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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4kIdZFz_VcI
날짜 2026-05-10
본문말씀 사사기 21:25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5-10(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21: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kIdZFz_VcI

 

1. 들어가며

  여호수아가 110세의 나이로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의 한 자락에 묻히던 그날, 한 시대는 영원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새로 열린 다음 시대는 영광이 아니라 혼돈과 타락으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권위를 이어받을 명확한 후계자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 12지파를 한 몸처럼 이끌어 가던 통일된 영적 지도력이 그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마치 중심을 잃은 진영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각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들고 흩어졌고, 그 흩어짐의 끝자락에는 가나안의 음란 문화가, 주변 이방 민족의 칼날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350년의 긴 시간을 성경은 사사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두었다.

  사사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사사기 전체를 관통하며 네 번이나 반복된다. 왕이 없었기에 우상이 횡행했고, 악행이 처벌되지 못했으며, 한 지파가 멸문 직전까지 내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길고 어두운 350년을 단순한 흑역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사사기는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백성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진정한 왕을 향한 절박한 '갈망'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 다윗 왕이 서 있고, 다윗 왕의 등 뒤에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 현재 사탄 마귀의 우두머리는 무저갱에 철저히 결박되어 있고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진행 중이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과 무당 귀신들이 우리 육체 속에 파고들어 왕 노릇을 하려 든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국의 4대 계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참다운 영적 지도자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 사후의 350년이 왜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미가의 산당과 첩 사건이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 무엇이며,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차이를 통해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 필요한 참다운 왕적 지도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사 시대 350년의 반복된 타락과 징계의 굴레를 낳은 근본적인 영적 원인은 무엇인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의 주요 거점을 장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에서 잔존하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기를 포기했다. 골짜기 주민들이 철 병거를 가졌다는 핑계로 두려워했고, 편안함을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으며, 결국 그들의 음란한 우상 문화(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깊게 물들어 버렸다.

  우상을 숭배하는 순간, 하나님의 보호막은 걷히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곡식과 재산을 약탈하며 자녀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옷니엘, 기드온, 삼손 등 12명의 사사(재판관)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그들은 어김없이 다시 우상을 숭배했다.

  이 징그럽고 고통스러운 타락과 징계의 굴레가 350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하다. 죄를 단호하게 징벌하고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도록 강력하게 이끌어 줄 '참된 영적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부재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란 속에서 각자 살길을 도모하다 보니(각자도생), 결국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마귀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것이다(삿 2:10).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3. 사사 시대의 '왕'은 인도자(영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왕과 인도자는 종종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는 듯 보이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들려준 한 단락에서 이전에 살았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인도자와 앞으로 세워질 왕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삼상 8:11~17).

삼상 8: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왕'이라는 자리는 곧 하나의 거대한 행정 체계의 정점을 의미한다. 왕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를 보위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그의 식탁을 차리는 '궁중 상궁'이 있어야 하며, 그를 호위할 '군사'와 그의 병거를 끌 말과 그 말을 먹일 여물을 운반할 '종'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왕에게 바쳐지는 공물과 십일조와 가장 좋은 곡식과 포도원의 첫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곧 한 나라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그 한 사람의 사명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결코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자기 시중을 들 종이 없었고, 자기 병거를 위해 백성의 자식을 끌어다 군역을 시키는 일도 없었으며, 백성의 밭에서 제일 좋은 곡식을 거두는 제도도 없었다. 이는 여호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인도자였고 영도자였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영적 사명자였지만, 행정과 군제와 재정을 통째로 자기 사명에 묶어 두는 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사들은 어떠하였는가? 사사라는 말의 원어적 무게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히브리어 "샤파트(שָׁפַט)"에서 파생된 그 호칭은 단순히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재판관'을 가리킨다. 곧 정의를 분별하고 죄를 가려내는 자, 그러면서 동시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자가 사사이다. 사사기 1장부터 21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사는 옷니엘과 기드온과 삼손을 중심으로 모두 열두 명에 이르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포함한다면 열셋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사는 어디까지나 한 지역, 한 시기에 국한된 임시적 구원자였을 뿐, 12지파 전체를 한 호흡으로 통치하는 왕적 사명자는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직무를 감당한 인물이 사실은 엘리 제사장이라는 점이다. 본문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삼상 4:18).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엘리 제사장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하였다. 그가 50세에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대제사장직을 위임한 뒤, 58세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아 98세에 그 목숨이 다하기까지 사사로서 40년간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사사기 본문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사사에 엘리를 더하면 사실상 열세 명이 된다. 더 나아가 엘리의 뒤를 이은 사무엘 또한 사사 직무를 감당하였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사무엘을 사사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사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났다 한들,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사사들은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처단할 권위가 없었고, 우상이 횡행하여도 그것을 부수어 버릴 명령이 없었으며, 외적이 침입하여도 12지파를 한 호흡으로 묶어 낼 통일된 군세가 없었다. 사사 시대 350년의 비극은 사실상 이 한 가지 결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왕이 없었다는 결핍 — 그것은 단지 정치의 결핍이 아니라 영적 통치의 결핍이었다.

 

4. 여섯 번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은 무엇을 폭로하는가?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이르는 본문을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렇다. "백성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붙이신다.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백성을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거대한 영적 순환이 여섯 차례에 걸쳐 정확히 반복된 것이 사사기 시대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반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단서가 사사기 2장에 분명히 나와 있다(삿 2:10).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와 동시대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 세대가 다 흙으로 돌아가고 그 뒤를 잇는 새 세대가 일어났을 때,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전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홍해의 갈라짐을 본 적이 없고,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다. 영적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갈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희미해져 갔고, 그 빈 자리를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가 빠르게 채워 들어갔다.

