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1hbJRiwHcs
1. 들어가며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는, 그가 죽은 뒤에 남긴 흔적으로 증명된다. '다윗'이라는 한 인물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단순히 위대한 왕으로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전형(典型)이요 원형(原型), 곧 아키타입(archetype)으로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완전한 왕의 모델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다윗을 그토록 오래 공부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윗을 안다는 것은 곧 장차 천국에서 우리가 어떤 신분으로, 어떤 위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미리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얻게 될 최고의 신분은 '왕 노릇 하는 자'의 신분이다. 요한계시록은 그 왕들의 대표로 스물네 장로를 보여 주며, 또한 십사만 사천이라는 무리를 보여 준다. 이들은 모두 성 밖으로 나가 여러 고을을 다스리는 자들이니,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가까이 선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국의 이 모든 행정 체계와 계급 질서가 한 사람, 곧 다윗이 이 땅에서 만들어 놓은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너무도 기뻐하신 나머지, "나는 다윗의 체제가 좋다" 하시며 그가 세운 질서를 천국의 질서로 삼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 체제의 정점에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찬양'이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심을 받았으나, 대신 4,000명의 성가대를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높이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찬양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찬양대를 이끈 세 사람의 대표 가운데 하나인 '헤만'이 한때 하나님을 거역했던 고라의 후손이었으며, 또한 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詩)를 그대로 가져다가 노래(歌)로 부활시킨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 그 마음을, 찬양을 맡은 자들이 똑같이 사랑하여 노래로 빚어낸 것이다. 한 사람의 깊은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로 흘러가 거룩한 찬양의 강을 이룬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미친 자리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시편 48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어떻게 고라 자손에게까지 미쳤으며, 그들이 어떻게 다윗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만왕의 왕을 찬양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구약에 없던 '왕권의 분배'를 다윗에게서 시작하셨는가?
구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통치 권한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말씀은 없다. 원래 통치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행하시는 일이었다.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 이것이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였다. 그런데 이 질서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부르시고(삼상 13:14), 당신이 앉아 통치하시는 그 자리를 그에게도 분배해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붙들어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이 왕권의 분배가 다윗 때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다만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있을 수 있었으나 드러나지 않았던 그 뜻이, 다윗이라는 한 사람을 통하여 비로소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가 있다면, 내가 앉아 통치할 그 자리를 너에게도 분할하여 주겠다"고 결정하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여호수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지파별로 분배할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워 대적을 몰아낸 자들이 가장 넓은 기업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옛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장차 임할 천국의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영적 모형이다. 천국에서 넓은 땅을 분배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이 땅에서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영적 전쟁을 감당한 자가 하늘의 땅을 많이 차지한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결코 안일하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흘리는 영적 수고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기업의 넓이를 결정짓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택하신 종들에게는 특별한 우선권, 곧 특별 분양권을 주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를 택하여 장자 대신 당신의 일을 맡기셨으니,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특별한 분깃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본래 모든 집의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장자들을 대신하여 '레위 지파'를 택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일에 세우셨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그 택함받은 종들은 특별 분양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엄중한 진리가 있다. 예정은 되어 있으나 고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정되어 있다 하여도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그 자리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 앞에 특별히 쓰임받을 자로 보냄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의 결단으로 "내가 그 길을 가리라" 결정하면, 하나님은 그 헌신을 얼마든지 받으신다. 이것이 바로 '나실인 제도'가 보여 주는 영적 원리이다. 본래 제사장으로 태어나지 않았어도,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로 서원하면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거룩하게 받으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증거한다. 우리는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다윗은 바로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택하고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왕권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삼하 7:8-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3. 천국의 모든 행정 시스템은 왜 '다윗식 24반차'로 돌아가는가?
다윗은 두 종류의 왕을 깨달아 갔다. 첫째는 목자와 같은 왕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목자로 살았기에, 시편 23편에서처럼 목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깊이 알았다. 이 목자 되심은 에스겔서에서 정확하게 예언되었다.
겔 34:23-24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예언은 다윗보다 약 400년 뒤에 살았던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한 것이다. 다윗이 다시 살아 돌아올 일은 없으니, 이 "내 종 다윗"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모세의 아들"이나 "이사야의 아들"이라 부른 적이 없고, 오직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것은,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보내실 당신의 아들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신다는 것, 곧 왕 노릇 하실 분이 최고의 신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신 것이다(요 10:11).
