서에서 밝힌 바대로 서바나(스페인)로 전도여행을 떠난다. 그가 그때로부터 약 2-3년간 복음을 전하던 중, A.D. 64년 네로 황제의 로마 대화재로 인해 기독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저버리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써 보낸다(A.D. 65-66년경). 그리고 로마로 돌아왔다가 다시 체포되어(A.D. 67-68년경) 순교함으로 그 인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바울은 말년의 상황, 사역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진 열정과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가야 할 길을 정해 놓으시고 그기로 인도하시는데, 특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그 길을 더욱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신다. 그러나 내 육체 속에 악한 영들이 너무 많으면,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셔도 치밀한 어둠에 가려 그 길을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가?’ 의심하며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즉시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를 해야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 뜻과 사명을 더 밝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깨달아 그 계획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신을 가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어 구원받았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이 땅에서 시작된 것일 뿐, 천국에 들어가야 완성되는 것이다(딤후 4:1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때부터 과연 자신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지위와 신분으로 들어갈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드물다.
필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하고, 심지어 ‘구원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고 말하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목회자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되면 호적에서 안 판다’는 세상 논리를 성경에 가져다가 끼워 맞춘다. 그러나 히브리서 2장 1-3절을 보라.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을 받았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스라엘)조차 범죄하고 순종하지 않아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거늘, 하물며 신약의 성도들이 받은 큰 구원(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등한히 여긴다면 그가 받을 보응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렇다. 우리는 교리나 교단이 아니라 성경 66권을 100%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바울의 신학도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후기 서신(빌립보서, 히브리서, 디모데전후서)에서는 구원 탈락의 가능성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딤전 1:19-20; 4:1-2; 딤후 3:8). 이는 계시의 진전이다. 우리는 과거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성경 전체를 통해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2. 바울이 달려가고자 한 ‘푯대’와 ‘부름의 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빌 3:14)
바울은 감옥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달려갈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12절), “앞에 있는 것”(13절), 그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14절)을 좇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과 그 완수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자 특별한 상음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로마에 편지를 보낼 때에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롬 11:13)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왕들과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행 9:15)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유고슬라비아 지역)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롬 15:19). 하지만 그는 아직 복음이 전해주지 못한 서쪽 끝, 곧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다(롬 15:23-24). 사실 로마서를 쓴 목적 중 하나도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아 이 서바나 선교를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빌립보서를 쓸 당시 그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한 이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도 기뻐하며, 자신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 ‘부름의 상’을 향해 그때도 달려가고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고 소망하던 ‘상’은 무엇인가? 여기서 '상'(βραβεῖον, 브라베이온)이란 헬라어로 주에서 승리한 1등에게만 주어지는 ‘승리의 면류관’(Prize)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성도가 행한 대로 받는 일반적인 보상(μισθός, 미스도스 - 천국 집 등, 계 22:12)과는 좀 구별되는, 특별한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이것은 성도들이 일하고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삯, 임금)으로 받게 되는 상 곧 '미스도스'와는 구별되는 것이다(계 22:12). 성도들이 열심히 수소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상은 사실 천국집을 짓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성도들이 경주에서 승리했을 받게 되는 상으로서 '브라베이온'은 소수만 받게 되는 영예의 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브라베이온’으로서의 상은 다시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면류관(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승리자의 관)이 있다. 여기서 면류관은 올림픽 경기에서 최고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천국에 가서 보면 면류관은 월계관 모양도 있고, 티아라처럼 생긴 관도 있고, 왕관처럼 생긴 것도 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그날에 ‘의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 면류관(승리관)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여 승리한 자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씌워주시는 영광스러운 상이다.
