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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01.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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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8_z-Y2WW3y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메시아다"라고 한다고 해서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그렇게 얼렁뚱땅 세우지 않으신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누구나 "내가 메시아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면 다 될 것이다. 그래서 절대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메시아가 어떤 존재로 이 땅에 오실 것인지를 다 약속해 놓으신 것이다.

  그 신분적 약속이 매우 정밀하다. 왕의 후손으로 올 것이며, 그 시작은 아브라함의 씨로 올 것이고, 야곱의 씨로, 유다의 씨로, 이새의 아들로 올 것이라는 혈통적 약속이 있다. 그리고 그 출생지는 미가서 5장 2절에 의해 베들레헴으로 정해져 있다. 고로 한국 땅에 태어난 사람은 결단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 이만희도, 문선명도, 안상홍도 메시아가 될 수 없다. 또한 주님께서 육체를 두 번 입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무려 365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최소 28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대해서 확실성을 가지고 지금 믿고 가는 것이다.

  구약 성경은 사실 씨앗으로 주어진 말씀이기에, 이 씨앗은 열매가 어떤지를 잘 모른다. 심어 봐야 안다. 그래서 반드시 구약 성경은 신약의 열매를 확인한 다음에 그 씨앗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시편 22편의 말씀은 모형론적 예표가 아니라 말로써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한 본문이다. 다윗 자신의 처절한 버림 당함의 경험을 통해, 장차 메시아가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할 것인지를 예언한 시편이 시편 22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정밀한 예언이 무엇이며, 다윗의 비탄시와 저주시가 어떻게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메시아의 신분적 약속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하나님은 메시아를 어떻게 세상에 보내실지 그 신분을 미리 정밀하게 약속해 놓으셨다. 이것은 거짓 메시아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다. 신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누구든 "내가 메시아다"라고 자칭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단의 길은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먼저 첫째로, 혈통적 약속이 있다. 메시아는 '여자의 씨'로 오신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이미 약속된 최초의 복음이다 (창 3:15).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또한 이어서 아브라함의 씨로, 야곱의 씨로, 유다의 씨로, 이새의 아들로 오신다. 이것은 한 줄기로 흘러내려 가는 혈통의 약속이다. 그 정점에 다윗 왕가가 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왕의 후손으로 오신다.

  다음으로 둘째로, 처녀가 잉태하여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이것은 이사야 7장 14절에 정밀하게 약속되어 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리고 셋째로, 메시아의 출생지가 정해져 있다. 미가 5장 2절은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메시아의 출생지로 못 박는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신분적 약속이 정밀하기 때문에, 한국 땅에 태어난 사람이 "내가 메시아다"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거짓이다. 이만희도 메시아가 될 수 없고, 문선명도 메시아가 될 수 없으며, 안상홍도 메시아가 될 수 없다. 베들레헴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녀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넷째로, 메시아가 오실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하나님은 선구자를 보낼 것이라고 미리 예언해 두셨다. 이사야 40장과 말라기 3장, 4장에 그 선구자에 대한 예언이 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그래서 세례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먼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것이다. 높은 산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높아져서 평탄한 길을 만들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한 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

  이런 정밀한 신분적 약속과 선구자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는 함부로 자칭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확히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기에 그분을 믿는 것이다. 막연한 종교적 감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예언의 성취 위에 서서 믿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견고함이다.

 

3. 왜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는다는 주장은 거짓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다시 육체로 오신다는 주장을 펴는 이단들이 있다. 문선명, 안상홍, 이만희 같은 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 이루지 못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대신 와서 마저 이루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헛소리이고 거짓이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육체를 두 번 입으신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셨던 분이시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셔야 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가 죄를 속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또 레위기 17장 11절은 피가 곧 생명임을 말한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래서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속죄양이 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어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끝내주셨다. 그런데 다시 어떤 제사를 또 드리신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히브리서 9장 28절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고,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도록 나타나신다고 하셨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육체를 입고 오신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단들은 성경 몇 군데를 짜깁기해서 자기 주장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결코 진리가 아니다.

  이단들의 또 다른 술수는 성경 번역의 미숙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24절을 보면 우리말 번역에는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은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곧 "I AM, 나는 나다"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의 "스스로 있는 자"와 똑같은 표현이다.

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번역자들의 헬라어 실력이 미치지 못해 그 본래의 뜻이 우리말로 정확히 옮겨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단들은 그 번역의 빈틈을 파고들어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몰아간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은 분명하게 말한다.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이러한 본문들은 예수님 자신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고 오신다는 주장은, 한 분 하나님의 정체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이다. 한 분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단번에 우리의 죄 문제를 끝내신 것이지, 무슨 일이 남아서 다시 누가 와서 마저 이루는 일이 있을 수 없다.