  여기서 가나안 정복의 세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단계는 여호수아 1장부터 12장에 이르는 시기로, 12지파의 약 이십만 연합군이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려 31명의 왕을 처단하던 시기이다. 둘째 단계는 여호수아 13장부터 24장에 이르는 시기로, 각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된 뒤 각자 자기 영토 안의 잔존 세력을 처리하는 개별 전투의 시기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여호수아 사후, 곧 사사기 1장에 등장하는 시기로, 각 지파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원주민과 동거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문제는 바로 이 셋째 단계에서 발생하였다. 사사기 1장은 각 지파별로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구절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는 산지의 주민은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은 그들의 철 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삿 1:19, 21)고 증언한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그럼,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그들과 화친하는 것이었다. 평화롭게 동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동거의 끝에는 동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는 단순한 신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농경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음란의 영적 체계였다. 농사의 신인 바알과 그의 짝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해야 비가 내린다는 그 끔찍한 신학은, 인간의 육체적 정욕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가장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였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정욕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 세대가 지날수록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 갔고, 두 세대가 지날수록 바알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으며, 세 세대가 지날수록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여호와다"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죄가 깊어지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붙이셔서 그 진영을 흔드신다. 흔들린 백성은 부르짖는다.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한 시대를 잠시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이 거대한 순환이 여섯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적 부패가 결코 일시적 처방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그대로 폭로한다.

  여기서 한 가지 명료한 영적 원리가 떠오른다. 나라의 멸망은 영적 지도자의 타락에서 시작된다는 원리이다. 영적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무너진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큰 교회들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한 나라의 영적 흔들림으로 번진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정치 지도자보다 먼저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그 회복의 무게로 나라의 지도자를 친히 바꾸어 주신다. 이것이 사사기 350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묵직한 영적 진실이다.

 

5. 미가의 신당과 단 지파가 보여준 종교 지도자의 타락과 우상숭배의 영적 실체는 무엇인가?

  사사기의 후반부(삿17~21장)에는 2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먼저 첫번째의 에피소드로서 미가라는 사람의 신당 사건이 등장한다(삿 17-18장).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가 은을 훔쳤다가 자기 어머니에게 돌려주지, 그의 어머니는 은으로 신상을 새기고 자기 집에 개인 신당을 차린다. 그리고 떠돌아다니던 한 레위인 청년을 붙잡아 그에게 돈과 옷,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직무를 감당해야 할 레위인이 먹고살기 위해 한 개인의 세습 무당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땅을 찾아 헤매던 단 지파가 이 미가의 신당을 지나가다가, 그 레위인 제사장에게 "한 사람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그를 회유하여 신상과 함께 데려가 버린 사건이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와 돈을 따라 움직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 그리고 여호와가 아닌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어 섬기며 복을 구하는 백성들의 기복 신앙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끔찍한 우상숭배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영적 지도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과 권력에 타협할 때 공동체 전체가 마귀의 밥이 됨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할 제사장이 스스로 우상을 지키는 자로 타락했으니, 단 지파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영적 지도자의 타락은 곧 영혼들의 영원한 지옥행을 의미하는 무서운 영적 재앙이다.

 

6.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통해 드러난 참된 왕이 없는 시대의 비극은?

  이제는 사사기 19장에서 21장에 이르는 두번째  에피소드로서 인간의 죄악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극이다. 이 야기도 역시 어떤 레위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가 그녀를 찾으러 가는 길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읍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레위인과 동성애를 하겠다며 문을 두드렸고, 결국 레위인은 살기 위해 자기 첩을 내어준다. 밤새도록 무참히 윤간당한 첩이 죽자, 레위인은 시신을 12토막으로 잘라 이스라엘 전역에 보낸다.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 11지파의 40만 대군이 모여 베냐민 지파에게 범죄자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악을 징벌하기는커녕 자기 지파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며 오히려 전쟁을 선포했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 끝에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만 남고 씨가 마를 뻔한 참사를 겪는다.

  이 소름 끼치는 살육전의 근본 원인 역시 단 하나, 악행을 단호하게 징벌할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된 왕적 권위가 사라지자 동성애와 살인, 강간과 같은 마귀적 범죄가 일상화되었고, 죄인을 처벌하는 공의로운 심판 기능마저 완전히 마비되었다. 영적 질서가 무너진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공산주의의 방종은, 이처럼 서로를 물고 뜯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탄의 가장 교묘한 지배 방식이다(삿 21:25).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 백성들이 구했던 세상적인 왕과, 하나님이 진정으로 세우고자 하셨던 다윗 왕의 팩트 차이는?

  사사 시대의 비극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사무엘에게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왕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백성을 진리로 이끄는 영적 통치자가 아니었다. 단지 주변 강대국들처럼 전쟁에 앞장서서 자신들의 곡식을 뺏기지 않게 지켜주고, 육신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 줄 '정치적 군사 지도자'를 원했다. 그래서 세워진 왕이 사울이었고,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백성의 눈치만 바라보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만다.

  그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세우고자 했던 왕은 누구였는가? 그 모델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David)이었다. 다윗은 외부의 적(이방 민족)으로부터 나라를 완벽하게 지켜낸 위대한 전사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도록 영적으로 이끈 참된 목자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우상숭배를 철저히 척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모셔 오며 온 백성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진짜 왕의 모습이다. 다윗은 이 땅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고 마귀의 권세를 짓부수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완벽한 예표로 쓰임 받았다.