둘째, 보좌의 자리가 있다. 마태복음 20장 23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당신의 좌우편에 앉게 되는 것(통치권, 보좌)은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특별한 상(보좌의 자리, 14만 4천 석에 앉음)이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예정과 같은 것이다(물론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고후 12장) 이러한 비밀을 보고 들었으며, 자신을 향한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알았기에 그 영광스러운 상을 향해 힘껏 달려갔던 것이다. 그렇다.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부르심의 상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감옥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뻐하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그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는 복음 전파자의 자세는 무엇인가? (빌 3:12-13)
바울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푯대와 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영광스러운 면류관들이었을 것이며, 그에게 주어질 보좌 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미 얻었다거나 완성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12절과 13절을 보라. 그는 여전히 그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는 두 가지 중요한 자세가 나온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12절, 13절 상).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렇다. 바울은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사역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겸손히 인정했다. 이는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더이상 내게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과 극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그는 ‘아직(not yet)’이라는 겸손한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13절 하). “오직 한(one)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 것이다. 그렇다. 바울이 취한 두 번째 자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울에게 ‘뒤에 있는 것’이란 자신이 이룬 성공적인 업적과 자랑거리(빌 3:4-6)일 수도 있고, 반대로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실패와 과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에 연연해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성공에 도취하면 교만해지기 쉽고(자기자랑), 반대로 과거의 실패에 눌려 있아면 좌절하고 주눅 들어(학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거나 과거의 죄책감에 결코 매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오직 ‘앞에 있는 것’, 즉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과 부르심의 상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하고 나아갔던 것이다. 그렇다. 복음 전파자는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해서는 아니 된다. 과거의 성공은 교만의 덫이 될 수 있고, 과거의 실패는 좌절의 늪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맡기신 사명과 장차 주실 영광스러운 상급만을 바라보며, 날마다 새롭게 달려가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우리는 어떻게 이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가? (계시의 진전과 회개의 필요성)
바울이 자신의 사명과 부름의 상을 분명히 알고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서(엡 1:17-19) 그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부르심의 소망, 그리고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사명은커녕,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구원 경륜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악한 영들 때문이다. 그들이 어둠의 영이 되어 하나님의 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제사, 불교, 무속 신앙, 각종 미신 등 깊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수많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그분의 뜻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 역시 과거에는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영적인 세계에 무지하여, 성경에 기록된 일반적인 뜻만을 알았을 뿐이다. 그러나 6년 전부터 회개를 시작하고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그분의 세밀한 뜻과 계획까지도 알게 되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하여 ‘자기를 비우고 낮추라’(빌 2:5-8)고 권면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 2:2)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아직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즉 사람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은 오직 회개를 통해 몰아낼 수 있다는 계시가 임하지 않았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며 말했지만(빌 3:6), 그 역시 유대교의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의 과거 죄악과 그것으로 인하여 바울 안에 침투해 있는 악한 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회개와 천국 복음의 비밀이 너무나도 귀하고 귀하다. 왜냐하면 첫째로,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이 내 안의 악한 영들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나를 향한 사명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이 자기의 교만과 자랑, 외식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들도 다 영들인데, 회개를 통해서 이것이 제거되어야만 비로소 바울처럼 우리도 과거의 모든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얻고자 하는 순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이 육체의 소욕을 따르던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성령의 소원을 따라 우리도 행하게 되고(빌 2:13) 구원을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바울이 추구했던 그 푯대를 향한 경주는 오늘날 우리에게 ‘회개를 통한 영적 정결’과 ‘성령을 좇아사는 순종의 삶’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따를 수도,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5. 나오며: 푯대를 향해, 회개하며 달려가라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으며, 그 사명을 완수하는 자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부름의 상’(브라베이온)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앞으로 나아갔다. 특히 그는 이 푯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려고 두 가지 자세를 견지했다. 그것은 첫째로, 자신이 이미 다 이루었다고 안주하거나 교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며 전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가? 세상의 썩어질 것들인가, 아니면 하늘의 썩지 아니할 면류관인가? 바울은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육체의 조건들을 다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과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주를 완주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라는 것이다. 회개를 통하여 내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그 빈 자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채울 때에, 우리는 비로소 바울처럼 룟대를 향해 힘껏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가다가 우리의 연약한 믿음 때문에 때로는 넘어지고 자빠질지라도, 회개를 통해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상급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2025년 11월 05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빌립보서 강해 영상의 발췌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된 상황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려 했던 사도 바울의 자세를 조명합니다. 바울은 이미 얻었다거나 완성했다는 안주함을 거부하고,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는 표대를 향해 쉼 없이 달려 나갑니다. 이는 과거의 성취나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는 자세가 복음 전파자들에게 요구됨을 강조하며, 나아가 이 상급이 모든 신자에게 주어지는 보상(미스도스)을 넘어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면류관(브라베이온)임을 설명하며 독려합니다.
#빌립보서 #사도바울 #푯대를향하여 #부름의상 #복음전파자의자세 #믿음의경주 #사명 #회개 #겸손 #과거는잊고앞으로 #말씀묵상 #아침묵상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