 

4. 구약의 씨앗은 왜 신약의 열매로 확인해야 하는가?

  성경 해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다. 구약은 '씨앗'이고 신약은 '열매'라는 것이다. 씨앗만 보고서는 그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과 씨앗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것이 사과를 맺을지 배를 맺을지 모른다. 심어 봐야 안다. 열매가 나야 "아, 이 씨앗이 사과 씨앗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예언과 모형은 반드시 신약에서 그 성취된 열매를 확인한 다음에야 그 씨앗의 정체를 거꾸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신약을 통해 이미 그 열매를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열매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신약 성경,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장 깊이 있게 다룬 복음서이며, 요한계시록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룬다. 이 두 권에 예수님의 완전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사복음서 전체를 통해 공생애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고, 요한계시록을 통해 영광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이 둘을 합쳐야 예수님이 누구신지 비로소 알게 된다.

  이렇게 신약을 통해 열매를 확인하고 나면,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로 통합되는 것을 보게 된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씨도, 이사야 7장 14절의 처녀의 아들도, 미가 5장 2절의 베들레헴에서 나올 자도, 그리고 시편 22편의 버림 당하는 자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로 모아진다.

  이것은 예수께서 한 포의 알약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본문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 말한 것이 다 모여서, 한 알약으로 압축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 박혀 버리는 것이다. 그 알약을 입에 넣고 삼키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온다. 그분이 바로 그 알약이시고, 그분이 곧 그 씨앗이셨다.

  만약 구약만 가지고 메시아를 찾으려 하면 길을 잃기 쉽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신약의 열매를 거부하고 구약의 씨앗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만 보고는 그 정체를 결코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께서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신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헬라어는 당시 세계 공용어였고, 표현이 매우 논리적이고 정밀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메시아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셨기에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목사된 자들은 헬라어를 공부해야 한다.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헬라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말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할 책임이 목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단과 교리가 두루뭉술한 가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의 잘못된 세뇌가 사람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놓았다. 그것을 정확히 잡아 주어야 한다. 신약을 정확히 보고, 그 열매로 구약의 씨앗을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거꾸로 가는 길이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두신 정확한 순서다.

 

5.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육체를 입고 오셨는가?

  우리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이런 식이다. 하나님이 힘드시니까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내려가서 인류를 위해 죽어라"라고 명하셨고, 아들은 "아버지여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찌 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일은 얼마든지 잘할 수 있사오니 다른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라고 거절한 것이 아니라, "예, 분부대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내려왔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본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시다. 전능자이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지, 아들이라는 다른 인격이 보냄을 받아 내려온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인격으로 오심으로 두 분의 인격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표현하는가. 그 표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대로 오셨다고만 표현하면, 하늘의 보좌가 공석이 되어 버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리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서, 또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 성경은 "아들을 보내셨다"는 표현을 쓰신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일서 4장 9-10절이 그런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런 표현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무엇인가? 실제를 살펴보아야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깊이 알게 된다. 대리자를 보내어 속죄케 하시는 것과, 본인이 친히 오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왕이 친히 와서 백성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과, 사람을 시켜 형식적 사과를 보내는 것은 같지 않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친히 행차하면 백성이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나이까?" 하고 놀랐던 것이 그 이유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하여 육체를 입고 오셨다. 이것이 정확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이 그것을 분명히 증언한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마지막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피를 흘려 교회를 사셨다고 말한다. 하나님 자체는 피를 가지신 분이 아니지만, 사람의 몸을 입으셔서 친히 피를 흘리셨기에 그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아들의 피"라고 해야 하지만, 그 본질적 의미를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흘리신 피"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한 분 하나님의 비밀은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최초로 계시되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이 그것이다(출 3:14).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는 자기 계시가 주어졌다. 시기적으로 보면 약 주전 740년경, 이사야 시대였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 모든 자기 계시가 모여서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통합된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친히 선포하신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복음의 핵심이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받은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6. 구약은 메시아를 어떤 두 가지 방식으로 예언했는가?

  구약 성경이 메시아를 예언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모형론적 예표이고, 다른 하나는 말로 된 예언이다.