 

8. 성도들을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하고 천국 상속자로 세우는 참된 영적 지도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참된 왕, 즉 참된 영적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영적 세계의 타임라인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 이후, 사탄 마귀의 우두머리는 무저갱에 완전하게 결박되어 있고, 현재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수천 년간의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과 수많은 무당 귀신들이 우리 육체 속에 파고들어와 살고 있다. 이 악한 영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에 가난을 주고 조현병과 우울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며 가정을 파탄 내는 실제적인 원흉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참된 영적 지도자(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달콤한 위로의 말만 전하는 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적 지도자는 성도들의 육체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의 실체를 정확히 폭로하고, 철저한 회개와 영적 전쟁으로 그들을 쫓아줄 수 있는 권세 있는 자여야 한다. 죄를 책망하고 귀신이 들어오는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여, 성도들이 지옥이나 성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국의 찬란한 상속자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 이것이 목숨을 걸고 감당해야 할 참된 주의 종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지금까지 사사 시대의 혼란과 타락의 굴레, 종교 지도자의 부패와 악행이 낳은 참혹한 비극, 참된 영적 지도자의 사명과 귀신을 몰아내는 정확한 축사의 메커니즘, 그리고 천국의 4대 계급과 성 밖의 비참한 팩트를 낱낱이 살펴보았다.

  천국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평등한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다. 이 땅에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더러운 영들과 피 터지게 싸우며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 분량만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량만큼 영원한 집의 층수와 땅의 평수, 그리고 보좌의 영광이 완벽하게 1:1로 결정되는 철저한 공의의 세계다.

  그러므로 더 이상 썩어질 육신의 편안함과 세상의 보호막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오늘 당장 눈물로 무릎을 꿇고 뼈를 깎는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낼 때까지, 그리고 성령 사역자들을 통해 성령의 불과 칼이 작동되어 그 잔재와 영적 쓰레기를 태우고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낼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과 상처가 가득한 성 밖으로 쫓겨나 통곡하는 비참한 자가 아니라, 천국의 4대 계급 속에서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히 다스리는 영광스럽고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11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스라엘의 사사기 350년 역사가 결국 무엇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며, 그 핵심 결론으로 참된 왕의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여호수아 사후 이스라엘이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면서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이라는 반복적인 악순환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이를 다스릴 왕이 부재했기에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미가의 신상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통해 종교적 부패와 사회적 무질서를 고발하며, 단순히 외적 침입을 막는 군주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징벌하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사기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과 더불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만드는 구속사적 준비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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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좀 더 긴 글입니다. 

 

2026-05-10(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21: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kIdZFz_VcI

  

1. 들어가며

  여호수아가 110세의 나이로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의 한 자락에 묻히던 그 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새로 열린 다음 시대는 영광이 아니라 혼돈으로 시작되었다. 후계자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 12지파를 한 몸처럼 이끌어 가던 통일된 영적 지도력이 그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마치 중심을 잃은 진영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각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들고 흩어졌고, 그 흩어짐의 끝자락에는 가나안의 음란 문화가, 주변 이방 민족의 칼날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350년의 긴 시간을 성경은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두었다. 그것이 사사기이다. 사사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사사시대였던 것이라(삿 21:25).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문장은 사사기 17장 6절을 포함하여 도합 네 번 반복된다(삿 17:6, 18:1, 19:1, 21:25). 한 번이 아니라 네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사사기 저자가 이 시대의 모든 비극이 결국 한 가지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끈질기게 증언하려 했다는 뜻이다. 왕이 없었다. 그래서 우상이 횡행하였고, 악행이 처벌되지 못하였으며, 한 지파가 멸문 직전까지 내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 길고 어두운 350년을 단순한 흑역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 시대 전체가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영적 부르짖음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사기는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갈망의 기록이다. 그것도 보통의 갈망이 아니라, 백성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진정한 왕을 향한 절박한 갈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 다윗 왕이 서 있고, 그 다윗 왕의 등 뒤에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 사후의 350년이 왜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본질적으로 구분되는지, 여섯 차례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이 무엇을 폭로하고 있는지,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 무엇이며,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 멸문 위기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떻게 갈라지며,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참다운 왕적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여호수아 사후 350년은 왜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되는가?

  여호수아의 생애는 두 단계의 정복 사역으로 압축된다. 그가 95세에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을 건넌 뒤 첫 7년은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리는 정복 전쟁의 시기였고, 이어진 8년은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15년의 사역을 마친 그가 110세에 흙으로 돌아갔을 때, 이스라엘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공백이 남았다. 후계자를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자신의 권위를 이어받을 한 사람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마치 중국 역사의 춘추전국시대처럼, 각 지파가 자기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12지파의 영역을 한 눈에 굽어보면 그 곤경이 단숨에 드러난다. 남쪽으로는 아말렉과 에돔이 호시탐탐 노렸고, 동쪽으로는 모압과 암몬, 그 위로는 아람 족속이 칼을 갈고 있었으며, 서편 해안에는 블레셋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위협을 가하였다. 변방의 지파일수록 풍성한 곡식과 과실이 곧 약탈의 표적이 되었고, 그 손실은 매 절기마다 백성의 살갗을 베어 내듯 깊어 갔다.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파는 이웃 지파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옛 농촌에서 모내기 철에 일손을 빌리던 품앗이의 모습처럼, 한 지파가 다른 지파를 청하여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나 이 협력의 끈은 결코 단단하지 않았다. 감정이 상하면 외면받기 일쑤였고, 위기는 그 자리에서 더 깊은 위기를 낳았다. 결국 백성의 입에서 한 가지 외침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이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 앞에 나가서 싸워 주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사사기 1장부터 16장까지의 표면적 줄거리이다.

  그리하여 이 350년은 결국 한 사람의 왕을 향해 흘러간다. 사사기의 모든 페이지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백성이 갈망한 왕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결코 같은 실체가 아니었다. 백성이 원한 왕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기 재산과 자식을 지켜 줄 군사적 보호자였다. 반면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은 백성을 우상의 그림자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여호와 앞으로 데려갈 영적 사명자였다. 이 두 갈망의 거리가 곧 사울과 다윗 사이의 거리이며, 사사 시대의 비극과 다윗 왕국의 영광 사이의 거리이다. 성경은 이 거리를 한 절로 압축하여 후세에 새겨 두었다(삿 17:6).