이제 다윗이 만든 그 체제를 살펴보자. 다윗은 늙어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삼은 후, 레위 사람들을 직무에 따라 정밀하게 나누었다. 사천 명을 성전 문지기로, 또 사천 명을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해 그가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로 세웠다.
대상 23:5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다윗이 찬송하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들이라
그리고 그러한 나눔의 정밀함을 보라. 아론 자손의 제사장 계열은 엘르아살 자손에서 열여섯 반차, 이다말 자손에서 여덟 반차, 합하여 정확히 스물네 반차로 나뉘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이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다. 레위 자손도 스물네 반차로, 성가대도 스물네 반차로, 문지기도 스물네 반차로 나뉘었다. 곧 다윗이 세운 모든 직무가 스물네 개의 반차로 정렬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충격적인 영적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이 보여 주는 천국의 모든 행정 시스템이 스물네 장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바로 다윗이 이 땅에서 만들어 놓은 틀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체제를 그토록 기뻐하셔서, 천국의 질서를 다윗식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준다. 천국의 삶은 이 땅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우리는 천국을 이 땅과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세계로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당신을 위해 행한 모든 일을 영원토록 기억하고자, 천국에 그 기념을 새겨 두시는 분이다. 천국에 있는 모세의 집에도 법궤가 있고, 그 안에 십계명 두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담은 항아리가 따로 보관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행한 일을 천국에서 기념물로 간직하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드린 모든 수고가 천국에 고스란히 기억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마다 "네가 나를 위해 행한 이 모든 일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는 너를 위하여 기념관을 지어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고 말씀하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천국에는 그렇게 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념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흘리는 헌신의 수고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4. 다윗은 어떻게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와서 왕 되심을 미리 알았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왕 노릇 하실 것임을 다윗이 미리 알았다는 사실이다. 시편 2편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릴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감동을 주셔서, 그가 살던 시온산과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천국의 이름을 짓고, 그의 자손에게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결정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시 2:6-7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산 시온에 당신의 왕을 세우시며, 그 왕을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고 선언하신다. 곧 장차 아들로 오실 메시아가 왕 노릇 하실 것을 다윗이 미리 알았던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왕의 통치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다윗에게 그대로 성취되었다. 다윗은 아말렉으로부터 블레셋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얻어 다스렸다. 그가 다스린 것은 자기 백성을 철장으로 짓누른 것이 아니라, 거역하는 이방 나라들을 철장으로 제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 성취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메시아에게 있다. 다윗이 자신을 향하여 "주는 나의 아버지시라" 고백한 시편의 구절이, 결국은 메시아의 왕 되심을 예표하는 것이었다(시 89:26). 한 인간 다윗이 이 땅에서 누린 왕권과 승리는, 장차 영원한 왕으로 오실 그분의 통치를 미리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시 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산'을 그대로 천국의 산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새 예루살렘'이라 부르시며,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를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한 사람과 그가 살던 땅과 그가 세운 질서를 얼마나 기뻐하셨는가를 증거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이토록 깊이 헤아렸기에,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모든 것을 영원한 나라의 모형으로 삼으신 것이다.
5. 철장(鐵杖)의 통치는 성 안과 성 밖에서 어떻게 갈라지는가?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힌다. 천국에는 철장으로 다스릴 대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시편 2편 9절의 "철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 답이 드러난다(계 2:26-27).
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포이마이노)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주목할 것은, 시편에서 "깨뜨린다"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다스린다(포이마이노)"로 인용하셨다는 점이다. '목양한다'는 의미를 그 안에 담으신 것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은 철장이 아니라 목양으로 다스림을 받는 양들이다. 철장의 통치는 성 밖에 있는 자들, 곧 여전히 거역적인 것이 남아 있어 합당하지 않아 쫓겨난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거룩한 성이 내려올 때, 성은 빛의 도시이기에 그 안과 가까운 바깥쪽은 그나마 환하다. 그러나 점차 더 바깥으로, 더 어두운 쪽으로 갈수록 슬피 울며 이를 갈고 고통당하는 자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끝, 곧 지옥으로 떨어지면 완전히 철장으로 다스림받는 자들, 곧 사탄과 마귀가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은 구원은 일종의 맛보기이다. 마귀가 여전히 활동하는 이 땅의 구원은 참된 안식이 아니다. 마귀가 없는 그곳,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누리게 될 지형과 구조와 계급 체계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그대로 받으신 것이다.