  먼저 모형론적 예표가 있다. 이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 인물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를 그림자로 보여 주는 방식이다. 모세 오경에 이런 모형론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민수기 21장의 놋뱀 사건이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 갈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달았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았다.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이 사건을 직접 자신의 십자가에 대한 예표로 인용하셨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외에도 출애굽기에 나오는 어린 양, 성막의 제사 제도, 대제사장의 의복과 직무, 광야의 만나, 반석에서 나온 생수 같은 것들이 모두 메시아를 가리키는 모형론적 예표인 것이다. 우리는 모세 오경에서 여호수아서까지 이런 예표론을 차례로 살펴본 바 있다.

  두 번째는 말로 된 예언이다. 이것은 모형이 아니라 예언자가 입을 열어 "장차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선포하는 방식이다. 다윗의 시편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예언자들의 책에 풍부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말로 된 예언은 단순한 추측이나 인간의 예감이 아니다.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인간이 미리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시간 안에 있는 예언자에게 들려 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미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시편 22편은 모형론적 예표가 아니라 말로 된 예언에 속한다. 다윗은 자기가 겪은 처절한 고통의 경험을 시로 풀어내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말로 예언한 것이다.

  다윗의 시편은 그가 살아낸 인생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메시아를 향한 예언서이다. 그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형들에게 무시당할 때, 부모에게서 버림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그 경험이 그저 한 개인의 한풀이로 끝나지 않고 메시아의 고난을 미리 그려 보이는 그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 오경의 예표론에서 다윗의 시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형이 아니라 말로 직접 예언된 메시아의 모습을, 그중에서도 그분이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께 버림 당하실 것인지의 모습을 시편 22편이 가장 분명히 보여 준다.

  이렇게 구약은 모형과 말이라는 두 방식으로 메시아를 예언해 두셨다. 우리는 그 두 방식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정확히 성취된 것을 신약을 통해 확인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결코 자칭 메시아가 아니다. 구약 전체가 가리키던 그 한 분이시다.

 

7. 다윗은 왜 시편 22편 같은 비탄시와 저주시를 쓰게 되었는가?

  시편 22편은 흔히들 비탄시로 분류하고 있다. 비탄시는 고통과 슬픔,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는 시다. 그런데 시편 22편을 비롯해 시편 27편이나 35편, 시편 69편, 시편 109편 같은 본문들은 비탄을 넘어 저주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식들은 유리 걸식하게 하소서" 같은 격한 저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시 109:8-10).

  그렇다면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은 이러한 저주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다윗은 늘 그렇게 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윗에게도 피치못할 영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다윗 안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거절감의 영, 버림 받는 영,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그가 받은 상처의 결과이기도 하다(시 27:10).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 이어 새 왕에게 기름을 부으러 이새의 집에 왔을 때, 이새는 일곱 아들을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세웠다. 엘리압부터 시작해서 일곱 형들을 모두 거쳤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기름을 부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이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묻자, 그제서야 이새는 "막내가 남았는데 양을 치고 있다"고 답한다.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없는 아들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삼상 16: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뿐 아니다. 다윗이 형들이 있는 전쟁터에 음식을 가져갔을 때, 큰형 엘리압은 그를 향해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내가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라고 비난했다. 양 떼는 어떻게 하고 왔느냐며 그를 몹시 못된 놈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형들로부터 무시당했고, 아버지로부터는 천대받았으며, 결국 사울 왕에게 쫓기기 시작하면서 스물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시편 69편 8절은 다윗의 그 외로움을 정확히 증언한다.

시 69: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자기 형제들에게도 객이 되고, 자기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도 낯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의 자녀들이라 함은 누이 스루야와 그 아들들 곧 요압 장군 같은 자들을 포함한다. 그런 가족조차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시편 27편 10절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다윗은 그의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표현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상처와 거절감이 다윗 안에 영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거절감의 영, 버림 받는 영이 그 안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향해 "그의 자손은 끊어지게 하시고 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게 하시며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시고 그의 자식들은 유리 걸식하게 하소서" 같은 격한 기도가 터져 나온 것이다. 시편 109편이 그 대표적인 본문이다.

시 109:8-10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이런 격한 저주의 기도는 그가 잘했다고 평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분명히 죄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설교에서는 이것을 "여러분도 속에 있는 한을 그대로 토해 내야 상처가 풀린다"고 가르치며, 욕을 직접 하라고 시키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부모를 때리는 시늉을 하게 하고, 어떤 곳은 거친 욕설을 토해 내라고 한다. 그것은 상처를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상처를 만들고, 더 많은 악한 영을 불러들이는 행위다.