삿 17:6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는 시대는 단지 정치가 불안정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분별이 사라진 시대이며, 우상을 처단할 자가 없는 시대이고, 회개를 외칠 입이 막혀 버린 시대이다. 그래서 이 350년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단 한 곳뿐이었다. 백성을 회개시키며 우상을 무너뜨리고 악한 영을 그 진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진정한 왕,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의 출현 — 그곳을 향해 사사기 전체는 한 호흡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3. 사사 시대의 '왕'은 인도자(영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왕과 인도자는 종종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는 듯 보이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들려준 한 단락에서 이전에 살았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인도자와 앞으로 세워질 왕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삼상 8:11~17).

삼상 8: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왕'이라는 자리는 곧 하나의 거대한 행정 체계의 정점을 의미한다. 왕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를 보위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그의 식탁을 차리는 '궁중 상궁'이 있어야 하며, 그를 호위할 '군사'와 그의 병거를 끌 말과 그 말을 먹일 여물을 운반할 '종'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왕에게 바쳐지는 공물과 십일조와 가장 좋은 곡식과 포도원의 첫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곧 한 나라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그 한 사람의 사명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결코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자기 시중을 들 종이 없었고, 자기 병거를 위해 백성의 자식을 끌어다 군역을 시키는 일도 없었으며, 백성의 밭에서 제일 좋은 곡식을 거두는 제도도 없었다. 이는 여호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인도자였고 영도자였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영적 사명자였지만, 행정과 군제와 재정을 통째로 자기 사명에 묶어 두는 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사들은 어떠하였는가? 사사라는 말의 원어적 무게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히브리어 "샤파트(שָׁפַט)"에서 파생된 그 호칭은 단순히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재판관'을 가리킨다. 곧 정의를 분별하고 죄를 가려내는 자, 그러면서 동시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자가 사사이다. 사사기 1장부터 21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사는 옷니엘과 기드온과 삼손을 중심으로 모두 열두 명에 이르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포함한다면 열셋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사는 어디까지나 한 지역, 한 시기에 국한된 임시적 구원자였을 뿐, 12지파 전체를 한 호흡으로 통치하는 왕적 사명자는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직무를 감당한 인물이 사실은 엘리 제사장이라는 점이다. 본문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삼상 4:18).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엘리 제사장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하였다. 그가 50세에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대제사장직을 위임한 뒤, 58세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아 98세에 그 목숨이 다하기까지 사사로서 40년간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사사기 본문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사사에 엘리를 더하면 사실상 열세 명이 된다. 더 나아가 엘리의 뒤를 이은 사무엘 또한 사사 직무를 감당하였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사무엘을 사사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사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났다 한들,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사사들은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처단할 권위가 없었고, 우상이 횡행하여도 그것을 부수어 버릴 명령이 없었으며, 외적이 침입하여도 12지파를 한 호흡으로 묶어 낼 통일된 군세가 없었다. 사사 시대 350년의 비극은 사실상 이 한 가지 결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왕이 없었다는 결핍 — 그것은 단지 정치의 결핍이 아니라 영적 통치의 결핍이었다.

 

4. 여섯 번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은 무엇을 폭로하는가?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이르는 본문을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렇다. "백성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붙이신다.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백성을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거대한 영적 순환이 여섯 차례에 걸쳐 정확히 반복된 것이 사사기 시대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반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단서가 사사기 2장에 분명히 나와 있다(삿 2:10).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와 동시대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 세대가 다 흙으로 돌아가고 그 뒤를 잇는 새 세대가 일어났을 때,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전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홍해의 갈라짐을 본 적이 없고,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다. 영적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갈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희미해져 갔고, 그 빈 자리를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가 빠르게 채워 들어갔다.

  여기서 가나안 정복의 세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단계는 여호수아 1장부터 12장에 이르는 시기로, 12지파의 약 이십만 연합군이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려 31명의 왕을 처단하던 시기이다. 둘째 단계는 여호수아 13장부터 24장에 이르는 시기로, 각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된 뒤 각자 자기 영토 안의 잔존 세력을 처리하는 개별 전투의 시기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여호수아 사후, 곧 사사기 1장에 등장하는 시기로, 각 지파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원주민과 동거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문제는 바로 이 셋째 단계에서 발생하였다. 사사기 1장은 각 지파별로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구절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는 산지의 주민은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은 그들의 철 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삿 1:19, 21)고 증언한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그럼,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그들과 화친하는 것이었다. 평화롭게 동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동거의 끝에는 동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는 단순한 신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농경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음란의 영적 체계였다. 농사의 신인 바알과 그의 짝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해야 비가 내린다는 그 끔찍한 신학은, 인간의 육체적 정욕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가장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였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정욕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 세대가 지날수록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 갔고, 두 세대가 지날수록 바알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으며, 세 세대가 지날수록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여호와다"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죄가 깊어지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붙이셔서 그 진영을 흔드신다. 흔들린 백성은 부르짖는다.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한 시대를 잠시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이 거대한 순환이 여섯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적 부패가 결코 일시적 처방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그대로 폭로한다.

  여기서 한 가지 명료한 영적 원리가 떠오른다. 나라의 멸망은 영적 지도자의 타락에서 시작된다는 원리이다. 영적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무너진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큰 교회들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한 나라의 영적 흔들림으로 번진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정치 지도자보다 먼저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그 회복의 무게로 나라의 지도자를 친히 바꾸어 주신다. 이것이 사사기 350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묵직한 영적 진실이다.

 

5.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

  사사기 17장과 18장에 이르면, 사사기 전체의 무게중심이 바뀐다. 그 전까지가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백성의 부르짖음이었다면, 17장 이후는 백성 내부의 영적 부패가 어떻게 한 사람의 가정에서 한 지파의 우상숭배로 번져 가는지를 끔찍하리만치 정밀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의 첫머리에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신이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은 천백 개로 한 신상을 새기고 또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다(삿 17:3~4).