이 영적 사실은 우리의 신앙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는 단지 이 땅에서 구원의 맛을 본 것에 만족하여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빛의 도시인 성 안으로,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 중심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성 밖 어두운 곳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거역하는 옛 성품을 버리고 주님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순복하는 양이 되어야 한다. 철장의 다스림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함받는 양 떼의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이 레위 지파에게 맡기신 '최종적이고 최고의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제사장을 세우신 일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찬양'으로 끝난다. 제사장을 세우신 까닭이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최종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찬양은 아론 때에는 없었다. 다윗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나는 왕이 아니다. 하늘의 왕, 진짜 만왕의 왕, 영광의 왕은 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내가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가." 그 결론이 바로 찬양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찬양의 은혜로 가득해야 한다. 찬양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찬양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임하시기 때문이다(시 22:3).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이 찬송할 때 그 찬송을 보좌 삼아 임하신다. 신약의 사도 바울도 이 진리를 깊이 알았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거듭 강조한다(엡 1:6).
엡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성자께서 행하신 일을 찬송하고(엡 1:6), 성부께서 행하신 일을 찬송하며(엡 1:1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셔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 성령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엡 1:14),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천사가 아닌 인간을 택하여 당신의 아들들로 삼으셨음을 선포한다. 에베소서 1장을 자세히 보면, 바울은 한 장 안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세 번이나 거듭 강조한다. 곧 우리가 창세 전에 택함받고 예정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그 모든 구원의 목적이, 결국은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곧 우리가 지음받은 가장 마땅한 목적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바로 찬양인 것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찬양대를 세웠으며, 그 일은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대하 5:13-14).
대하 5:13-14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찬송이 극에 달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다. 이것이 찬양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송 중에 그 영광으로 임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시편'이라는 책 자체의 비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편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 최소한 여덟 명의 저자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일곱 명은 이름이 밝혀져 있고 한 사람 이상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 다윗의 시가 일흔세 편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아삽의 시가 열두 편, 고라 자손의 시가 열한 편이며, 솔로몬이 두 편, 모세가 한 편, 헤만이 한 편, 에단 곧 여두둔이 한 편을 남겼다. 주목할 것은,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이 핵심 저자들이 '다윗'이며 그리고 다윗이 찬양하라고 세운 자들로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분(에단)'이며 그들의 가문인 '고라의 자손들'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들이 시편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시편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모세가 쓴 시편 90편이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로 시작하여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로 이어지는 그 노래가, 시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반면 가장 나중에 기록된 것은 시편 126편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부른 노래이다.
시 126:1-2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리고 포로 된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올 때,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혀에는 찬양이 가득하였다. 이 찬송의 배경이 되는 또 하나의 시편이 있으니 그것은 시편 137편이다.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던 그들이,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두고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탄식하였으나, 마침내 다시 돌아와 그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포로 가운데서도 늘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으니, 시온산을 하나님이 계신 산으로,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계신 성으로 사무치게 사모하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어느 때나 그토록 시온과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여기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다윗 때문이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 일컫고(삼하 5:7), 그곳에 법궤를 모셔와 하나님을 최고로 섬겼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되, 집부터 지어 드리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니,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택하였다. 그리하여 성전이 지어지기도 전에 성막 앞에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이 세 레위 사람을 세우고, 사천 명의 성가대로 하여금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하게 한 것이다. 이백 명의 성가대만 찬양해도 그 아름다움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다윗은 사천 명을 세워 오케스트라를 더하여 하나님을 높였으니,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새겨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찬양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삯을 받고 연주하는 자의 손끝에서는 은혜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비록 연주가 다소 서툴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성도의 찬양이 참된 은혜가 된다. 다윗이 세운 찬양대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는 삯꾼이 아니라, 진실로 신앙이 좋은 자들을 골라 거룩한 직임을 맡겼던 것이다.
7. 다윗이 지은 '시(詩)'를 고라 자손 헤만은 어떻게 '노래(歌)'로 만들었는가?