  또 다른 잘못된 해석은 이렇게 풀이한다. "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는다면 그것은 죄가 되겠지만, 하나님께 저주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본질을 놓친 해석이다. 다윗의 저주시가 칭찬받을 만한 본보기여서 성경에 남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런 저주의 시를 허락하셨는가? 바로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가장 정확하게 예언하기 위해서다. 다윗이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고, 형제들에게 외면당하고, 부모에게서 천대받는 그 처절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 당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의 위대성은 그가 죄성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격한 기도를 입으로 토해 내면서도, 결코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는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다윗은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손으로 치겠느냐" 하며 끝까지 참았다. 아비새가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가자고 했을 때도, 다윗은 사울의 잠자리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떠났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는 고소해 하지 않고 활의 노래를 지어 비통하게 울었다.

삼하 1: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다윗은 환경 속에서 하나씩 배워 갔다. 처음부터 다 잘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그는 평생에 걸쳐 배웠다. 그 배움의 과정이 시편으로 남았고, 그 시편이 후대에 공연되며 다윗 자신의 한풀이를 넘어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본문이 되었다.

 

8. 시편 22편의 대적 비유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시편 22편은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가장 생생하게 예언한 본문 중 하나다. 1절의 첫 마디부터 그렇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직접 인용하신 그 말씀이다. 마태복음 27장 46절, 마가복음 15장 34절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마 27:46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다윗이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천 년 전에 시편에 적어 놓은 그 말씀을, 메시아께서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부르짖으신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윗이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아의 십자가 부르짖음을 미리 받아 적어 둔 것이다.

  메시아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값이 치러질 수 없다. 하나님의 버림 다음에 오는 것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 당하시고, 죽으셔서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 요나의 표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흘을 음부에서 지내시고 부활하셨다. 그 처절한 버림 당함을 가장 잘 표현할 자가 누구였겠는가. 그것이 다윗이었다. 다윗이 평생 짊어진 거절감의 상처가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예언하는 그릇이 된 것이다.

  고로, 시편 22편이 그리는 대적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메시아를 둘러싼 영적 세력의 정체가 드러난다. 본문은 네 가지 짐승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먼저, 12절에' 황소'와' 바산의 힘센 소들'이 등장한다.

시 22: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바산은 요단 동편의 비옥한 지역으로, 그곳의 소들은 크고 힘이 셌다. 황소와 바산의 힘센 소는 메시아를 에워싼 거대한 권력자들, 곧 그 시대의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을 가리킨다. 예수님 당시에는 산헤드린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로마의 관원들이 메시아를 사면에서 압박해 들어왔다.

  다음으로 13절과 21절에 '사자'가 등장한다.

시 22: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시 22: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사자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사단을 가리키는 짐승으로 명시된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므로 메시아를 향해 부르짖으며 찢으려 한 사자는 사단 자신과 그의 졸개 영들을 가리킨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향해 영적 세계에서 사단의 세력이 총공격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이 비유에 담겨 있다.

  세 번째로 16절에 '야생의 개 떼'가 등장한다.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성경에서 개는 부정한 짐승의 대표이며, 이방인이나 부도덕한 자를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다. 들개처럼 떼를 지어 달려드는 무리는 메시아를 조롱하고 핍박한 군중들, 곧 진리에 무지하면서도 폭력적으로 휩쓸리는 무리를 가리킨다.

  특히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는 표현은 십자가형의 직접적인 예언이다. 다윗 시대에는 십자가형이라는 처형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윗은 천 년 전에 손과 발을 찌르는 형벌을 미리 적어놓았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지막으로 넷째로, 21절에 '들소'가 등장한다. 들소의 뿔은 짓밟고 들이받는 폭력적 파괴력의 상징이다. 메시아를 향해 무자비한 폭력이 몰려들었음을 보여 준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에 찔리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신 그 모든 폭력이 들소의 뿔로 표현된 것이다.

  이 네 가지 짐승의 비유는 메시아의 십자가가 단순한 인간의 처형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것은 권력자들의 음모이자(황소), 사단의 총공격이자(사자), 군중의 폭력이자(개), 무자비한 살육이었다(들소). 그 모든 것이 메시아에게 동시에 쏟아졌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대적의 한가운데서, 결국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구원하셨음을 노래한다. 21절 후반부에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메시아의 고난은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다윗은 천 년 전에 이미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22편의 대적 비유는 단순한 다윗의 한풀이가 아니라, 메시아의 십자가에 임할 영적 전쟁의 청사진이다. 그 청사진이 천 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한 점 빗나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었다.