삿 17:3~4 그가 그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하여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하니라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그의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가 은 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가 만든 신상을 향해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고 선언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여호와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가장 교활한 우상숭배의 형태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 손으로는 신상을 부어 만들고, 그 신상에 여호와의 이름을 붙여 가정 안에 세워 두는 것이다. 라반의 집에 있던 가정 수호신 드라빔이 그러하였고, 그 드라빔을 훔쳐 자기 가문으로 들고 들어간 라헬이 그러하였다(창 31:19).

창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라헬은 그 드라빔을 가지고 야곱의 진영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그 길에서 죽었다. 가정 안에 우상을 숨기는 자는 결국 그 우상에게 자기 생명을 내어 주게 된다는 영적 사실이 거기에 박혀 있다. 우상은 한 가정 안으로 들어와 그 가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일단 들어와 집을 짓고 나면, 그 자손에까지 그 영의 영향이 흘러 내려간다. 이것이 우상의 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미가의 가정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미가는 자기 아들 가운데 하나를 세워 자기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자기 아들은 아론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산당을 짓고 신상을 세웠어도, 그 산당의 제사장 자격에는 여전히 결격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미가의 집을 찾아온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거할 곳을 찾아 떠도는 한 레위인이었다(삿 17:9~10).

삿 17:9~10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음식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이 거래에 담긴 영적 비극을 놓쳐서는 안 된다. 레위인은 본래 12지파에게 흩어진 48개 성읍에서 백성의 십일조와 첫 열매와 제물의 분깃을 받아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350년 동안 백성이 실로에 있는 중앙 성소에 올라가는 발걸음을 줄이고, 자기 지파의 땅 안에서 각자 신을 만들어 살기 시작하자, 레위인이 받을 식량 줄이 끊어지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진 레위인은 거할 곳을 찾아 떠돌게 되었고, 그 떠돎의 끝에서 미가의 산당에 안착하게 된 것이다. 한 해에 은 열, 의복 한 벌, 그리고 끼니. 그것이 그의 거래 조건이었다.

  영적 지도자가 자신의 사명을 돈을 따라 거래하기 시작할 때, 그 영적 지도자는 더 이상 영적 지도자가 아니다. 미가의 산당의 레위인 제사장, 그것은 한 시대의 영적 지도력이 어떻게 사유화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적나라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곧 한 지파의 운명으로 번져 간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기업의 땅을 찾아 헤매던 단지파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들렀다가 그 레위인 제사장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를 자기 지파로 데려가기로 결심하였다. 한 집의 제사장이 되겠는가,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그 레위인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미가의 신상까지 함께 들고 단지파의 지경으로 옮겨 갔다. 한 가정의 우상이 한 지파의 우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단지파의 우상숭배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는 그 영적 토양이 되었다(왕상 12:28~29).

왕상 12:28~29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더니

  한 사람의 가정에 들어온 영은 한 지파의 영토 안에 집을 짓고, 그 지파의 영토 안에 집을 지은 영은 한 나라의 우상 체계로 자라난다. 이것이 우상의 영의 확장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명료하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6.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멸문 위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사기 17장과 18장이 우상숭배의 확산을 보여 주는 첫 번째 에피소드라면, 19장에서 21장에 걸쳐 펼쳐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그것보다 한층 더 끔찍하다. 그것은 악행을 처단할 자가 없을 때 한 공동체가 어떻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내몰리는지를 보여 주는 살벌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시작점에도 한 사람의 레위인이 서 있다. 본래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결혼의 원형으로 세우셨다(창 2:24).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부는 둘이지 결코 셋이 될 수 없다. 한 남자에 한 여자이지, 한 남자에 한 아내와 더불이 한 첩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조차 이 원형에서 자주 벗어났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가 이스마엘이 태어나면서 13년의 그늘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윗은 여러 아내를 두었다가 자식들 사이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의 자식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는 그 끔찍한 장면이 그 결과다. 솔로몬은 천 명의 아내와 첩을 두었다가 결국 그 아내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에 무릎을 꿇는 노년을 맞이하였다. 첩을 두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명령하신 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정욕을 따라 만든 길이고, 그 길의 끝은 언제나 무너짐이 있다.

  그런데 사사기 19장의 한 레위인이 바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다(삿 19:1~2).

삿 19:1~2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첩이 행음하고 친정으로 돌아가자, 레위인은 그 첩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길을 나섰고,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라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성읍에 머문 그 밤에 한 가지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성읍의 사람들이 동성애의 영에 사로잡혀 그 집을 둘러싸고 그 레위인을 자기들에게 내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삿 19:22).

삿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이 구절의 무게를 가볍게 읽어서는 안 된다.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 전체가 이미 동성애의 영에 빠져 있었다는 영적 사실을 본문은 가감 없이 증언하고 있다. 한 지파의 한 성읍이 그 지경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영이 이미 들어와서 그 성읍에 집을 짓고 자손에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뜻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레위인의 반응이었다. 그는 자기 첩을 그 불량배들에게 내어 주었다. 자기 책임 아래 있던 한 여인을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내던진 것이다. 영적 지도자라는 자가 그 정도 책임감조차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더 큰 비극이었다.

그 여인은 밤새 윤간을 당하고 새벽에 그 집의 문지방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레위인은 그 시체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 열두 토막으로 잘라 12지파에게 보냈다. 12지파의 사십만 명이 모여 그 베냐민 성읍의 죄를 묻기 위해 진영을 갖추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그 죄인들을 내어 주지 않았다. 같은 지파라는 이유로 죄인을 비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죄를 처단해야 할 자리에서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죄를 감싸 안는 그 행위, 그것이 바로 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깊은 영적 부패이다.