이제 이 설교의 정점에 이른다. 다윗이 세운 찬양대의 세 대표자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다. 이들은 각각 레위의 세 아들, 곧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가문을 대표한다. 본래 레위 지파의 세 가문은 성막을 운반할 때 각기 맡은 직무가 달랐다. 고핫 자손은 법궤와 성물을 메었고, 게르손 자손은 휘장과 덮개를 맡았으며, 므라리 자손은 널판과 기둥 같은 골조를 운반하였다. 직임은 달랐으나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함께 감당한 한 형제였다. 다윗은 이 세 가문에서 각각 한 사람씩을 택하여 찬양대의 대표로 세웠으니, 아삽은 게르손 자손의 대표요, 헤만은 고핫 자손의 대표이며, 여두둔(본래 이름은 에단)은 므라리 자손의 대표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스물네 반차의 성가대를 조직한 것이다. 다윗은 돈을 받고 연주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신앙이 좋은 자들을 골라 이 거룩한 직임을 맡겼다. 그런데 이 헤만의 혈통을 추적하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대상 6:33 레위 자손 중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노래하는 자라 그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다. 곧 헤만은 그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친손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은 결코 본받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삼상 8: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뇌물을 받아 판결을 굽게 한 불량자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 가운데서 찬양대장 헤만을 세우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혹 당대에 받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들이 받지 못하면 손자라도 받는 것이다. 사무엘이 평생 하나님께 헌신한 그 수고가, 불효한 아들을 건너뛰어 손자 헤만에게서 영광스러운 찬양의 직임으로 열매 맺은 것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이 이어진다. 헤만의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고라'가 있다는 사실이다.
대상 6:37 스바냐는 다핫의 아들이요 다핫은 앗실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
아뿔싸, 헤만은 곧 고라의 후손이었다. 사무엘 또한 고라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고라가 누구인가? 민수기에서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 버린 그 반역의 주동자가 아닌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기록한다. 고라는 반역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은 그 반역에 가담하지 아니하였다고. 그리하여 땅이 그들을 삼킬 때에 고라의 아들들은 살아남았다(민26:10-11).
민 26:10-11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11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적 진리가 있다. 우리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못된 일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결코 절망할 것이 없다. 그 죄에 동참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당신의 사람을 세워 쓰신다. 살아남은 고라의 아들들에게서 사무엘이 나오고, 그 사무엘에게서 찬양대장 헤만이 나온 것,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8. 시편 88편과 48편은 헤만이 지은 것인가 다윗이 지은 것인가? 아니면 고라가 지은 것인가?
여기서 잠시 시편이라는 책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편은 모세 때부터 바벨론 포로 귀환 때까지 약 천 년에 걸쳐 기록된 찬양의 모음집이다. 모세의 시편 90편이 가장 오래된 것이요, 포로 귀환기의 시편이 가장 나중의 것이니, 이렇듯 천 년의 노래들을 후대의 사람들이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최종 편집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르러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이 편집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시편 전체는 사실 다섯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모세오경, 곧 창세기(시편 1-41편)와 출애굽기(시편 42-72편)와 레위기(시편 73-89편)와 민수기(시편 90-106편)와 신명기(시편 107-150편)의 구조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또한 고라 자손의 시는 두 번째 묶음으로 구별되어 있고(시편 42편부터), 아삽의 시도 세 번째 묶음으로 묶여 있으니(시편 73편부터), 이는 찬양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돈한 것이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섯 개의 큰 단락으로 묶어 놓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처럼 다섯이라는 숫자로 정돈하는 방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 깊숙이 새겨진 거룩한 질서였다.
그렇다면 이 헤만이 지은 노래가 무엇인가. 시편 88편 하나가 남아 있다. 그것은 시편에 등장하는 일곱 주제별 종류의 시편, 곧 찬양시, 비탄시, 감사시, 지혜시, 제왕메시야시, 신뢰시, 저주시 가운데 비탄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 88:1-2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그런데 이 비탄의 내용을 누구의 것인지 추적하면, 그 본래의 시는 다윗의 것임이 드러난다. 시편 88편 후반부를 보라.