 

9. 나오며

  지금까지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정밀한 예언과 다윗의 비탄시·저주시가 어떻게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메시아의 신분적 약속이 매우 정밀해서 자칭 가짜 메시아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살펴보았고,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으신다는 이단들의 주장이 왜 거짓인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구약의 씨앗은 신약의 열매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를 살펴보았고, 한 분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비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구약이 모형론적 예표와 말로 된 예언이라는 두 방식으로 메시아를 예언했음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와 도망자 생활을 통해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가장 생생하게 예언한 자가 되었으며, 시편 22편의 황소, 사자, 개, 들소가 메시아의 십자가에 임할 영적 전쟁의 청사진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모르면 모를수록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이 떨어진다. 그래서 교회를 십 년 다니고도 어느새 점집을 찾아가고 무당을 찾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고, 신뢰가 떨어진 이유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다고 로마서 10장 17절은 말한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말씀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두리뭉실한 가짜 교리에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 신약을 정확히 읽고, 그 열매로 구약의 씨앗을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분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다윗의 시편 22편이 보여 주는 메시아의 처절한 고난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메시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그 버림을 받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버림 당하는 영, 거절감의 영,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런 영들이 우리 안에 자리 잡아 인생을 망치고 신앙을 무너뜨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 회개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에 가까워진다.

  다윗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는 격한 저주의 기도를 입으로 토하면서도, 결코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았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도 그는 비통하게 울었다. 이 자세를 우리 또한 배워야 한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회개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우리는 말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우리만 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개하고 주께 나오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 어떤 신학교를 나왔는지, 목사의 가정인지, 몇 년을 믿었는지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회개의 마음 하나 보고 함께 가야 한다.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쓰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날다마늘 우리에게는 시편 116편 12절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원래 우리는 버려진 사람들이었고, 영원히 지옥에 갈 자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건지셔서 하늘나라를 가장 잘 준비할 수 있는 시대로 부르셨다. 회개의 길을 주시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길을 주셨다. 그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서 들어가는 자가 되게 하셨다. 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부지런히 회개하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알고, 그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 안의 거절감과 버림 받는 영을 부지런한 회개로 끊어 내고, 다른 사람의 회개를 돕는 자로 살아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01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다윗을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로 조명하며, 시편 22편에 기록된 그의 고난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완벽하게 예표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예언이 혈통과 지리적 요건 등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참된 메시아를 분별하게 함으로써 이단들의 거짓 주장을 반박하고 신앙의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이 겪었던 가족과 공동체로부터의 철저한 소외와 거절감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을 넘어, 하나님께 버림받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적 장치로 해석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성경적 근거를 통해 주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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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기독론(92)] 사람들이 세운 왕과 하나님이 세운 왕의 차이는?(삼상9:1~17)_2026-05-1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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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6.05.15 By갈렙 Views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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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기독론(9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는?(삼상8:1~22)_2026-05-14(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는?(삼상8:1~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wGzbUx6KzA 1. 들어가며 많은 성도들은 천국에 가는 것만으로 신앙의 모든 목표가 이루어진...
    Date2026.05.14 By갈렙 Views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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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기독론(90)] 성경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가?(민6:1~12)_2026-05-13(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0)] 성경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가?(민6: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Ft1wA-q5AE 1. 들어가며 나실인 제도는 흔히 제사장 가문이 아닌 자가 제사장이 되기 위한 통로처럼 이해되어 ...
    Date2026.05.13 By갈렙 Views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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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독론(89)] 오늘날에는 누가 다시 오실 왕을 준비할 자로 쓰임 받을까?(민6:1~12)_2026-05-12(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89)] 오늘날에는 누가 다시 오실 왕을 준비할 자로 쓰임 받을까?(민6: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TvBqdV892s 1. 들어가며 인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속에서 쉼 없이 흘러간다. 이스라엘 ...
    Date2026.05.12 By갈렙 Views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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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독론(88)]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는 누구인가?(삼상1:1~18)_2026-05-11(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88)]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는 누구인가?(삼상1:1~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xhnKIwdZVg 1. 들어가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의 350년은 처절한 실패와 타락의 연속이었다. 백...
    Date2026.05.11 By갈렙 Views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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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독론(86)] 나도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장 그룹에 속한 자가 되려면(02)(계14:1~5)_2026-05-08(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86)] 나도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장 그룹에 속한 자가 되려면(02)(계14: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6jgqBrWM38 1. 들어가며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죽어서 지옥 불을 ...
    Date2026.05.08 By갈렙 Views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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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독론(85)] 나도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장 그룹에 속한 자가 되려면?(계14:1~5)_2026-05-07(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85)] 나도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장 그룹에 속한 자가 되려면?(계14: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fiN9t59nYaQ 1. 들어가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국의 참된 실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생길...
    Date2026.05.07 By갈렙 Views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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