전쟁이 벌어졌고, 베냐민 지파의 육백 명의 왼손잡이 물맷군들이 그 사십만 대군을 두 차례나 격퇴하였다. 마치 훗날 몽골 제국의 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 뒤를 돌아 활을 쏘는 그 정밀한 살상의 기술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세 번째 전투에서 12지파는 마침내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기에 이르렀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다 죽였다. 한 지파가 그렇게 멸문의 직전에까지 내몰렸다. 살아남은 자는 오직 도망친 남자 육백 명뿐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12지파가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한 지파의 씨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성읍의 처녀 사백 명을 데려와 베냐민의 남은 자들에게 아내로 주었고, 부족한 이백 명은 실로의 절기에 춤추는 처녀들을 보쌈하여 채워 주었다. 한 지파가 멸절의 자리에서 가까스로 회복되었으나, 그 회복은 결코 영광스러운 회복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사기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 결론의 못을 박는다(삿 21:25).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왕이 없으면 죄를 처단할 수 없다. 왕이 없으면 같은 지파라는 이유로 죄인을 감싸 안는 일이 벌어진다. 왕이 없으면 한 여인이 윤간당해 죽어도 그 책임을 물을 자가 없다. 왕이 없으면 한 지파가 멸절의 자리에까지 내몰린다. 그러므로 사사기가 가리키는 '왕'은 단지 군사적 보호자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죄로 가려내고 의를 의로 세우며 한 공동체의 영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진정한 통치자,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다.

 

7.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떻게 갈라지는가?

  사사기 350년의 끝자락에서 백성의 입에서 마침내 한 가지 요구가 터져 나왔다. 우리에게 왕을 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 외침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영적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다(삼상 8:19~20).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위에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백성이 원한 왕은 두 가지를 해 줄 자였다. 다스려 줄 자와 싸워 줄 자였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어디에도 "우리를 회개시켜 줄 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디에도 "우리의 우상을 부수어 줄 자"는 들어 있지 않았다. 백성은 자기 재산을 지켜 줄 보호자를 원했지, 자기 영혼을 우상에서 끌어내 줄 영적 사명자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대의 사울 왕이 세워진 영적 토양이었다.

  사울은 결코 하나님이 예정에서 보내신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세워 주신 왕이었다. 백성의 요구가 너무 거셌기에, 하나님은 그 요구에 응답하시는 형식으로 사울을 세우셨다. 그래서 사울 왕의 통치 안에는 처음부터 한 가지 결정적 결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적 분별의 결핍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그 승리의 끝자락에서 늘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 앞에서 그는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겼고, 사무엘의 책망 앞에서도 자기 변명에만 매달렸다. 그의 마지막은 더욱 처참하였다.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 엔돌의 신당에 무릎을 꿇었다(삼상 28:7).

삼상 28: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에게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전쟁에서 백성을 지키겠다며 세워진 왕이, 결국 죽은 자의 영을 부르는 우상숭배의 자리에까지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었다. 백성이 구한 왕의 종착지가 바로 그 자리였다.

  이와 정확하게 대조되는 자리에 다윗이 서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로 친히 골라 세우신 왕이었다. 그가 베들레헴의 들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어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다윗은 분명히 죄를 지었다. 밧세바의 사건은 그의 일생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사울에게 없던 한 가지가 있었다. 회개였다. 그는 자기 죄를 자각하는 순간 즉시 회개의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결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부르셨다(행 13:22).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여기서 한 가지 영적 구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가 한 사람 안에 통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시대에 이르러 그 둘은 분리되었다. 정치 지도자는 사울이었고, 종교 지도자는 사무엘이었다. 두 사람의 권위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다윗 왕에 이르러 이 두 권위는 다시 한 사람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다윗은 정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영적 사명자였다. 그는 시편을 노래하는 자였고, 법궤를 친히 모셔 오는 자였으며, 자기 영혼의 죄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였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가 "왕의 제사장 체계"라고 불리는 이유이다(벧전 2:9).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왕의 제사장 체계)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어두운 데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국어 성경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옮긴 이 구절은, 원어로는 "왕의 제사장 체계"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체계 안에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남은 무리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 체계 안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는 다윗처럼 왕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윗이 받은 그 칭송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백성이 구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윗의 등 뒤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신다.

 

8.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참다운 왕적 지도자'는 누구인가?

  사사기 350년의 끝자락에서 백성이 갈망한 그 진정한 왕은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출현으로 한 차례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다윗 또한 그림자였다. 그가 가리키고 있던 그 본체이신 분이 따로 계셨으니, 곧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자신을 가리켜 거듭 "다윗의 자손"이라 불리신 그 사실은, 다윗이 그림자였고 예수님이 실체였음을 가장 명료하게 증언한다(마 1:1).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렇다면 다윗의 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도래한 신약의 시대에, 그리고 그 신약의 시대마저도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왕적 지도자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는 자인가. 그 답은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마 12:28).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영적 메커니즘이 거기에 박혀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한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있던 악한 영이 그 자리에서 떨려 나가고, 그 자리를 성령께서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한 왕적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자이다.

  첫째, 백성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있는 우상의 영을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짚어 내는 자이다. 어떤 가문에서 어떤 우상이 들어왔는지, 그 영이 자손에까지 어떻게 흘러 내려와 있는지를 영적 분별로 가려내는 자이다. 둘째, 그 백성을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는 자이다. 회개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떼어내어 이격시키고 녹여 버린다. 그리고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가 그 잔재를 태우고 자른다. 이 회개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가르치는 자가 곧 왕적 지도자이다. 셋째, 백성을 다시 우상으로 끌어가려는 외부의 영적 세력으로부터 그 진영을 지켜 내는 자이다. 무당과 점쟁이와 사주와 풍수와 신접한 자에게로 흘러가려는 백성의 발걸음을 정확히 막아 세우는 자이다. 넷째, 자범죄 19가지와 우상숭배의 죄 4가지를 끝까지 회개하도록 백성의 등을 떠밀어 주는 자이다. 그렇게 정결한 신부로 빚어 내는 자이다.