시 88:14-15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시 88: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다"는 이 고백은 누구의 생애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소외받고 버림받은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와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 요나단을 가리키고, '내가 아는 자"는 자신을 왕으로 세운 사울이 죽는 비통을 겪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오랜 세월 고통 가운데 쫓겨 다녔던 다윗의 생애 그 자체이다. 시편 51편이 밧세바와의 죄 이후의 회개라면, 시편 88편은 다윗이 평생에 걸쳐 겪은 고난의 총체적 탄식이다. 곧 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詩)를, 헤만이 그대로 가져다가 노래(歌)로 빚어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 시편 88편의 비밀이다.
그렇다면 시편 48편은 누가 지은 노래일까? 표제에 '고라 자손의 시'라 기록된 이 찬양시는, 다윗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 그 마음을 고라 자손 헤만이 노래로 만든 것이다.
시 48:1-2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다윗이 시온산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예루살렘을 만왕의 왕의 성으로 노래하였으니, 그 마음을 이어받은 헤만이 동일한 고백을 찬양으로 올려 드린 것이다.
시 48:6-8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다윗이 시편 7편과 9편과 2편에서 노래한 그 왕의 다스리심과 보좌에 앉으심을, 고라 자손이 그대로 받아 찬양으로 빚어낸 것이다. 한 왕을 이 땅에 보내어 그 통치를 받았던 백성이, 그 왕을 통하여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격하여 찬양을 올린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분을 만왕의 왕으로 섬겼기에, 그 마음을 읽은 헤만이 "우리도 이 노래를 지어 부르자" 하여 다윗의 시를 찬양으로 빚어 시편에 담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깊은 영적 사실을 깨닫는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한 것을 알았기에, 찬양을 담당한 그들 또한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신앙이 좋은 자들만을 골라 찬양대로 세운 사람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 찬양대원들은 삯을 위해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사랑을 본받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노래한 것이다. 그들은 다윗의 비탄의 시를 가져다가 비탄의 노래로 부르고, 다윗의 찬양의 시를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상에 영광의 왕이시며 전쟁에 능하신 우리 주로다" 찬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다윗이 사천 명의 성가대를 세웠듯이, 천국의 십사만 사천 가운데서도 따로 구별된 무리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진짜 왕을 이 땅에 보내어 그 통치를 받았던 백성이 감격하여 그 왕을 찬양하되, 그 왕이 바라본 진짜 왕,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세 사람의 찬양대장으로 하여금 다윗의 마음을 온전히 읽게 하시고, 그 마음을 그대로 노래로 표현하여 찬양을 올려 드리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시편 48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거룩한 비밀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우리는 시편 48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어떻게 고라 자손에게까지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왕권의 분배를 처음으로 받은 자였으며, 그가 세운 24반차의 체제는 천국의 행정 질서가 되었다. 그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왕 되실 것을 미리 알았고, 철장의 통치와 목양의 다스림을 구별하였으며, 무엇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찬양임을 깨달아 성가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 찬양대를 이끈 고라 자손 헤만은, 한때 반역했던 조상의 후손이었음에도 회개한 자손의 계보를 따라 세움받아, 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를 노래로 부활시켰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영적 교훈을 남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 천국의 넓은 땅은 영적 전쟁을 감당한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모든 수고를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을 위하여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조상의 죄에 절망하지 말아야 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후손을 통해서라도 영광을 베푸심을 기억해야 한다. '고라'가 반역하였어도 그 회개한 자손에게서 '사무엘'과 '헤만'이 나왔듯이, 우리의 결단은 우리 당대뿐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까지 거룩한 열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찬양은 인간이 지음받은 이후로 마땅히 행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 찬송 중에 영광으로 임하시기 때문이다.
다윗처럼 "나는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자이나, 오직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 고백하며,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껏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찬양을 통하여 다른 사람도 그 은혜를 받아 함께 하나님을 높이며, 영원토록 만왕의 왕을 찬송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8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윗 왕이 수립한 찬양 체계와 천국에서의 왕적 지위 및 질서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영성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목사는 다윗을 단순한 지상 국가의 통치자가 아닌, 천국의 통치 모델을 이 땅에 구현한 왕의 전형으로 정의하며, 그가 세운 24반차의 제사장 및 성가대 조직이 하늘나라의 행정 시스템과 일치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고라 자손인 해만과 같은 인물들이 다윗의 신앙 고백을 노래로 승화시킨 과정을 조명하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싸움을 통해 얻게 될 최고의 신분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왕권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지상의 삶이 천국에서의 영원한 기념관이자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분이자 사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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