  이 일을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단지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사명자였다. 그러나 사사 시대의 사사들에게는 그 일을 할 권위가 없었다. 그래서 사사 시대는 결국 갈망의 시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갈망은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온전한 응답을 받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 또한 어느 면에서는 사사기의 또 다른 판본이다. 영적 지도자가 부패하고, 죄가 처단되지 않으며, 음란의 영이 한 가정에서 한 사회로 번져 가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분의 다스림을 이 땅에 매개하는 진정한 왕적 지도자의 사명에 우리 자신을 정렬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영적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우리 스스로 알아내기 어렵고, 우리 스스로 떼어내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하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분과 함께할 때, 우리는 자범죄를 회개하면서 그 회개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그 영적 메커니즘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우리의 몸이 정결하게 빚어지면서 마지막 시대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영적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천국에서 가장 높이 칭송받는 자가 누구인가. 그는 단지 우상을 멀리한 자가 아니다. 그는 다른 영혼을 회개시킨 자이다. 다른 영혼을 회개시켜 그 사람의 몸 안에서 악한 영이 떠나가도록 만든 자이다. 그렇게 한 영혼이 정결한 신부로 빚어지는 그 과정에 자기 자신을 던진 자이다. 천국에서는 그런 자가 높은 지위의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 자리는 영혼을 회개시키는 일에 자기 평생을 던진 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진정한 왕적 지도자는 외적의 칼을 막아 주는 자가 아니다. 그는 백성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우상의 영을 떼어내어 그 영혼을 정결한 신부로 빚어 내는 자이다. 그가 곧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이 마지막 시대에 매개하는 자이다. 사사기 350년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 진정한 왕의 모습이, 마침내 이 마지막 시대의 영적 지형도 위에 다시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이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여호수아 사후 350년이 왜 한 사람의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본질적으로 구분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걸쳐 여섯 차례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이 인간의 영적 부패의 깊이를 어떻게 폭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한 가정의 우상이 어떻게 한 지파의 우상으로, 또 한 나라의 우상 체계로 번져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멸문 위기가 왕이 없을 때 죄가 처단되지 못하고 한 공동체가 어떻게 동족상잔의 자리로 내몰리는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백성이 구한 왕인 사울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다윗이 어떤 영적 간격을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 필요한 왕적 지도자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다스림을 이 땅에 매개하는 영적 사명자가 어떤 일을 하는 자인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사사기의 그 끔찍한 순환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그 길을 거절해야 한다. 한 세대의 영적 기억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끊겨 버리는 그 비극을 우리 가정 안에서 다시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치고, 자녀의 몸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조상의 영을 회개로 떼어내며, 가정 안에 한 가지 우상도 남겨 두지 않는 영적 청소의 자리에 우리 자신이 먼저 서야 한다.

  우리는 미가의 산당이 우리 가정 안에 세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손으로는 자기 신을 부어 만드는 그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가 우리 신앙 안에 자리 잡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통치하면서 그 통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모든 형태의 자기 종교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레위인의 첩 사건과 같은 영적 부패가 우리 영혼에 자리 잡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자기 책임 아래 있는 자를 자기 안전을 위해 내어 주는 그 비겁한 자리, 그 영적 무책임의 자리에 결코 서서는 안 된다.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같은 무리라는 이유로, 같은 교회 식구라는 이유로 죄를 감싸 안는 그 영적 부패의 자리에도 결코 동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백성이 구한 왕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 재산을 지켜 주고, 내 자식을 보호해 주며, 내 사업을 형통하게 해 주는 그 표면적 보호자의 그림자를 향해서만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윗이 받은 그 칭송  곧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자리를 향해 우리 영혼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그것은 곧 우상의 그림자에서 영혼이 완전히 이격되는 자리이며,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 안에 들어와 모든 악한 영을 떼어내고 녹여 버리는 자리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정결한 신부로 빚어져야 한다.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자범죄의 항목 19가지를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 우상숭배의 네 가지 죄를 한 가지도 남김없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 가문에 들어와 자손에까지 흘러 내려온 조상의 영을 끝까지 떼어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사기 350년의 그 끔찍한 갈망이 우리 안에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아니하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온전히 들어가, 그분의 신부로 정결하게 준비되어 마지막 날에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며 주님께 칭찬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10일(주일)

정보배 목사

 

 

[참고할 내용] 

*육체를 장악한 귀신을 뽑아내는 예수 피와 성령 사역자의 불과 칼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우리 몸과 가문에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들어와 뇌와 장기에 찰거머리처럼 견고하게 집을 지은 조상 귀신과 뱀들을 몰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결코 우리의 감정적인 호소만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영계의 법칙을 따라 강력한 축사 메커니즘을 가동시켜야 한다. 그 유일하고 절대적인 무기가 바로 자백하는 '회개'다.

  그렇다. 우리가 피를 토하며 우상숭배와 음란, 혈기의 죄를 자백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린다. 그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피라도 회개가 깊어질수록 내 몸 안으로 점진적으로 밀려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낼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뱀들이 이격되고 녹아내려 비명을 지른 후에 성령 사역자들에 의해 '성령의 불과 칼'이 작동되면 더 강력하게 뱀과 귀신들을 내보낼 수가 있다. 이때 사역자들이 사용하는 '성령의 불'은 이격된 귀신들의 잔재와 그들이 지어놓은 영적 쓰레기(저주와 질병의 집)를 흔적도 없이 불태워 소멸시키고, '성령의 칼'은 귀신들이 가문과 엮어놓은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버릴 수 있다. 예수님의 피가 이격시키고 녹이며, 성령의 불과 칼이 태우고 자르는 이 완벽한 이중 타격이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질 때 뱀과 귀신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육체를 성령의 통치 공간으로 바꿀 수가 있다.

 

*천국의 4대 계급 실상과 성 밖의 비참함 속에서, 우리가 왕 노릇 하기 위해 취할 결단은?

  회개의 피와 성령의 불로 영혼을 정결케 한 성도들은 장차 천국에서 4대 계급(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물 긷는 자)의 철저한 질서 속에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첫째, 대제사장(24장로) 계급이다. 이들은 왕 노릇 하는 자들 중의 왕 노릇을 하는 자들로, 2천 년 전에 이미 거의 확정되어 현재 성도들이 이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들은 천국에서 10층 이상의 초고층 천국 집과 1,000평 이상의 광활한 땅을 소유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연회를 베풀고, 성 밖으로 나가 열국 위에 그리고 온 은하계의 별들 위에서 절대적인 왕 노릇을 한다.

  둘째, 제사장(144,000명) 계급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 보내신 사명자들로, 일부는 왕 노릇 하나 대부분 천국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자들이다. 천국 예배 시 14만 4천 석의 전용 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며, 고급스러운 예복과 보석으로 치장된 여러 개의 면류관을 겹쳐 쓰나 전혀 무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3~10층 규모의 집과 500~1,000평 정도의 땅을 소유하여 자기 집에서 풍성한 연회를 베풀 수 있다.

  셋째, 레위인 계급이다. 사역자로 보냄받지 않았으나 피 튀기는 영적 전쟁을 치러 스스로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입성한 성도들이다. 이들은 보좌는 없지만 14만 4천 명의 보좌 뒤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1개에서 여러 개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쓴다. 천국에서 자기 소유의 기업(땅) 50~500평을 차지하고 1~3층(많게는 5층) 규모의 천국 집을 가지고 살아간다. 헌신에 따라 가끔 더 큰 집을 소유하기도 한다.

  넷째, 느디님 사람(나무 패며 물 긷는 자) 계급이다. 이들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어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섬기는 자들이다. 집이 없기에 연회를 열 수 없고, 천국 변두리의 꽃밭에 돗자리 하나 펴고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땅만을 소유한다. 평소에는 왕 노릇 하는 이들의 대저택으로 출근하여 일상생활을 돕지만, 이 땅처럼 모욕적인 삶을 살거나 땀 흘리는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주인에게 야단을 맞는 비굴함도 없이 오직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기쁘게 섬긴다.

  그러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있었으나, 대부분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몇몇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성 밖 거주자들은 여전히 땀 흘려 노동해야 하고, 다치면 생명나무 잎사귀로 치유받아야 하며,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가면 무서운 형벌도 받는다. 영원한 신분이 결정되는 이 절대적인 팩트 앞에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회개하여 반드시 천국 성 안의 아름다운 기업을 차지해야만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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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21:25)_2026-05-10(일) file 갈렙 2026.05.11 96
545 악한 영들은 주로 언제 공격해 들어오는가?(마12:43~45)_2026-05-03(일) file 갈렙 2026.05.03 79
544 [기독론(78)]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3)(여호수아 23:6~16)_2026-04-26(주일) file 갈렙 2026.04.27 194
543 [기독론(71)] 예수께서는 어떻게 인류를 위한 속건제물이 되셨는가?(레위기 5:14~6:7)_2026-04-19(일) file 갈렙 2026.04.20 748
542 [기독론(64)] 하나님께서 봄과 가을 절기에 새겨놓은 예수님에 대한 예표는?(레위기23:23~44)_2026-04-12(일) file 갈렙 2026.04.13 721
541 [축사]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야만 하는 10가지 이유는?(마가복음6:7~13)_2026-03-29(일) file 갈렙 2026.03.30 695
540 [축사] 빛의 은사와 불의 은사, 어느 것이 축사에 더 효과적일까? (마가복음 16:17~18)_2026-03-22(일) file 갈렙 2026.03.22 653
539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서, 2가지 종류의 환상을 보는 법(사도행전 10:9~23)_2026-03-15(일) file 갈렙 2026.03.16 649
538 내가 내 속에 있는 영들을 축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한계시록 12:10~12)_2026-03-08(일) file 갈렙 2026.03.08 925
537 뇌를 망가뜨리는 짧은 동영상 중독을 이기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한계시록 3:3)_2026-02-22(일) file 갈렙 2026.02.23 1018
536 [기독론(27)] 교회시대에 이기는 성도들이 장차 받을 복은 무엇인가?(계21:1~7)_2026-02-15(주일) file 갈렙 2026.02.16 1219
535 [주일찬양] 사람이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잡아야 하는가?(02)(마9:9~13)_2026-02-08(주일) file 갈렙 2026.02.09 1051
534 [주일오후] 사람이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잡아야 하는가?(01)(마9:9~13)_2026-02-01(주일) file 갈렙 2026.02.03 1248
533 [기독론(05)] 최초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아담 기독론이란 무엇인가?(창2:7~25)_2025-01-18(주일) file 갈렙 2026.01.20 1254
532 [주일오후] 영성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6가지 기준은?(딤전4:1)_2026-01-11(주일) file 갈렙 2026.01.12 1348
531 [한자와 창세기(07)] 한자(漢字)에 나타난 악(惡)한 자와 제사(祭祀)의 비밀(03)(창4:1~15)_2025-01-04(주일) file 갈렙 2026.01.08 1015
530 [대강절(08)]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유대인의 사명과 이방인의 사명은?(마2:1~12)_2025-12-21(주일) file 갈렙 2025.12.23 809
529 [대강절(01)] 마리아의 약혼남이었던 요셉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1)(마1:16~25)_2025-12-14(주일) file 갈렙 2025.12.15 1427
528 [질병치유시리즈(20)]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은사들은 무엇인가?(고전12:8~10)_2025-12-07(주일) file 갈렙 2025.12.08 1329
527 [천국상급(1)]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 설 때 나의 모습과 내가 받을 면류관은?(딤후4:6~8)_2025-11-30(주일) file 갈렙 2025.12.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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